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페커미션 45. 푸트니 베일 묘지의 그늘
1차 - 이안+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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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안] 푸트니 베일 묘지의 그늘
달조차 없는 깜깜한 하늘 아래 멋대로 자란 풀이 끈덕지게 치마며 발목을 휘감아왔다. 걷고 또 걸어도 들풀은 마치 악마의 손마냥 이파리 끝까지 힘껏 뻗어 그를 잡아채려 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외곽의 묘지라지만 관리 상태가 이 정도로 엉망이어도 되는 건가? 조문객은 이런 꼴을 보고도 항의 한 번 하지 않은 건가? 그의 입에서 울분에 찬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말이지, 돼먹지 못한 곳이군요!”
매가리 없는 메아리 후에는 적막이 흘렀다.
요한나 버트란드, 아니 이안 클로드 버트란드는 곱게 틀어 올린 머리카락을 쥐어뜯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했다. 아무리 여장이 일상이라지만 아무도 없는 이런 묘지에서까지 레이디일 필요가 있을까. 물론 누가 보고 있을지 모르니 언제나 여성으로 있는 게 좋겠지만 가족끼리 있을 때에도 으악! 대신 어머나! 가 튀어나오니 죽을 맛이었다. 여장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요한나와 이안 사이의 벽은 견고했고 한쪽이 다른 쪽을 침범하는 일도 없었으나 요한나로 지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아지면서 요한나가 이안을 조금씩 침범하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코르셋을 벗지도 않고 자다 어머니의 호들갑에 겨우 깨기도 했다.
‘그땐 진짜 죽고 싶었는데…….’
어디까지나 남자인 이안으로서는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그놈을 잡지 못한다면, 영영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 채 있어야 한다면. 이대로 평생 여자로 살아야 하나, 하는 불안감은 시시때때로 이안의 목을 조였다. 그럴 때마다 이안은 그 불안을 그놈에 대한 분노로 치환했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 이번 사건이 그놈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기괴한 범죄라는 점은 같았기에 이안은 기꺼이 의뢰를 받아들였다. 물론 기괴한 범죄가 아니더라도 명성과 경시청 연줄을 위해 일을 받아들이긴 했을 것이다.
의뢰는 두 번째-혹은 첫 번째-피해자의 가족에게서 들어왔다. 요한나가 아닌 그 아버지의 명성을 믿고 온 것이기는 하지만 누구의 명성이든 요한나의 의뢰인인 것은 변함없었으므로 그다지 신경 쓰지는 않았다. 게다가 의뢰인 부부는 요한나의 담대함과 남자 못잖은 괴력에 대해서도 언급했으므로 그다지 마음 상할 것도 없었다. 아버지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지만.
피해자에 대해서는 전날의 석간신문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호외를 연발하는 신문팔이 소년에게 동화를 주고 신문을 한 부 받아들자마자 요한나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소년의 말대로 호외기는 호외였는데, 사실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호외였다.
<무덤의 미스터리>
- 묻을 때는 한 사람, 다시 파면 두 사람?
지금 시대야말로 괴이와 탐정의 시대라 할 수 있었으나 그래도 이건 도를 넘지 않았는가. 사실이라면야 모르겠으나 허위일 경우 고인 모독에 해당하니 아무리 신문의 위세가 높다 해도 그냥 지나가기는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이걸 사실이라고 무턱대고 믿기에는 확실히 이상한 이야기이긴 했다. 게다가 콧대 높은 신문사들을 생각하면 무리수를 둬서 신문을 판 다음 정정보도 하나로 시치미 떼려 할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요한나는 신문 내용을 믿지 않았다. 의뢰인들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건의 피해자는 이미 고인이었으나 무덤의 주인이었고 무덤의 훼손은 중죄였으니 피해자라고 부르지 않을 이유는 없으리라. 난생처음으로 고인이 피해자이면서 사실이라고 믿기 힘든 기이한 사건을 맡은 요한나는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막 아버지를 잃은 사람 앞에서 그 일이 가십이 아니었냐고 되물을 수는 없지 않은가.
