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인 원더랜드
더블크로스 3RD 카스가 쿄지 드림
"사회의 법 같은 건, 하늘 아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관념 아래 만들어진 거잖아요…. 이, 인간이 오버드로 진화한 지금도…인류가 평등하다고, 생각하세요…? 우, 우린 포식자죠! 그들은, 피식자고요…. 세상이 바뀌었다면, 그 세상을 주재하는 질서도 바뀔 필요가 있는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으레 퇴색되기 마련이라는데, 그날만큼은 안 그랬다. 먹먹하게 물기를 머금어 흐린 하늘,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공기, 바람이 몰고 온 축축한 냄새마저도 아직까지 지나치게 선명한 기억 중 하나다. 그래, 그날은 그랬다. 하세가와 아리스는 그저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꼬맹이였고, 그날도 그러다 못해 전날 잔뜩 비가 왔던 흔적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물웅덩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장마가 한참인 여름이었다.
웅덩이에 비친 하늘은 탁하고 꿉꿉했다. 하세가와 아리스는 말없이 그 위로 손을 흔들어 보았다. 그늘이 졌다. 이번에는 그것을 관두고, 품에서 타로카드를 꺼내 한 장을 뽑았다. 닳을 정도로 외워버린 카드가 이번에도 나왔다. 뜻을 더 찾아볼 필요도 없이 입속으로 왼다. 새로운 시작, 기회.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행위인지는 스스로도 모른다. 자신이 치는 타로에 어떤 효험이 있는지도 모른다. 습관적으로 늘 지니고 다니며 뽑아 볼 뿐이다. 효험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언제나 그뿐이다.
하세가와 아리스는, 결국, 삶이 지나치게 외로워서 자신이 특별해졌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는 흔한 꼬마에 불과한 것이다.
문득 하세가와 아리스가 생각한다.
차라리 이대로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게 되면 좋을 텐데.
다시 웅덩이를 내려다본다. 그 순간 저벅, 발소리가 들리고 쪼그려 앉은 하세가와의 위로 그늘이 진다. 시야 안으로 단정한 가죽 구두가 들어왔다. 철벅, 웅덩이 위로 파문이 인다. 하늘이 파원을 그리며 일렁거린다. 위를 올려다본다. 낯선 사내다. 처음 보는 얼굴.
그가 말한다.
"너였구나, 꼬맹아."
그것이 이상한 나라를 여행하는 앨리스의 시초다.
"틀림없군요, '원더랜드'입니다."
일본 지부에서 파견 나온 UGN의 에이전트 하나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완전히 무너진 H시 지부의 건물을 가만히 둘러보았다. 반짝이는 금빛 글씨가 반파된 건물 위를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다.
'Was it a cat I saw?'
눈을 뜬다.
흐릿한 시야가 천천히 선명해진다. 건조한 흙먼지가 휘날리는 공기, 알 수 없는 전신의 활력감이, 시야가 채 돌아오기도 전에 먼저 들이닥친다. 먼지에 목이 칼칼했다. 다시금 눈이 깜빡였다. 그제야 눈앞의 풍경이, 제대로 뇌에 입력되기 시작했다.
'…낯선 천장.'
하세가와 아리스가 속으로 웅얼거린다. 반파된 날것 그대로의 천장이 그 내장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아슬아슬하게 위에서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부서진 콘크리트의 잔해들.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에, 낯선 목소리 하나가 먼저 날아든다.
"일어났냐, 꼬맹아."
의식을 잃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봤던 남자가, 바로 눈앞 정면에 쪼그려 앉아 있다가 말을 툭 던진다. 느슨하게 몸을 늘어뜨리고 앉은 폼이 제법 자연스럽다. 안경을 쓰고, 날카로운 인상을 한 청년과 중년의 경계에 선 남자다. 삼십대 중반에서 사십대 초반쯤 될까. 툭툭 던져오는 어조는 그다지 상냥하지는 못한 날것 그대로의 문장들이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린다. 남자가 그 모습을 보고 쯧, 하고 혀를 찼다.
