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캘버리로 가자

https://www.youtube.com/watch?v=FM7MFYoylVs

캘버리를 향해 걷는 100시간 스포 有

 그러니까 캘버리로 가자.

 네가 살아갈 수 있게.

 


 

 폐허가 된 세상에서 카메라를 하나 주운 적이 있었다. 전기가 끊겨 디지털 카메라는 충전조차 쉽사리 할 수 없어 버린 지 오래였고, 내가 주워 온 건 낡은 필름카메라였다. 절반 정도 쓴 필름이 한 통 담긴. 같이 다니던 무리의 누군가가 카메라를 보고 대뜸 소리쳤다. 영정사진이라도 찍게? 코웃음을 치며 받아친다. 찍어봤자 우리가 죽으면 장례식도 안 치뤄 줄 거잖아? 쓸만한 소지품을 건진 다음 바로 도망치겠지. 그런 행동을 비난할 생각은 없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다만 나는 죽어봤자 애도받을 수 없는 삶이 조금 슬프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 삶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삶들이. 

 수도 없이 죽은 것들과 마주쳤다. 대부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중 거진 반절이 넘게는 죽어도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성호를 긋고 믿지도 않는 신의 품으로 돌아가길 기도했다. 같이 이동하던 동료들도 대부분 죽어 없어졌다. 나는 그들을 추모할 수 있는 한 추모해주고 싶었다. 주머니칼로 성기게 나무를 깎아 십자가를 만들어 가슴 위에 올려놓고 나면 그제야 동료가 죽은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그게 내가 버텨나가는 방식이었다. 우리와 함께 하던 무리가 세 번쯤 바뀌었을 무렵, 나는 현이에게 우리 둘끼리만 다니자고 말을 꺼냈다. 둘이서만 다니는 건 무리가 있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위험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람들과 함께하기엔, 견딜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멸망 이후의 세상에서도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돌아가기를 꿈꾸며 억지로 목숨을 연명해나가는 삶. 극단적인 생존의 기로에 몰리게 되면 삶의 이유 같은 것들은 생각할 수조차 없게 된다. 실존에 대해서 고민할 여유도 없어진다. 이런 세계에서 생존한다는 것은 하루하루가 정신력과 체력을 깎아먹는 전쟁같은 것이다. 가끔 겨우겨우 숨을 돌릴 짬이 생기면 그제야 나는 고민하곤 했다. 이렇게 이어나가는 삶에 의미가 있을까? 그럴 때마다 현이는 곁에서 가만히 내 손을 잡아줬다. 굳은살 박힌 흰 손을 내려다보고 있자면 겨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적어도 이 온기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나는 이 지긋지긋한 삶을 연명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기 때문에 핏줄이 터진 눈으로 공책을 들여다보며 내가 알지도 못하는 갖가지 언어로 쓰인 공식을 내려다볼때도, 견딜 수 있었다. 머릿속으론 연신 읊어지는 알 수 없는―동시에 지금만큼은 이해할 수 있는―말들을 들으며, 주위를 향해 감각을 곤두세우고 경계하면서, 잠들지도 쉬지도 못해 지치고 힘겨운 몸으로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을 때도. 동시에 몸 속에서 증식하고 있을 지긋지긋한 좀비 바이러스를 짓누르고 신경을 끄려 애를 쓰면서 네게 모든 것을 숨기고 있다는 죄책감을 꾹꾹 눌러 담을 때도. 

 모든 것이 괜찮아진 세상에서, 네가 다시 살아갈 것을 상상하면.

 그거면 될 것 같았다. 멀쩡하게 건설된 국가와 사회 속에서 다시 삶을 되찾고 웃을 날이 오는 너를 떠올리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전부 괜찮았다. 

