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의 신 (Eidolon's Crossroad)

교차로의 신이여, 돌아오소서. 부디 오늘만큼은 돌아오소서.

클로 by C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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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인간들에게 이 세상의 끝자락이라 불리는 검은 늪. 저승, 나락, 죄 지은 자의 갈림길, 영혼의 교차로. 그곳은 산 자는 도달할 수 없으며 함부로 들여다볼 수도 없는 금기의 땅일지니. 빛 없는 대지에서 오직 주인 된 자만이 빛남이요 색 없는 대지에서 자식 된 자만이 극채색을 두를 수 있으매, 그 위대한 주인의 이름은……

 

“헤카테.”

“미스틸테인.”

“처음 뵙겠습니다.”

“날 두 번 보기는 쉽지 않지.”

검은 용이 흰 용의 목전에서 날개를 접고 느릿이 고개를 숙였다. 목을 굽히는 용을 보며 헤카테는 인간의 습성을 떠올렸다.

수천 년 간 가지를 뻗은 수목들이 이파리를 숨죽이며 두 담지자를 우러러보았고, 벌레들은 자칫 밟힐새라 오색의 등껍질을 뽐내며 제자리에 엎드렸다.

“용건을…….”

“됐어.”

헤카테는 이미 미스틸테인의 목적을 알고 있었다. 내내 흐린 먹구름 사이로 검은 용의 날개 자락이 보인 그 순간부터. 교차로를 찾는 이들은 빠짐없이 단 하나의 맹목에 사로잡혀 있다. 미스틸테인이 물었다.

“죽은 자를 되살려 본 적이 있으십니까?”

하얀 용이 흐느끼듯 웃었다.

“알다시피, 누구나 한 번쯤 시도해 보는 일이지.”

“가능합니까.”

“섭리와 이치에 대한 담론을 원해?”

“짓궂으시군요.”

미스틸테인이 난처함을 숨기지 않고 말하자, 헤카테는 가만히 말을 이었다.

“널 지켜보고 있었어.”

“…….”

“다시 품 안 가득 아이들을 안겨줄 거니.”

미스틸테인은 과거 인간들의 도시를 습격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으며 근래에는 하나의 왕국을 멸절시켰다. 물론 그만큼의 영혼이 헤카테에게로 인도되었고, 따분함을 무엇보다 꺼리는 지하의 주인에겐 그보다 반가운 일이 없었다.

“이제 같은 일은 없을 겁니다.”

“예언은 네가 사그라지는 날까지 끝나지 않아.”

여지껏 성실히 답하던 미스틸테인이 그 말에 피로한 낯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제겐 알 수 없는 미래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래, 그래. 알지…….”

헤카테가 읊조렸다. “누구보다 잘 알아.” 애상에 눈먼 이에게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 것쯤은.

생기 있는 반응에 만족한 그는 괜스레 어린아이 놀리기를 관두고 미스틸테인을 둥지 안으로 들였다. 시커먼 늪 밑바닥에 가라앉은 그의 안식처는 광대하고 공허했으나 동시에 어수선했다. 영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그들에게는 소란스러울 만큼의 환대였다.

헤카테는 자신의 지하 창고를 열어 친애하는 재앙에게 원하는 만큼 내어주었다. 대가는 이미 300년 전, 수십 년 전에 넘칠 만큼 받았다. 관대한 지조가 아쉽게도 용이 행하는 의식에 많은 것은 필요치 않았고, 가장 중한 재료는 이미 미스틸테인이 가지고 있었다. 비틀고 겹친 오망성 중심에 쌓아 올릴 제물을 배합하는 과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망령의 주인은 길 잃은 영혼을 인도하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누구도 훼방 놓지 못할 그들의 손길은 여느 주술처럼 비밀스러울 필요도 없었다.

1년에 단 하루. 산 자와 죽은 자의 길이 교차해 가라앉은 영들이 늪 위로 떠올라 지상을 떠도는 날. 그는 이브가 자신이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복잡한 술식을 짜 맞추었다. 마치 꿈속을 노닐듯 조심스레 영을 이끌어 육신에 가둔 후 단단히 동여매야 했다. 기회는 단 한 번 뿐이었다. 이브가 이러한 일을 두 번이나 용인해 줄 리 없기 때문이다.

