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nd I gonna Live Forever

 https://www.youtube.com/watch?v=hjgsMPQt0cE

누나의 이름은 죽은 고모를 따서 붙였다.

 

 갓 스물, 이른 나이에 가버렸지만 좋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젊은 날의 그 언젠가, 엄마는 아빠의 손을 잡고 첫 아이를 낳으면 네 죽은 누나의 이름을 붙이자고 약속했다고. 그렇게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고,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릴 적부터 지겹도록 심심하면 들려주던 이야기여서 레파토리를 외울 정도였다. 부모님은 가끔 스물을 훌쩍 넘기고도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누나를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서린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것은 아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감정. 

 

 그리고 어쩌면 이제서야 이해하게 된 상실의 흔적.

 아마 그 누구도 모르길 바랐을 것들이.

 

 그러나 나는 가끔 이 순간에 와서 부모님을 원망하게 된다. 조금 더 괜찮은 이름이었으면 이런 상황이 없었을까. 이른 나이에 져버린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두고두고 백 살이 넘도록 살아있는 사람의 이름을 썼으면 조금 나았을까. 지독하게 현실감 없는 현실 위로 상대 없는 원망만 스민다. 부모님, 당장 죽어 없어진 누나, 또는 이 부대를 편성한 누군가, 이 놀이공원을 만든 누군가, 내지는 우리를 이런 상황에 내몰았을 누군가. 그리고 말들. 괜찮을 거라던 말. 별 거 아니라는 말. 너가 다치는 것 보단 낫지 않냐는 말들. 

 

 그리고 방향을 잃은 분노.

 

 문득 뇌리에 남아있는 최초의 기억을 떠올린다. 또는 가장 최근의 기억. 삶을 어느 수직선으로 표현한다면 시작과 현위치 각각 그 끝에 담겨 있을 법한 것들엔 언제나 누나가 빠지는 법이 없었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당연한 일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혼자 남은 삶을 살아가며.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홀로 남은 삶을.

 

 생애 최초의 상실과.

 

 죽음이라는 불가역적인 소멸에 대해 생각한다.

 

 뺨에 희게 에듯 찬바람에 와 닿았던 것도 같았다. 그러나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감각이 마비된 듯하다 못해 온 몸이 붕 뜬다. 시야가 한순간 화려하게 금이 간 유리처럼 조각조각 깨져나갔다가 흐릿하게 원상태로 돌아왔다. 현실에서 유리된 것 같은 감각. 이 모든 게 꿈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지독하게 현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저 나는 악몽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기분나쁜 꿈을 꾸면 으레 그렇듯. 깨어나면 열일곱의 내가.

 

 내 방 안짝에서 식은땀에 절은 채 허덕거리며 몸을 일으켜고.

 불을 켠 채로 미적지근한 방바닥을 밟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 거실로 나가 보면,

 자연스럽게 TV를 켜놓고 쇼파에 누워 있는 누나를 마주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믿기 싫은 것일지도 모른다. 믿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저 고요하게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지나치게 평온해서. 잠든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금방이라도 누나, 하고 불러보면 깨어날 것 같아서 더 괴로운 것이다. 차라리 난도질이라도 되어서 알아볼 수 없는 형상으로 돌아왔으면 덜 괴로웠을까? 그건 아닐 테지. 그러나 문득 가시적이지 않은 통증을 견딜 수 없어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마는 것이다. 그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그렇지….

 

 아하, 그렇지. 아마 조금은 다정한 말을 해줘도 좋았을 것이다. 어쩌면 순순히 하는 이야기들을 받아줘도 나쁘지 않았겠지.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는데 곧잘 다정한 말을 못 하는 성격이라 매일같이 밉상으로 말을 했다. 몇 번이고 착하게 얘기 좀 해달라는 조름을 무시하고 일관했다. 가장 상투적이고 흔하기 짝이 없는 후회가 내 일이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마 누구라도 상상은 했을까.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에 나는 그저.

 

 고요하게 잠든 낯을 보며 질문을 던진다.

 

 누나는 억울하지도 않아?

 

 대답해줄 이는 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알고 있다.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 미련도 후회도 때로는 한이 서린 물음도 산 자의 몫이라는 것을. 그래서 가끔은 원망하고 싶다가도, 아무도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말고. 또 다시 아니, 어쩌면 잘못은 내 쪽에서 하지 않았던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후회가 남게 행동하진 말았어야지. 그러니 내 잘못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용서해줄 이도 이제는 없다. 꿈꿀 수 있었던 행복한 미래도 없다. 남은 것은 그저….

 

 그래, 상실은 고작 그뿐인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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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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