사건 피해자 애런 터너의 아들 부부인 조지와 메리 터너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서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애런 터너, 향년 62세에 노환으로 생을 마감하여 일주일 전 푸트니 베일 묘지에 안장되었다. 심장 관련으로 지병이 있었던데다 건강이 날로 좋아지지 않았기에 자연사의 여부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하며, 젠트리이긴 하지만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던 부부는 런던 외곽에 있는 푸트니 베일 묘지에 아버지의 관을 안치했다. 장례도 입관도 모두 특별할 것 없이 일반적인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부부는 입관 후 흙을 다시 다지는 것까지 모두 본 다음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 부부에게 아버지의 사망은 개인적으로 큰 슬픔이기는 하였으나 일반적으로 딱히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마지막이었다. 며칠 후 다시 아버지의 묘소에 방문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애런 터너는 생전 며느리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는데, 그 이유 중에는 메리의 타고난 눈썰미도 있었다. 시아버지에게서 종종 칭찬받던 그 눈으로 메리는 묘의 상태가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다. 묘지를 보자마자 위화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메리는 비석 뒤의 흙을 찬찬히 살피다가 경악에 찬 비명을 질렀다. 분명 그의 기억에 흙의 색깔은 짙지 않은 편이었다. 게다가 장례식 당시에 지나치듯이, 관을 묻기 위해 깊이 땅을 팠는데도 깊이에 비해 흙의 색이 짙지 않은 게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며칠 사이 비가 오지도 않았고 묘지 관리를 새로이 하지도 않았을 테니 분명 누군가가 손을 댄 흔적이리라. 충격에 혼절할 뻔한 메리는 휘청이는 저를 받쳐준 조지에게 신음하듯이 말했다. 누가 아버님 묘를 도굴했어요.
묘지의 총책임자는 메리의 말을 쉽게 믿어주지 않았다. 흙의 색으로 도굴 여부를 판단하는 것부터 농담 같은 소리인데 관이 묻힌 장소가 푸트니 베일 묘지라면 더더욱 농담 같은 소리였다. 도굴은 관에 값나가는 것이 있다는 기대가 있을 때 하는 짓인 만큼 큰 교회 옆에 있는 호화로운 묘지가 주요 대상이 된다. 그러니 푸트니 베일 묘지에 도굴할 만한 부자가 묻히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총책임자의 말에도 일리가 없는 게 아니라 조지로서는 무척 곤란했지만 메리는 강경하게 도굴 가능성을 주장하다가, 급기야 관을 파내는 비용이며 책임도 자신이 지겠다고 나섰다. 실랑이가 이어졌지만 결국 불경한 자로 몰려서 온 마을에 비난받을 각오까지 한 메리를 막을 수는 없었고 며칠 전 흙을 덮은 사람들이 다시 모여 도로 흙을 퍼내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관 위에 엉망진창으로 누워 있는 시체가 드러난 것이다.
두 번의 충격은 견딜 수 없던 메리는 결국 남편의 팔 위로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조지 또한 정신을 잃지만 않았을 뿐이지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런 상황이니, 평생 연이 있을 거라 생각해 본 적 없는 탐정사무소를 수소문하게 된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의뢰받은 내용을 되짚고 있는데, 문득 아래를 보니 가스등 불빛 아래로 보이는 치맛단에 보기 싫은 풀물이 들어 있었다.
이안은 인상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험지를 가리지 않고 나다니는지라 집의 하녀가 손이 짓무르도록 빨래하는 상황인데 또. 세탁소에 옷을 보내자니 세탁소의 비용도 일꾼 대우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하녀가 빨래하기 싫다고 일을 때려치게 할 수도 없으니 결론은 자신이 좀 곱게 옷을 입는 방법밖에 없었다. 탐정일을 하면서 옷을 전혀 안 망칠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한 옷을 성하게 입고 다녀야겠다고 다짐한 것도 여러 번이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빨래한 옷을 개시하자마자 또 망친 것이다. 더 비극적인 건,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을 ‘젠장, 빌어먹을’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몹시 불쾌하네요’라고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입지가 좋지 않은 데다 외곽에 위치한 묘지라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관리가 안 될 수 있나? 잡초란 모름지기 오늘 밟아도 내일 다시 고개를 드는 놈이라지만 방문객이 주기적으로 드나들고 멀쩡하게 새 묘를 만들기도 하는 곳이 이렇게 관리가 안 된다니. 아무리 돈이 궁하다 해도 터너 부부같은 점잖은 사람들이 이런 곳에 묘를 쓸까? 치미는 의문을 머릿속에 갈무리하며 이안은 지금까지 조심스레 움직이던 태도를 버리고 빠르고 거칠게 걸음을 옮겼다. 멀쩡하면 모를까 이미 풀물이 들었는데 이제와 조심해도 소용없으니까.
