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를 잡아먹은 양
강수혁x양수연 / 수수커플
양수연은 이따금 생각하곤 한다. 그때 내가 한 선택이 정말 최선이었을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을 해볼 법 한 의문을, 그녀는 언제나 떠올렸다. 눈동자를 굴려 그와 맞잡은 손을 내려다봤다. 따듯한 온도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무슨 일이야. 아까부터 좀 멍해 보이는데."
걱정이 담긴 목소리가 닿았다. 양수연은 뒤늦게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조금, 피곤한가 봐요."
"정말 괜찮은 거 맞아?"
강수혁의 손이 그녀의 이마 위를 덮었다. 시원했다. 맞닿은 손과 다르게 서늘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신기했다.
"잠깐, …열이 나잖아."
그래서 시원하다고 느낀 걸까. 양수연도 따라 자신의 목 위로 손바닥을 얹어봤지만 평소와 구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강수혁의 말을 듣고 나니 열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가보다.
"목은 안 아파? 머리는, 왜 이야길 안 한 거야. 몸 상태가 안 좋으면 다른 날에 만나도 됐는데."
그의 목소리가 끔찍하게 느껴지는 것도 열 때문이다. 다정한 온도, 다정한 목소리, 다정한 눈빛. 모두 끔찍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발목을 부여잡고 바닥으로 자꾸 끌어내렸다. 질퍽한 늪 아래로 가라앉는다.
양수연은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만약 내가 당신의 연인이 아니라, 무연고자의 '환자'였어도 지금처럼 순전히 걱정만 했을까.
뜨거워지는 몸과 다르게 속은 얼음처럼 온도가 낮아진다. 속이 메스껍다. 맞잡은 손을 뿌리치고 입을 막았다. 그에게서 몇 걸음 물러서선 전봇대 아래로 몸을 숙였다. 올라오는 토기를 진정시키지 못하고 몇 번이고 계속 헛구역질을 했다.
"수연아…!"
"오지 마요!"
다가오려는 그를 향해 양수연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뱉어낸 것은 위액 밖에 없다. 목 안쪽까지 화끈거리는 느낌을 진정 할 수 없었다. 강수혁은, 양수연이 일개 '환자'였어도 지금처럼 다정하게 굴었을까. 머리 속이 새하얗게 변했다가 다시 새카맣게 물든다. 연인을 향하는 그의 손은, 눈은, 목소리는 늘 진심이었다. 강수혁의 감정은 진심이었고 진실이었고 사랑이었다. 강수혁은 진심으로 양수연을 사랑했다. 그녀는 그것이 자주 숨이 막혔다.
시신마저 온전하지 못한 채 화장 된 약혼자의 끝을 잊을 수 없는데,
그 사랑을 받다 보면 가끔은 이 상황에 안주하고 싶어졌다.
그런 자신을 마주할 때마다 휩싸이는 자기혐오에 숨을 쉴 수 없었다.
그이가 그녀를 부른다. 수연아. 강수혁과는 다른 다정한 목소리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수연아. 그것은 금방 절규로 바뀌었다. 수연아! 그는 괴로움에 발버둥을 쳤다. 네가어떻게나를잊고다른사람도아니고그녀석과.
양수연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천천히 숫자를 셌다. 십, 구, 팔, 칠…. 열 개의 숫자를 세 번 정도 반복하고 나서야 생각이 가라앉았다. 이젠 숨을 길게 내뱉었다. 한숨처럼 내뱉어진 숨이 허공에 흩어졌다. 어지러웠다. 그런 그녀의 등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는 손이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강수혁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곁에 있었다.
"…괜찮아?"
"… …네."
강수혁이 그녀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받아 든 양수연은 입 주변을 닦아내고 더러워진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의 부축을 받으며 몸을 일으킨 양수연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얼굴에 열이 도는 것 같다. 이제야… 열이 나는 것을 깨달았다.
"집에 가자. 데려다줄게."
"… 네."
양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집 피울 일은 없었다. 몸 상태가 안 좋은 줄도 모르고, 엉망인 컨디션으로 그에게 못 보일 꼴을 보였다. 자신의 걸음에 맞춰 느리게 발걸음을 움직이는 강수혁의 배려에 양수연은 몸에 힘을 빼고 그에게 더 기댔다. 그는 별 말 없이 더 단단하게 그녀를 안았다. 두사람의 그림자가 한 사람의 그림자처럼 겹쳐 길게 늘어졌다.
"수혁씨."
"응, 수연아."
양수연은 눈을 감았다.
"저는 역시 당신을… 용서 할 수 없어요."
"괜찮아. 용서하지 마."
옷이 물에 흠뻑 젖은 것처럼 무거워졌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괜찮아. 그만큼 내가 더 사랑할게."
강수혁의 머리에서 피가 뚝 뚝 흘렀다.
"… …고마워요."
"괜찮아."
두 사람의 걸음은 계속 이어졌다. 길은 진흙탕이 되고 깊은 늪이 되고, 심연의 더 아래로 이어졌다.
"수혁씨."
"응, 수연아."
강수혁이 그녀를 바라봤다. 물에 흠뻑 젖은 채 시퍼렇게 질린 입술로 덜덜 떨고 있는 양수연을 그는 더 끌어안았다. 그의 가슴은 피로 붉게 물들고, 머리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지옥에서 만나요."
양수연이 강수혁을 바라봤다. 서로의 시선이 허공에서 닿았다. 해는 기울고 그 자리에 뒤집어진 달이 떠올랐다. 그것은 태양처럼 보이기도, 달처럼 보이기도 했다. 고개를 숙인 강수혁은 젖은 입술 위로 입을 맞췄다. 양수연은 눈을 감고 그 입맞춤을 받았다. 다시 눈을 뜨고 시선을 마주한 두사람은 그렇게 천천히 걸음을 계속 옮겼다. 그 끝은 지옥이고 나락이니 온전한 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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