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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페커미션 32. 진공 속 복제

1차 - 무명+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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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파이] 진공 속 복제

저와 그들이 유전적으로 비슷할 수밖에 없다면 무명이 자신을 혐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사피르, 아니, 파이는 무명이 저를 향해 쏟아내는 혐오를 ‘이해’했다. 죽어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자신은 눈앞에 있는 그들의 유전자를 받아 형성된 존재이므로 저들과 닮은 구석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아니, 상당히 많이 닮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에게도 돌아버리기 직전까지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이건 자기혐오인가? 그러나 파이는 저와 제 혈육에게 웃어보였다. 아무렴, 무명이 있는데 자신이 자신을 좀 혐오한다 한들 그리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최대한 산뜻하고 얄미워보였으면 좋겠다는 일념을 담아 웃으며 파이는 말했다.

“거절합니다.”

그 말에 마주앉은 쪽은, 암석처럼 단단한 얼굴에 살짝 금이 가려다 말았다. 파이는 속으로 한탄했다. 이걸로는 부족한 모양이군.

“이걸 권유로 생각한다면 착각이야.”

“물론 알고 있습니다만, 거절합니다.”

“명령이라고 생각했나?”

파이는 웃는 얼굴 뒤에서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설령 지구가 멸망해도 어떤 인간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런 식으로 알고 싶지는 않았다. 암석 같은 얼굴 옆의 또 다른 암석이 입을 열었다.

“이건 통보란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방법을 써서라도 이해시켜줄 수 있다만 너도 나도 번거롭지 않겠니.”

다시 속으로 험한 욕을 내뱉었다. 그 ‘이해시키는 과정’이 무엇인지 파이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몸이 절로 굳고 손끝이 떨리려했다. 파이는 제 신체반응을 자연스럽게 손깍지를 끼는 것으로 일단 숨겨보았다. 성인이 된지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이 모양이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유년기에 새겨진 것들을 벗어나는 데에는 평생도 모자란 법이었다.

“아버지의 발언이 어떤 성격인지를 이해 못한 게 아닙니다. 제가 이해하지 못한 건 지금 이 자리의 존재 자체죠.”

“무슨 말이지?”

“전 더 이상 이 집안사람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만.”

그 말에 아버지의 눈썹이 위로 치켜떠졌다. 파이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파이가 불치병에 걸리자 냅다 버리고 우주로 떠나버린 것. 너 하나 때문에 우리 모두가 기준미달이 될 수는 없잖니. 그런 말을 들었을 때 파이는 상황을 납득했다. 납득하지 못하는 건 그 때가 아니라 지금이었다. 유토피아에 도착한다고 파이의 병이 절로 나을 리가 없지 않은가? 여전히 그는 기준미달이었고, 그래서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없었을 텐데.

“정부의 새로운 기준을 통과했기에 네가 여기 있는 것이지. 그렇다면 네가 달고 있는 질병도 필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집안 또한 거기에 거스를 이유는 없다.”

무뚝뚝하게 생겨서는 말을 참 잘한다고 생각했다. 말이 기준이고 판단이지, 파이 때문에 유토피아에 가지 못할까봐 버려놓고는 파이가 프로젝트를 통과하자 다시 주워가려는 것이었다. 쓸모없어서 버린 물건에게서 쓸모를 찾은 바람에 쓰레기장으로 허둥지둥 달려가는 꼴과 다르지 않았다. 만일 버려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외부를 접하지 못했다면 파이는 이 상황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어쩌면 다시 주워줘서 고맙다고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저들은 쓰레기 수거차가 이미 쓰레기를 가져갔다는 사실도 모르고 오물을 뒤지는 멍청이들이었다. 파이는 다시 주워질 마음이 전혀 없었고 저들을 더 이상 가족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여기서 문제가 있다면, 저 멍청이들은 힘이 아주 센 멍청이들이라는 것이다.

“제가 불치병이라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겠지.”

“물론 상대측에서도 알고 있을 거고요.”

“그렇다.”

“그런데도 그쪽에서 약혼제의를 수락했다고요. 멍청이는 가문에 들이지 않는 거 아니었습니까?”