 이곳으로 오기 위해 지나친 몇 개의 마을 중 텅 빈 사진관이 있는 마을이 하나 있었다. 그나마 덜 망가진 건물 중 하나가 그 사진관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잠깐 그곳에 머물렀었다. 하룻밤 사이에 현이는 잠을 잤고, 그날 불침번이었던 나는 마침 다 쓴 필름통을 현상실로 가져가 현상하기로 결정했다. 총 스물 네 장의 사진뭉치가 나왔다. 열세 장은 내가 찍은 폐허가 된 세상의 광경이었고, 열 장은 내가 모르는 어느 가족의 가족사진이었고, 한 장은 현이와 내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나는 그 열 장을 그 자리에서 바로 필름과 함께 불태웠다. 그게 어떤 숭고한 의식 같았다. 아마 그 사진 속의 인물들은 전부 죽거나 좀비가 되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주인 없는 물품의 대부분은 그런 식으로 버려진 것이었으니까. 대부분은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에 찍힌 것인지 다같이 디즈니랜드 따위로 놀러간 가족사진이거나 아이들을 찍은 사진이거나였다. 그리고 마지막 장은 집앞에서 찍은 가족사진인데, 날짜를 보아하니 좀비 사태 이후에 찍은 것 같았다.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는 가족들의 시선에는 어쩐지 알 수 없는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내가 엿봐서는 안 될 어떤 삶의 단면을 엿보고야 만 기분이 들었다. 나는 가만히 그 불태운 재를 땅에 묻으며 성호를 그었다. 내 딴에는, 약식으로 치르는 장례 같은 거였다.

 열세 장의 사진뭉치를 현이에게 건네자 감탄이 돌아왔다. 손에 익지도 않은 카메라로 찍은 거라 별 기대도 없었는데 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예술적이라고 했다. 나도 그 말엔 동의했다. 폐허에서는, 그런 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 감성이 있다. 세상 모든 곳이, 전 지구가 폐허가 되고 난 후에는 모든 곳에서 그런 감성들을 알아볼 수 있게 됐다. 그 동시에 그런 감성은 무너진 세상 안에서 숨 가쁘게 살아가느라 오히려 알아보지 못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 사진들은 그런 감성을 예리하게 잡아내 담아낸 것 같은 구석이 있었다. 어딘가 쓸쓸하고, 아름답고, 동시에 충만하면서 공허한. 

 세상이 재건되고 원래대로 모든 것이 돌아오고 나면, 이런 사진들로 전시전을 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면서 현이가 웃었다. 나는 필름과 사진 뭉치를 몽땅 현이에게 맡겼다. 그럼 네가 해줘. 난 찍었으니까 발표는 네 몫이야. 이유조차 말하지 않아 억지에 가까웠다. 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직접 하면 되잖아요, 하고 말하면서도 그걸 받아들었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부터 나는 이미 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100시간의 유예기간을 둔 채로. 그러나 그런 것들을 직접 내 입으로 말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래서 그냥 생떼를 부리듯 싫어, 네가 해, 하고 도리질을 쳤다. 현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알겠다고 나를 달랬다. 그 다정함 때문에 나는 불현듯 울고 싶었다. 내가 없어지고 나서도 너는 이렇게 타인에게 다정할 수 있는 사람일까? 그걸 확신할 수 없어서였다. 나는 부디 현이가 그렇게 살아가길 바랐고, 동시에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없어진 후의 삶을 이어가기를 바랐다.

 그래, 당연하지. 그게 아니었으면 왜 내가 이 빌어먹을 길을 선택했겠어. 세상이 이 꼴이 되어가기 전에 페이스북이나 인터넷 포털 사이트 따위에서 본 시답잖은 문구를 떠올린다. 세상과 연인 중 한쪽을 구할 수 있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나요? 뭐 이런 것. 나는 그걸 보면서 선택지를 제시한 놈을 탈탈 털어서라도 둘 다 구하겠다고 코웃음을 쳤었다. 적어도 다행인건 이렇게 둘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고를 일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세상과 연인을 동시에 구할 수 있는 길이 생긴다면, 누군들 그걸 선택하지 않겠는가? 설령 그게 내가 죽는 길이라고 해도.

 나는 네가 괜찮냐고 물어보지 않기를 바랐다. 그럴 때마다 더 무너질 것 같아서였다. 괜찮지 않다고, 죽을 것 같다고 매달려서 오열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너도 세상도 구할 수 없는 채로 모든 걸 망쳐버릴까봐 두려웠고, 결코 그렇게 끝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괜찮아야 했다.

 세상에는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감내해야 할 것들이 존재하기 따름이므로. 