관리인 사무소는 입구에서 멀지 않았지만, 워낙 길이 험해-길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를 정도로-묘지를 몇 바퀴 돈 것 같은 느낌이었다. 희미한 불빛이 창밖으로 새어 나오는 걸 보니 관리인이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처박혀 있지 말고 낫 들고 풀이라도 베고 다니라고 고함이라도 치고 싶었으나 그건 요한나가 할 법한 행동은 아니었다. 이안은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제 뺨을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이안일 때 요한나가 나오든 말든, 지금은 요한나가 되어야 할 때였다.
여러모로 수상쩍은 묘지였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본 사무소는 더 괴이한 모습이었다. 일단 건물은 주변보다 좀 더 높은 지대에 있었는데 문과 연결된 부분은 그저 경사진 흙길이 나있을 뿐 계단이 없었다. 설령 계단을 만들고 관리할 만한 자금이 없다고 가정해도 이상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무소라는 팻말 정도는 붙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문은 괴상할 정도로 큰 반면 허름하고 낡아 틈마다 빛이 새어 나올 정도였으며 페인트칠은 징그러울 정도로 벗겨져 있었다. 당장 하인을 불러 칠을 벅벅 벗겨내고 싶은 충동이 목까지 치밀어올랐지만 억지로 그 충동을 다시 밀어 넣고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요한나가 경사를 올라 문을 두드리기 전에 커다란 문이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슬쩍 열렸다. 바깥을 향해 열리는 문이라 요한나가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자 문이 조금 더 열리고, 거기서 키가 작고 왜소한 사람이 빼꼼 밖을 내다보았다.
그 사람의 외양을 확인한 순간, 요한나는 오면서 느낀 모든 기묘한 느낌을 잊어버릴 만큼 거대한 위화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일하며 빈민가며 노숙자, 아편쟁이 등 온갖 인간군상을 보았지만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진 멀쩡한 사람에게서 이렇게까지 기묘한 느낌이 드는 건 처음이었다. 대체 뭘까. 요한나는 습관대로 남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눈앞의 사람을 훑었다. 보통이라고는 할 수 없는 외양이었지만 아주 이상할 정도도 아니었다.
노랗고 검은 오드아이에 창백한 피부와 들쭉날쭉한 앞머리, 과할 정도로 부풀려 올린 윗머리의 절반은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의복은 장례식을 연상케 할 만큼 무채색으로 통일하고 있었지만 상복이라기엔 프릴이 많았고 긴 치맛자락은 그럭저럭 깔끔하고 단정했으며 상의에는 별 모양의 펜던트도 달려있었다. 앞머리가 들쭉날쭉한 건 이발소로 갈 여력이 없는 빈민층에게서 흔히 볼 수 있었고, 머리모양이 특이하긴 했으나 산발을 한 것도 아니며, 얼굴의 반을 머리카락으로 덮은 건 얼굴에 흉이 있다고 가정하면 얼마든지 있을 법한 모양새였다. 창백한 얼굴이야 밤에 일을 하고 낮에 잔다면 당연한 것이고, 펜던트를 단 것으로 보아 패션에 아주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닐 테니 입을 게 없어서 입은 옷이라기보다는 본인의 취향이거나 작업복일 가능성이 컸다. 말하자면 점잖지는 않아도 엉망인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나는,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자는 누구지? 왜 이렇게 기묘한 느낌이 드는 거지? 요한나의 위화감은 여자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입을 열 때 극에 달했다.
“……혹시, …오시기로 하셨던, 탐정……님 이신가요?”
