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으로!

어쨌건 앞으로 달렸다. 뒤로 달릴 수는 없으니까.

클로 by C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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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가 옆으로 푹 꺾이는 느낌에 화들짝 놀란 유라이어가 눈을 끔뻑이며 단숨에 수마를 떨쳐냈다. 고개를 두리번대니 기대어 있던 창문이 내려가 창밖으로 머리가 빠진 거였다.

“일어났나.”

“아~ 거, 새끼. 깨우는 방법 하곤.”

“말로 하니 안 듣길래.”

이 냉철한 운전자는 조수석에서 졸던 동행자를 손가락 하나만 놀려 깨웠다는 사실에 꽤나 만족했다. 그러니 유라이어가 깨어나자마자 욕이 섞인 불평을 늘어놓게 된 건 필연이다. 에단은 아랑곳 않고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정지 속도도 없고, 속도 제한도 없어. 아무도 날 붙잡을 순 없지. 바퀴처럼 굴러갈 거야…. 시끌벅적한 록 밴드 사운드가 낡은 중형차 안을 가득 채우다 창밖으로 기꺼이 자유를 찾아 뛰쳐나갔다. 옆을 스쳐 지나가는 차량이 있다면 반드시 닿을 소음이었다. 이렇게 소란스러운 음악은 평소 에단이 선호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으니, 자신을 깨우기 위해 틀어둔 듯했다. 60마일로 질주하는 차 안으로 거리낄 것 없는 바람이 사정 없이 들이닥쳐 머리가 온통 헝클어졌다. 그때 푸르게 날리는 머리칼 새로 마찬가지로 새파란 패스트푸드점 간판이 스쳐 지나갔다. 와플 하우스, 맥도날드, 서브웨이. 그것들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부터 유라이어는 화를 잊고 머리를 버거 생각으로 가득 채웠다.

“야, 배 좀 채우자.”

“30분 뒤면 도착인데.”

“그만큼이나 어떻게 참아. 난 너처럼 굶는 걸 즐기는 변태가 아니거든?”

에단이 더 대꾸하지 않고 핸들을 꺾어 휴게소 쪽으로 빠졌다. 도착하니 규모가 제법 커서 주유소와 마트, 패스트푸드점, 심지어 카지노까지 있었다. 이 붉은 눈 난봉꾼은 조도 높은 조명을 쐬면 이성을 잃는 병이라도 걸렸는지, 당장 가진 현금도 적으면서 햄버거도 잊고 슬롯머신에 돌진하려는 것을 에단이 겨우 붙들고 막았다.

“치즈 버거 천 개 분으로 불려준다니까.”

“그만큼 먹고 싶지도 않아.”

“비유지, 비유. 하여간 말이 안 통해요.”

결국 두 사람은 각자 더블 쿼터파운더 치즈 버거와 비건 버거를 손에 들고 으적으적 씹으며 마트로 향했다. 에단이 세제와 스퀴지를 고르는 동안 유라이어는 포기도 모르고 잽싸게 1달러짜리 즉석 복권을 다섯 장 구매했다. 동전으로 긁어서 당첨 모양과 맞는 그림이 나오면 100만 달러를 지급받을 수 있었다. 에단이 계산대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마지막 장을 긁고 있었고, 본 체도 않고 계산을 마치니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탄식과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유라이어가 온통 꽝투성이인(놀랍게도 1달러조차 당첨되지 않았다) 쓰레기를 찢어 휴지통에 대충 던져 넣었다. 알록달록한 종이가 몇 조각 밖으로 삐져나오자, 에단이 자연스레 주워들어 가야 할 곳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작은 해프닝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붉은 해와 샛노란 하늘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세상을 굽어보고 있다. 한 손에 지류 봉투를 든 에단이 말했다.

“밤이 되기 전에는 도착하겠군.”

유라이어는 대답 없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걸었다. 차 문을 열려던 그가 순간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에단이 느린 걸음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어디로 가?”

“뭐?”

“어디로 가고 있었지? 우리.”

이 도로 끝에 뭐가 있더라. 유라이어는 멍하게 텅 빈 콘크리트 위를 주시했다. 한적한 길 위에 차량은 단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다. 도로가 비어있는 게 미국에서 그다지 드문 일은 아니지만, 뒤를 돌아 보니 휴게소에도 쥐 한마리조차 지나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마트에 직원이 있었던가? 이 버거, 누가 만들어 준 거지.