하세가와는 혀 차는 소리에 한 번 더 몸을 움츠렸다가, 더듬더듬 안경을 고쳐 쓰고 흘러내린 머리칼을 정돈했다. 썩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야가 조금 더 깨끗해진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한결 맑아진 시야로 주위를 다시금 둘러본다. 그제야 이곳이, 완전히 부서지고 무너져 내리긴 했지만 아까 자신이 쪼그려 앉아 웅덩이를 들여다보던 바로 뒤의, 빈 상가 건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와 동시에 자신이 콘크리트 조각 무더기 위에 기대 앉아있었음을 함께 깨닫는다.
무슨 짓을 한 거냐고, 그렇게 물어보려 했으나 남자의 말이 더 먼저 던져진다.
"이게 바로 네 첫 작품이다. 마음에 드나?"
남자가 주위를 휘적휘적 둘러보더니 웃는다.
"처음치곤 제법인데, 꼬맹이."
그러니까 그의 말에 따르면 이곳을 무너뜨린 사람은 하세가와 자신이라는 말이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멍하니 눈만 꿈뻑이는 하세가와를 본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상황 파악이 덜 됐나보군. 막 각성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그럼 이 제안을 먼저 하도록 할까. 꼬맹아, 외롭지 않냐? 아까 보니 외로워서 죽어버릴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데."
남자가 손을 탁탁 털어내며 일어섰다. 불쑥 손 하나가 눈 앞에 내밀어졌다.
"날 따라와라."
그 손에서부터, 팔로, 어깨로, 얼굴까지. 쭉 쫓아 시선을 옮기고 고개를 들어올린다. 아, 눈이 마주쳤다. 일순 남자의 눈이 잠시 금빛인지 붉은빛인지 모를 것으로 빛난 것도 같았다. 남자가 씩 웃는다.
"아무도 널 무시할 수 없는 세계를 보여주마."
그리고 그 말에 하세가와 아리스는, 홀린 듯 내밀어진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린다. 그것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충동적 결정이었으나 ─ 동시에 그런 감각이 들었다. 사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순간을 기다려 왔던 것 같은, 그런 기이한 친숙함. 마치 이 모든 것이,
꼭 처음부터 이렇게 예정되어 있던 어떤 운명처럼.
남자가 기분 좋게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내 이름은 '디아볼로스', 카스가 쿄지다."
"'원더랜드'의 귀환이로군요."
H시의 지부장으로부터 전화로 보고를 받던 키리타니 유고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금빛 표식. 틀림없다. 노파심에 확인차 파견 에이전트를 보내 다시금 알아보도록 지시는 했지만 그때부터 짐작하고 있던 바였다.
[예, 확실합니다. '원더랜드'와 교전 경험이 있는 에이전트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모방범이 아니라 본인이 맞습니다.]
몇 년동안 흔적도 없이 잠적했더라니 이렇게 화려한 복귀를 선언하는 건가.
키리타니는 한숨을 삼키며 보고 전화를 마무리했다.
연보라색 머리칼을 나풀거리며 선 앳된 낯의 소녀. 그러나 몇 년이 흐른 만큼 그 역시도 많이 자랐을 것이다. 한동안 잠적한 이유는 뭘까. 그리고 이렇게 복귀한 이유는 또…유명한 것 치곤 목적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는 인물이라 전혀 짐작가는 것이 없었다. 결국 키리타니 유고는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들어 전화를 건다.
"예, 키리타니 유고입니다. '디아볼로스'의 동태에 대해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만."
'…영역.'
속으로 중얼거리며 팔을 뻗는다. 그 팔, 손끝을 중심으로 아주 좁은 범위의 원형이 생겨났다. 황금빛 먼지 같은 반짝이는 공기가 그 안에서 천천히 회전한다. 그것은 이윽고 하세가와의 의지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무리 끙끙거리며 애를 써 봐도 영역이 더 넓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왜 또 안 되지? 대체 왜? 울상을 짓는다.
"꼬맹이, 아직도 연습 중이냐."
