피밭의 송사
베드로유다
소재주의: 성경 날조 / 베드로유다 / 유다가 여자임 그게 더 맛있으니까
트리거 워닝: 자살
가리옷 사람 유다가 대제사장 앞에 나아가 예수 판 돈을 던지고 나왔을 때의 이야기다. 그 무렵엔 온 성읍이 유다라는 자와 그가 행한 일에 대해 알았으므로, 예수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모두 그를 꺼림칙하게 여기곤 하였다. 군중이 슬금슬금 좌우로 흩어지는 것을 본 유다의 입가에 한 순간 힘이 들어갔고 겉옷 쥔 손등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나 선생 판 여인이 무슨 말을 입에 담겠는가? 가느스름한 입술이 떨리다 소리 없이 다물어졌다. 여자는 묵묵히 인파 사이를 걸어 성읍을 벗어났다.
소문은 금세 퍼져 벳세다인 요나의 아들이자 본명은 시몬이라 하는 베드로의 귀에 들어갔다. 사내는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가지 말게," 마침 곁에 있던 한 제자가 걱정스레 만류하였다. 어쩌면 그는 베드로가 감정을 앞세워 배반자인 옛 동료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를 것을 염려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베드로는 고개를 굳게 저었다. 경직된 뺨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를 봐야겠어," 베드로의 말이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의 뺨에 입맞추었던 게 마지막이었고, 그 이후론 얼굴 한 번 보지 못했으니까."
"그 여자의 이야기는 끝났어, 베드로. 성전에 은전 삼십 냥을 던지고 나왔을 때 말이야. 이것이 마땅한 결말이네."
"... ..."
"때론 답을 구해선 안 되는 질문도 있다고. 알겠는가? 자네는 그 책이 덮이도록 두어야 해."
요한이 부드럽게 어르는 투로 응수했다. 불현듯 가슴이 조여들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말하고 싶었다. 무언가 뜨겁게 들끓는 것이 제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것 같았다. 그를 죽이려는 게 아니다. 어찌하여 선생을 배신하였는지 해명을 요구할 생각도 없다! 그저 이 순간이 아니면 유다를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예감이 든다고... ... 그러나 요한은 늘 그렇듯 주님을 꼭 닮은, 연민과 엄격함이 절반씩 뒤섞인 눈을 하고 그를 바라볼 따름이었다. 베드로는 이를 앙다물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요한의 서글픈 부름이 다락방을 뛰쳐나가는 그의 뒤를 쫓았다.
"베드로! 베드로!"
유다는 성읍 외곽의 버려진 밭에 서있었다.
언제부터 점찍어 둔 장소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발 닿는대로 걷다가 힘이 빠진 곳이 하필 그곳이었는지도 모르지. 먼 미래엔 아겔 다마라 불리며 나그네의 묘지로 쓰일 땅에 그는 멈추어 섰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피폐하고 무감정하고 피로하고 앙상한 눈, 그 눈동자에 반사되는 것은 다름아닌 한 그루의 나무다. 이파리 하나 제대로 맺지 못한 채 바짝 마른 가지들이 그를 향해 손짓하는 듯하였다. 아,
이곳에 목을 매고 죽어버릴까.
"유다!"
그 때에 등 뒤에서 벽력같이 내리꽂히는 목소리는 불청객의 것이다. 그가 늘 싫어하던, 시끄럽고, 성급하며,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는 일은 일체 없고, 상황을 악화시키기 일쑤인 음성을 못 알아들을 리 없다. 유다는 몸을 천천히 돌려 베드로를 마주보았다. 어지간히 급하게 뛰어왔는지 베드로의 숨결에선 피 냄새가 났다. 얼굴은 형편없이 일그러진 채로, 그가 무슨 짓을 할지 짐작해서 온 것처럼... ... 화가 난 걸까, 아니면 절박한 걸까. 어느 쪽이든 기분 나쁘다고 생각했다. 다만 해를 등진 얼굴에 드리운 그늘이 여자의 표정을 감춰주었다.
"너... ...!" 한참 헐떡이다 먼저 침묵을 깬 쪽은 베드로였다. "죽음으로 도피할 생각이냐, 유다!"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는데 다른 길이 있을까."
역광에 잠긴 여자의 어조는 그 얼굴만큼이나 단조롭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베드로는 한층 더 격양된 낯을 했다. 몸이 한 발 앞으로 나섰고, 말아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나 감히 상대에게 손을 댈 수가 없어 애꿎은 제 가슴만 한 번 쾅 치더니 언성을 높여대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선생을 세 번 부인한 나는!"
"네 쓰임은 아직 다하지 아니했지. 나는 달라, 베드로."
우연이었을까? 잠잠한 목소리가 저 자신의 이야기에 사형을 선고한 그 때에, 하필 그 순간에. 해가 구름 뒤로 모습을 감추면서 유다의 표정이 베드로의 눈앞에 온전히 드러났다. 그 얼굴이란! 절망과 확신이 뒤섞인 채 짓는 그 끔찍스러운 미소란! 죽는 날까지 그의 악몽 속으로 쫓아올 흐린 웃음을 지은 채로, 유다는, 여자는 울고 있었다... ...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두 줄기 눈물 속에서 지옥이 손짓하고 있지 않은가. 베드로는 저도 모르게 떨며 한 걸음 물러섰다.
아, 기억난다.
그때. 그 동산에서. 겟사마네의 발치에서.
네가 스승에게 입맞추고 횃불을 든 무리가 개떼같이 몰려들 때에.
벳세다인 요나의 아들이자 안드레의 형제이고 본명은 시몬이라 하는 베드로가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찬 칼을 빼들었을 때, 과연 우리의 시선은 마주치지 않았는가. 내 눈빛이 동요해 흔들리는 것을 너는 보았다. 인파가 빽빽한 탓에 너는 충분히 거리를 벌리지 못했고 나는 그 자리에서 너를 베어 주를 배반한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나는 곧바로 몸을 틀어 대제사장의 종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날 밤 네 뺨에 피가 튀었던가. 그때에, 너는... ... 배신한 자가 배신할 자에게. 이야기 속에서 역할을 다한 탓에 용서받지 못하고 폐기될 자가, 아직 쓰임이 다하지 않아 용서받을 자에게. 목매달아 자결할 여자가 거꾸로 매달려 처형당할 사내를 향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나.
피폐하고 피로하며 앙상한, 그의 죽을 자리가 될 나무를 등진 채로 유다는 꺽꺽 울며 속삭였다. "그때, 그 칼로, 나를 베었어야지, 왜 그랬어... ... 왜."
(행 1: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행 1: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행 1:17)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행 1: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행 1:19)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 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유다가 죽는 동안 베드로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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