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판헌터물에서 균열은 각성의 도구에 불과하다.
[아르마 코르니스, 레온타인 킹스턴]
9월 3일 오후 02시 42분, 뉴욕시 내 8개의 균열 동시 발생. 1급 던전 2개, 2급 던전 1개, 3급 게이트 1개, 4급 게이트 3개. 미국 지부 S~K팀 파견, 시내 전 길드 대상 긴급 소집 명령.
9월 3일 오후 02시 45분, S팀 팀장 아르마 코르니스, S팀 레온타인 킹스턴 1급 던전-1 진입. 추가 인원 진입 불가.
9월 3일 오후 02시 46분, S팀 제논, S팀 라비에 베르누이, A팀 전원 1급 던전-2 진입. 추가 인원 진입 불가.
9월 3일 오후 02시 46분, B팀 전원 2급 던전 진입.
…
9월 3일 오후 09시 10분, 4급 게이트-1 클로즈. J팀, K팀 전원 귀환.
9월 3일 오후 09시 13분, 4급 게이트-3 클로즈. H팀 전원 귀환.
…
9월 4일 오전 05시 09분, 2급 던전 클로즈. B팀 전원 귀환. 사망자 1, 부상자 9.
9월 5일 오후 11시 58분, 1급 던전-2 클로즈. S팀 제논, S팀 라비에 베르누이, A팀 전원 귀환. 부상자 12.
9월 6일 오전 12시 00분, 현재 미귀환자 2. S팀 팀장 아르마 코르니스, S팀 레온타인 킹스턴. 1급 던전-1 추가 인원 진입 불가. 지원 불가 판정.
9월 6일 오전 12시 28분, 뉴욕 길드 1급 던전-1 진입 시도, 추가 인원 진입 불가. 지원 불가 판정.
9월 6일 오전 01시 40분, R 길드 1급 던전-1 진입 시도, 추가 인원 진입 불가. 지원 불가 판정.
9월 6일 오전 02시 01분, S팀 제논 1급 던전-1 진입 시도, 추가 인원 진입 불가. 지원 불가 판정.
9월 6일 오전 02시 06분, 라트로 에스투스, S팀 제논 1급 던전-1 진입 시도, 추가 인원 진입 불가. 지원 불가 판정.
…
9월 6일 오전 10시 08분, 추가 인원 진입 불가. 지원 불가 판정.
9월 6일 오전 10시 39분, 추가 인원 진입 불가. 지원 불가 판정.
9월 6일 오전 11시 20분, 추가 인원 진입 불가. 지원 불가 판정.
9월 6일 오후 12시 17분, 추가 인원 진입 불가. 지원 불가 판정.
9월 6일 오후 01시 59분, 추가 인원 진입 불가. 지원 불가 판정.
9월 6일 오후 02시 37분, 추가 인원 진입 불가. 지원 불가 판정.
9월 6일 오후 03시 10분, 추가 인원 진입 불가. 지원 불가 판정.
9월 6일 오전 04시 56분, 추가 인원 진입 불가. 지원 불가 판정.
9월 6일 오후 06시 18분, 추가 인원 진입 불가. 지원 불가 판정.
쾅! 바로 옆에서 굉음이 터졌다. 평소보다 정제되지 못한 폭음이었다. 고막이 터질 듯 큰 소리에도 두 사람, 아르마 코르니스와 레온타인 킹스턴은 귀를 막지 않았다. 고작 그정도에 낭비할 정신이 없었다. 왼쪽에서 터져나간 몬스터의 잔해를 피하고 곧바로 쾅, 정면을 향해 또다시 폭음이 울렸다. 몬스터 여러 마리의 몸통이 한 번에 꿰뚫리며 쿵, 쿵, 도미노 쓰러지듯 엎어지는 것이 보였다. 몰려든 몬스터를 반쯤 쓰러트리자 남은 놈들은 달려들기를 주저했다.
아주 잠시 생긴 틈에 아르마 코르니스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던전 진입 약 60시간, 그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레온타인의 힐로 버텨온 몸뚱이가 곳곳에서 이상을 호소하고 있었다. 아르마는 떨려오기 시작한 왼손을 힘주어 틀어쥐었다.
"레온, 통신은?"
"안돼요. 아직 진입 제한이 안 풀린 것 같아요."