유라이어의 초점이 흐려졌다가 정신이 들자 어느새 에단이 바로 곁에 서 있었다. 하늘이 온통 샛노랗다.

“정신 차려.”

그가 봉투를 안겨주며 말한다. 내려다보니 그곳에는 피투성이 신발이 담겨 있다. 세차용품은?

“지금 안 일어나면 후회할걸.”

난 약속의 땅으로 가고 있다고. 오, 난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있어.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 

유라이어가 눈을 떴다. 또다시.

가장 먼저 산발적인 고통을 깨닫는다. 눈살을 찌푸리며 머리를 한 번 털고 몸을 살펴보니 깨진 유리 조각이 여기저기에 박혀 있었다. 차창이 통째로 산산조각 나 있고, 온갖 물건들이 제자리를 잃은 채 멋대로 굴러다녔다. 난리 통을 멍하니 바라보던 유라이어가 문득 눈치챘다. ‘그 녀석은?’ 운전석은 텅 비어 있었고 대신 낯익은 단화가 한 짝 놓여 있었다. 낡았지만 늘 깔끔했던 신발이 핏물에 절어 있었다. 그는 즉시 차에서 뛰쳐나갔다.

그곳은 양옆이 삼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한밤중의 도로였다. 다행히 보름달이 훤히 떠올라 있었기에 앞을 분간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십 초 만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철회했다. 두 다리로 서 있는 거대한 늑대 머리 괴물과 그것의 발톱에 걸려 있는 에단 카일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런 미친.”

다행히(이번에는 정말로) 에단은 살아 있었고, 정신도 잃지 않았다. 다만 늑대 인간에게 다리를 붙잡혀 끌려가고 있을 뿐이다. 그는 유라이어와 눈이 마주치자 “도망쳐!”라고 외쳤으나,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익히 알다시피 이 난봉꾼은 늑대의 피는 지니지 않았어도 강한 빛을 쐬면 이성을 잃는 희한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기에, 보름달 아래서 망설임 없이 단화를 집어던졌다. 운 좋게도 그것이 늑대 인간의 눈에 정확하게 명중하자 그는 때를 틈 타 온갖 차량 용품을 다 투척했다. 괴물의 자세가 흐트러진 찰나 에단이 손아귀에서 풀려나 자유로워졌다. 잽싸게 일어나 달리려고 했으나 날카로운 발톱에 상처 입은 다리는 눈치 없게도 있는 힘껏 게으름을 부렸다. 십 초도 기다리지 못하고 성질이 급해진 유라이어가 대신 달려가 쓸모없는 샌님을 둘러업고 뛰었다.

지체 없이 차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설상가상으로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늑대 인간은 오래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것이 네 발로 질주했다. 유라이어는 미친 듯이 액셀을 밟고 또 밟았으나 도통 나아가질 않았다. 다시 십 초. 9, 8….

“키 뽑았다가 다시 끼워.”

“뭐?”

에단은 두 번 말하지 않고 자동차 키를 뽑았다가, 다시 끼웠다. 그러자 마법처럼 시동이 걸렸다. 유라이어가 기가 막힌 소리를 내며 다시 액셀을 밟았다. 2, 1…… 차가 앞으로 거세게 튕겨 나갔다. 괴물의 단단한 발톱이 범퍼 뒤를 시원하게 긁어내리며 날카로운 소음이 잠시 뒤꽁무니를 따라왔다.

유라이어와 에단은 각자 피를 질질 흘리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 우라질 인생. ’유라이어의 독백이다. ‘운이 좋았군.’이건 에단의 독백이다.

운전대를 잡은 유라이어는 누구처럼 모범적인 운전자 흉내를 내며 게슴츠레 눈을 뜨고 전방을 주시했다. 꿈속이나 현실이나 마찬가지로 도로 위는 허허벌판이었다.

“어디로 가?”

“병원.”

“병원이 어딘데.”

“…….”

“하, 씨발.”

어쨌건 앞으로 달렸다. 뒤로 달릴 수는 없으니까. 그날 두 사람은 늑대 인간이 차보다 빠르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병원을 찾은 건 두 시간 후였다. 에단은 피를 제법 흘려서 다음날이 돼서야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뜨자마자 웬 파랗고 빨간 녀석이 눈을 마주쳐오며 고했다.


“치료비 네 지갑에서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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