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 작법서

그림에도 왕도가 있을까?

人工事件 by gong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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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2022년에 쓴 글입니다. 이 글을 쓸 시간에 그림을 그렸으면 저는 더 잘 그리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생각이 많기 때문에,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때 하던 고민과 고뇌는 지금도 하고 있는데요. 요즘에는 마끼아또 님의 영상을 보면서 마인드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어렸을 때부터 그렸다. 지금껏 그려온 그림의 장수는 많지만 전부 늘어놓으면 대부분 유사하다. 보통 좋아하는 구도와 형태와 색감만 그리기 때문이다. 몇 년간 그린 그림을 노션에 연도별로 모아 두었다. 한 달에 한 번쯤 어떤 그림을 그려왔나 확인한다. 올해가 절반도 넘게 지난 시점인데 [2022년] 문서를 열어보면 전부 비슷비슷하다. 색감이나 완성도가 들쭉날쭉한 편인데도 내가 그린 그림이란 걸 확실히 알 수 있다. 얼굴 각도가 똑같기 때문이다. 부족한 기본기가 하나의 개성으로 정착하는 흐름인데 기뻐해야 할지 우울해야 할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것만 그리긴 하지만 나름대로 그림이 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보았다. 작법서도 여러 권 읽고 그림 강좌도 수백 편은 읽었을 것이다. 작법서보다 네이버 블로그에 올라온 튜토리얼을 읽은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왜냐하면 어렸던 나에게는 몇백 페이지짜리 작법서보다 인터넷 세상에 제멋대로 떠도는 머리카락 그리는 방법이나 눈 예쁘게 그리기가 더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름대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나서 그림에 왕도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방금 찾아봤는데 왕도는 지도자가 따라야 할 정석적인 길을 의미한다고 한다. 맞다. 왕도의 왕은 그 왕王 자가 맞다. 그렇다면 그림에 왕도는 없는 것이 더더욱 맞다. 왜냐하면 그림을 그리는 나는 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것은 목적을 설정하는 것뿐이다. 자신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 확실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림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어느 정도의 데포르메를 그리고 싶은지 확실히 정해야 한다. 기본기 물론 중요하지만 6등신 미소녀가 좋은데 당장 번 호가스 책을 공부하는 게 효과적일까, 하고 회의가 드는 것이다. 이 기본기라는 말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어야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한동안 사이토 나오키의 영상을 줄곧 봤다. 사이토 나오키의 채널에는 여러 가지 그림 연습법 영상이 올라와 있는데 3일 연습법이든 일주일 연습법이든 한 달 연습법이든 골자는 같다. 먼저는 부족한 점을 찾는 것이다. 자신의 약점을 파악하면 그에 기반한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인 과제를 제시한다. 자신이 정한 기간이 끝나면 과제를 시작하기 전 자신과 현재의 자신의 그림을 비교한다. 즉 자신이 예전에 그린 그림과 끊임없이 경쟁하는 것이다. 과거의 자신을 경쟁자로 설정하기⋯ 그나마 정도라고 할 만한 것은 이뿐이다.

다른 사람을 경쟁자로 설정하는 것은 좋은 의도여도 별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요즘엔 자신의 작업 과정을 통째로 공개해 놓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검색어를 잘 넣고 스크롤을 내리면 무한정에 가깝게 타인의 작업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나도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올린 영상을 가끔 본다. 이전에는 뭐 하러 남이 그림 그리는 걸 구경하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명히 유익은 있다. 나는 그림에서 가장은 선과 면과 색 중 선이라고 생각한다. 색을 잘 쓰는 사람과 구성에 능숙한 사람의 그림을 보면 사감 없이 멋있다고 칭찬할 수 있는데 선을 깔끔하게 쓰는 사람한테는 어쩐지 떨떠름한 마음으로 대단하시네요,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선을 무척 센스 있게 사용하는 사람이 올린 타임랩스를 봤다. 그후로는 질투하지 않는다. 매끈하고 유려한 선이 실은 수십 번의 컨트롤 제트와 손목 스냅을 들여 완성한 것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손쉽게 살아간다고 생각하니까 질투 같은 걸 하게 된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쉽게 그려내는 사람은 없다. 내가 부러워하고 배아프게 생각하는 그 사람은 결과물을 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딱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내가 그릴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그런 것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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