불쑥 목소리가 들려오고, 그 순간 반사적으로 파아앗─영역이 몇십 배는 더 넓게 갑자기 퍼져나간다. 하세가와가 허둥지둥거렸다.
"우, 우와앗, 이게 왜, 왜 갑자기 이렇게…."
되라고 할 때는 안 되고! 다시금 울상이다. 카스가 쿄지는 정장 주머니에 손끝을 찔러넣으며 휘적휘적 걸어와, 하세가와를 타박하는 대신 인상을 찡그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컨트롤이 아직도 말썽이군. 갓 각성해서 그런가? 그래도 유독 심한데."
그로서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겠으나, 심약하기 짝이 없는 하세가와 아리스에 귀에는 영락없는 타박으로만 들렸던 것이 문제였다. 헝클어진 보랏빛 머리카락과 그 아래 탁한 안경알 때문에 가려진 눈동자에 눈물 비슷한 것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카스가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눌렀다. 쓸만해 보여서 기분 좋게 데려왔던 놈이 지나치게 성가신 성격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을 슬슬 깨달은 것이다.
"…꼬맹아, 뭐라고 한 거 아니다."
팔자에도 없는 육아였다. 그가 지친 낯으로 중얼거렸다. 그 순간 저 쪽에서 손톱만한 돌멩이 하나가 휙 날아와 톡, 카스가의 어깨에 부딪히더니 바닥에 떨어진다. 그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여전히 드넓게 하세가와의 '영역'이 펼쳐져 있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카스가는 허, 하고 한숨을 뱉는다.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꼬, 꼬맹이 아니라고요…! 하세가와 아리스예요…!
울상에 덜덜 떨면서도 외치는 꼴이 제법 재미있을 만도 했다. 그래서 카스가 쿄지는 화를 내는 대신 헛웃음을 뱉었다. 미치겠군. 아무튼 가지가지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펼친 영역이나 거두라고 말하려는 찰나, 눈을 질끈 감은 하세가와 아리스가 먼저 외쳤다.
"저, 저도 카스가 씨더러 아저씨라고 안 부르잖아요…!"
카스가 쿄지가 인상을 와락 구긴다. 이 꼬맹이가 진짜.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앨리스가 묻는다.
"어디로 가고 싶은데?" 체셔가 되물었다.
"어디든 상관 없어." 앨리스의 말에 체셔 고양이가 웃는다.
"그럼, 네가 어디로 가는지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도쿄는 좀 마음에 드냐?"
마지막 박스를 거실로 옮겨다 놓고 굽혔던 허리를 펴며 카스가가 물었다. 뒤이어 제 상체만한 36개들이 휴지를 끌어안고 낑낑거리며 들어오던 하세가와 아리스가 털썩, 현관에 겨우 휴지를 내려놓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모, 모르겠어요…카스가 씨는, 꽤 익숙해 보이시네요…."
"나야 원래 여기가 주 활동 구역이고."
가볍게 혀를 찬 카스가가 상자로 가득한 거실을 둘러보며 말을 돌렸다. 짐만 옮겨뒀다 뿐이지 정리를 하지 않아 어지러운 상태였다.
"그것보다 너 이거 정리 다 할 수 있겠냐? 못 들어서 무거운 건 죄다 내가 옮겼잖아. 휴지도 낑낑거리며 들고 왔으면서."
슬슬 그 말투에는 익숙해진 하세가와가 말없이 고개를 흔든다. 그러더니 손을 뻗어 '영역'을 전개했다. 텅 빈 공간, 거실부터 집 전체를 레니게이드 인자가 채운다. 두둥실, 순식간에 물건들이 하세가와의 손끝을 따라 공중으로 떠오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스가가 짧게 감탄했다.
"오."
머리 좀 썼는데? 씩 웃으며 팔을 쭉 뻗어 하세가와의 머리칼을 잔뜩 헝클여 놓는다.
"이제 좀 쓸만해졌구만."
하세가와 아리스가 손을 들어 엉망이 된 머리칼을 정돈하려 매만지며 징징거렸다. 부루퉁한 낯이었다.