미스틸테인은 준비를 마친 후 검은 늪을 떠났다. 헤카테는 인사 대신 수수께끼 같은 경고를 전했다. 교차로의 신은 변덕스러워. 하지만 그것은 헤카테 자신이 아니던가? 뜻 모를 첨언에 당혹스러움도 잠시, 곧 사소한 의문은 중요치 않아졌다. 그는 재회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들떠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그가 거세게 비행하는 자리를 따라 먹구름이 길을 비키듯 갈라져 소낙비를 내렸다. 그에 따라 천둥이 와락 웃음을 터트리자 땅을 딛고 선 자들은 공포에 몸을 떨며 대문을 걸어 잠갔다. 미스틸테인은 생각했다.

‘완벽해.’

뮈르크비드로 돌아온 그가 당일을 기다리는 나날은 순조로웠다. 이브의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초대받지 않은 사특한 자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복도의 횃대마다 향낭을 걸고 성 주변에 상서로운 식물을 심어두었다. 이브가 좋아하는 식재들을 신선히 보관하고도 모자라 가구마저 그의 취향을 떠올리며 전부 새롭게 바꾸었다. 그가 반복했다. ‘완벽해.’

바야흐로 전날이 되자 그는 몸가짐을 단정히 한 채 시간이 지나가기를 고대했다. 잠시 수면을 취할 수도 있었으나, 방심한 새에 변수가 생겨 계획이 틀어진다면 그보다 나쁜 일은 없었기에 그저 기다리기를 택했다. 그는 언제나 그래왔다. 사랑하는 이가 돌아오기만을, 부디 오늘만큼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차분히 떠오른 별들이 유난히 환한 보름달 지척에 내려앉았다. 이윽고 자정이 되자 그는 지체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서려고 했다.

창 너머에 누군가가 있다.

순간 폭설이 짙어져 풍경을 흐렸다. 인영을 구분하려 했으나 그조차 어려웠다. 허공을 딛고 선 그것은 마냥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스틸테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주술은 아직 시행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핵심이 되는 이브의 뼛가루는 바로 그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 그렇다면 저건 누구지?

“미스틸테인.”

그것이 말했다.

“열어줘요.”

착각하려야 할 수 없는 이브의 목소리였다.

“열어줘요.”

그것이 창문을 두드렸다.

“열어줘요.”

미스틸테인은 난생처음으로 한기를 느꼈다. 뼛가루가 담긴 주머니를 움켜쥐자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열어줘요.”

그것이 손톱을 세워 유리를 긁자 그는 귀를 틀어막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으나, 도저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간신히 뜻대로 할 수 있는 부위는 떨리는 입술뿐이었다.

“이브…?”

그것은 대답하지 않았고 유리를 긁는 데에 열중했다. 끼익, 끼익, 끼익. 열 개의 가느다란 선이 무작스레 새겨지기 시작했다. 불현듯 굳어 있던 미스틸테인이 팔을 들어 유리창에 손바닥을 대었다. 그러자 천천히 긁는 행위가 멈추고 그것이 손을 맞대왔다. 찰나 약지에서 무엇이 달빛으로 반짝였다. 그는 곧바로 걸쇠를 풀었다.

하얀 폭풍이 방 안에 휘몰아쳤다. 그 너머에 이브가 있었다. 무엇 하나 변치 않은 채. 미스틸테인이 그리워하던 에블린 베텔게우스의 모습 그대로.

그는 허공을 헤집듯 손을 뻗어 그를 붙잡으려 했다. 이브는 사양하지 않고 마주 안기며 그에게로 날아들었다. 날아왔다. 날아든다.

날아온다.

마침내 손끝을 마주하자, 손이 바스라진다. 반지의 빛이 허물어진다. 잡아채려 하자 좌반신이 그대로 휘어져 안개로 흩어진다. 미소가 싹둑 잘려나간다. 껴안으려 하자 형체가 산산조각 나며 곳곳에 환상으로 화한다.

날아간다.

그가 불현듯 깨닫는다.

혼이 뛰노는 축제의 밤, 지하의 주인조차 제어할 수 없는 혼야. 바로 오늘, 교차로의 신은 다른 무엇도 아닌 망령이다.

부름에 응한 자가 아니니 주술로 묶어둘 수 없다. 그저 꿈처럼 찾아와 동이 틀 때에 작별을 고한다. 이브는 처음부터 그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다. 죽은 자가 돌아오는 밤에 오로지 그만이 떠나간다.

쥐고 있던 주머니가 떨어져 뼛가루가 흩날리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흰 가루는 눈발에 섞여 이제는 도무지 구분해낼 수 없다.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영구히 모르게 되었다.

미스틸테인은 몸을 떨며 걸쇠를 걸어 잠그고 무릎을 꿇는다. 기도하듯 손을 모으며 잘 모르는 가루들을 손톱 세워 긁어모은다.

교차로의 신이여, 돌아오소서. 부디 오늘만큼은 돌아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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