상대가 불치병인 걸 몰랐다면 그 집안의 정보력은 엉망이니 약혼할 이유가 없었다. 반대로 알고서도 동의했다면 이득도 없는 결혼을 하겠다고 수락한 멍청이들이니 또한 약혼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면을 구기면서 저를 주워가서 결혼동맹에 써먹으려 드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네 병은 고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 죽는 것도 아니니까.”

“아하, 단명 하는 건 사실이니까 결혼하고 기다렸다가 재산을 가로채겠다는 속셈이라던가요?”

“물론 그렇게 두지는 않을 생각이지만, 그보다 먼저.”

아비란 자는 고저 없는 말투로 담담히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네 병은 유전될 확률도 낮으니까 말이다. 새로이 밝혀진 사실이니 너는 아마 몰랐겠다만.”

파이는 그만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집안에서는 즉, 자신이 죽기 전에 결혼동맹으로 써먹고 또 종마로 써먹으시겠다는 말씀이었다. 정말이지, 지구가 멸망해도 어떤 것들은 도무지 변하지를 않았다. 파이는 눈앞에 있는 예전 가족들을 지구로 던져버리고 싶었다.

“합리적으로 쓰일 곳이 생겼다, 이 말씀이군요.”

“그래. 너도 다시 집안의 일원이 되는 편이 살기에 좋지 않겠느냐.”

퍽이나……. 그 말을 억지로 삼킨 파이는 다른 말을 꺼냈다.

“글쎄요, 집안에 다시 속하려고 관리자를 맡은 건 아니어서요. 그보다도 일단 제 연인에게 굉장히 실례되는 말씀을 하셨다는 점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사피르 너보다도 더 큰 사내 말이니? 빨리 정리하렴. 좋은 집안 출신도 아니고, 하다못해 수태 가능한 여자도 아니고. 계속 갖고 놀아봤자 어차피 득 될 것도 없잖니.”

“정말로 실례되는 말씀밖에 안 하시네요. 놀랄 정도로.”

아, 위험했다. 하마터면 진심으로 혐오감을 비칠 뻔했다. 혹시 지금이 15세기쯤 되던가? 파이는 거부감과 함께 어릴 적의 스스로에 대한 연민을 함께 느꼈다. 이런 개소리들이 진리라고 여기며 살아야 했던 어린 사피르가 제법 가엾게 느껴졌다. 무명을 사랑했다면 지금쯤 눈깔을 뒤집고 난리를 쳤겠지.

문제가 있다면, 굳이 따지고 들면 제 어미의 말에 틀린 점이 없다는 것이었다.

“뭐가 문제니. 그 천것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 말하는 어미의 눈에는 가벼운 조소가 담겨있었다. 사랑 때문에 집안을 버리는 건 멍청한 짓이라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마치 사피르가 사랑 따위를 할 수 있을 리 없다고 확신하는 것 같은 조소. 불치병을 앓지 않는다 해도 완벽할 수 없는 존재임을 각인시키는 듯한, 비웃음.

문제가 있다면, 저 조소에도 틀린 점이 없다는 것이었다.

“무슨 말씀을, 저희는 미궁이라는 극한 환경 속에서도 사랑을 키울 만큼 열렬합니다만.”

우웩. 반사적으로 토기가 올라왔다. 무명과? 자신이? 열렬해?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었다. 파이는 애써 속을 진정시키며, 자신이 연기를 잘 하는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열렬하다고 하면서 구역질난다는 표정을 지으면 그 누가 믿겠는가?

“거짓말 하지 말렴. 네가 누굴 사랑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멍청하진 않으니까.”

“그런 것 치고는 제가 유토피아로 올 수 있을 거라는 것은 모르셨던 것 같습니다만.”

제 부모와 누나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파이는 퍽 재미있게 바라보았다.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그러게 누가 버린 걸 다시 주워 쓰랬냐고. 파이는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저들에게 면박을 줄 수 있는 기회는 흔치않았으니까.

“……좋아, 이 부분은 양보할게. 네가 누굴 사랑할 수는 있다고 해보자꾸나. 그렇다 해서 네가 말하는 그 연인이 진짜인 건 아니지 않니?”

