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다 쓰지

로판신분반전AU

fk18 by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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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트만 부인은 알레그로 남작과 이혼한 뒤 수도로 올라가 귀족 여식들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그리고는 성실하고 청렴결백한 상인 화이트를 만나 재혼하고 세레나라는 딸을 낳았다. 부인은 몰락한 가문이었을지라도 자긍심이 있는 인물이라 딸에게도 귀족 예법, 사교댄스, 처세술 등을 가르쳐 긍지를 잇도록 했다. 또한, 남작에게서 뜯어낸 어마어마한 위자료가 그녀를 더욱 부족함 없이 키워내었다. 덕분에 세레나는 어느 귀족 여식과 다름 없는 단아하고 우아한 아가씨로 자랐다.

아쉽게도 세레나는 어미의 고지식한 면에 질려, 자유롭고 시원한 바닷가 마을로 여행을 갔다가 선원이었던 올리브 기네비어를 만나 결혼하였다. 수도와는 다른 소란스러움이 세레나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올리브의 남 다른 열정이 수도의 남자들과 다른 따스함을 주었다. 둘의 사랑의 결실은 자신과 똑닮은 딸로 태어났다. 세레나는 하르트만 부인의 엄격한 성격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딸에게도 자신이 받은 가르침을 물려주고 싶어 어린 딸을 그의 곁으로 보냈다.

그러니 그의 외동딸 비앙카 기네비어가 귀족보다 귀족같은 성품과 사교계 기술을 잘 알 수밖에 없었다. 융통성 없는 할머니 밑에서 살아남으려면 눈치와 실력을 동반해야 했으니. 다행히 비앙카는 영리했고, 똑똑한 머리로 할머니의 마음에 쏙 드는 애제자가 되었다. 그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말이다. 비앙카 기네비어, 19세. 하이드 후작가에 발을 디딜 수 있는 이유였다.

하이드가 후계자를 위하여 전속 하인을 공개 모집했다. 모집 요건은 간단했다. 사교술에 재능이 있는 사람. 후작가의 후계자를 위한 공고 치고는 간단명료했다. 덕분에 비앙카가 19살에도 불구하고 전속하녀가 될 수 있었지만. 알레그로 남작과 이혼한 하트르만 부인의 손녀딸이라는 꼬리표가 이곳에서는 도움이 되었다. 할머니에게는 치욕스러울지 모르는 말이라고 항상 생각했다.

여러 번 안경을 고쳐쓰며 이력서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깐깐한 하녀장은 비앙카의 똑부러지는 언변에 결국 넘어가 당장 일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언변보다는 그의 먼 출신과 이를 증명하는 실력이 컸을 테다. 비앙카는 뽑힐 줄 알았다는 듯 짐가방을 챙겨왔었다. 그리고는 커다란 가방을 보여주며 의사를 표했다. 하녀장은 곧바로 전속하인들에게 내어주는 개인실로 안내했다. 준비를 마치는대로 나오라고 한 뒤 하녀장은 떠났다.

홀로 쓰기에는 아늑하고 집에 있던 방보다는 넓었다. 생각보다 대우가 좋네. 저택의 정원이 보이는 작은 창문에서 빛이 쏟아지는 탓에 방이 더욱 밝게 보였다. 삐꺽거리는 침대와 낡았지만 충분한 옷장. 책상 위에는 누굴 위한 것인지 종이와 펜이 놓여있었다. 그리고는 책 몇 권이 꽂힌 책장이 있었다. 먼지가 쌓여있었지만 읽을 만한 상태였다. 이미 읽은 책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텅 빈 가방이 책장 맨 아래 칸에 딱 맞았다. 언젠가 저 가방을 꽉 채운 채 이곳을 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애석한 하녀장은 저택에 온 지 1시간도 안 된 하녀를 주인에게 소개해주고픈 것 같다. 가는 길 내내 그에 대한 설명 뿐이다. 어두운 색만 골라 지은 저택은 그나마 커다란 창을 내어 마음에 들었다. 칙칙한 분위기를 숨기려 곳곳에 그림을 걸어두었고 낮인데도 불을 켜두었다. 딱 그가 말한 대로였다. 하녀장의 말은 언젠가 그에게서 들었던 내용이라 흘려버렸다. 그리고는 짙은 고동색 문이 열리면, 그가 가장 싫어하는··· ···. 아, 이제는 아니겠구나.

그는 비앙카의 얼굴을 보자 놀란 눈치였지만 금새 돌아왔다. 앞으로 도련님 곁에서 시중을 들 아이입니다. 형식적인 소개와 인삿말이 이어지고 도련님이 하녀장을 무르자 서재에는 둘만 남게 되었다. 어두운 녹색 벽지를 바르고 어두운 고동색 가구를 놓고 금장식으로 꾸며놓았다. 취향 참 이상하다고 투덜대던 모습이 훤한데, 저 자리에 앉아있다니. 이상한 건 너다.

왔어?

··· ···.

기다렸어.

죄송할 따름이에요.

왜 예전처럼 말하지 않고.

··· ··· 밖에서 듣고 계세요.

아. ··· ··· 그래.

앞으로도 예전처럼 대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야 하니까요. 그러니 도련님도, ··· ··· 모세 너도 그렇게 하는 편이 좋을거야. 난 여기서 오래 일하고 싶거든.

이제는 밖에 사람이 없나?

집의 재정상황이 좋지 않아서, 겸사겸사. 이런 식으로 만나려고 했던 건 아니야. ··· ··· 그러면 무례함을 무릅쓰고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일이 바쁘시다고 들었어요.

도망치듯 밖으로 나온 사실을 들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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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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