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만약에

사빈사림레인?

거울앞에 선 하사림이 거울을 가만히 들어다봤다. 깔끔하게 정리된 화장실에 꼴이 더러운건 하사림 뿐이였다.

거울 속에 비친 하사림은 칙칙한 낯이였다. 그저께 갈았던 화장실의 조명이 화장실과 하사림을 환하게 비췄다. 거울 속에서 선명하게 비치는 붉은 눈동자와 하늘색 눈동자. 하사림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숙였다.

화장실을 가득 매운 하사림의 한숨소리. 하사림이 결심한 듯 고개를 들어 거울속의 하늘색 눈동자를 바라봤다.

‘아.’

하사림이 손으로 눈을 찔렀다. 뿌득, 사람의 살점이 뚫리는 소리가 났다.

“윽.”

하사림이 반사적으로 신음소리를 흘리며 손을 더 밀어넣었다. 눈이 뚫리고 눈동자를 뽑아내는 고통은 이제껏 겪어왔던 고통과는 어느정도 결이 다른 아픔이라 세면대를 잡은 반댓쪽 손이 잘게 떨렸다.

뚜두둑-.

결국 눈동자를 뽑아낸 하사림이 미친듯이 밀려오는 고통에 끄으윽, 신음을 삼키며 거울을 보았다. 하늘색으로 빛나던 눈동자는 제 자리에서 뽑힌 채 검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눈알이 뽑힌 눈동자에서는 피가 뺨과 턱을 타고 뚝뚝뚝 흘러내렸다. 반사적으로 찌푸려진 하사림의 눈가. 하사림이 멀쩡한 눈을 반복해서 깜빡였다.

한번,

두번,

세번.

고통이 점점 멎어들더니 결국 세번째로 눈을 깜빡였을 때에는 텅 비어있어야할 왼쪽 눈에 여상히 빛나는 하늘색 눈동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사림이 거울속에서 빛나는 하늘색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봤다.

“시발….”

붉게 물든 눈동자를 쥔 손에 자연스레 힘이 들어갔다. 뿌득, 찍. 눈동자가 터지며 피를 뿜었다. 안그래도 피로 젖어 축축하던 왼손에서는 피가 뚝뚝흘러내려 화장실 바닥에 자국을 남겼다.

하사림이 눈동자였던 것을 손으로 꽈악 쥐고선 순간적으로 고온의 불꽃을 피워내 태워버렸다. 화장실에서 살점타는 냄새가 풍겼다.

하사림이 한숨을 내쉬며 세면대의 물을 틀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고 하사림이 차가운 냉수에 손은 넣은 채 반댓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하사림이 왼손으로 얼굴에서 흐르는 피를 대충 닦아냈다.

“마음대로 되는게 하나도 업네….”

찬물에 씻겨나간 핏물로 세면대가 붉게 물들어갔다. 아직 손에는 남은 피가 있었음에도 하사림은 수도꼭지를 닫고 화장실을 나왔다.


“와…. 너 눈 상태가 왜그래?”

“한 번 뽑아봤어.”

“드디어 미쳤나.”

하사림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레인이 할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하사림을 쳐다봤다. 새로이 재생된 하늘색 눈동자는 감쪽같았으나 그 주변을 붉게 덮은 핏물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려는 듯 선명했다.

“안 아프냐?”

“뽑을때는. 지금은 그다지.”

“용캐도 뽑았네.”

“…그러게.”

하사림이 왼쪽 눈을 만지작 거렸다. 레인이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꼈다. 하사림이 그런 레인을 보며 문에 기대어 섰다.

“그러고보니 우리집에는 웬일로?”

“장현이 가보래. 분명히 집 상태 별로일 거라면서.”

“…딱히 그렇진 않은데.”

레인이 하사림 너머로 보이는 집 구석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세탁이 끝난 옷가지들이 개어지지 않은 채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고, 재 때 청소를 하지 않은 탓에 신발장에는 먼지가 쌓여있었다.

“퍽이나 그러시겠어요.”

“크흠.”

하사림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하사림 본인이 보기에도 깔끔한 상태는 아니였기 때문이다.

“너 그 눈 보기 싫어서 뽑은거지?”

“…”

“…집 좀 치우고 그 눈 좀 씻고 있어봐. 안대 사올테니까.”

“굳이 그렇게 까,”

“그러면. 또 뽑게? 재생할때마다?”