“어떤 점에서요?”

“그 자는 네게 호감조차도 갖고 있지 않은 모양이던데.”

이런. 파이는 혀를 찼다. 하다못해 제 뒷조사를 했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무명이 파이에게 썩 좋은 감정을 갖지 않고 있다는 건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을 테니까.

“진짜 연인이라면 너희의 결합에 따른 손익을 따질 마음이 들겠지만 말이다……. 아니잖니? 아무리 좋게 봐줘도 너 혼자 좋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관계를 가지고 이렇게까지 말이 길어질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이가 오해 사기 쉽게 행동하긴 하죠.”

그이, 라는 표현에 다시 한 번 속으로 헛구역질을 한 파이는 목에 힘을 주었다. 지금은 물러설 때가 아니었다. 이미 한 번 절 버린 집안에 고작 종마역할을 하러 다시 기어들어갈 수는 없었다. 피가 이어졌을 뿐이지 이들은 이미 제게 있어 남이었다. 사피르는 이미 가족을 잃어버렸고 파이에게는 새로운 가족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걸 이 인간들이 알아줄 리도 없었고, 알려 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심기를 너무 거스르면 당장 억지로 잡혀가 골방에 가둬질 수도 있었고…….

파이는 머리를 쥐어짰다. 저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끌려가지 않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실 텐데요? 그는 기계적인 인간이라는 것 정도는요. 그가 기계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일은 극히 드물죠. 제 앞에서를 제외하면 말입니다. 그에게 있어 유일한 존재가 저인데 이걸 사랑이라고 하지 않으면 뭐라고 해야 하죠?”

“궤변이 많이 늘었구나, 아들.”

“어라, 제가 당신의 아들이었던가요?”

“…….”

아무래도 많이 얕잡힌 모양이었다. 그들이 기억하는 건 집안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죽어라 노력하던 사피르 뿐이니 다시 주워주면 넙죽 절이라도 할 거라고 생각했을 수는 있겠다만.

“정신 차리렴. 유일하다고 해서 다 연인이라고 우길 수는 없어. 게다가 본 바로는 그 자가 네 결혼소식을 들으면 오히려 속 시원해 할 것 같던데.”

“하지만 그에게 우리의 관계를 물어보면 연인이라고 대답할 텐데요. 그리고 속 시원해할지는…….”

말을 이으려던 순간, 파이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번뜩였다. 그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좋아요. 그러면 내기를 할까요?”

“하. 네가 내기를 걸 사안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이대로 절 데려가면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진 않겠죠.”

“사피르, 네가 감히…….”

“이왕이면 파이라고 불러주시겠어요? 이젠 그쪽이 더 익숙해서요.”

“너…….”

간접적인 핀잔에 상대는 반박하지 못하고 인상만 썼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게 익숙할 만큼 버려지고도 시간이 꽤 지났다는 에두른 핀잔이었다. 그러게 누가 다시 주우러 오랬냐고. 그의 가족이었던 자들에게 이죽거리고 싶은 입술을 꾹 누르며 파이는 말을 이었다.

“이 내기에서 진다면, 저는 이전의 사피르가 되어드리죠.”

“허.”

“매사에 협조적일 것을 약속드리죠. 용도에 맞게 쓰기에 쉬우실 겁니다.”

“만일 네가 이기면?”

“다신 절 주워가려 하지 마세요.”

“…….”

무어라 분통을 터트리려는 어미를 저지하며 아비가 물었다.

“우리 가문에 다시 들어올 기회가 필요하지 않다는 거냐?”

그렇게까지 사리분별이 안 되는 거냐는, 만일 분별 안 되는 상태라면 억지로 끌고 가 교육하겠다는 뜻을 품은 말이었다. 파이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니까 모든 걸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겁니다.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고, 아니면 말고. 그걸 강제하지 말라는 거죠.”

그러니 이럴 때 과연 기회가 맞겠냐고 비웃는 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저쪽이 내기를 하고 싶게끔 만들려면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는 동시에 자신이 여전히 가문에 가치를 두고 있으며, 그들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했다. 그래야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판에 뛰어들 테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탁, 탁, 탁. 손톱으로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가 몇 번 나더니 어미의 입이 열렸다.