레온타인이 통신용 뱃지에 신호를 보내고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하필. 아직도. 아르마는 짧게 끊어지는 생각을 털어버리려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간혹 그런 던전이 있었다. 최초 각성자 진입 후 일정 시간이 지나기 전까지는 각성자의 추가진입을 막는 진입 제한 던전. 고등급 던전에 주로 나타나긴 했지만, 평소에는 추가 진입 제한을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처럼 8개나 되는 균열이 한꺼번에 터져 인력이 극도로 부족해지는, 겨우 한 두명이 1급 던전에 진입해야 하는 경우는 없었으므로. 게다가 진입한지 60시간이 넘어서까지 진입 제한이 풀리지 않는 경우도 없었다. 이렇게 지원이 절실한 때에, 하필. 아직도. 아르마는 어쩔 수 없이 그 생각을 반복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던전에 갇힌 민간인의 수가 예상보다 적다는 것이었다. 32명, 아슬아슬하게 레온타인의 은신 스킬로 숨길 수 있는 명수였다. 이 지옥같은 상황에서 한 명의 민간인 사상자도 내지 않고 지금까지 버텨온 것은 레온타인의 스킬 덕이었다. 아르마는 눈가로 흘러내린 피를 닦아내며 정면을 주시했다. 놈들이 다시 슬금슬금 움직이고 있었다. 공중에 띄운 총구들이 아르마의 손짓에 따라 각기 다른 방향을 겨누었다.
“레온, 은신 쓰고 사람들 옆에 붙어.”
나지막하게 속삭인 목소리에 레온타인이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아르마에게 힐 스킬을 모조리 쏟아붓느라 정작 자신의 팔에 난 상처는 지혈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였다. 레온타인은 제 앞에 선 등을 보며 눈가를 찌푸렸다.
“팀장님, 진짜 죽고 싶어서 환장하셨어요? ”
“너나 나나 둘 다 한계야. 이제 너까지 신경쓸 여유는 없다.”
시선 한 자락도 돌리지 않은 채로 아르마가 차갑게 대꾸했다. 평소에는 모질지도 못한 저 말투의 온도가, 정말 여유가 없다는 증거임을 레온타인은 알았다. 그럼에도 힐을 위해 잡은 아르마의 코트자락은 쉬이 놓지 못했다. 이 사람만큼 대단한 사명감이나 정의감 때문은 아니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어쩌면 이기적일 기대와 희망과 트라우마. 복잡하게 얽힌 제 생각이 손까지 묶어 매 놓은 것만 같았다.
“레온타인 킹스턴.”
서늘한 목소리가 다시 저를 불렀다. 레온타인은 그제야 흠칫하며 손을 놓았다. 제 의지는 아니었다,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힘이란 힘은 다 풀려버린 몸뚱이가 알아서 제 살길을 찾아버린 걸지도 모른다. 레온타인은 이 순간에까지 뜻없는 변명을 하는 스스로에 환멸감을 느꼈다. 아르마 코르니스, 팀장님 앞에만 있으면 이렇게 된다고. 당신의 앞에 서있어도 언제나 나는 그저, 뒤에 숨어 서있는 것만 같다고. 그때와 똑같이.
떨어지는 코트 자락을 다시 붙잡지 못하고 레온타인은 주먹만 말아쥐었다. 아르마는 제 코트 자락을 슬쩍 보곤 손에 총을 소환해 잡았다.
“힐 쓸 수 있을 때 다시 나와라.”
명령은 언제나 간결하고 짧았다. 아르마는 레온타인과 민간인들을 등 뒤에 두고, 그들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가볍게 달려나가는 그의 위로 총기와 화기가 빼곡했다. 아마 저 수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여러 스킬을 동시에 유지하고 다루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힐 스킬마저 떨어진 지금에는 더더욱.
레온타인은 냉정하게 생각하려 애쓰며 제게도 은신 스킬을 걸었다. 외투 깃에 달린 뱃지를 움켜쥐고 한 번 더 신호를 보냈다. 역시나 끊긴다. 아직도 던전에는 입장 제한이 걸려 있다. 명백하기만 한 사실들이 죽도록 거지같았다. 언제나 매끈한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니, 아니. 그래, 이제는 정말로 다같이 죽게 생겼는데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언젠가는 이런 결말일거라고, 어렴풋이 생각해 왔잖아. 협회는, 헌터는, 각성자들은 사람 하나 제대로 살리지도 못하는데. 속절없이 죽어나가던 사람들이 다시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레온타인 킹스턴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 날부터, 던전에 갇혔던 그 날부터, 혹은 계속 협회의 공무원이 되기로 결정한 날부터, 레온타인 킹스턴은 생각했다. 이 세상은 무능한 사람으로 가득 찼고 힘없는 사람은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며, 나는, 언젠가는, 사람을 살릴 수 없는 부족한 나의 능력을 절실히 느끼며 죽어갈 거라고. 나 혼자 냉소적이라고 여기며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리며 이제와서야, 비참함에 고개를 처박고서야 고백한다. 결국 그 순간부터 이 순간까지 나는 공무원에게 지켜지고 있음을, 나와 사람들을 지킬 헌터가 있음을, 한순간도 부정할 수 없었다고. 당신과 다른 각성자들이 하는 노력을 단 한 조각도 부정할 수 없었다고. 당신의 올곧은 신념이, 그 꼿꼿한 등이 너무나 믿음직스러워서,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러니, 그러니까 아직은 죽을 수 없다. 망할 ‘법칙’인지 뭔지, 이 미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거기 딸려오는 좆같음은 알아서 감당할테니까.
“일 좀 해봐, 시발.”
