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tty Bad Guy

[매뉴패치] Pretty Bad Guy 6

매뉴얼은 악수, 인사, 선물 따위의 힘을 믿었다. 좋은 관계에서 생겨나는 시너지를 믿었고, 올바른 행동의 힘을 믿었다. 누구든 제게 호의를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과 거리를 두겠다 다짐하진 않을 것이고, 선뜻 내밀어지는 선물을 받으며 불쾌해하지는 않을 테다. 매뉴얼 자신이 몸소 느껴온 만큼 굳게 믿고 있는 사실이었다.

"마음만 받지."

그런 매뉴얼에게 이번 일은 처음 있는 실패로 기록되리라. 매뉴얼이 바쁜 와중에도 베이커리까지 가서 사 온 쿠키 꾸러미를 밀어내는 패치의 손에 그는 잠시 말을 잃고 말았다.

"...이거 싫어해요?"

"즐기지는 않아."

"다른 사람이랑 나눠 먹어도 괜찮은데."

"아니, 괜찮아."

습관처럼 왜요, 하고 물으려던 매뉴얼은 입을 합 다물고는 얌전히 쿠키를 가져왔다. 패치는 그에 관해 묻는 것을 싫어했다. 받지 않겠다는 선물을 자꾸 들이미는 것은 당연할 터였다. 매뉴얼은 제 손안에 덩그러니 님은 꾸러미를 바라보다 포장의 리본을 풀었다. 작게 구워진 웃는 얼굴을 꺼내 오독 베어 물자 달큰한 버터 향이 느껴졌다.

"오, 이거 괜찮다."

"......."

"하나 맛보지 않을래요?"

오독, 오도독, 쿠키를 먹으며 슬쩍 건네보는 말에 결국 패치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매뉴얼은 형편없이 구겨진 미간을 보며 그에게 쿠키 봉투를 밀어 주었다. 웃는 얼굴 하나를 집어 든 패치가 몸을 돌려 버려, 그 미간이 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오도독, 쿠키를 씹는 소리가 두 개로 늘어났다.

"맛있지 않아요?"

"음."

"멀리까지는 못 나가서 근처에서 사 왔는데."

"......."

"학교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시간이 꽤 걸리더라고요."

딸랑, 가게의 종소리가 울렸다. 잠시 끊어졌던 이야기는 샌드위치를 받아든 손님이 가게를 나서자 다시 이어졌다.

"우리 아버지가 이 가게를 되게 오래 했어요."

"음."

"꿈이셨대요. 가게를 내는 게. 행복하게 지내시는 거죠. 덕분에 저도 편하게 일하고."

"그렇군."

"이전에는 여기보다 더 작은 곳이었어요. 주택가에 가끔 있는 작은 가게였는데, 여기랑은 분위기가 많이 달랐어요."

"음."

"엄청 어릴 때부터 가게 일을 하셨거든요. 덕분에 나도 학교 끝나면 가게에 와서 놀고. 그러다 어영부영 파트타임 뛰고."

"......."

"...패치는요?"

"음?"

그 물음에 패치가 의아한 목소리를 내며 무심코 돌아봤다. 그의 얼굴이 주름 없이 펴진 것을 확인한 매뉴얼은 맞닿아오는 시선을 살짝 피했다. 매뉴얼은 아직 그에게 얼마나 조심스럽게,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며 다가가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왜 여기 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네가 오라며 초대하지 않았나."

"그딴 모르는 학생의 말 따위 무시해버릴 수도 있었잖아요."

"네 질문 세 개는 들어준다고도 했으니까."

"...겨우 그것 때문에요?"

딸랑, 가게의 종소리가 울렸다. 매뉴얼은 계산서를 부엌으로 가져가며 입술을 꿈틀거렸다. 왜 패치가 겨우 그런 말로 둘러대려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패치를 붙들고 이해되지 않는 점을 캐묻고 싶었지만, 가게로 점점 몰려들기 시작하는 퇴근한 직장인들 덕에 더는 물을 수도 없었다.

"들어봐."

탕, 두 손으로 책상을 짚은 매뉴얼의 표정은 진지했다. 갑자기 진지한 얼굴의 매뉴얼을 맞닥뜨리게 된 스턴은 드물게 미소까지 지우며 흠칫 뒤로 물러섰다.

