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한잔

비의 그늘

단편 / 강민혜진 / 허강민, 장혜진 / if

쾅쾅쾅!! 현관문을 두드리는 손길은 상냥치 않다. 책을 읽던 허강민이 인상을 찌푸리며 소음을 무시하려고 하지만, 불청객은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있는 거 다 알아요! 없는 척하지 말고 문 좀 열어줘 봐요! 푸, 푸헤취!” 

……. 

심호흡 두 번, 결국 종이는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책을 덮는다. 

“하…….” 

정말, 방해다. 허강민은 현관문을 열었다. 바깥과 단절되었던 집안에 빗소리가 확 들이닥친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비가 도시를 덮고, 조금 시선을 내리면 그녀가 있었다. 

“거봐, 있는 데 없는 척하는 줄 알았다니까. 실례할게요.” 

자연스럽게 그를 밀고 들어선 장혜진의 뒤를 눈으로 좇는다.

“기다려.”

집안으로 들어서려는 그녀를 막는다. 

“다 젖었잖아. 그대로 들어갈 생각이야?”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않을 터고, 무슨 까닭인지 우산도 없이 흠뻑 젖은 그녀를 바깥으로 돌릴 만큼 인간성이 없지 않았다. 서랍에서 수건과 여벌 옷을 꺼낸다. 그녀의 발 앞에도 수건을 한 장 깔았다. 

“웬일로 친절하대. ……고마워요. 욕실 좀 쓸게요.”

빗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물소리. 바닥에 채 닦아내지 못한 물기를 닦아내고 커피를 내린다. 집안은 순식간에 소음으로 가득 찬다. 물소리가 끝난다. 

“저기.” 욕실 문 사이로 그녀가 조심히 고개를 내민다. 

“이거 말고 다른 건 없어요? 옷이 너무 큰데. …당신 생각보다 체격이 더 좋네요.” 

장혜진은 애써 가벼운 어투를 던진다. 소매를 접어도 흘러내리고, 셔츠의 어깨선도 한참은 내려와 헐렁하다. 거울에 비쳤던 자신의 모습은 낯설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아니라 허강민에 대한 낯섦이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그가 ‘남성’임을 느꼈다. 허강민은 그녀의 꼴을 위아래로 훑다가 커피잔을 내려놓는다.

“불만이면 벗고 나가.”

“누가 불만이래요?”

무안해진 그녀는 성큼 걸음을 옮겨 커피잔을 쥔다. 이미 따듯한 물로 온도가 오른 몸에 손끝마저 따듯해진다. 한 모금 마신 그녀는 무심코 아, 하고 탄성을 내뱉는다. 달다. 허강민을 가만히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친다. 

“왜?”

“아니에요.”

장혜진이 머뭇거린다. 

“고마워요.” 

이 빗속에 갑자기 들이닥친 이유도, 모든 까닭도 묻지 않고 공간을 내어준 그의 배려에 대한 감사였다. 자신의 공간에 타인이 침입하는 것 따위 질색하면서. ……당장 생각나는 사람이 허강민 밖에 없어 옮긴 걸음이었다. 독불장군처럼 문을 두드렸으면서 그가 정말 문을 열어줄 거라고, 안으로 들여보내 줄 거라곤 그녀 자신도 확신이 없었는데. 투명한 창 너머로 빗소리가 단절된 것 같은 이 집은 허강민을 닮았다. 고요하고, 조용하고, 적막하다. 조금 소름 끼칠 정도의 적막함이나 장혜진은 이곳이 좋았다.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침묵이었으니. 

“비가, 하다못해 옷이 마를 때까지만 있을게요. 조용히, …그때까지만 있게 해줘요.” 

허강민이 그녀를 내려다본다. 

“마음대로 해.” 

무심한 그 목소리에 악의가 없다. 그래서 장혜진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상의는 한참은 헐렁하고, 바지는 고무줄을 쫙 조여도 흘러내릴 것 같이 헐렁하다. 허강민은 유리창에 비친 그녀를 관찰했다. 장혜진은 옷 위로 맡아지는 그의 향을 맡는다. 향수도, 세제의 향도 아닌 허강민의 향. 자신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그의, …. 음, 장혜진이 커피를 쭉 들이킨다. 조금 부끄러울지도. 그런 생각을 했다. 창문 밖을 바라본다. 비는 여전히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쏟아졌다. 

… …비가 계속 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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