말 사이의 간격은 지나치게 길었고 속도도 느렸다. 발음은 의심할 여지 없이 영국인이 맞았으나 속도는 영어가 서툰 외국인마냥 느렸고 말의 높낮이가 들쭉날쭉했다. 술에 취한 걸인과도, 언청이와도 다른 이상한 말투에 요한나는 잠시 제가 해야 할 말을 잊었다. 우두커니 서 있던 요한나는 상대가 고개를 반대로 기울였을 때에야 정신을 차리고 살짝 무릎을 굽혔다.
“네, 맞습니다. 이 묘지에서 일어난 사건을 조사하러 온 탐정, 요한나 버트란드라고 합니다. 혹시 당신이 여기 묘지를 관리한다던 벨 님이신가요?”
“…맞아요. ……달리아, 벨…입니다. 그런데 왜에…….”
마치 스프링이 달린 인형처럼 다시 고개를 반대로 기울인 달리아 벨은 점액질의 달팽이가 느릿느릿 기어가는 것처럼 말을 이었다.
“뒷… 문으로…… 오셨나, 요?”
어조의 위화감 때문에 내용은 한 박자 늦게 요한나의 머리에 파고들었다.
“뒷…… 문이요?”
“네에.”
달리아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여기는……, 시체를 내어가는… 뒷문, 이에요…….”
뒷문이라고? 요한나가 한 대 얻어맞은 것같은 얼굴로 멍하니 되묻자 달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타격을 날렸다.
“묘지 후문…… 쪽으로… 오셨나…요? 거긴……. 길이… 험할 텐데…….”
험하다 뿐이랴, 길이 없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뒷문이라고? 요한나는 저가 탄 삯마차를 생각했다. 삯마차를 타면서 후문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던가? 그럴 리는 없었다. 다만 요한나는 푸트니 베일 묘지 관리소에 데려달라고 했고, 마부가 최단 거리로 가려면 가는 길이 험할 텐데 괜찮으냐고 되물었을 때 괜찮다고 답했었다. 요한나에겐 승차감 따위 아무래도 좋았고 얼른 수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게 답했는데, 각오했던 만큼은 길이 험하지 않아서 의외였다. 그래서 퍽 섬세한 면이 있는 마부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마부가 말한 길이라는 게 묘지 입구까지의 길이 아니었다면?
요한나는 비틀거릴 것 같은 몸에 힘을 주고 되물었다.
“혹시 관리소가 정문보다 후문에 더 가깝나요?”
“네에…….”
“……잠시만요.”
요한나는 달리듯 걸어 건물 주변을 반 바퀴 돌았다. 옆부분을 지나 반대편으로 돌아 가스등을 앞으로 들어올린 순간 요한나는 반대편 손으로 건물 벽을 퍽퍽 칠 뻔했다. 페인트가 벗겨진 벽은 똑같았지만, 관리소라는 팻말이 멀쩡히 붙어 있었고 문도 정상적인 크기에 평범했다. 문에 이어진 짧은 길 뒤로는 사람이 다닐 만한 계단이 있었고 그 뒤로도 지나다닐 만한 길이 이어져 있었다.
바보짓도 이런 바보짓이 없었다. 요한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벽을 한 번 쳤다. 그나마도 고함을 치며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것을 참은 거였다. 아, 이 무슨 추태란 말인지! 앞쪽 문이 열리는 소리에 요한나는 겨우 몸을 바로하고 문 앞에 섰다. 문은 아까와는 달리 안쪽으로 열렸고 달리아가 다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여기가……, 앞문… 이에요. 어쨌…든, 들어…오세요, ……탐정님.”
요한나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달리아의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두고두고 이불을 찰 만한 바보짓이었으나 지금은 일하는 중이었다. 그래, 일.