“어떤 내기를 하고 싶은 거니?”

됐다. 마음 같아서는 함성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파이는 일단 유들유들하게 웃었다.

“누가 옳은지 내기하는 거죠. 저는 저와 무명의 사이가 연인이 맞다는 것에 걸고, 그쪽은 연인이 아니라는 것에 거는 겁니다.”

“그거야 네가 그 자와 짜고 연인이라고 우기면 되는 일 아니냐.”

“그래서 불특정 다수에게 묻는 거죠. 둘은 연인일까, 아닐까. 다만 그이가 워낙 감정에 서투르다 보니 남들이 보기에도 사랑을 하는 것처럼 보이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제야 저들의 얼굴에 이해가 서렸다. 무언가 조금 납득한 듯한 얼굴이기도 해서 파이는 더 단단한 목소리를 내며 재차 말을 이었다.

“그러니 시간을 주시죠. 워낙 힘든 일을 많이 겪은 사람이니 1년 정도는 필요합니다.”

“너무 길어.”

“약혼은 아직 말만 나온 상태 아닙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1년은 너무 길다. 조건을 조율한다 해도 6개월이면 끝나니 6개월로 하지.”

“설령 조건 조율이 끝난다 해도 얼굴 보고 만나서 사람을 파악하는 시늉은 해야 하지 않습니까? 6개월은 추가로 걸리겠죠. 그 정도는 어울려 드릴 테니 1년으로 하죠.”

“약혼자가 될 사람이랑 만나면서 그 놈과도 어울리겠다 이 말이냐?”

“그 정도는 비밀리에 할 수 있습니다.”

“……뭐, 이쪽도 완전히 깨끗하지는 않으니 그렇게 하도록 하지. 다만 말로만 끝내려는 것은 아니겠지?”

되었다. 일단은 1년이라는 시간을 벌었다. 안도의 숨이 흘러나왔다. 무심코 긴장했었는지, 몸이 이완되며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얼굴만은 태연하게 웃는 채로 파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공증인을 부르시죠.”

 

 

유토피아는 이름에 걸맞게 교통편이나 공중시설도 제법 잘 구비되어 있었다. 덕분에 파이는 집까지 참지 않고도 먹은 것을 공중화장실에 모두 게워내고 입을 헹굴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역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사피르는 대체 어떻게 이런 걸 견디고 있었던 거지?

차라리 게워내고 나니 속은 편했다. 집으로 가는 길을 걸으며 파이는 생각했다. 수거당하지 않을 기회를 잡았고, 기한은 1년이었다. 저 놈이 언젠간 자기를 좋아하게 만들겠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필사적으로 매달릴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먼저 물러서고 싶지 않은 상대이고 또 찌르면 돌아오는 반응이 재미있기도 해서 유지하고 있던 그런 관계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언젠가, 라는 막연하고 느긋한 생각을 할 처지가 되지 못했다.

자신은 연기하면 되니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무명이었다. 정말 사랑하는 연인인척 연기하기, 같은 게 무명에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정말 연인으로 보이려면 파이는 1년 안에 무명의 사랑을 획득해야만 했다.

과연 무명이라는 인간에게서 사랑을 끌어낼 수 있을까? 막막하지 않다면 거짓이겠다. 그러나 파이는 아무런 대비 없이 일을 저지른 건 아니었다. 그야, 파이는 null이지만 무명은 0이지 않은가? 그것도 긴 연산식 끝에 겨우 도달한 0. 파이는 무명의 0에 담긴 연산식을 알고 있었다.

파이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단지 어떤 성격인 사람을 연기하는 것과 어떤 사람 자체를 연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최대한 자료를 많이 모아 제대로 구현해야 승산이 있었다. 자료를 뒤지고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얻어 어떤 인간을 구축해서, 재현해야 한다. 아아, 앞으로의 1년은 제법 바쁠 것이다.

그래서 파이는 제일 먼저, 메모지를 가득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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