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tty Bad Guy

[매뉴패치] Pretty Bad Guy 5

"시간 됐다, 오늘은 이만 해산."

퉁, 퉁, 체육관의 마룻바닥을 울리던 공 튀기는 소리는 곧 부산한 발걸음 소리로 바뀌었다. 땀에 젖은 머리칼을 털어내고 몸에 들러붙는 옷을 손으로 펄럭이며 벤치로 돌아가는 학생들 사이, 흘러내린 머리칼을 풀어 다시 묶으며 돌아가려는 매뉴얼의 어깨를 누군가 붙들어 잡아 당겼다.

"너는 남고."

"뭐야? 왜?"

"남아서 연습 더 해야 벤치라도 따지."

"벤치 욕심 내지도 않았다! 바쁘다니까?"

매뉴얼은 욕심 좀 내 보라는 우드의 느물느물한 말에 기겁하며 손을 떨어냈다. 농구부야 이전 학교에서도 하던 것이었으니 들어온 거고. 학기 중에 불쑥 끼어들어온 주제에 주전 같은 건 욕심내지도 않았다. 당장 오늘도 옆으로 빠져서는 다른 두엇과 장난마냥 놀고만 있지 않았던가. 매뉴얼은 혀를 차며 아쉬워하는 우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자, 네가 찾는 사람은 저기 있어. 저기도 있고. 난 아니라고.

"조금만 더 하면 잘할 놈이 왜 욕심이 없어? 너 이전 학교에서도 주전이었다며?"

"어느 주장이 당장 경기 두 달 전에 선수를 바꿔? 팀을 생각해, 우드!"

"생판 초보도 아닌 게!"

"나 바쁘다고!"

기어이 저를 옭아매고 놓아주지 않으려 하는 우드의 손아귀를 풀어낸 매뉴얼은 탈의실을 향해 뛰었다. 저 자식 잡으라는 우드의 외침에 여기저기서 뻗어 나오는 손을 피하려다 바닥에 넘어진 그는, 땀냄새 나는 징그러운 녀석들 몇 명과 몸싸움을 벌인 끝에야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이 학교에도 인물이 없지 않은데, 자꾸만 저를 탐내는 주장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도 슬슬 고역이었다. 꼭 스턴에게 저 녀석 뒤통수 좀 후려쳐 보라고 해야지. 실패하면 제가 후려쳐 버릴 생각을 하던 매뉴얼은 손목시계를 보고는 벌떡 일어났다. 슬슬 출발하지 않으면 가게에 지각하게 생겼다. 아직 씻지도 못 했는데!

"저 왔어요!"

문을 벌컥 열어젖히자 도어벨이 요란스럽게 울려 댔다. 가게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제게 꽂히는 걸 느끼며 매뉴얼은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었다. 대체 부원들한테 얼마나 잡혀 있었던 거야. 평소보다 두 배는 빠르게 달려온 것 같은데도 제시간은커녕 10분 늦고 말았으니.

"늦었구나."

"죄송합니다."

"연습이 늦게 끝났니? 연락이라도 하지 그랬니."

"급하게 오느라, 메시지라도 남길 걸 그랬어요. 죄송해요."

"다음에는 미리 말해 주렴."

겨우 숨을 고르며 가방을 벗어던지고, 앞치마를 목에 걸고는 덜 마른 머리칼을 털어 보다 그냥 모아 묶은 매뉴얼이 탕비실의 문을 열고 나갔다. 그를 기다리며 가벼운 수다를 떨던 그의 어머니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는 뒤돌아섰다. 끝나고 보자꾸나, 하는 목소리에 언짢은 기색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하던 매뉴얼은 시선을 끌어당기는 붉은 빛을 알아차렸다. 아,

"안녕하세요."

"...그래."

정말 여기서 마주하게 될 줄이야. 이미 알고 있었다지만, 네 번째 만남이 갑작스러웠던 건 매뉴얼만이 아니었는지. 잠시 눈썹을 꿈틀거리던 패치가 그를 따라 인사했다. 격식은 조금 내려놓은 채로. 그간의 만남을 무시하기로 결심한 것은 아닌가 보더라고, 그 생각에 매뉴얼은 긴장했던 입꼬리를 살짝 풀어 끌어올렸다.

"어때요?"

"깔끔하네."

"샌드위치는 먹어 봤어요?"

"괜찮더군."

"겨우 그 정도는 아닐 텐데. 조금 쉬었다 와요, 낮부터 일한다면서요."

"곧 바빠질 예정이라던데."

"그건 맞아요. 늦게 와서 미안해요."

"음."

