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間

MAX

1차 by 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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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씨, 우리 바다에 가요.

도해영이 말했다.

분명한 의사소통이었으나 정확히는 음성으로 들은 것이 아니었다. 입이 열었다 닫히고, 보글거리는 방울이 물에 스러지고, 물결이 일었다. 이곳은 이미 물 속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바다 속. 끝도 없는 해저 속으로 도해영과 맥시밀리언은 가라앉았다. 그러므로 이것은 맥시밀리언의 추측이었다. 눈 앞의 인간이라면 그리 말했겠거니, 자신을 꽉 붙들고 이 바다 깊은 곳에 몸을 던진 도해영이라면 그렇게 말했겠거니, 그는 추측할 뿐이었다.

스러지는 名, 잔류하는 残, 흩날리는 雪, 누군가는 잠을 택하고 누군가는 나아갈 길을 택하는 갈림길 한복판에서,

도해영은 바다를 택했다. 그의 언어로 논하길 이는 죽음이 아니었다. 바다에서 태어난 이는 바다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은 물의 순환일 뿐이며 어떤 인간도 감히 물결을 사로잡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는 다시 돌아갔다. 무엇이든 품어줄 수 있는 바다로. 무언 불순물조차도 모두 품어줄 바다로. 그러므로 그에게 이 작별은 어떤 슬픔도 어떤 아픔도 주지 못했다.

맥시밀리언은 인간을 택했다. 세계를 택했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열었으며, 여럿의 손을 붙잡고 그 길목의 선두에 섰다. 최고의 인간이 있다면 당신일 것이다. 도해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관찰자이자 탐구자인 도해영이 보기에 맥시밀리언은 여럿의 상실에 무너질 만큼 여린 사람임에도, 다시 일어나 남은 이들의 손을 붙잡고 길을 걸어 나갈 줄 알았다. 인간으로 사는 한 따를 수 밖에 없는 고통이 찾아올 때면 쉽게 무뎌지는 법 없어 여러 밤 울고 고뇌하였으나, 끝내 다시 손을 뻗고 발걸음을 내디딜 줄 알았다.

인간의 유약함이야 질리도록 봐온 터라 구태여 그것을 다시금 보는 것은 여흥에 지나지 않는 도해영이었으나, 어쩐지 맥시밀리언을 볼 때면 그 유약함 뒤 강인함을 믿고 싶어졌다더라. 당신이 인간이었으므로. 어떤 일을 겪어도 끝내 빛나는 두 푸른 눈으로 길을 밝힐 줄 아는 인간이었으므로.

인간은 감히 물결을 사로잡지 못한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였으며 흔들리지조차 않을 굳건한 탑이었다. 늘상 웃는 얼굴 아래는 그런 심상이 있었다. 어차피 나는 바다로 떠날 테다. 누군가 나를 붙잡는대도 결코 잡히지 않을 것이니 진즉부터 관찰자의 면모를 띄는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이 무색하게도 이곳에는 누구보다 인간을 사랑하는 인간이 있었다. 당신의 눈에는 정녕 나도 같은 인간으로 보일까. 그렇다면 유감이다. 그 손을 내가 거절할 때면 당신은 상실감에 사로잡힐까. 이 또한 유감이다. 그 외에 더 내놓을 감상은 없었다. 세상에 당신과 다른 인간이 있음을 알 시간이다. 설령 이 거절이 당신에게 고통을 준대도 당신은 끝내 모두를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도해영은 잔인하나 현실적인 생각을 품었다. 그리고 맥시밀리언이 좌절하리라 -이 또한 이겨내리라 믿었지만, 작금에 이는 논외로 하자- 생각했다.

그러나 맥시밀리언, 그는 어떤 인간이었나. 도해영이 차마 보지 못했던 곳에 그의 내면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인간이므로 바다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아는 이였다. 도해영은 일순간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다시금 나지막이 웃었다. 그 관찰자는 반대로, 눈앞의 이가 자신의 생각보다 더 성숙한 인간임을 인정해야 했다. 고마워요. 날 붙잡지 않아줘서. 그리하여 이렇게 말을 흘려냈던 것 같다.

당신의 눈에는 나도 인간이었을까. 그래서 나의 앞길을 응원해 준 걸까. 내가 당신이 사랑해 머잖은 인간이므로.

바다는 너무 멀잖아.

맥시밀리언은 답했다. 그리고 작게 웃었다.

그래요. 그렇게 답할 줄 알았어요. 당신은 인간 사이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니까.

도해영이 따라 웃었다.

맥시밀리언은 문득 품에 안은 이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흰 가루가 되어 스러지는 작은 바다를. 남지 않은 체온, 남지 않은 무게, 남지 않은 형체 끝에, 천천히 흩어져 스러지는 웃음 끝에 흐르는 말이 있었다.

맥스씨, 돌아가세요. 인간 사이로.

당신이 있을 곳은 그곳이니까. 천천히 붙잡았던 품이 멀어진다. 재가 흩날리고, 보글거리는 방울이 스러지고, 끝내 물결이 바다로 돌아가면, 맥시밀리언은 꿈에서 깼다.

바다를 뉘노는 꿈이라, 보통 이럴 즘에는 너무나 생생한 꿈이었다고 말한다던데, 애석하게도 이는 너무나 환상 같은 꿈이었다. 언제 축축한 물에 빠졌던지, 누군가를 품에 안았던지, 습기라고 하나 없는 현실에 돌아오면, 남아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또한 이제는 현실에 없을 말. 끝내 물결이 흩어지며 피워낸 말.

당신은 최고의 인간이었어. 맥시밀리언.

맥시밀리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은 인간에게는 주어진 현실이 있으므로. 그래, 이제 다시 일어나 현실을 살아가야 할 시간이다.

인간에게는 인간의 세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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