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엔 그르니에

인간의 독해 (上)

자캐 "루시엔 그르니에" 개인작.

시작하기에 앞서: 이 연대기는 19세기의 인물을 서술자로 설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시대에 따른 퀴어혐오적 관점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살인 등의 반인륜적 행위가 다소 가벼운 어조로 묘사되어 있으니 열람에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자는 서술자 및 등장인물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역사적 고증이 충분한 조사로 뒷받침되지 않았습니다.

모티브가 된 도서: 이방인 (알베르 카뮈 저),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아르튀르 랭보 저), 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저)

인간의 독해

w. 펌블

때는 바야흐로 19세기였고, 프랑스가 아름답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백 년 전의 풍운아들은 훨씬 가혹한 처벌을 마주해야 했다. 방화한 자는 불 속에서 죽었다. 사기를 친 이는 끓는 솥 속에서 최후의 참회를 올렸다. 반역자는 사지를 절단당했고, 살인자는 온 몸의 뼈가 분질러졌으며, 광장에선 말뚝에 꿰뚫린 죄인들이 꿈질거리고 있었다. 살 타는 냄새는 일종의 봉화가 되어 행인들에게 올바른 길을 벗어나는 대가가 무엇인지 일깨워주곤 했다.

그러나 방브 지역의 수간범이 말뚝형을 당한 것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성을 향해 진일보하길 택했다. 나라가 윤택할수록 형벌은 가벼워진다는 어느 철학자의 고찰처럼, 긴 침묵 끝에 자비의 손을 든 국회는 법문을 이렇게 고쳐 썼다.

‘모든 사형수들은 목이 잘려 죽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특정한 방식으로 교접했다는 죄목 하에 사형당하지 않았다. 광장에선 채찍질이 행해졌다. 날이 좋은 정오면 여전히 수많은 목들이 잘려나갔으나 그것은 부차적인 오락에 불과했다.

나의 오랜 벗 르콩트는 언제나 콩코르드 광장과 인접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길 고집했는데, 이는 식사 후 산책하며 사형 집행을 관람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의 도덕 관념은 여타 모범적인 시민과 다르지 않았다. 살인은 이유를 불문하고 용서받을 수 없다고 열을 올리다가도 그 주체가 법과 권력이라는 말을 들으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르콩트의 말버릇은 이러했다: “아, 일상성이란(Quotidienneté).”

일상성!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가 피와 오물, 참수의 일상화 속에서도 평온을 지킬 수 있는 등대가 이곳에 있다. 르콩트가 사려 깊은 사람이라고 하긴 어려웠으나 일상성을 유지하는 능력만큼은 발군이었다. 이 웃는 인상의 호인은 무역업에 종사하는 유산계급 시민이었고, 작은 체구의 부인에게서 아들 둘을 보았으며, 친구들과 술잔을 나누는 자리에선 씀씀이가 과할 정도로 좋았다. 그의 미래에 단두대란 존재하지 않았다. 이따금 포주에게 큰 돈을 지불한다는 사소한 결점 외엔 좋은 사람이라 나는 종종 그와 식사를 함께하곤 했다. 누군가 르콩트를 죽일 만큼 싫어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4월 5일의 저녁 식사는 아주 유쾌하게 흘러갔다. 올리브 절임과 와인 두 병 덕분이었는데, 그는 흥이 올라 벌개진 얼굴로 내 어깨를 두드려댔다. “…듣고 있나, 조르주? 정의가 신속하게 집행된다는 건 좋은 거야. 단 한 놈도 예외를 두어선 안 돼. 반도덕주의자 놈들의 불결한 사상을 그대로 뒀다간 벼룩떼처럼 퍼질지 누가 알겠어. 국가와 교회가 나서야 하는 일이라고.”

“그런 사상이 퍼진다는 건 그만큼 살기 편하단 뜻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르콩트가 낄낄거리더니 잔을 높이 들어올렸다. “빵과 포도주를 위하여!”

당시 나는 책을 집필하던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책을 집필하는 것 외에 먹고 살 방도가 없었다. 르콩트 같은 마음씨 좋은 호인 덕분에 간간이 고급 포도주를 누릴 수 있었으나 모아 놓은 돈은 떨어져 가고 있었고 마음은 날로 조급해졌다. 내게 큰돈을 쥐어줄 만큼의 단어를 생각해내려면 두 가지가 필요했다: 맑은 정신과 강렬한 사건. 그래서 나는 르콩트에게 양해를 구해 자리를 일찍 파했고 근교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정오 무렵, 나는 집주인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났다. 그는 내게 전보 한 장을 건네주었다. 열 글자 남짓이 적힌 짧은 종이를 든 채로 한참을 심사숙고하던 나는 이윽고 창가로 향했다. 변함없는 풍경이었다. 새 지저귀는 소리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흘러가는 구름. 나직한 탄식이 입에서 터져나왔다.