안은 허름했지만 나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한쪽에는 손님을 위한 탁자와 의자도 마련되어 있었다. 달리아는 웃는 채로 얼굴을 씰룩이는 요한나를 천천히 의자로 안내했다. 표정과는 달리 몸짓은 어디까지나 우아하게 움직였다. 탐정이란 원래 다 이런가? 묘지에 종종 경찰이며 탐정이 오기는 했지만 주로 낮시간 대에 방문했으므로 달리아는 그들을 볼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 사람들이 방문했을 때 어땠더라. 기억이 날 듯 말 듯 했지만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그런 사람들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또한 달리아는 눈앞의 사람에게도 그렇게까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표정이나 행동이 어떻든 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실례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상대했다. 오늘 찾아온 탐정은 무언가에 화가 난 것 같은데, 어쨌든 생기 넘치는 인간이 아닌가. 아무도 안 다니는 후문길로 왔든 표정이 다채롭든 거기에 관심이 갈 리 없었다.
무안함을 빨리 넘기려는 듯, 요한나는 앉자마자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저께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아, 관 위에… 망자가 얹혀… 있던 일… 말씀이시죠?”
어라, 말이 조금 빨라진 것 같은데. 요한나는 인상을 쓰고 싶은 걸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온 런던이 그 일로 난리죠.”
“그런…가요? 음…, 그렇지만 경찰……분이, 조사…를 이미 하셨는데요…. 다… 대답… 해드렸고요.”
달리아는 얼굴근육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대답했다. 자신에게는 수상한 사람을 보지 못했느냐는 정도의 가벼운 질문뿐이었고 기자나 호사가들의 방문도 별로 없었지만, 낮 시간대의 관리인은 온갖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무척 곤란해하고 있다고 들었다. 오늘 탐정이 올 거라고 알려준 상사가 위로금이라도 주어야 할까, 고민할 정도로. 거기에 비하면 자신에게는 방문객도 적었던데다 어쩐지 사람들이 오래 머무르고 싶어 하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답하면 그러려니 넘어갔기에 탐정도 딱히 큰 질문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탐정이라면 경찰에 끈 정도는 있다고 들었고, 남김없이 경찰에게 다 말했다고 하면 경찰을 찾아갈 생각을 할 테니까. 하지만 이 탐정은 뭔가 조금, 달라 보였다.
“경찰 자료는 이미 읽고 왔습니다.”
“그럼… 어쩐 일로, 저를… 찾아오신… 거죠? 사체에…… 용무가 있으…신 분…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사체에 용무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건 동류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기에 확실했다.
“경찰과는 별개로, 관련자들과 차례로 면담 중이라서요. 제가 온다는 걸 듣지 못하셨나요?”
“듣긴… 했지만. 딱히 드릴… 말씀이… 없는데요…….”
경찰에 남김없이 이야기했다는 소리를 느릿하게 늘어놓는 달리아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요한나가 고개를 저었다.
“보통 사람들은, 경찰에 모든 걸 말하기 꺼려하니까요. 뒤가 켕기든 그렇지 않든, 경찰이기 때문에요. 하지만 탐정은 다르잖아요? 그래서 한 명 한 명 다시 찾아가 면담한답니다. 경찰 앞에선 생각이 안 나던 것도 탐정 앞에서는 날 때가 많거든요.”
“그렇군요…. 하지만… 저는 정말…… 그 외에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기 지겨우시겠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어요? 그날의 상황과, 조금이라도 이상했던 게 있다면 뭐든지요.”
원한다면 못 할 것도 없었다.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은 경찰을 포함한 모두가 제 말투를 참지 못하고 말하는 중간에 마구 끼어들며 이것저것 캐묻고는 하품을 참으며 돌아갔기에 길게 말할 생각이 없었지만, 눈앞의 탐정은 지금까지 자신이 만난 사람 중 가장 침착하게 제 말을 들었다. 그러니 자신이 긴 말을 천천히 해도 답답해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
달리아는 천천히, 사건이 발생한 날 밤의 제 행동을 차근차근 읊었다. 그래봤자 알맹이는 경찰에게 말한 것과 다를 바 없었지만 조금 더 자세하긴 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기는 해도 어쨌든 만난 사람들 중에서는 손에 꼽게 제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인 탐정에 대한 달리아 나름의 친절이었다.
