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네 번째 장례식 이후로 비는 내리지 않았다

오리지널 (w.우열)


비온 뒤 땅이 굳는다고 했다. 희연이 그 말을 믿기까진 시간이 꽤 걸렸다. 땅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된 이후에도 한동안은 믿지 않았으니, 삶의 대부분에서 불신해왔던 셈이다. 진짜 땅은 비가 온 뒤 굳어질지 몰라도 사람의 마음은 비가 내린 뒤 그저 진창으로 남아있을 뿐이라고. 줄곧 그렇게 믿었고 생각해왔다. 저 자신이 그랬으니까. 한이관의 정식 요원이 되고서 세 번째로 영정 앞에 절을 올렸을 때 희연은 자신의 진창이 마르는 일은 좀처럼 없으리라 생각했다. 

희연이 처음으로 겪은 가까운 동료의 죽음은 입관 이듬해 겨울이었다. 새순 움트는 봄이 찾아오기도 전, 가이드 요원 하나가 주검으로 돌아왔다. 같은 임무에 배정된 적은 없었으나 중퇴를 했음에도 같은 대학을 다녔단 이유만으로 희연을 자주 챙기고 신경 써주던 이였다. 부고 소식을 들으며 이틀 전 구내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는 동안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왜 곧장 전업 요원이 되었냐는 물음에 농담으로 그런 질문은 술이라도 한 잔 사주며 하셔야 하는 거라고 했다. 넌 술 사달란 소릴 이렇게 하니. 무던하게 웃는 얼굴이 금세 옅어진다. 

입관식 이후 처음 꺼낸 정복을 상복으로 걸쳤다. 으레 그리한다고 했다. 장례식장엔 저처럼 한이관의 정복을 걸친 이들과 검은 정장을 갖춰 입은 이들이 반 정도의 비율로 섞여 있었다. 상주로 선 사람은 남편이라고 했다. 눈가가 붉게 짓무른 상주 옆 일곱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아이가 맞절을 나누는 희연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말을 위로로 건네야 할지 알 수 없어 어물거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상투적인 한마디를 겨우 건네고 물러났다. 

환하게 웃는 영정을 마주하고서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돌아 나오는 길에서야 눈물이 뚝 떨어졌다. 희연은 아무렇지 않게 눈가를 훔쳐냈지만, 닦아낸 보람도 없이 자꾸만 차올라 넘쳐흘렀다. 슬프긴 했으나 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눈물이 흘렀다. 희연은 결국 곧바로 장례식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한구석에 여러 줄로 늘어세워진 의자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이렇게 울 정도로 깊은 인연은 나눈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눈물이 쉬이 그치지 않았다. 

낯설기만 하던 기관에 서서히 안착할 수 있도록 해 준 사람이었다. 그냥 보아 넘기기만 할 수 있었을 텐데도 선뜻 먼저 손을 내밀어 주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을 꾸준히 건네왔었다. 그 다정한 마음이 자신을 이곳에 발 딛고 서게 해 주었는데. 이제 다신 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점이 희연의 마음을 무너뜨렸다. 상실과 동시에 희연은 그녀를 상당히 의지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째서 주검이 되어 돌아왔어야 했나. 그 어디로도 향할 길 없는 원망이 한 꺼풀 쌓인다. 

두 번째 죽음은 다음 해 여름이었다. 간신히 첫 상실의 아픔이 아물어갈 무렵, 함께 임무에 나섰던 센티넬 동료가 싸늘하게 식어 복귀했다. 희연의 눈앞에서 크리처의 발에 꿰뚫려 저만치 멀리 뿌리쳐졌다. 당시 희연은 다른 크리처를 상대하느라 능력을 전개하고 있었고, 함께 임무에 투입된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미처 손을 쓸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분명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였다. 그럼에도 왜 그 순간에 적절한 방어를 하지 않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의 장례식을 찾은 조문객은 정복 차림의 한이관 요원이 대부분이었다. 아카데미에서 곧장 전업 요원이 되어 쭉 일해왔다던가.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한 경험이 없어 민간인 지인도 거의 없다고 했다. 반듯하게 찍은 영정의 얼굴을 마주하는 희연의 눈꺼풀 안쪽으로 크리처에게 꿰뚫리는 순간 마주했던 얼굴이 자꾸만 덧그려졌다. 애써 그 모습을 털어내며 상주와 맞절 후 인사를 건넨다. 상주 옆 망연한 낯으로 주저앉은 중년의 여성이 고장 난 기계처럼 중얼거렸다. 내 아들 안 죽었어. 내 아들 살아있어….