“하느님 맙소사, 르콩트가 죽다니.”

4월 6일 오전 10시 30분경 르콩트 베를렌은 서른여덟의 나이로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의 살인자는 루시엔 그르니에라는 이름으로, 올해로 서른다섯 살에 접어든 르콩트의 직장 동료라고 했다.


르콩트 베를렌의 장례식은 간소하게 이루어졌다. 그렇게 된 경위에는 다소 슬픈 뒷이야기가 있다. 앞서 설명했듯 르콩트의 씀씀이는 몹시 큰 편으로, 무역업 외에도 손을 대고 있는 사업이 대여섯 가지가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부채를 돌려막기 한 정황이 발견된 것이다. 수완이 좋은 편이니 본래대로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겠으나 르콩트가 죽으면서 채무가 붕 떠버렸다. 그래서 그 많던 재산이 넝마주이가 되었고 아내는 두 자식을 먹여살릴 방법을 고심해야 했다. 장례식에 낭비할 비용은 없었다.

급격히 무너진 한 가정의 일상을 목도하자, 루시엔- 우리 식으로 발음하자면 뤼시앵- 그르니에라는 인간이 궁금해진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르콩트와 평소에 사이가 나빴을까? 아니면 사소한 다툼이라도…? 하느님이 굽어살피시는 이 시대에, 환한 맨정신으로 살인을 저지른다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때부터 나는 루시엔의 행보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고백하건대 그 당시 나의 마음가짐은 피해자의 친우보단 기자의 태도에 가까웠다. 강렬한 흥미가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친구를 잃은 슬픔은 망각의 저편으로 밀려났고, 나는 어쩌면 이 일이 내 지갑을 채워줄 글의 단초가 되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첫 번째로 찾아간 대상은 두 사람의 직장 동료인 셀레스트였다. 그는 나와 안면이 있던 사이로, 마침 큰 충격을 받아 누구에게라도 털어놓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상태였다. 나는 그를 꾀여내 공원 벤치에 앉게 했다. 산들바람을 맞으며 마음의 벽을 고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지론이었다.

“제가 알던 사람이 맞나 싶어요,” 한참을 망설이던 셀레스트가 꺼질듯한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몸이 육중하고 눈썹이 짙은 남자에 어울리지 않는 태도였다.

“그르니에 씨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어요. 목소리가 부드럽고 분명했죠. 아랫사람의 실수에도 관대했는데, 베를렌 씨는 그걸 마음에 들지 않아했죠. 어쩌면 그르니에 씨가 베를렌 씨의 초대에 응한 적이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1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아내와 저녁 식사를 함께한다니!’ 베를렌 씨의 말이었죠. ‘다 핑계야. 그렇게 아내를 사랑하는 신사가 왜 자식 하나 없겠어?’”

나는 그 증언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내가 아는 르콩트 베를렌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그는 아내를 두지 않는 남성과 남편을 갖지 않는 여성, 성당에 나가지 않는 가정과 헛된 꿈을 꾸는 젊은이를 경멸하는 동시에 그 모든 가치에 지나치게 충성하는 이들 또한 질시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아내 없는 남자는 결함품이었고 아내를 사랑하는 사내는 백치였다. 매일 성당을 찾으면 꼴통이라 비웃었으나 한 번도 찾지 않으면 이단이라고 손가락질했다. 그러니 그가 루시엔 그르니에라는 자를 못마땅하게 여긴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는 셀레스트에게 루시엔과 베를렌이 앙숙이었냐고 물었다.

“그럴 리가요!” 셀레스트는 소스라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르니에 씨는 모두와 사이가 원만했어요. 베를렌 씨도 결국엔 그르니에 씨의 일처리를 높게 샀으니까요. 전날까지도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았던 것으로 압니다.”