달리아의 서술이 다 끝나자 요한나는 탁자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오랜만에 길게 말해서 그런지 목이 말랐다. 물이라도 마실까, 생각하던 달리아는 그제야 제가 차 한 잔 내오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아, 이런. 지금까지 온 사람들이야 저가 남자라는 걸 내세우듯 굴었고 쉴 새 없이 질문해댄데다 끝나면 하품을 참으며 서둘러 돌아갔기에 손님을 대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는데 이번은 아니지 않은가. 비록 관찰해 보았을 때 남자 같은 면모가 있긴 했지만 탐정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터다. 레이디에게 대접을 소홀히 하는 건 더욱 큰 결례였다.
달리아는 느릿하게 일어서며 미안하다는 말을 늘어놓고는 불을 피우고 주전자를 올렸다. 정작 요한나는 괜찮다며 대충 손을 내젓고는 수첩에 무언가를 적어 내리고 있었지만 달리아는 그가 언짢은 기색 하나 없는 것에 제법 점수를 높게 주었다. 예절을 핑계로 온갖 체벌을 가하던 자들을 생각하면 탐정은 아주 괜찮은 사람이었다.
아, 그때의 일은 생각하지 말아야지. 달리아는 세게 고개를 젓고는 나름 정성껏 차를 탔다. 차를 내어가자 무심코 인사하며 한 모금 마신 탐정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지만 그 외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기에 달리아는 마음을 놓고 차를 홀짝였다. 탐정이 딱히 불평하거나 언짢은 티를 내지 않고 몇 번 홀짝이는 걸로 보아 그의 입에도 맞은 거겠지. 이번에 우린 차는 저가 마시기에도 이상하지 않았으니 손님 대접이 아주 나쁘진 않은 게 틀림없었다.
적막과 침묵이 잠시 흐른 뒤, 요한나가 다시 고개를 들어 달리아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다면, 벨 관리인께서는 개인적으로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떻게… 라면?”
“개인적으로 드신 소감이나 생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상 초유의 사건이잖아요? 누가 무덤 주인을 저주하기 위해 수작을 부렸다는 이야기부터, 악마가 시체를 조종해 안식을 방해했다는 이야기까지 온갖 소리가 나오는데, 이쪽을 업으로 하신 분께서도 어떤 생각을 하셨겠죠. 뭐라도 좋으니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렇게 말씀하셔도……. 음, 무척 나쁜 짓이라고밖엔….”
요한나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또다. 말소리가 묘하게 빨라지지 않았던가? 특히 무척 나쁜 짓이라고 말할 때 말이다. 그는 슬쩍 운을 떼어보았다.
“물론 몹시 불경한 일이지요. 고인을 모독하는 짓이고요. 천벌을 받을 일이죠. 그 누구에게도 용서받을 수 없을 겁니다.”
“맞아요! 정말, 정말… 나쁜 일이에요. 죽음을 모욕하는 건… 천벌 받아 마땅해요! 죽음은… 무엇보다 존중 받아 마땅할… 죽은 자에게 그런 짓을 하다니요. 게다가… 게다가 관 위에 있던 분은, 제가 염했단… 말이에요.”
‘이것 봐라.’
요한나는 표정을 갈무리했다. 달리아의 진술 중에서 저가 모르는 새로운 사실은 없었다. 요한나는 꼼꼼한 성격이었으므로 관 위에 있던 시체를 달리아가 염했다는 것까지 전부 다 알고 온 참이었다. 그러나 달리아 벨이라는 자에 대해서는 자세히 아는 바 없었으며, 이렇게 괴이한 이미지일 줄도 몰랐고, 이상한 구석에서 흥분할 줄도 몰랐다. 들쭉날쭉한 성조를 유지하면서도 말이 점점 빨라지는 건 분명한 흥분과 분노의 표시였다. 설령 그 빨라진 속도가 보통사람의 대화속도라지만, 이 관리인의 기준으로는 몹시 빠른 속도로 말하는 것이리라.
“그렇군요. 정성을 다해 보내드린 분의 시신이 그리되었으니 더욱 유감이실 테지요.”
“그래요. 정성을… 다했어요. 물론, 모든 분들께 정성을 다한답니다. 모든… 죽음은 소중하니까요…. 정말로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그 뒤로도 둘은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얼마나 천인공노할 일인지, 어떻게 된 일인지 밝혀져야 한다느니, 악마의 소행일지 같은 조사에 도움 안 될 이야기 뿐이었지만 요한나는 서로 대화의 핀트가 조금씩 어긋난 것을 놓치지 않았다.