"머, 머리…다 헝클어졌잖아요…!"
"뭐야? 어차피 원래도 엉망이었으면서."
물론 씨알도 안 먹히는 항의였다. 카스가 쿄지는 들은 척도 않고 코웃음을 쳤다. 그 와중에도 거실의 물건들은 착실히 제 자리를 찾아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었다. 카스가가 방금 거실 구석에 쳐박힌 붉은 카우치 위에 털썩, 앉았다. 둥실거리며 거실과 부엌, 방 사이를 떠다니는 물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주제를 바꿔 대뜸 입을 열었다.
"입학식은, 내일이냐?"
"아, 아마도요…별로, 의미는 모르겠지만."
우물거리는 대답만 돌아왔다. 도쿄에 오는 걸 기대하고 있던 것치곤 반응이 영 시원찮다. 카스가는 그 이유를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하여간 여러모로 성가신 꼬맹이다. 그가 한 번 더 말을 툭 던졌다.
"뭐야? 어차피 너희 부모님 못 오신다며. 홋카이도에 있는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하세가와가 어깨와 눈썹을 동시에 축 늘어뜨렸다.
"…어, 언니가. 일찍 끝나면 점심 먹기로 했는데. 바쁠 것 같다고…."
그런 거였군. 금세 울상이 된 하세가와 아리스를 위아래로 이리저리 훑어보던 카스가 쿄지가 다시금 한 번 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더니 팔짱을 끼고, 눈썹을 까딱거리며 입을 연다. 사실 내용물은 배려 없는 종류의 날것 그대로의 멘트였으나, 그 딴에는 나름 위해준다고 던진 말이기도 했다.
"애송아, 넌 이제 오버드야. 평범한 인간들. '일상'의 존재와는 완전히 별개인 몸이라고. 게다가 내가 보기엔 이제 이만하면 포기할 때도 된 것 같은데 말이지."
툭, 어떤 선고처럼 말이 떨어져 내린다.
"이제 그만 미련은 버리는 게 어떠냐?"
몇번이고 혼자뿐인 밤을 질릴 정도로 반복해왔어.
이제와서 되돌아보니 아직 사랑한 적이 없어.
"…아."
갓 나온 파르페에 숟가락을 꽂아 넣으려던 하세가와 아리스가 툭, 스푼을 테이블 위로 떨궜다. 그러더니 황급히 다시 스푼을 주웠다. 떨떠름한 얼굴로 그런 하세가와 아리스를 마주하고 있던 키리타니 유고가 천천히 테이블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대뜸 워딩을 펼치고 공격하기도, 모른 척 지나가기도 뭣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맞은편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하세가와가 눈치를 보다 남은 스푼을 조심스레 내밀었다.
"…드, 드실래요?"
"…됐습니다."
키리타니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외면하고 고개를 저었다. 어쩐지 카스가 쿄지가 이 소녀와 함께 다니며 성가셔 하면서도, 그냥 두지 않고 데리고 다니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도무지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키리타니가 한숨을 쉬자 하세가와가 화들짝 놀라 파드득 떨었다.
"아, 아,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 그냥 파르페 먹으러 나, 나온 건데…."
"…예, 저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편하게 드시죠."
이렇게까지 나오니까 정말로 공격하긴 뭣했다. 그 말에 안심하고 다시 스푼을 든다. 야금야금 파르페를 먹어치우던 하세가와가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슬쩍 물었다.
"저…바쁘지, 아, 않으세요…?"
묻고 나서야 키리타니 유고를 가장 바쁘게 만드는 집단의 일원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순식간에 머쓱한 얼굴이 됐다. 부끄러운지 대답조차 듣기 전에 그냥 파르페 그릇에 고개를 푹 쳐박아버렸다. 그 모습에 물끄러미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던 키리타니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작게 웃고야 말았다. 하세가와의 귀가 새빨개진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키리타니 유고는 잠시, 아주 신기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엉망으로 헝클어진 연보랏빛 머리, 탁하게 얼룩진 동그란 안경, 그 둘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은 얼굴은 영락없이 아직 어린, 앳된 소녀의 것이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말간 낯은 곧 울상으로 일그러지는 일이 잦다. 어딜 봐도 순박하지만 평범한, 그런 여고생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이 키리타니 유고는 모르는, 그의 본명이 가진 민낯일 것이다.