낮은 식탁에 둘러앉은 익숙한 얼굴들은 하나같이 말이 없었다. 장년의 여성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육개장을 큰 쟁반에 받쳐 들고 다가왔으나, 하나같이 손을 내저으며 사양한 탓에 쟁반은 다른 테이블로 넘어갔다. 아마도 모두가 입에 뭘 넣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으리라. 테이블에 둘러앉은 전원이 사망 사고가 발생한 현장에 함께 투입되었던 인원들이었다. 누구도 선뜻 입을 떼지 않던 중, 팀 리더로 임무에 나섰던 가이드 요원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다들 심리 상담 1회 출석 꼭 하세요. …필수니까.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앉을 때가 되어서야 배가 고프단 생각이 들었다. 배가 고플 수 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어 희연이 실소했다. 이내 눈가가 젖는다. 같이 임무에 나섰던 동료가 눈앞에서 죽었다. 고작 몇 걸음의 차이로 생과 사가 갈린 것이다. 죽은 것은 저였을 수도 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배가 고프다는 사실이 어딘지 모르게 죄스러웠다. 물론 희연도 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이 죄책감이 좀처럼 떨쳐내지질 않아서, 그래서.

희연은 마음에 채인 감정들을 울음으로 흘려냈다. 사람이 일평생 흘려보낼 수 있는 슬픔에도 정해진 양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이전처럼 오래 울지도 않았다. 따가운 눈을 찬물로 씻어내고 뒤늦게 간단한 식사 거리를 냈다. 까끌한 목으로 음식을 꼭꼭 씹어 넘겼다. 장례식장에서 나오기 전에야 그와 막역했던 다른 동료에게 그런 이야길 들었다. 최근 그가 악몽과 환청을 호소한 적이 부쩍 늘었다고. 그 누구도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사고의 순간 그가 능력을 쓰지 못한 데에는 그 영향이 없잖아 있으리라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필수로 출석해야 한다던 희연의 상담 약속은 장례식 이튿날이었다. 파견된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요원들은 규정상 1회의 심리 상담을 받도록 되어있었다. 상담사는 물론 내담자가 되는 요원들 역시 이것이 의례적인 일이라는 걸 안다. 누군가의 죽음은 대다수 요원들에게 익숙하기 그지없는 일이고, 규정으로 보장되는 단 1회의 상담은 무언가를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희연은 최근 자신의 감정 상태와 생활 전반에서 받고 있는 영향에 대해 설명하고 이 주 분의 안정제와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상담사는 약을 다 먹은 후 적어도 한 번은 더 찾아와야 한다고 말했으나, 딱히 다시 찾아오길 기대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정식으로 요원이 되어 수차례 임무를 거듭해보니 이능력 요원들의 사망 사고는 생각보다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부상은 그보다 더 잦은 일이었고, 결과적으로 무뎌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인 셈이다. 기관의 요원들 사이에서는 유서를 써 책상 서랍에 넣어두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혹은 관습이라고 봐야 할―가 종종 떠돌곤 했다. 세 번째로 동료의 영정 앞에 절을 올리며 울었던 밤, 희연은 하얀 에이포 용지를 앞에 놓고서 한참을 고민했다. 

하늘이 파르랗게 물들어 갈 무렵에야 펜을 들어 유서의 첫 자를 적어 넣었다. 별달리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시신을 어떻게 처리해 주면 좋을지에 대한 내용이라던가, 부모님이나 가까운 동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라던가. 적고 보니 여덟 줄 정도가 다였다. 세상에 남기고자 하는 말이 고작 이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희연을 조금 놀라게 했다. 죽음을 가정하면 쓰고 싶은 말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을 수 있구나. 어쩌면 이제 스스로의 죽음도 무딘 시선으로 보게 된 걸지도 몰랐다. 

정복을 상복의 의미로 꺼내 입은 것이 네 번째가 되었을 때, 희연은 한 줄기의 눈물자국만을 남겼고 동료들과 함께 육개장을 먹었다. 써둔지 한참이 지난 유서를 파쇄기에 넣어 그 존재를 지웠다. 그래,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필연적으로 상실을 경험한다. 횟수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상실 자체를 그리 특별한 일이라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단지 상실이 많은 인생이 제 것으로 당첨되었을 뿐이었다. 언제까지고 마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마음속의 진창은 이제 건조하게 굳어 쉬이 갈라지는 일이 없었다. 

