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orry Boy

2018 파시아

made in heaven by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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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9om6HiaK_Ew?si=ychKy8uiJ061kifo

요람에서, 무덤까지. 

파시아는 입 속으로 곱씹는다. 다시 눈을 감았다.

새로운 안식이 온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

매일같이 보는 시체도 아침에 일어나면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어제도 나가서 시체를 태웠다는, 기억은 안 나지만 늘 하는 일이니 이번에도 다를 바 없으리라는 사실 뿐이었다. 그렇게 원하지 않음에도 선택적으로 잊어버리는 것이 많았다. 파시아는 그랬다. 심한 날에는 몇 시간 전의 일도 잊었다.

기분 나쁜 일은 빨리 잊는 것이 상책이라 한들 누구도 타의적으로 무언가를 망각하고 싶어하진 않는다. 파시아도 다를 바 없었으나 유독 그만이 불운하여 결국에는 잊어버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런 체질을 저주했고, 그 저주도 언젠가는 잊었고, 마침내 무언가를 잊는다는 사실만을 기억하며 살았다. 그렇게 살면서 소중한 것도 많이 잊었다. 꼭 혐오감만이 망각을 선사하는 건 아니라서, 눈물에 조금만 젖어도 필히 기억하리라 생각했던 것들까지 사라지는 것이었다, 고요한 폐허, 그 이하로 가라앉는다고…….

 

벌써부터 흔들리기 시작하는 이곳에 영원히 머무른다는 건 지나치게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파시아는 조금 일찍서부터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목표가 있다면 그것을 뒷받침할 흔들리지 않는 초석도 필요했는데 꼴을 보아하니 사무소는 더 이상 그럴 만한 곳이 못 될 모양인지라… 애초 머무르지도 않았던 사람처럼 홀연히 떠나버릴 생각이었다. 다치지 않고 무사히.

목표는 곧 명분이 되어 파시아는 망설임없이 밀레니엄에 합류했다. 미련도 남기지 않을 사람으로서 사장의 속셈에 휩쓸려서야 좋을 게 없으니, 대의를 아닌 이익을 택해야 하지 않나? 이익도 순전히 개인의 이익을 따지는 게 좋지 않나? 무언가를 자주 잊어버리는 사람치고는 메모하는 습관이 배어있지 못했으므로 그는 턱을 괸 채로 그렇게 생각만 했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는 행동으로 옮겼다. 보통 말이 쉽지 행동은 어려운데, 배신은 그 반대라 말은 어려울지언정 행동은 허무할 정도로 단순하고 쉬워서 그 무게도 가볍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저지른 사람에 한정하여 말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냐면요, 나는 과녁이 아니었단 거예요. 나는 사수였다고요.

알겠어요? 내가 쏜 게 아니지만, 동시에… 내가 쏜 거나 다름 없었어요…….

우리는 같은 방향을 보고 있지 않았답니다? 이게 닥쳐올 결말이었던 거예요?

 

 

모든 게 끝이 났다. 파시아는 원하는 대로 자금을 손에 얻었고 이제는 잊어버린 걸 찾으러 떠날 셈이었다. 이유는 없었으나 찾아야 했다, 찾지 못한다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 기분마저 머잖아 잊어버리게 될테니까 근본부터 뿌리 뽑아야 했다…. 그래서 안전한 곳으로 떠날 것이다. 발 붙이고 이곳저곳 헤집을 수 있는 곳으로. 안식이 있는 곳으로.

다만 흠이 하나… 무언가 슬픈 기분이 들었다. 슬픈 건 기억할 자신이 없어서 또 다시 슬퍼졌다. 유쾌하지 못한 것들은 잊어버리고 머잖아 잊어버렸다는 그 사실마저 잊을 게 자명했다. 이렇게 잃어버리다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면 어떡하지… 생각을 이어나가던 그는 문득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보이는 송곳니, 발랄한 목소리,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언젠가 또 볼 것처럼. 그래야 이 모든 이름과 얼굴을 기억할 수 있을 테니까, 이 이름 아래에는 어울리지 않겠지만 늘 그랬듯 이번에도 마음대로 굴 거니까…….

 

 

혼자 와서 혼자 떠납니다,

바로 지금…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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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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