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죠유지] 돌고 돌아오는 건
저주토끼 au
이타도리의 가업은 저주를 다루는 일이었다. 대대로 의뢰를 받아 저주가 담긴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 가게는 누구나가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겉으로는 오래된 골동품을 파는 곳이었으나 그게 사실이 아니란 것쯤은 마을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사람을 저주하기 위해 존재하는 업. 음습하고 다들 꺼려하는 그 일이 언제나 성황인 걸 유지는 항상 의문처럼 생각했다. 그의 작업장은 시골에 있었지만 사람을 저주하기 위해 사람들은 이런 깡시골까지 부러 발걸음을 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였다. 여름이었고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이었다. 남들은 밖에 잘 안 나오는 이런 날, 손님은 더 많이 찾아오곤 했다. 푹 젖은 흙내가 아스라이 피어오르던 그때 남자는 홀연히 나타났다. 새하얀 사람이었다. 키가 참 컸고 선글라스에 반쯤 가려진 얼굴은 아름다웠다. 그는 풍경 소리 하나 나지 않는 가게에 발을 딛고는 유지를 보며 웃었다. 웃는 낯이 낯설어 유지는 환각이나 보는 듯한 착각을 했다. 원한에 가득한 얼굴이 아니다. 멀끔하고 기분 좋아보이기까지 한 낯을 유지는 이 카운터에서 본 적이 없었다. 물건 하나를 맡기고 싶은데. 남자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는 대신 종이 하나를 건넸다. 도안이었다. 남자는 반지를 만들어 달라 했다. 아주 오래 전 자길 저주하고 떠난 연인에게 보낼 ‘선물’이라고도 했다.
“영원히 내 곁에 있어주겠다 했으면서. 너무 하지 않아?”
그래놓고 나더러 잘 살라는 거 있지! 열살 어린애도 아니고 볼을 있는대로 부풀리는 남자를 유지는 별 생각 없이 바라봤다. 잘생기니 뭘 해도 어울리는 구나. 태평하기 짝이 없다. 주인장이 그러고 있던 말던 남자는 퍽 진지한 듯 했다. 사장님, 궁금하지 않아? 뭐가요? 내가 걸린 저주가 뭔지. 글쎄요…. 선글라스를 쓴 이이는 어딘가 참 이상했다. 원래 선글라스란 게 저렇게 검었나 싶기도 했고, 렌즈 너머 흘끗 보이는 눈은 무서우리만치 파래서.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엮이면 골치 아파질 사람이다. 까닭에 유지는 말을 돌리며 견적을 내 남자에게 건네면 흥정 하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돈은 얼마가 되어도 상관없어. 그리고 그 자리에서 금액 전부를 지불하는 것이다. 전액 현찰로 값을 치른 남자는 홀가분하게 가게를 나섰다. 그럼 잘 부탁해~ 나타날 때나 떠날 때나 바람 같은 사람이었다.
유지는 그이를 떠난 뒤 곧장 가게 문을 닫았다. 오늘은 더 이상 사람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덧문까지 잠그고 다락 작업실로 올라간 유지는 곧장 작업을 시작했다. 저주의 내용과 물건을 확인하며 남자가 직접 그려온 반지 디자인 바라봤다. 사실 잘 그린 그림이라 말하긴 어려웠어도 필요한 건 전부 알아볼 수 있었다. 외려 그이가 품고 있는 애정까지도 눈에 들 만큼 정성스럽게 그려진 그림이었다. 유지는 손가락으로 작업대를 톡톡 두드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저주해달라 찾아온 남자. 그리고 그 이가 목을 매며 사랑하는 상대.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저주는 말았어야지 싶었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남을 저주하면 무덤이 두 개라고. 때문에 유지의 집안은 의뢰가 아니고서는 절대 개인적인 이유로 물건을 만들지 않았다. 그리 만든 저주는 결국 자길 덮치게 되어있었기에. 여러 철칙이 있었지만 제게 이 일을 가르쳐준 조부는 항상 물건을 예쁘게, 품에 넣고 아니고 싶을만큼 섬세하게 만들라 했다. 그래야 물건이 목적을 다 할 거라고.