짜증도 타박도 없고, 궁금증도 흥미도 없는 무감한 시선이 매뉴얼을 스쳤다. 꼭 그 색만큼 차가운 눈빛에 매뉴얼은 웃고 있던 입을 얼떨떨하게 다물었다. 저 사람의 눈빛이 저랬던가. 좀 더, 짜증나 있다던지, 아무튼, 감정이 투명하게 비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입을 열려고 하기 무섭게 딸랑 울리기 시작하는 종소리에 매뉴얼은 버릇처럼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어서오세요!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와 커다란 덩치 때문에 처음 들어오는 손님은 살짝 놀라곤 하지만, 오히려 그것들이 제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매뉴얼은 슬쩍 눈치 보며 다가오는 손님에게 미소지어 보였다. 이 덩치와 목소리 덕에 진상의 절반은 걸러내는 거라고 그는 굳게 믿었다. 진상이 아니고서야, 친절하게 구는 그에게 화낼 이는 없었으니까. 친절하게 대하지 못할 정도의 인간이라면 그 돈은 안 받고 말고. 언제나 그의 어머니는 그 불같은 성격을 좀 죽이라 이야기하지만서도.

"라떼 한 잔에 클럽 샌드위치요."

"클럽 샌드위치 하나."

"아, 그거 안 가져가도 돼요. 아버지!"

목청만으로 곧장 주방에 주문을 전달해 버린 매뉴얼이 패치를 돌아봤다. 이 정도는 소리치면 들으시니까.... 그러니 바쁠 땐 구태여 돌아다닐 필요 없다고, 이야기하려던 매뉴얼은 깜짝 놀라 동그래진 패치의 눈을 보고는 놀라 말을 멈췄다.

"...여기가 무슨 수산시장인가?"

"...수산시장 가 봤어요?"

거기는 이 정도로는 인사도 못 하는데. 매뉴얼의 능청스러운 말에 동그랗던 패치의 눈꼬리는 금세 본래의 뾰족한 선을 되찾았다. 목청이 커서 좋겠군그래, 하는 뾰족한 말까지 튀어나오자 매뉴얼의 동그래졌던 눈도 다시 날카롭게 휘어졌다. 놀랐구나. 놀라면 더 툴툴거리는구나. 그럼 처음 만났을 때도 놀랐던 건가? 이미 삐죽 서 있는 머리칼이 한층 더 뾰족해진 것만 같던 모습을 떠올리며 매뉴얼은 필사적으로 웃음을 삼켰다. 웃음소리를 흘리는 순간 욕설을 날릴 게 분명한 저 예민한 남자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만지며 샷을 내리고 있었다.

"우유는 거기 아래에 있어요."

"음."

"스팀 할 줄 알아요?"

"이 기계도 몇 번은 만졌어."

"와, 이거 새로 맞춘 건데."

"그래, 나도 거짓말따위 안 해."

"또 어떤 거 가르쳐 줄까요?"

"지금은 네 앞에 손님부터 받아야 하겠는데."

그 말에 아차한 매뉴얼이 허둥지둥 포스기를 두드렸다. 카드를 받아 계산하고, 영수증을 뽑으며 다시 한번 주방에 대고 소리지른 매뉴얼이 이번에는 시선을 살짝 옆으로 돌렸다. 컵에 우유를 붓던 패치의 어깨가 살짝 움찔거리는 것을 보며, 매뉴얼은 어쩔 수 없이 바쁘게 뛰어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저 사람은 많이 놀라본 적이 없을 것 같지만, 그렇기에 놀래키는 게 재미있어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여길 박차고 나갈 것 같았기에. 어떻게 구한 직원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잃고 싶지 않았다.

"기분 좋아 보이네."

"어, 타냐?"

안녕. 차분한 목소리가 인사하자 마주 손을 흔들어 준 매뉴얼이 의아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가까운 거리에 살아 언제나 차를 함께 타고 오는 다이앤이 오늘은 보이지 않는 탓이었다.

"다이앤은?"

"늦잠 잤대."

"어떻게 오려고?"

"보통, 늦으면 부모님 차를 얻어타고 와. 아니면 안 오거나."

"뭐?"

"큰일 아니야. 좋은 일이라도 있어?"

아니, 잠시만. 겨우 늦잠 잔 것 가지고 학교를 안 온다니, 걔가? 그러나 타냐는 매뉴얼의 당황스러운 마음은 풀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어깨를 으쓱하고 마는 타냐의 모습에 답을 얻을 생각을 포기한 매뉴얼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가게에 직원을 구해서, 주말에는 안 나가도 돼. 내 표정이 어떻기에 자꾸 물어봐? 그 말에 타냐는 말없이 두 손가락으로 제 입꼬리를 주욱 끌어올렸다. 공상에 빠진 듯이 무표정한 얼굴에 입꼬리만 올라가니 괴상한 표정이 만들어져, 매뉴얼은 손을 내저으며 버럭 화냈다. 기분 좋은 척이라도 해 봐라, 인마!

