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작업 및 기타 샘플

크레페커미션 01. [조슈로드] 정말 ■■이었다.

2차-조슈아x로드(HL)

커미션 페이지: https://crepe.cm/@haranging/14114

신청 감사합니다!

[조슈로드] 정말 ■■이었다.

손이 떨렸다. 목이 마른 듯도 했다. 저를 짓누르는 이것을 긴장감이라고 불러야 할지 거부감이라고 불러야 할지 부담감이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조슈아는 할 수 있었다. 그는 제법 능숙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이 정도는 견딜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비록 적국의 출신이나 지금은 드높은 영광을 누릴 아발론의 기사로서 용맹과 기개로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함이 마땅했다.

그는 쉴 새 없이 머릿속으로 기사로서의 맹세를 되뇌었다. 오직 아발론에서만 나올 수 있을 아름다운 그 맹세를. 우리는 사람을 베는 충성이요, 적을 향하는 마음이라, 그대들의 검은 방패를 향하고, 그대들의 마음은… 잠깐 이게 아니잖아. 내가 지금 뭐라는거지.

정신을 차려야 했다. 조슈아는 마음속의 제 뺨을 챱챱 치고는 심기를 다잡으려 노력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람을 지키는 검이요 적을 향하는 방패… 이것도 아니었는데.

조슈아의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 현실은 잔인하고 냉정했으며 조슈아는 할 수 없었다. 차라리 심중에 아무것도 없다면 기꺼이 해냈을 것이다. 마음에 없는 말은 익숙했으니까. 문제는 조슈아의 심중에 뭐가 있다는 거였다.

로드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어제보다 옆구리 찌르는 힘이 약해지셨군요 이 조슈아는 그것이 슬픕니다……. 그러나 조슈아의 현실도피는 로드의 속삭임 앞에 길이 막혔다.

“3분 남았어.”

“…할 수 있습니다. 조슈아 레비턴스는 할 수 있다.”

“힘내. 그것밖에 해줄 말이 없어서 미안하다.”

“아닙니다. 해야죠. 가불가를 논할 때는 아니니까요.”

흐읍, 하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여기는 실패할 경우 다시 시간이 주어지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처음부터 리셋된다. 시도를 하는 것이 백배 낫다는 이야기였다. 조슈아는 떨리는 손으로 로드의 허리를 감았다. 그리고 로드의 머리칼에 입을 맞추며 크게 말했다. 목소리도 손처럼 조금씩 떨려왔다.

“달, 링, 쿠키 하나만 더 먹어봐요. 우리 자기, 가 이렇게 조그매서야 내 호주머니 안에 쏙 들어갈, 크흠, 것 같아요? 종일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 면 저는 좋, 지만?”

허리를 잡지 않은 손으로 쿠키를 들어 로드의 분홍빛 입술 위로 가져다 대었다. 이미 정신은 닳을 대로 닳아버렸지만 해야만 했다. 조슈아는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갈 힘까지 쥐어짜내어 말을 이었다.

“자, 기야, 아~ …….”

로드가 덥석, 쿠키를 먹었다. 그리고 긴장 속에서 말을 내뱉었다.

“아.우.리.자.기.가.만.든.쿠.키.라.그.런.가.맛.있.네?”

삐이이-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리며 시계의 숫자가 60으로 다시 늘어났다. 로드와 조슈아는 반대방향으로 풀썩 쓰러져 엎어졌다. 그리고 발버둥치며 절규했다.

“악! 아악! 내! 내 손! 내 발!”

“으아악! 악! 나는 군주다! 군주라고!”

바닥을 내려치며 한참을 괴로워하던 주종은 설탕만 묻히면 꽈배기가 될 정도로 몸을 꼬아대고 나서야 버둥거림을 멈추었다.

그들 앞에는 커다란 문과, 그 위의 편액이 빛나고 있었다.

 

『■■하지 않으면 나가지 못하는 방』

 

멸망해버리라지. 이 세상 따위 콱 다 죽어버리라지.

순간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적인 타격은 대단했다. 세상이 멸망하는 것은 쉬웠다. 자신이 온전히 제 뜻대로 충성을 바친 아발론의 군주가 이대로 없어진다면 세계의 모든 것이 싹 사라질 것이다. 그를 중심으로 여러 세계가 하나가 되었으니 그가 사라지면 세상도 사라지겠지. 세계가 멀쩡해도 그를 지탱하는 존재들이 멀쩡하지 않을 테니까. 경계의 수호자도, 균형의 무녀도, 장생종들도, …자신의 이전 주인도. 단순하게 이 방에서 나가지 않는 것으로 세계는 쉽게 멸망한다. 아, 차라리 멸망해버리라지.