셀레스트가 회고하는 사건 당일은 이러했다. 르콩트 베를렌은 오전 아홉 시에 출근했다. 루시엔은 그보다 삼십 분 가량 늦게 왔다. 이례적인 일이었으나 본인의 태도가 워낙 차분해 아무도 이상하다 느끼지 못했다. (“뭐랄까, 일상적이었죠.”) 셀레스트와 날씨에 대한 가벼운 잡담을 나눈 그는 이내 사무실로 향했다. 르콩트와 루시엔은 직장 내에서 같은 직위였고, 하나의 사무실을 나눠 쓴지도 십 년이 되었다. 언제나 부산스러운 르콩트와 달리 루시엔은 모든 걸 꿰뚫어본 것마냥 행동하곤 했다. 그래서 루시엔의 등 뒤로 사무실 문이 닫혔을 때에도 누구 하나 지적하는 이가 없었다.

“돌이켜 보니 모든 게 평소와 달랐어요. 하지만 그땐 그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졌죠,” 셀레스트가 설명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 다음 총성이 울렸어요.”

탕, 탕, 탕, 탕, 탕. 막히거나 주저하는 일 없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다섯 번의 격발음. 셀레스트는 놀라 달려간다. 루시엔 그르니에는 사무실의 문을 닫고 나오고 있다. 그는 평소와 거의 같은 표정으로 셀레스트를 본다.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셀레스트는 곧바로 이질적인 점을 알아차린다.

“그르니에 씨의 뺨이 소년처럼 상기되어 있었어요. 동공은 미세하게 확장되어 있었고요. 기분이 좋아 보였다고나 할까요. 그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하더군요. ‘셀레스트, 저를 위해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지 않겠습니까? 5분만 시간을 주세요. 그 뒤엔 이 문을 열고 들어가서 무엇이든 해도 좋습니다.’”

그 말과 함께 루시엔 그르니에는 건물을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셀레스트에게,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째서 그런 상황에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느냐고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 뒤로 그가 보인 일련의 반응은 놀라웠다.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마냥 뺨이 떨리고, 굵직한 체구가 오그라들더니, 급기야는 붉어진 눈꺼풀 아래에서 눈물이 샘솟기 시작했던 것이다.

행인들이 호기심에 흘긋대는 것조차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셀레스트는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살인은 일상적이지 않은걸요!”


우리는 이쯤에서 살인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살인, 그것은 비일상적인 것이다. 살인, 조직이 행할 땐 불가피한 처분인 그것이 개인에 의해 행해지는 순간 우리는 일상성으로부터 찢겨져 나간다. 비명, 피, 차갑게 식어가는 시신. 모두의 삶이 비가역적으로 뒤틀리는 순간. 상처는 아물지만 빠져나간 생명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살인은 충동적으로, 혹은 이미 익숙해진 상태에서, 어둠과 습기가 가져다주는 불온한 속삭임의 힘을 빌려 이루어진다.

살인은 은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존속을 위협받는다.

그러나 이곳에 일상적으로 이루어진 살인이 있다. 어떠한 전조 증상도 없었다. 계기도 없고, 뚜렷이 설명할 방책도 없었다. 루시엔 그르니에의 살인은 단순하고 일상적인, 심지어는 평온한 태도로 이루어졌다. 바로 그곳에 모든 수수께끼가 있었다.

기자들은 무의미한 추측으로 지면을 낭비했다.

공원과 길거리는 온통 그의 이름으로 들끓었다.

예심 판사는 루시엔 그르니에를 수 차례 심문하며 자그마한 단서, 피고가 사회의 보편 시민이 아니라는 최소한의 근거를 찾고자 애를 썼다. 과연 좋은 아들, 좋은 남편, 좋은 상사로 서른다섯 해를 산 뒤 별안간 마음을 달리 먹고 살인을 저지르는 게 가능할까? 예심 판사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죄를 범하는 모두에겐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 이유를 짚어낼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판사의 끈질긴 노력에도 그의 목표는 수포로 돌아갔고, 모두가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

한 평론가는 이 사건의 본질을 이렇게 짚어냈다.

‘루시엔 그르니에는 지극히 단조로운 청년이다. (…) 유산계급의 화목한 가정에서 성장한 지식인으로, 아내와의 시간을 즐기고 질 좋은 와인을 선호한다. 이런 자가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살인의 유혹에서 안전하지 못하단 뜻이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 살인에 징조나 계기가 없다면 어떻게 방아쇠가 당겨지는 것을 방지할 것인가?’