"그러고 보니까, 넌 학교 마치고서는 가게에만 있네."

"일하기로 했으니까."

"다른 건 안 해?"

"딱히 관심 없는데."

"대학도?"

"엉."

타냐는 더 하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그러나 때마침 교실 앞문이 요란하게 열린 탓에, 그들은 이야기 대신 깜짝 놀라 외마디 소리를 내질러야 했다. 벌컥 열린 문으로 다이앤이 뛰어들어오고, 그 뒤로 담임인 맥그리거가 따라 들어왔다. 요란하게 뛰어다니지 말고, 제 시간에 등교하라는 맥그리거의 잔소리를 맞으며 걸어온 다이앤이 그들 근처의 빈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떻게 왔냐? 늦잠 잤다며?"

"일어나자마자 아무 옷이나 주워 입고, 스쿨버스 타는 곳까지 달렸지. 가방을 제대로 챙겼는지도 모르겠다."

"일찍 자, 다이앤."

"어제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맥그리거가 탁탁,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에 매뉴얼도 몸을 돌려 바로앉았다. 책상에 기대앉아 턱을 괴고는 책을 잘못 가져왔는지 작게 비명지르는 다이앤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기분이 좋아 보이더라는 타냐의 말을 곱씹었다. 그런가, 별다른 일은 없는데.

"...벌써 이걸 다 외웠어요?"

"음."

"주방 일도 배워볼래요?"

"내가 계약한 건 홀이야."

늦은 오후의 샌드위치 가게. 아직 가게를 지키고 선 빨강머리에 익숙해지지 못한 매뉴얼은 그 남자가 마치 가게에서 몇 달은 일한 사람처럼 기기를 다루는 것을 보고는 입을 떡 벌렸다. 잘 따지고 보면 그리 복잡한 일은 아니었으나, 누구든 처음 오면 헷갈릴 법한 메뉴나 음료 제조 같은 일도 능숙하게 해내는 손놀림이 하루이틀 일한 이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봐요. 어제 돌아가서 잠은 잤어요?"

"충분히."

"어떻게 벌써 일이 손에 익지?"

"어머님이 잘 가르쳐 주시더군."

"입에 발린 소리 말고요."

"음료가 복잡한 것도 아니잖나. 여기가 카페도 아니고."

"카페에서도 일해 봤어요?"

"음."

"라떼에 고양이 그릴 줄 알아요?"

"질문이 많군."

"방금은 장난이었어요."

그런데 정말 배워 봤어요? 매뉴얼이 참지 못하고 또 질문을 던지자 패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서슬에 매뉴얼은 얼른 두 손을 내저었다. 아까는 장난이었고, 이번에는 정말 궁금해서. 그 말에 패치는 씹어뱉듯이 답을 건넸다. 그래.

"다음에 나도 가르쳐 줘요."

"별..."

끈질기게 말을 붙여오는 매뉴얼에 패치는 그만 백기를 들었다. 항복의 의미보다는 싸움의 의미에 더 가까운 것 같기는 해도. 매뉴얼은 저를 바라보는 눈에 짜증스러운 감정이 묻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슬며시 미소지으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앞치마를 걸친 모습보다 먼저 눈에 익어버린 게 저 짜증난 푸른 눈빛이라니.

"여기서는 바깥에서처럼 그러면 안 돼요."

"너는 사람 속 긁는 데 선수군."

"친해지자고 한 말인데."

"그럴 필요가 있나?"

"같이 일하잖아요."

그 말에 패치는 코웃음치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다시 무시로 일관할 마음을 먹었다는 걸 알아차린 매뉴얼도 아쉬운 마음에 입을 쩝 다셨다. 주에 5일은 마주할 텐데, 친하게 지내면 좋지 뭘. 고개 돌린 채 식기를 씻는 패치를 보던 매뉴얼은 무언가를 알아차리고 어, 소리를 냈다. 그러고 보니.

"얼굴은 괜찮아요?"

"......."

"그 가게 주인 자식이죠?"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패치? 하며 다시 불러 봐도 대답이 없자 매뉴얼은 자신이 또 잘못 오지랖을 부렸다는 걸 알아차렸다.

"패치."

"......."

"...어, 그 자식한테 복수할 거면 나 불러요. 나도 맞은 게 있으니까...."

"매뉴얼."

그만해. 패치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매뉴얼도 그 말에는 더 대답할 수 없었다. 두들겨맞은 이야기를 꼬치꼬치 캐물으면 불쾌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시퍼렇게 부어 있었다던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떡하나. 매뉴얼은 패치의 심기를 더 거스르지 않으려 노력하며 곁눈질로 그의 얼굴을 살폈다. 어제도 모르고 지나쳤던 그의 얼굴은, 어느 뺨을 맞았는지도 모르게 말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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