세계 최초, SS급 서포터의 탄생이었다.
아르마 코르니스는 자신의 뒤에 따라붙는 기척을 느꼈다. 굳이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코트자락이 들리고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던 몸에 다시금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회복 속도가 월등히 빨랐다. 겨우 유지하고 있던 7개의 총기가 순식간에 수를 불리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철컥. 섬뜩한 장전 소리가 사방에서 울리고, 쾅. 동시에 울린 폭음은 그 소리만으로도 가히 파괴적이었다. 몬스터에 가로막혔던 시야가 순식간에 깨끗해졌다. 그제야 아르마는 뒤를 돌아봤다.
“승급 축하한다.”
“역시 이 거지같은 무능력 집단에 들어오는 게 아니었어요, 코르니스씨.”
“이제와서 그래봤자.”
툭 튀어나온 옛 호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에 아르마는 가벼운 대꾸만을 돌려주었다. 전 지부장의 멍청한 판단으로 방치된 2급 던전, 그 안에 홀로 뛰어든 아르마 코르니스는 갓 각성한 서포터를 영입했다. 설득까지 3주 정도 걸렸던가. 협회의 능력을 믿지 못했던 몇 년 전의 레온타인 킹스턴은 결국 자기자신이라도 한 명 더 살려보고자 ‘코르니스씨’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때가 벌써 몇 년 전이더라. 아르마는 급속한 고양감 때문에 나른하게 돌아가는 두뇌를 뒤지려다 말았다.
“…제가 승급했다고 해서 여기를 나갈 수 있을지는 몰라요. 무엇보다 팀장님 몸이 버티질 못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겠지.”
아르마가 여기저기 너덜너덜해진 코트를 살펴보다 반쯤 부서진 통신 뱃지를 발견하고 혀를 찼다. 비품실에서 또 한 소리 듣겠군. 레온타인의 나름 심각한 어투를 반쯤 무시한 그 행동에 레온타인이 활짝 웃었다.
“진짜 팀장님은 어디가서 죽으려고 환장하신 게 분명해요.”
“또 왜.”
“제가 뭐라고 해도 어차피 안 들으실거잖아요, 미친 희생중독 팀장님아. 진짜 제가 팀장님 가족이었으면 답답해서 속이 터지고 썩다 못해 이미 골병나서 뒤졌을 걸요.”
“너는 말을 좀….”
하지만 아르마는 더 할말을 찾지 못하고 결국 입을 다물었다. S팀 팀장을 유일하게 말로 찍어 누를 수 있는 레온타인 킹스턴은 차마 팀원을 후려치지 못하는 아르마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다른 타계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먼저 한숨을 쉰 레온타인이 평소 같은 미소를 띈 채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팀장님, 지금 몸 상태도 안좋아요. 지금은 힐을 쓰고 있으니까 덜 느껴지지, 스킬을 너무 장시간 써서 과부하는 진작 왔을 거에요.”
“안다.”
“그런데 아직 던전 핵도 못 찾았으니, 그때쯤 되면 오버 힐 부작용까지 올거고요. 지금 승급한지 얼마 안돼서 그 부작용 조절도 못 해드려요.”
“괜찮아.”
“에휴, 진짜 어떻게 이런 한심한 인간이 다있지.”
“레온타인.”
“만약 나간다고 해도 며칠 앓아 누우실 게 뻔하고요, 솔직히 지금으로썬 어디 한 부분 못 쓰게 된다고 해도 이상할 거 없어요. 아시죠? 네, 아시겠지. 어휴, 어쩌다가 내가 이런 희생중독 미친놈을 상사라고…”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띄우고 있는 부하의 막말에 아르마는 미간을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저 입만 좀 어떻게 하면 괜찮을 텐데.
“…어쩔 수 없는 일인 건 알지만요. 팀장님. 결국 아무것도 해결 못해도 팀장님 탓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것도 알아.”
그러시겠죠. 레온타인은 저 한심한 팀장님을 한대 때려줄까 생각하다가 참기로 했다. 이제부터 제일 고생할 사람인데. 결국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당신에게 기대는구나. 그 어깨 위의 짐이 얼마나 무거울지 알고 있음에도. 레온타인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정비를 마치고 다시 전투를 치를 준비를 하고 있는 아르마를 향해, 레온타인은 평소처럼 가벼운 목소리를 내었다.
“최대한 죽지는 않게 해드릴게요.”
아르마는 피가 말라붙은 얼굴을 대충 닦아내며 입꼬리를 올렸다.
“안 죽어줄테니까, 할 수 있는 만큼 해봐, 레온.”
9월 6일 오후 07시 19분, 1급 던전-1 클로즈. S팀 팀장 아르마 코르니스, S팀 레온타인 킹스턴 복귀. 부상자 1.
*특이사항
-S팀 레온타인 킹스턴 승급, SS.
-S팀 팀장 아르마 코르니스, 오버 힐 및 스킬 부작용, 탈진 상태 호소. 인근 병원으로 긴급 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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