다소 비약이 섞여 있지만, 그의 어조에서 느껴지는 절망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루시엔 그르니에는 사회라는 정교한 기계 장치에 끼어들어온 이물이었다. 증오는 몰이해에서 시작된다. 이제 파리 사람들은 전력을 다해 그를 꺼렸다. 떠들썩한 소문은 불안한 수군거림으로 잦아들었고, 루시엔의 미래는 날로 어두워지는 듯했다. 실제로 그가 저지른 짓은 교수형 혹은 참수형에 준하는 처벌을 당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이대로 치워버리고 잊으면 된다. 그러면 모두가 일상을 되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나는 무엇으로 글을 써야 하는가?

공판 일자는 날로 가까워졌고, 나는 반쯤 단념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루시엔 그르니에가 면회를 승낙한 것이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젊은 살인자를 직접 마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가벼운 전율을 느꼈다. 그렇게 이 사건과 관련해 내가 만난 두 번째 증인은 바로 살인자 본인이 되겠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당신은 루시엔의 얼굴을 어떻게 그리는가? 음산하고 뺨이 홀쭉한가? 혹은 검고 부드러운 눈을 가졌는가? 납으로 만든 인형 같은가, 아니면 혈색 좋은 시칠리아 농부 같은가? 나조차도 무엇을 기대하고 면회실로 들어섰는지 분명히 말하기 어렵다.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그를 만났으나 모두 제각기의 왜곡된 시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떤 인간이든 태어나는 순간부터 다른 모두에게 뿌리 깊은 수수께끼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면회실까지 동행했던 나의 수첩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중키, 얇은 체구, 등은 반듯하고 시선은 곧음. 보폭은 평균적이고 손길은 섬세함. 깊은 안와와 쌍꺼풀, 검푸른 눈동자. 연한 갈색 모발을 하나로 땋아 내렸다. 구레나룻은 없음. 안색은 창백한 편.’

자, 살인자의 얼굴을 그려낼 수 있겠는가?

전부 의미 없는 말뿐이다.

그를 직접 만나본 적 없는 독자들에게 내 묘사가 얼마나 설득력을 지닐지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받은 인상을 이곳에 기술한다. 소리 없이 간수를 따라 들어온 그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정적인 젊은 남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르콩트의 조카뻘로 착각당하는 그를 어렵지 않게 상상해냈다.

그는 내 건너편에 앉았고, 둥글게 입매를 올려 미소지었다. “르콩트 베를렌 씨의 친구라고 들었습니다,” 조곤조곤한 음성이 면회실을 울렸다. “만나서 반가워요. 친구분의 일은 유감입니다.”

마치 방아쇠를 당긴 게 그의 두 손이 아닌 것처럼!- 그러나 나는 평정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세상을 떠난 벗에 대한 애착보다 눈앞의 난제를 향한 끌림이 더 컸기 때문이다.

“예, 조르주 포르라고 합니다. 루시엔 씨가 궁금해서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승낙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조르주 포르.”

그는 나의 이름을 음미하듯 가만 되풀이했고,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예.”

“제가 궁금해서 찾아왔다고 하셨지요. 당신의 눈엔 제가 어떤 사람으로 보입니까?”

나는 그를 오랜 시간 마음 속에 품었던 인상과 견주어 보았다. 하지만 끝내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는 어깨의 긴장을 풀더니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최소한 당신은 저 바깥의 머저리들보단 낫군요,” 거의 넌더리가 난다는 투였다. 자유민일 땐 지팡이를 쥐고 있었을 손이 허공을 툭, 툭 건드리다 멈추었다. 검푸른 눈은 나를 신중하게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저도 당신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웃음. 소년처럼 환하게 트인 명랑한 소리. 면회실 밖을 지키던 헌병이 놀라 들여다보자 그는 금세 표정을 고쳐 짐짓 진지한 낯을 했다. 나는 그제서야 루시엔 그르니에가 농담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어느새 상대를 탐색하는 쪽이 내가 아니라 그가 되어 있었던 점이다. 나는 그 순간- 설명할 수 없게도- 그의 존재를 견디지 못하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불쑥 질문을 던졌다.

“왜 죽였습니까?”

그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더니 헛기침을 했다. 나는 거진 필사적이게 그를 압박했다. “당신이 설명하지 않으면 나는 당신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왜 죽였습니까?”

루시엔 그르니에의 얼굴은 가면처럼 고요했다. 마침내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아주 가라앉아 있었다.

“당신의 얼굴은 당신의 것이라기보다 온 인류의 항변같이 느껴집니다.”