레인이 하사림에게 다가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고선 하사림의 두 눈동자를 또렷하게 응시했다. 하사림이 입을 다물었다.

“…그건 아니지만.”

“어차피 보기 싫어서 그런거라며. 그럼 가리고 지내는게 낫지 않겠어?”

하사림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레인이 하사림을 집안으로 밀어넣었다. 하사림이 당황하며 레인을 잡으려고 하자 레인이 현관문을 쾅, 닫고선 문 밖에서 외쳤다.

“집치우고 있어! 금방 올테니까!”

“야! 너,!”

문 너머로 보이던 실루엣이 사라지고 하사림은 걸음을 주춤했다.

“하….”

레인이 가고 하사림이 집을 치우기 시작했다.

“뭔 쓰레기가 이렇게….”

옷을 개어 옷장에 넣고, 더러워진 것들은 다시 빨래통에. 그리고 걸레와 물티슈로 먼지가 쌓인 곳들을 슥슥슥 닦아나갔다. 그렇게 한 15분이 흘렀을까. 꽤나 많이 치운 것 같았지만 하도 오랬동안 방치한 탓에 청소는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하사림이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띵동-!

“어.”

하사림이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레인이 작은 상자를 든 채로 서있었다.

“그게 안대야?”

“엉.”

레인이 신발을 벗고 하사림의 집으로 들어왔다. 아까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여전히 더러운 집에 레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으으 하고 중얼거렸다. 집을 대충 둘러본 레인이 타겟을 하사림으로 돌렸다. 여전히 씻지 않은 탓에 피가 묻은 얼굴. 레인이 하사림을 화장실로 질질 끌어 세면대 앞에 세웠다.

“씻고 나와.”

“그래.”

하사림이 굳어버린 핏덩이와 씨름을 하는 동안 레인은 하사림의 집을 한 번 더 둘러봤다. 치울게 산더미만큼 있었다. 엉망진창인 집, 그 속에서 유독 깔끔하게 관리된 물건이 몇 있었는데, 그것들은 하사림이 배사빈과 어릴적 찍은 사진, 한요와 장현을 비롯한 동료들끼리 찍었던 사진, 그리고 하사윤과 찍은 사진. 이 세가지였다. 레인이 그 사진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레인에게 있어서 하사윤은 모르는 사람이였다. 한요와 장현은 오늘도 얼굴을 본 사람들이고.

하지만 단 한사람.

이제와서는 생사도 행방도 알 수 없게된 실종자가 하나있다.

“…”

레인이 배사빈과 하사림의 어린 모습이 담긴 사진에 시선을 고정했다.

“뭘 그렇게 보냐.”

어느새 얼굴을 깨끗하게 씻고나온 하사림이 사진을 보고있는 레인을 불렀다. 그리고 어딘가 슬픈 표정을 지은 레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속에 담긴것이 죄책감인지 슬픔인지 짜증인지 분노인지는 하사림 본인조차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안대 주려고 왔다며.”

“아, 그래. 그랬지.”

레인이 사진에서 시선을 때며 하사림이 있는 거실로 나왔다.

하사림이 소파에 앉아 레인을 올려다봤다. 레인이 상자에 담긴 검은색 안대를 꺼내었다. 레인이 안대를 하사림에게 건내었으나 하사림은 멀뚱히 쳐다보기만 할 뿐이였다.

“뭐. 내가 씌워달라고?”

하사림은 대답이 없었다. 레인이 기가차다는 얼굴로 하사림의 앞에 섰다.

안대를 풀어 하사림의 왼쪽 눈을 덮게끔 위치를 조정하고 머리카락을 정리한 다음 뒤통수로 끈을 당겨 리본을 묶었다. 대충묶었다가는 풀릴 위험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레인을 올려다보던 하사림이 눈을 껌뻑였다. 끝? 이라고 말하는 표정이였다.

“어. 끝. 거울봐봐.”

하사림이 그 말에 화장실로 걸어가 거울을 들여다봤다. 가려진 왼쪽 눈, 그 속의 하늘색 눈동자.

“훨씬 낫네.”

“거봐. 내가 뭐랬냐.”

“진작쓸걸 그랬어.”

레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하사림이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안대를 만지작거렸다.

“…훨씬 낫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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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책읽는 개미핥기

    작가님 개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