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눈
양수연, 장혜진
나의 눈
: 양수연, 장혜진. CP로 보여도, 논컾으로 보셔도 좋습니다. 날조와... 그렇습니다.
.님(@ssabdeog)의 연성을 보고 멋대로 써버린 단편입니다.
검은방2의 스포를 주의해주세요!
갓 연성을 봐주세요.
절망은 깊고, 어둡다.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이 갑자기 훅 목 아래까지 올라와 이성을 마비시키기도 했고고, 사람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오는 고통을 안겨주기도 했다. 감정 변화의 폭은 커지고, 이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질 때 쯤, 그 사람이 찾아왔다.
“죄를 지은 자들이 버젓이 살아가고 있는데, 죽은자의 절규가 들리지 않는가보군.”
아아…. 양수연은 참담한 기분으로 서류들을 내려다봤다. 온전한 시체조차 품에 안지 못했던 연인의 흔적이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갈기갈기 찢겨 나눠진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 이의 슬픔을 누가 이해 할 수 있을까. 간, 신장, 췌장, 눈.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살 수도 있었던 사람의 배를 직접 갈라 꺼낸 것을 품고 떳떳하게 숨을 쉬는 죄인들을 그녀는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고 서류를 내려다봤다.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마지막 장에 놓인 강수혁의 서류를 손으로 훑었다.
“생각 할 시간이 필요하진 않겠지.”
예상 했지만 양수연 조차도 자세히 알 수 없었던 정보를 가져온 남자를 그녀는 바라봤다. 어디까지 신뢰하고 믿을 수 있을까에 대한 저울질을 포기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저울을 내팽개쳤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양수연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또다시 삼켜내며 절망을 내린 하늘을, 아니 인간을 원망한다. 인간이 만들어 낸 죄.
이것이 결코 옳은 선택이 아닌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국 이름도 모르는 자의 손을 잡았다. 양수연에게 있어서 그 순간만큼은 그가 가져온 제안이 기회였고, 어쩌면 또 다른 구원이었으며, 곧 유일한 빛이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나?”
남자는 물었다.
“후회는 이제 지쳤어요.”
후회하지 않기 위한 선택을 했다. 강수혁의 사진을 내려다본 그녀는 눈을 감았다. 사랑을 이야기해주었던 목소리에 흔들렸던 원초적인 외로움은 절망이 집어삼켜서 그 흔적조차 지워버린다. 다시 눈을 뜬 그녀의 눈엔 빛을 잃은 복수자의 눈만이 남아있었다. 남자는 입꼬리를 올린다.
“축하해.”
괴물이 된 걸. 양수연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남자의 제안 이후, 양수연이 해야 하는 일은 단 하나였다. 그들과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장소로 자연스럽게 강수혁과 이동하는 것. 그러기만 한다면 모든 것은 그쪽에서 일을 도와준다고 했다. 양수연은 바닥에 쓰러진 강수혁을 내려다보고 낯선 얼굴을 바라봤다.
“가시죠. 무대는 모두 준비 되어 있습니다.”
양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준비한 차의 뒷좌석에 앉아 무릎에 눕힌 강수혁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그녀는 창밖을 바라봤다. 하늘은 우중충하고 곧 비가 내릴 것 같았다. 모든 죄를 씻어줄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좋은 날씨다.
“나 때문에 수연이 너까지….”
죄책감에 물든 강수혁의 낯을 보며 괜찮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모른다. 나 역시 죄를 지었다는 것을. 초조한 분위기 속에서 양수연은 서준용을 바라봤다. 이 사람의 몸에 그 사람의 간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애써 가라앉혔던 분노가 올라오는 것 같아 애써 눈을 돌려야 했다. 그러다가 그녀의 시선은 장혜진에게 머문다. 그녀의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봤다.
“뭐, 뭐에요.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요?”
시선이 마주치고, 불편하다는 듯 이야기하는 장혜진에게서 시선을 떼어낼 수 없었다. 정확하겐 그녀의 눈동자에 눈이 계속 갔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야기 해야 하는데 입은 차마 벌어지지 못하고 불편한 침묵이 맴돌 무렵 강수혁이 뭔가를 발견한 듯 사람들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먼저 시선을 돌린 것은 장혜진이었다.
“뭐야, 진짜….”
들으라는 듯 짜증 어린 어조로 먼저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뒷모습을 양수연은 그저 계속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이질감이 그녀의 심장을 조여왔다. 서류로 봤을 때부터 생긴 의심이 몽글몽글 피어올라 씨앗은 이내 땅 위로 싹을 틔운다. 양수연은 곧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떼어냈고 그 아래 질척거리는 어두운 감정이 묻어난다. 차마 정돈하지 못한 흔적이다.
간을 훔친 서준용이, 췌장을 빼앗은 우희경이, 신장을 앗아간 허대수가 숨을 거둔다.