그래서 유지는 일주일을 꼬박 그 작업에만 매달려 반지 하나를 세공해냈다. 의뢰인의 눈을 닮은 파란 보석을 박고 파도가 일렁이는 양 물결 모양으로 만들어진 반지는 누구의 눈에 들어도 예쁠 터였다. 금속의 빛을 살리는 작업까지 끝났을 즈음, 유지는 그 이상한 손님에게 연락을 넣었다. 물건이 완성되었으니 찾으러 오라고. 그리고 유지는 어여쁘게 만들어진 저주를 케이스에 정리하며 남자를 기다렸다. 이윽고 도착한 남자는 물건을 보자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이거면 그애한테 딱일 거야. 볼 때마다 날 생각해주겠지? 마치 손에 들린 반지와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굴었다. 흐릿한 불빛에 남자의 눈동자는, 파란 보석은 타오를 듯 빛났다. 이다지도 남을 저주할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라니. 유지는 이상하게 눈이 가는 이이를 보며 어딘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잊고 편해져도 좋을 텐데. 남을 저주한 돈으로 먹고 사는 입장이 말할 건 못 된다. 허나 자기도 모르게 말이 샜을 정도로 유지는 안타까웠다. 흘려진 말을 들은 남자는 놀란 듯 파란 눈을 둥글게 했다. 유리구슬처럼 투명한 눈이 유지를 비췄고 곧 눈을 접어 남자는 웃었다. 그애가 날 저주하지 않았다면 그랬을지 몰라. 흠칫 놀랄만큼 그는 즐거워 보였다.
“왜, 남을 저주하면 무덤이 두개라고들 하잖아.”
“…그렇죠.”
“근데 그앤 무덤이 없었어.”
“네?”
“뼛조각 하나, 피 한 방울도 남기면 안 돼서 결국 죽을 때까지 그애는 무덤이 없었어. 내 무덤만 있었지.”
입에 걸린 미소란 게 퍽 섬뜩도 하여 뱃속이 오싹해지는 게다. 유지는 이이가 제정신인지를 걱정해야했다. 하지만 차마 볼 일 끝났다 내쫓을 순 없었다. 줄곧 절 붙들고 있는 파란 눈이 열렬하게 불타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자신을 버린 연인에 대한 분노여야 하건만. 예쁜 눈에 비친 건 복수심이 아니라 드라마에서만 보던 연정인 것만 같아 유지는 드디어 제가 미쳤다 생각했다. 남자는 카운터에 기대 턱을 괴며 유지와 얼굴을 가까이 했다.
“근데 이번에도 무덤은 하나일 거야.”
남자는 행복한 듯 웃었다.
“어째선지 궁금하지 않아?”
“……글쎄요.”
유지는 진심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주륵 흐를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제 밑바닥에서 끓어오른 게 공포가 아니라 목놓아 울고 싶을 만큼의 슬픔이라 더욱 정신이 혼미하다. 그래서 답싹 손목을 잡혔을 때도 뿌리칠 타이밍을 놓친 게다. 홱 당겨져 바로 코앞에 마주하게 된 남자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러게 날 두고 가지 말았어야지.”
“손,”
“내가 울며 애원했을 때 곁에 남아줬어야지. 진심으로 날 위했다면 넌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다음 생엔 곁에 있겠다니. 기억도 못하는 주제에. 삐뚜름히 올라간 입꼬리를 멍하게 보고 있던 유지는 차가운 것이 제 손가락을 타고 오르는 걸 느꼈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그래. 꼭 전주에서도 걸린 것처럼.
“이번에도 유지 무덤은 없을 거야.”
“아…….”
“나랑 같이 묻힐 테니까.”
그리 말한 고죠는 깨질 물건을 다루듯 손을 잡아끌어 반지 위에 입을 맞췄다. 그리곤 주르륵 흐르는 눈물로 잔뜩 젖은 유지를 보며 웃었다. 유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잊고 싶지, 않았어……? 고죠는 답했다. 네 사랑을 어떻게 잊겠어. 유지는 고개를 툭 떨궜다. 황홀한 얼굴로 내뱉은 한 마디가 너무 무거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주는 돌아오는 법이라고.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와는 관계없이. 이 남자의 사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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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를 읽고 생각난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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