대화가 끝나니 차는 이미 식어있었다. 요한나는 식은 것을 핑계로 저 액체를 더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사할 게 많았다. 아주.
달리아는 저가 제법 마음에 든 듯 계단 아래까지 배웅나왔다. 관련인에게 호감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요한나는 작별인사에 덧붙이듯이 말했다.
“밤 시간대의 묘지기라니, 연약한 여성에게는 무척 힘들고 무서운 일일 텐데요. 방범용 개라도 한 마리 두시면 덜할 거예요. 시간이 늦었으니 그럼 저는 이만…….”
외따로 떨어진 곳에 젊은 여자가 혼자서 정기적으로 밤을 지샌다. 위험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는 별 문제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앞으로도 그럴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달리아 벨은 앞으로도 무사해야 했으므로 요한나는 진지하게 충고해 주고는 서둘러 길을 나섰다. 조사할 것이 늘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썼기에 서두르는 편이 좋았다. 실마리를 잡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바람에, 요한나는 자신이 뒤돌아서는 순간 달리아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달리아의 얼굴은 모든 걸 얼려버릴 것처럼 차갑게 굳어 있었다.
밤 깊은 시간에 용케 삯마차를 잡아 돌아온 이안은 쪽잠을 잔 다음 일어나 손님을 맞았다. 정확하게 자신의 손님은 아니고 아버지의 손님이었지만 ‘이안’을 알 만큼 친분이 깊은 사람과 대화할 기회는 잘 없었던 데다 언제나 자신이 끼어서 대화했기에 누구 손님인지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드물게 남자 실내복을 입고서 응접실로 간 이안은 반갑게 인사했다.
“윌슨 경장님!”
“오, 이안이냐. 거 참, 이제 경장이 아니래도. 이름으로 부르라고 누누이 말했지 않나.”
“하하, 입에 붙어버린 것을 어찌합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죠, 에드.”
옷 꼴이 왜 이러냐는 아버지의 불퉁한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흘리며 이안은 자리에 앉아 손님과 안부를 주고받았다. 옷 꼴이 왜 이러냐니. 제대로 격식을 갖춰 입는다면 여장해야 하지 않는가. 제게 있는 남성 옷은 곰팡이가 슬 정도로 입지 않았으니까. 집안에서, 저를 아는 사람 앞에서도 여장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야기는 들었다. 그 사건을 맡았다면서?”
“예. 골치아픈 사건이지만 실마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호오, 벌써? 과연 버트란드라 그런가. 혹시 이야기해 줄 수 있는가?”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전직 경장의 너그러운 말에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이야기해 드릴 수 있죠. 음, 해드리는 걸 넘어서,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호오?”
에드워드 윌슨이 흥미로운 표정을 하며 자리를 고쳐 앉았다.
“현직에 계실 때 쓰시던 정보원, 아직 연락됩니까?”
“되기야 하지만 진급하면서 후임에게 넘겨준지 꽤 되었는데. 왜 그러는가? 자네도 자네의 정보원이 있지 않나.”
“왠지 이번에는 동원할 수 있는 정보망을 전부 써야 할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흠? 왜지?”
“사회적인 교류가 거의 없는 자라서 보통의 방법으로는 유의미한 자료를 얻기가 힘듭니다.”
“호오. 뭐, 내 이야기는 해보지. 누구의 자료가 필요한가? 용의자 중 한 명인가?”
“그렇습니다. 용의자이고, 설령 범인이 아니라 해도 상당히 수상쩍은 자입니다.”
“그래? 누군데 그러나.”
이안은 하녀가 내온 차를 한 모금 마신 다음,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좋은 차를 마시니 어제의 지옥 같은 맛의 액체가 떠오른 탓이다. 이안은 앞으로 하녀가 내오는 차가 어떻든 불평하지 않기로 다짐하며 천천히, 용의자의 이름을 말했다.
“달리아, 달리아 벨. 푸트니 베일 묘지의 야간 묘지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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