한 해, 두 해, 세 해……. 해에 해를 거듭할수록 희연은 무뎌져갔고, 단단해져갔다. 동료의 죽음이 안타깝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을 지켜줄 수 있었다면 죽지 않았을 텐데 하는 엷은 자책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샌가 죽음이란 것은 희연에게 있어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으므로. 동료의 죽음에 흐를 눈물이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저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울지 않으리란 기묘한 확신이 희연의 생각 속에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현장에 같이 있었다고.” 

“아, 선배님.” 

“…괜찮아?”

“그럼요. 괜찮죠.” 

“난 네가 조금 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울긴요.”

뚝뚝한 목소리 아래로 묻어나는 염려가 느껴져 엷은 미소를 그려냈다. 희연은 이제 죽음에 울지 않는다. 그것은 나란히 선 우열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통상적인 발현 나이대를 훌쩍 지나 센티넬로 발현한 그는 알게 모르게 한이관 내에서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유명 인사라면 유명 인사였다. 요원 생활을 겸하게 된 지가 이제 반 년을 조금 넘겼으니 아마 몇 번은 더 오르내리고서야 사그라들 것이다. 희연은 그가 형사이기만 했던 때 이미 몇 번 마주쳐 얼굴을 알고 있었고, 직종의 특성상 우열도 동료의 죽음을 숱하게 봐 왔으리란 점 또한 익히 알고 있었다. 

“폭주 했었다며. 그 친구.”

“네. 가이딩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 사살하게 된 거고요. 종종 있어요, 이런 일.” 

담담한 희연의 음성에 우열은 잠시 말이 없었다. 멀리 시선을 던지고 있던 희연이 나란히 선 우열을 흘긋 쳐다보았다. 요원들 가운데엔 폭주한 센티넬을 사살하는 것이 부당하다 여기는 사람도 더러 있었으므로, 우열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닐까 궁금했던 탓이다.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그렇게 해야겠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하게 우열은 폭주하는 센티넬을 마주해도 망설임 없이 사살할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져서. 

“큰 임무 나갈 때는 유서 같은 것도 쓴다던데…유서도 써둔 게 없었다네.”

“안 써두는 사람 많을 걸요.”

“…희연이 너도?” 

“네. 의미 없거든요, 유서. 선배도 딱히 쓰실 타입은 아닌 것 같은데.”

우열의 입에서 뭐 그렇지, 하고 조금은 머쓱하게 수긍하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희연에게 유서는 이제 이렇다 할 의미를 갖지 못했다. 유서를 한 번씩 갱신하는 것도 귀찮았고, 그런 것을 남겨야 할 만큼 대단하고 의미 있는 죽음도 아니리란 걸 안다. 임무에 나섰다 죽으면 그냥 그렇게 죽는 것이고 살아 돌아오면 또 한 번 죽음을 면한 게 될 뿐이다. 언젠가 다가올 제 죽음도 무수히 반복되는 죽음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으리라.

“선배님. 저희 서로 죽으면 납골당이나 묘에 매 주기마다 꽃이나 가져다주기 할래요?”

희연이 불쑥 내뱉었다. 켜켜이 쌓여서 덮이고 흐려지는 죽음들 틈에서, 그래도 한 번씩은 누군가 건네는 추모가 있다면 마냥 무가치한 죽음은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는 변덕 아닌 변덕인 셈이다. 우열이 선뜻 그럴까 하며 대꾸했다.

“나쁘지 않네, 그거. 받고 싶은 꽃이라도 있어?” 

“음… 안개꽃이요. 선배님은?” 

“그거. 봄에 피는 거 있잖아, 노란 거.” 

“…혹시 프리지아 말하는 거예요?” 

“아아, 그래. 그거. 프리지아. 향기 좋더라.”

좋죠, 프리지아. 중얼거리듯 대답한 희연의 눈길이 장례식장 정문에서 엇갈리는 두 대의 세단에 가닿는다. 살고 죽는 문제도 저 가벼운 엇갈림과 다를 바 없는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 죽음에 크고 무거운 의미를 두기엔 곳곳에 수많은 죽음이 산재해 있으니까. 죽음마다 애닳는 마음을 떼어 보내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소모하는 일이다. 마침내 아무것도 없게 비어버리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을 소진하고 텅 비게 되면 그것은 과연 살아간다 부를 수 있는 상태일까. 희연은 살아있으되 죽은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그러니 적어도 숨 붙어있는 동안 산 사람처럼 사유하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기준점을 높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애도, 고통, 두려움과 같은 것들의 역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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