그러나 '원더랜드'의 낯을 뒤집어쓰면 소녀는 돌변한다. 자비 없이 휘두르는 손끝에 따라 레니게이드가 움직이는 영역 안의 지배자. 대 오버드 전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대항종 에이전트. 순진무구한 낯으로 폐허 위에 선 테러리스트.
그러므로 문득, 키리타니 유고는 소녀에 대해 궁금해진다.
"'원더랜드', 당신은."
망설이다 묻는다.
"어째서 FH에 적을 두고 있습니까?"
하세가와 아리스가 스푼을 놓았다. 그러더니 한 번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고, 역으로 키리타니를 향해 질문했다.
"…키, 키리타니 씨야말로, 어째서 UGN에서 일하시나요…?"
"…그야, 평화와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죠."
키리타니는 잠시 멈추었다가 선선히 대답한다. 그 대답 안에는 물론 단순히 한 문장, 그리고 평화와 일상이라는 두 단어로 함축할 수 없는 수많은 고뇌와 인고가 들어 있으나 으레 그렇듯 키리타니 유고는 그런 것을 보란 듯이 떠들어 늘어놓는 성정은 아니었다. 따라서 소녀는 느리게 턱을 괴고, 비스듬히 고개를 치켜든 채 그 말을 곱씹는다. 흘러내린 세라복 소매 사이로 갸날픈 흰 손목이 도드라졌다.
"……일상."
그리고 키리타니 유고가 그를 '원더랜드'라고 명명하는 순간, 소녀는 평범한 여고생의 낯을 벗어던지고 '원더랜드'가 된다.
"키리타니 씨는, 스, 스스로가 인간이라고…그렇게 생각하세요?"
"그게 아니라면 뭐겠습니까?"
"괴, 괴물이죠! 신인류라고 불러도 좋고요…어, 어느 쪽이든 본질은 같겠지만요?"
삐뚤어진 안경을 고쳐 쓴 소녀가 빙그레 웃었다.
"'일상'은 인간들만의 영역이죠. 우리들과는 별개의…법? 사회 질서? 규범? 그 외에 뭐라고 불러도 조, 좋아요…. 아무튼 핵심은, 그런 건 인간의 전유물이라는 점이에요…."
그러더니 놓았던 스푼을 쥐고, 아이스크림을 푹 한번 떠먹는다. 하세가와가 입가에 스푼을 문 채 한쪽 손을 연극처럼 펼치며 웅얼거렸다.
"새, 생각해 보세요. 호랑이가 토끼들의 사, 사회를 존중하던가요? 인간이, 호랑이 사회의 법을 지키나요? 또, 똑같은 거예요…. 물론 토끼를 귀여워하고, 소중히 여기는 인간도 이, 있겠죠. 저는 아무 관심도 없을 뿐이고…그렇다고 인간이 토끼가 될 수는 없잖아요. 마, 마찬가지예요…."
원론적인 이야기였다. 키리타니가 조용히 답한다.
"'원더랜드', 인간을 규정하는 기준은 스스로를 인간으로 여기고 있냐입니다. 인간성은 그곳에서부터 정의되는 거지요."
하세가와가 입에 다시금 포키를 하나 밀어넣으며 대꾸한다.
"그, 그래요…. 유감이지만, 그 기준으로도, 저는 인간은 아니에요…. 아무튼,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 그러니까 토끼인 척 토끼 사회에 숨어든 인간인 당신들을 더러는 이, 이렇게 부르는 거겠죠. 기만자, 거짓말쟁이─."
그러더니 미소한다.
"─배신자(Double Cross)라고."
써놓고보니 자캐가 너무 아방수같음 화남
그러나? 아방수치곤 또 광기임 애가 어쩌다가 중2병이 된거지
- 카테고리
-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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