그녀는 서서히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두 손에 피를 묻히고, 죽음을 방조하고, 죽음으로 밀어 넣는 순간 더는 어디로도 되돌아갈 수 없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지옥을 향한 길 뿐이다. 양수연은 살아있는 이들을 한 명씩 훑어보다 또다시 장혜진에게 멈춘다. 바라보는 시선은 어느 때보다 더 가라앉은 심연의 바닥이다. 각자 휴식을 위해 흩어진 시간, 양수연은 방문을 두드린다.
“…수연씨? 뭐에요?”
“잠깐 이야기 해도 될까요. 안에서….”
장혜진은 갈등하는 듯하더니 이내 문을 좀 더 열어 그녀가 들어올 수 있도록 비켜주었다. 양수연은 들어와 문을 닫았다. 틈새 없이 닫힌 문소리가 어쩐지 불길했다. 장혜진은 불안한 시선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양수연으로부터 거리를 둔 채 그녀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무슨 볼일이에요? 굳이 단 둘이 이야기 할 게….”
“궁금해서요.”
벌린 거리만큼 양수연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무심코 뒤로 물러나던 장혜진은 더 물러날 곳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바짝 마른 입안에 침만 삼키곤,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몰랐다. 그런 태도가 누구보다 불안해 보인다는 것을. 양수연은 손을 뻗어 장혜진의 팔을 잡고, 자신에게 당겼다. 두 여성의 몸이 딱 닿았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손은 자연스럽게 장혜진의 허리를 감싸 쥐고 그녀를 내려다본다. 심연이 장혜진을 내려다본다.
“뭐, 뭐 하는 짓이에요!”
장혜진은 소리치며 그녀에게서 벗어나고자 했으나 쉽지 않았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나왔나 싶을 정도로 강한 손이 장혜진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 사람의 눈동자는 짙은 갈색이었어요. 보고 있으면 다정한 가을밤을 닮아 아름다웠죠.”
양수연의 손이 장혜진의 뺨을 감싸 쥐었다. 밀착된 몸은 숨소리가 닿을 정도로 빈틈이 없어서, 시선이 맞닿는 거리도 가까웠다.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는 얼굴이 무섭다. 가까이서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는 괴물이었다. 장혜진은 자신 앞에 서 있는 괴물이 두려웠다.
“그런데 이상해요. 이런 색이 아니었어요.”
그녀의 손이 장혜진의 한쪽 눈을 벌린다. 눈꺼풀을 밀어내고 눈 아래 살을 밀어내며 흰자위가 조명 아래 드러내자 붉은 핏줄이 보였다. 눈동자가 불안에 쉴 새 없이 흔들리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감출 수도 없는 자연스러운 눈알의 움직임.
“나를 바라보던 그 눈과도 달라요.”
나를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는 이렇지 않았고, 그 눈동자에 비췄던 나의 모습도 다른데. 조곤이어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장혜진은 소름이 돋았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어조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이건, 이야기와 다르잖아. 장혜진은 저 너머에서 무대를 구경하고 있을 남자를 향해 불만을 쏟아냈다. 눈을 벌린 손끝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자신의 눈을 뽑아낼 것만 같았다. 두려웠다. 자연스럽게 맞닿은 몸은 부드럽기보단 서늘하고, 단단했다. 뱀이다. 뱀이 자신을 칭칭 감싼다. 눌리는 가슴이 갑갑했다.
“어떻게 된 걸까요. 혜진씨. 당신은 이유를 알고 있나요?”
그런 그녀의 생각 따위 양수연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금방이라도 입술이 닿을 듯, 고개를 더 숙여 눈을 맞춘 양수연에 장혜진에게 묻는다. 그 아래 숨겨놓은 진실을 제게 고하라며 자신을 기만하려는 자에게 경고한다. 눈꺼풀을 닫지 못해 건조해진 눈알에 눈물이 고이고, 따가웠다. 장혜진은 덜덜 떨리는 손을 숨기지 못하고 그녀에게 매달렸다.
“다, 다…, 이야기, 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살려주세요.
장혜진은 양수연에게 빌었다. 그녀의 고백을, 양수연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듣는다. 그저 고백하는 자의 숨소리를 듣는다. 말을 끝맺은 후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장혜진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양수연은 얌전히 그녀를 놓아줬다. 다리에 힘이 풀린 장혜진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
“다행이에요.”
그 사람의 눈이 훼손 된 게 아니라서.
양수연이 웃는다. 눈은 여전히 심연을 박아놓았는데 올라간 입꼬리가 이질적이고 어딘가 잘못됐다. 소름이 쫙 올라왔지만 장혜진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럼, 이만. 하고 방을 나서는 모습을 보고서도 도저히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뒤늦게 뻑뻑해진 눈알을 문지르며 장혜진은 속으로 욕만 되 읊었다. 미쳤어, 저건, 저건 정말… 이미 미쳤어…. 괴물이다. 그녀는 정말 자신의 눈을 뽑으려고 했다. 거짓도, 그냥 하는 말도 아니었다.
자신은 이미 괴물의 아가리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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