“그르니에 씨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제가 어떻게 느끼는지가 곧 저를 설명합니다. 당신에게 독해할 능력이 없는 게 제 잘못은 아니겠지요. 당신 마음에 위로가 된다면, 르콩트 베를렌은 시끄럽고 무능한데다 아내에게 충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게 죽을 이유가 되진 않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당신은 이렇게 주장하고 싶겠죠. 르콩트에게 반드시 죽어야 할 이유가 있었거나, 내게 죽여야 할 이유가 있었다고.” 여기까지 단숨에 말한 그는 호흡을 고르더니 상기된 뺨으로 덧붙였다. “그러나 우연이었습니다.”

“흥분한 말에게 밟혀 죽는 것처럼요?”

“면회는 끝났습니다. 공판에서 뵙지요.”

“그르니에 씨!”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헌병이 나를 제지했다. 그는 얌전한 미소를 짓더니 감방 복도로 향했다.

돌이켜 보았을 때, 루시엔 그르니에는 진실로 자신의 모든 것을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내가 독해할 능력이 없던 것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사실을 6년 뒤에야 깨달았고, 당시에는 내가 어떤 이유로 불안하고 화가 났는지 가늠조차 못한 채로 면회실 바깥을 서성거릴 따름이었다.


해가 서서히 기울 즈음, 그 여자가 나타났다.

프랑신.

루시엔 그르니에의 아내는 루시엔보다 두 살이 많았고, 키는 같았으며, 움직임이 부드럽고 우아해 교외의 미풍을 닮은 면모가 있었다. 머리는 오월의 밀밭을 생각나게 했고 눈은 검었다. 무엇보다 왼손 약지에 결혼 반지를 끼고 있었다는 게 기억에 남는다. 부인은 구치소의 정원을 가로질러 오더니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혹시 제 남편을 만나신 걸까 싶어지네요.”

나는 깜짝 놀랐고, 부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짓더니 산책을 제안했다. 당장의 소재가 급했던 나로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떻게 루시엔을 만난 줄 알았느냐고 묻자 그는 예의 온화한 목소리로 내 얼굴에 서린 근심 때문임을 설명했다. 처음 만나면 남편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니 내가 보이는 반응을 이해한다며. 자기도 언젠간 남편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 이렇게 대화를 제안한 것이라 덧붙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해가 가진 않으시겠지만…” 말끝을 흐리면서도 부인은 그저 담담했다. 그러나 나는 프랑신이 보여주는 차분함의 저편에 애써 억눌러진 슬픔이 있다고 느꼈다. 그러자 기이할 정도로 친밀감이 샘솟았고, 그가 남편과 같은 부류의 인간이 아니라는 확신 하에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프랑신의 말에 따르면, 루시엔 그르니에는 매일 오전 여섯 시에 일어나 생 도미니끄 부근을 산책하고 꽃다발을 사오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블랙 커피 한 잔을 곁들여서 신문을 본 후엔 사용인이 부른 마차를 타고 출근.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귀가한 뒤엔 아내와 밖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했고, 아홉 시면 소등하고 잠에 들었다….

“그런 사람이 어째서 살인을 저지른 걸까요?” 나는 무심결에 의문하고 놀라 눈을 깜빡였다. “아, 죄송합니다. 마담께서 제일 궁금하실 텐데.”

“그러게요. 어째서일까요?” 프랑신은 얕은 한숨을 쉬며 되뇌였다.

“그이는 사람을 죽이자마자 절 찾았어요. 곧장 집으로 와서 제 두 손을 잡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프랑신, 당신과 함께한 13년은 내게 있어 큰 행운이었어. 하지만 그 시간이 내게 깊은 울림을 줬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 작별이야.’ 저는 이 말을 너무나 자주 되풀이해서 죽을 때까지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째서 그렇게 들뜬 목소리였는지, 왜 재산은 전부 내 앞으로 분리해 둔 건지.”

땅거미가 깔린 공원의 나무 사이로 쓸쓸한 바람이 감돌았다. 프랑신은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어둠에 잠긴 얼굴에선 표정을 읽어낼 수 없었다.

“조르주 씨는 그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시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는 모자의 챙만 만지작대다 어렵사리 털어놓았다. “하지만 희망은 가져야겠죠. 모든 건 공판에서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그는 침묵으로 동의를 표했다.

그렇게 6월 5일, 파리 시민들의 치열한 관심 아래 루시엔 그르니에의 공판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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