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어바등-재희무현

[재희무현] 운전 면허 따는 박쌤

-요즘 면허학원 다녀서 생각나서 썼어요.

-둘이 사귀는 중임.

박무현은 면허를 따기로 결심했다. 나이 삼십 대 중반, 아니 후반에 와서야 결심한 이유는 이름을 걸고 낸 치과 때문이었다. 임대료만으로도 빚을 지게 생겼건만 차를 살 여유가 있냐고? 새벽에 버스로 출근하다가 과로사하는 것보다야 빚쟁이가 되는 편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

차로 출근하면 30분도 걸리지 않을 텐데 버스를 타기 위해 새벽 4시 반에 기상해야 했던 무현은 차를 사겠다며 결연한 얼굴로 그의 접수원에게 선언했다. 의외로 김소원은 거기에 반대하지 않았다. 차야 뭐, 소원이 조금 알아본다면 괜찮은 중고차를 싸게 살 수도 있을테고. 소원이 바라는 것은 치과와 원장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지, 자신의 고용주가 무리하다가 실려가는 것이 아니었다.

“면허는 있으세요?”

“아니요.”

“…그럼 학원에 가셔야겠네요?”

“네. 그러니까 앞으로 평일 하루 오전과 오후 한 번씩은 쉬었으면 합니다.”

“….”

무현은 소원의 눈이 가늘어지는 것을 숨 죽이고 쳐다보다가 소원이 작게 고개를 끄덕거리자 환하게 웃었다. 휴가를 받은 것도 아니고 학원에 가기 위해 일정 조절을 하는 것일 뿐인데도 저렇게 좋아하다니. 소원은 어쩐지 자신이 악덕업주가 된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기분에 휩싸였다.

당분간 화요일 오전과 목요일 오후에 휴진을 한다는 공지를 sns와 치과 현관에 올렸다. 등록된 환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필기 시험을 무난히 통과한 무현은 휴일이라 데리러 나온 재희의 차에 올라타며 조잘거렸다.

“필기 시험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는 들었는데, 정말 쉬운 편이네요.”

“그래요?”

“네. 그보다 기능은 좀 걱정이에요.”

부드럽게 운전하며 예약해둔 식당으로 향하던 재희의 눈이 힐끔 조수석으로 향했다가 다시 전방으로 돌아갔다. 무현은 뭔가를 말하려다 입을 다물더니 재희가 면허를 딸 때 어땠는지 묻기 시작했다.

“저야 뭐어… 면허 없어도 운전 잘만 하고 다녔는데요. 면허 시험 정도야 쉬웠죠.”

“그거 자랑 아닌 거 알죠?”

“어쨌든요.”

재희는 무현이 애써 회피하는 대화 주제를 굳이 건들지 않으며 식전에 나온 냉차를 마셨다. 교통사고로 운신의 자유를 잃었다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간신히 회복한 사람. 빛을 영영 못 볼 뻔했다가 바다를 건너가 겨우 시력을 되찾은 사람. 그런 사람에게 운전이란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테다.

재희는 여전히 불이 무서웠다. 작은 불 정도야 잠깐 굳었다가 다시 평정을 되찾았지만 사람 한 명 쯤은 삼킬 크기의 불은 뉴스화면으로 나와도 숨쉬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무현은…자동차가 산산히 부서지는 영화도 좋아하고, 조수석에는 잘만 탄다. 운전도 괜찮겠거니, 생각한 재희는 그를 믿기로 하고 무현이 권하는 음식을 입에 넣었다.

“저는 운전에 재능이 없나 봐요.”

일 주일만에 만난 무현은 식탁에 엎드려서 재희를 보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오늘 기능 시험이 있다고 했는데. 재희는 무현이 구태여 결과에 대해 말하지 않길래 물어보지 않고 비싼 초밥이나 사왔다. 재희가 포장을 까서 무현의 앞에 내려놓자 무현이 신선한 회 냄새에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재희가 쪼개서 내미는 젓가락을 순순히 받은 무현은 제일 먼저 광어 초밥을 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비싼 값만큼 두꺼운 광어살은 쫀득하게 이 사이에서 짓이겨졌다.