조슈아는 다시 한 번 탄식했다. 차라리 파란 머리의 자신이었다면 훨씬 나았을 것이다. 그 녀석은 조금 더 뺀질거리고 조금 더 반항기가 있으며 조금 더 능글맞았다. 그야, 서류작업만 하다가 왔다고 하니 거리낄 거라고는 적국출신이라는 것 외에는 없을 테니까 당당할 수 있겠지. 그 녀석이 왔더라면 아무 사감 없이 이 짓거리를 할 수 있었을 테다. 그리고 순식간에 돌아와 공을 세웠으니 휴가를 달라고 할 것이고 루인경에게 까여서 울며 돌아가겠지. 컵라면이 익는 것보다 빠르게 까이고 돌아갈 것이다. 아, 그녀석이었다면,

……안 된다. 그 놈이라면 안 된다. 또 다른 세계의 자신이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조슈아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그래, 미친 짓이다. 이걸 그 놈이 한다고? 아무리 연기고 사심 없고 업무의 연장선이라 여길지라도 이건 자신 외의 그 누구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자신이 이 짓거리를 잘 해내고 있냐면 절대로 아니었다.

머릿속에는 있었다. 능숙하게 상황을 리드하고 로드에게서 자연스러운 반응을 이끌어내어 저 망할 방문의 기준을 넘기는 자신의 모습이. 머릿속에는 있었는데, 심장에는 없는 모양이었다.

연애한 적이 없어서 자신이 어떤 스타일인지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상대에게 대놓고 주접을 떠는 타입은 전혀 아닐 것이었다. 생각만 해도 손발이 배배 꼬였다. 가짜로 주접을 떠는 것도 정신에 타격이 오는데 그 상대가 로드였다. 그래, 허리에 손을 대는 것을 허락받아야하는 존재, 아니, 허락이고 자시고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서 손을 대지 못하는 존재.

제 얼굴이 시뻘개진 것을 수치스러움 때문이라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는데…….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얼굴에 피가 얼마나 몰렸을지는 짐작되고도 남았다. 얼굴에서 열이 난다는게 무슨 말인지 실감하고 있으니까. 어째서 자신이 멋쟁이 토마토가 되었단 말인가? 그 부담스러운 새빨간 사제가 아니라 자신이?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로드였다. 로드는 널부러진 조슈아의 팔을 한번 꾹 찌르는 것으로 쉽게 그를 일으켜 세웠다.

“으아악잘못했습니다!”

“아냐, 경보다는 내가 더 잘못한 것 같아.”

“아닙니다절대제가잘못했습니다.”

“책임을 경이 질 필요는 없어. 다시 생각해도 나는 연기에 재능이 없는 것 같으니까.”

조슈아는 입을 다물었다. 국어책을 읽던 방금 전의 로드를 생각하면 도저히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지금 현 단계에서만 로드보다 조금 더 나았을 뿐, 자신은 이 방에 강제로 소환된 뒤로는 도움이 된 적이 없었다. 먼저 침착함을 찾은 것도 로드, 다른 방법을 더 많이 제시한 것도 로드, 최소한의 행위로 저 망할 ■■가 뭔지를 알아낸 것도 로드였으니까. 조슈아는 이 방을 나갈 기발한 생각을 하지도 못한데다, 코피가 뚝뚝 흐를 만큼 염력을 써도 문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체력훈련을 하는 것이 좋았을까.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아발론 기사단의 수련과정은 비인간적이었다. 하지만 무식하게 힘만 좋은 헬창기사들, 아니, 크롬경이나 자이라경이 있었다면 저 문을 밀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니다. 크롬경은 안 되었다. 자이라경이 있었다면 좋았을까? 아니 잠깐, 조슈아는 아직 로드가 남자를 좋아하는지 여자를 좋아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만약에 로드께서 여성이 취향이시면? 아니,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온갖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찬 조슈아가 침묵을 지키자 로드가 다시 조슈아의 팔목을 살며시 잡았다.

“너무 실망하지 마, 그대. 우리는 나갈 수 있을 거야. 조금 괴롭긴 하지만,”

이건 반칙아닌가? 조슈아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손목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 감미로운 목소리, 그리고 상냥하게 저를 부르는 ‘그대’라는 호칭. 조슈아의 머릿속에서는 로드의 목소리가 그대… 그대… 그대… 하고 메아리마냥 반복되고 있었다.

너무 가혹했다. 그러니까, 남몰래 연심을 간직한 사람에게 이런 방은 너무했다는 뜻이다. 물론 로드에게서 ‘요즘 사람들 사이에 유행하는 컨셉룸’의 원래 의미를 들었을 때는 기겁했지만, 물론, 아니, 그게, 세… ㄱ… 하는 방이 싫냐고 하면 그건 뭐라고 하기 힘든데 어쨌든 진짜 그런 방이었으면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을지언정 문이 시키는 대로 하지는 않았을 터다.

멸망이 다가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런 컨셉룸 같은 게 유행을 하니까 멸망이 오는 게 아닌가. 소돔과 고모라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게 유행한다면 세계 입장에서도 쓰레기를 쓸어보고 싶은게 당연한 일 아닌가?

어쨌든 유행하는 그대로의 방이 아니라서 천만다행이긴 했으나 그렇다고 지금의 방이 좋다는 건 절대로 아니었다. 확실히 혀를 깨물고 죽을 방인지 혀를 깨물고 죽고싶기만 한 방인지의 차이밖에 없었다.

조슈아는 편액을 노려보았다. 편액의 글씨는 다시 ■■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은 해답을 알고 있었다. 편액이 사람을 놀리는 것처럼 ■■을 글자로 슬며시 바꿨다.

 

『염병하지 않으면 나가지 못하는 방』

 

정말 염병이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