 마지막 사진만은 현이에게 건네지 않은 채 쓰고 있던 노트 끝 장에 숨겨두었다. 카메라를 손안에서 굴리던 현이가 불현듯 물어보는 바람에 찍게 된 사진이었다. 우리, 단 둘밖에 안 남았으니까 같이 찍은 사진을 남기긴 힘들겠죠? 카메라를 건네받은 내가 잠깐 고심했다. 음, 방법이 있긴 한데 확실하진 않아. 필름통을 잠깐 확인한 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설명했다. 이중 노출이라는 건데, 이미 찍은 필름 위에 한번 더 사진을 찍어서 두 장을 겹쳐버리는 거지. 필름을 망칠 수도 있지만 잘만 찍으면 무지 예술적으로 나오거든. 네가 저기 혼자 선 걸 내가 찍은 다음, 내가 바로 그 옆에 서서 그 모습을 네가 다시 똑같은 필름 위에 찍으면 돼. 그건 마지막 남은 한 장의 필름이었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현이와 내가 함께 나온 사진을 찍어보기로 결정했다. 그 노트 뒤에 숨긴 사진이 그렇게 나온 사진이었다.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고, 겨우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형체가 애매하게 뭉그러진 나와 현이.

 아마 그것만으로도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수첩 맨 끝장에 숨겨두고 힘들어서 무너질 것 같을 때마다 사진을 내려다보며 마음을 다잡았겠지. 

 그리고 네가, 끝내 죽을 것 같을 때면.

 이것을 보고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내가 남긴 마지막 흔적들을.

 때로는, 어느 새벽엔 좀비가 된 이후의 삶에 대해서 고민해본 적이 있다. 이지를 잃고 본능을 쫓아 헤메는 삶. 그렇게 살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연명하는 것이 목숨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그런 날이 온다면 네 손으로 나를 죽여주길 부탁하고 싶었고, 그것이 지나치게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너를 떠나 스스로 죽자고 생각하게 됐다. 

 캘버리를 고작 몇 미터 앞두고 나서 나는 그제야 웃을 수 있게 됐다. 적어도 널 잔인하게 버리고 떠날 일은 없게 되어서. 저 거대하고 단단한 성벽이 오히려 고마웠다. 합법적으로 우리를 분리하고, 내가 죽는 모습을 네게 보여주지 않아도 될 명분을 제공해 줄 테니까. 담담한 얼굴로 이별을 고하지 않아도 되게 해서. 네게 보여줄 내 마지막 모습이 네게 상처주는 일이 아니게 되어서.

 내가 그리워도 살아가.

 내가 없으면 살아가지 않을 너를 알고 있다. 그리고 네가 꾸역꾸역 삶을 이어나가게 만들 방법 역시도 알고 있다. 내 삶이, 그리고 내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하면 된다. 너를 살리기 위해 죽은 내 노력을 헛되지 않게 해달라고 너를 붙잡고 애원하면.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네게 더 잔인한 일이 될 것임을 역시 알고 있어서, 끝끝내 그 말만은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말만은 해서는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너를 묶어놓는 것마저 내 욕심일 테니까. 그걸 강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설령 네가 앞으로 죽기를 선택한다고 해도, 내가 없는 세상을 견디지 못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를 선택한다고 해도. 네가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나의 몫이었으니까. 네가 선택한 결말마저 내가 바란 너의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나는 때때로.

 가끔 그 사실에 가장 울고 싶어졌다.

 때로는 행복하라는 말이 가장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 밖에 없었다. 행복해 달라고, 내가 없이도. 나를 위해서 스스로의 삶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그리고 다시 네 삶을 찾아가는 것이다. 한 번 사랑을 배웠으니까 아마 두 번째엔 더 잘할 수 있겠지. 한 번 다시 절망에서 일어나는 법을 배웠으니까 두 번째엔 아마 더 잘 할 수 있을 거야. 그저 그렇게 살아갔으면 했다. 그것을 위해 여기까지 왔으니까.

 총구를 스스로에게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 순간, 아마 그런 생각들을 했을 것이다.


 

 ―타앙.

 그리고 방아쇠를 당긴 이후로는, 그런 생각마저 할 수 없게 되었겠지.

 

뺨맞고 극대노해서 맞뺨치러 후다닥 써온 글

뭐지.. 썸띵젓라잌디스 가사 너무 정연우 상황이랑 잘맞아서 계속 들으면서 썼음..... 에버글로우도 계속 들으면서 쓰긴 했는데 가사 보면 화자가 오히려 최현 상황이랑 맞물려서.. 암튼 그래도 대충 두 곡 다 분위기는 맞으니까요....거의 전력 60분에 가깝게 후다닥 썼는데.. 한.. 전력 90분? 아무튼 오천자? 육천자쯤 썼네 퇴고 안해서 오타비문 많음 걍 봐 귀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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