“사실 연수 받을 때부터…강사님이 불안해하긴 했거든요…그래도 마지막 시간쯤엔 나름 괜찮았던 것 같은데….”

말하는 중간중간 초밥을 씹어 넘긴 무현이 우울하게 다음 초밥을 집어 입에 넣었다. 그가 오물거리며 먹는 것을 맞은 편에서 턱에 손을 받친 채 지켜보던 재희가 가볍게 물었다.

“어디서 틀렸는데요?”

“….”

양파채와 특제소스가 올라간 연어초밥을 집었던 무현이 멈칫하더니 재희의 눈을 슬쩍 피했다.

“가속 구간….”

“너무 밟아서요?”

“못 밟아서요….”

재희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식탁 위를 소리없이 두드렸다. 눈치를 보던 무현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려고 하자 재희가 마저 먹으라는 듯 손을 위로 저었다. 무현이 남은 초밥을 먹을 동안 고민하던 재희는 초밥그릇이 깨끗해진 것을 보고 물었다.

“저는 위로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잘 모르겠어서요. 당신 의견을 듣고 싶은데요.”

“제 의견이요?”

“무슨 위로가 필요해요? 정석적인 위로? 실질적인 위로? 아니면 파격적인 위로?”

“…? 정석적과 실질적과 파격적의 예시를 좀 들어 봐요.”

“정석적은 ‘그러셨군요. 무현 씨라면 할 수 있을거에요. 연수를 추가로 들어보는 것은 어때요?’”

“좋은 위로네요. 실질은요?”

“사람 없는 근교로 가서 엑셀 밟는 연습을 좀 하는 거죠. 아마 잘 찾아보면 폐쇄 공항 같은데 대여해주는 곳도 있을거에요.”

“흠. 좋네요. 파격은요?”

재희가 말 없이 주먹을 들어 엄지만 세우더니 뒷쪽의 방을 가리켰다. 무현은 잠시 재희의 뻔뻔한 무표정의 얼굴을 보더니 물로 입을 헹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떤 걸로 위로해드릴까요?”

“…파격적으로 하면서 정석적으로 위로해준 다음, 실질적인 위로로 넘어갔으면 좋겠어요.”

“좋아요.”

재희는 먼저 일어서서 손을 내밀고 서 있는 무현의 손을 맞잡았다.

재희의 위로는 꽤 효과가 있었다. 기절하듯 잠들었다가 개운하게 눈을 뜬 무현은 폐쇄 공항의 길고 긴 도로에서 마음껏 엑셀을 밟았다. 처음에는 조금 빨라진 것만으로도 속이 거북하고 손에 땀이 찼지만 옆에 앉은 재희가 아주 힘껏 밟아보라고 채근해댄 탓에 나중엔 시속 150km까지 달려봤다. 그쯤 달리고 났더니 20km/h 정도는 가뿐했다.

최종 시험까지 합격한 날, 무현은 제일 먼저 재희에게 전화를 걸어 합격의 기쁨을 전했다. 촬영 중간에 마침 전화를 받았던 재희는 담담하게 축하를 하고 퇴근 길에는 케이크를 사서 돌아갔다.

“저 왔어요. 케이크 사왔는데, -.”

케이크를 들고 들어오던 재희는 기다리던 무현에게 입맞춤을 당하고 그대로 굳었다. 까치발을 들었던 무현이 홍조 띤 얼굴로 흐흐 웃으며 재희의 손에서 케이크 상자를 빼내 식탁 위에 올렸다.

“축하해주려고 케이크 사왔어요? 고맙네요. 그런데….”

무현이 재희의 어깨를 잡아 아래로 살짝 당겼다. 재희는 굳이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허리를 숙여줬다.

“정석적인 축하 말고, 파격적인 축하는 없어요?”

무현이 가까워진 재희의 귓가에 속삭였다. 재희의 눈이 조금 커졌다가 가느다랗게 좁아졌다. 파격적인 축하가 길어진 탓에 정석적인 축하는 다음날 아침 다 녹아내려서 발견됐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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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열정적인 뱁새

    파격적인 축하가 궁금하네요... 파격적으로 달달한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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