"뭐, 왜, 뭔데 그래?"

"며칠 전에 알게 된 사람이 있거든?"

"어, 그 전에 좀 떨어져 봐, 부담스럽다."

"부담스러워?"

매뉴얼은 그 말에 책상에서 떨어지기는커녕 모서리를 부서질 것처럼 세게 쥐었다. 스턴은 제 말 한 마디에 더 구겨지는 얼굴을 보고는 한숨 쉬었다. 가, 인마. 가서 머리 식히고 다시 와!

"새로 알게 된 동네 친구가 있어."

시끌벅적한 카페테리아의 테이블에 마주 앉은 매뉴얼이 샌드위치를 손에 든 채 이야기를 이었다. 스턴은 치킨너겟을 포크로 쿡 찍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사람이 좀... 뭐랄까, 거리를 두려고 한다 해야 하나."

"왜 확신이 없어?"

"친해진 줄 알았거든? 그런데 어느 순간 보면 그게 아니야. 종잡을 수가 없어."

"여자야?"

"아니, 그런 쪽도 아니야."

으음, 하며 말을 고르던 스턴이 이번에는 사과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스턴의 답을 기다리던 매뉴얼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제 행동이 부담스럽냐는 물음에 스턴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넌 누구한테든 허물없이 굴잖아. 그게 부담스러운 사람은 분명 있겠지."

"...그래? 친근해 보이는 게 아니라?"

"생각해 봐. 랄프가 너한테 친근하게 군다면 좋겠냐?"

"오."

커다란 손과 덩치에 집에서도 괴팍하게 굴 것이 분명하다며 주먹왕 랄프라는 별명을 얻은 생활지도 교사를 떠올린 매뉴얼이 입술을 말았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야 피하고 싶을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제가 그 정도라고, 질문 몇 개 하고 과자도 사다 주며 치근거린 게 다였는데.

"그거 안 먹을 거면 나 줘."

"먹을 거야."

"아쉽네."

"그럼 그런 사람하고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

"친해져야 해? 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잖아."

"거의 매일 얼굴 봐야 하니까."

"오, 그럼 좀 친해질 필요가 있겠네. 아르바이트생?"

"응. 직원."

매뉴얼은 샌드위치를 크게 한입 베어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일하는, 그것도 매주 다섯 번은 만나야 하는 사람이 제게 거리를 두는 것만큼이나 불편한 일은 없을 터였다. 그것 때문에 근무 시간을 바꾸는 것도 불가능했고. 무엇보다도 가까이 다가갔다 싶으면 어느새 도망쳐 버리는 패치에 오기가 생기고 말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매뉴얼은 그 말만은 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하려면 여태 있었던 일을 죄다 말해야 할 터였고, 그러다 보면 이 눈치 빠른 친구는 그게 패치라는 것도 금방 알아차릴 것이었으니.

"그런데, 자주 만나다 보면 어련히 친해지지 않나?"

"사정이 좀 있어."

"그래... 그렇다면야."

"먼저 인사하고, 먼저 말 걸고, 자질구레한 선물도 줘 보고, 다 했어."

"봐, 그 정도면 나라도 부담스러워. 그냥 적당히, 친구에게 할 법한 일만 하라고. 인사하고, 말 한두 마디 걸어 보고, 끝."

"안 받아 준다니까?"

"무슨 일이든 한 번에 이뤄지는 건 없어, 인마."

스턴의 말이 매뉴얼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더 트집을 잡는 대신 입에 샌드위치를 욱여넣었다. 친구에게 할 법한 일이라, 그 사람은 내 메시지도 무시하는 게 다반사인데.

"안녕하세요."

오늘따라 가게에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가끔은 그런 날도 있지. 미칠 듯이 조용하겠군, 이라 생각하며 매뉴얼은 앞치마의 끈을 질끈 동여맸다. 아버지는 부엌에, 막 새로 들어온 부엌의 직원이 조잘대는 소리가 작게 들렸고, 간간이 손님이 내는 잡음이 전부인 홀. 매뉴얼은 카운터에 기대서서 휴대폰을 톡톡 두드렸다. 인사 한 마디, 가끔 안부 한 마디, 그리고 끝. 네 관심은 너무 과해. 신경 쓰지 마.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가게는 조용했다. 유리 너머로 오가는 행인이 어른거렸지만 그들은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았고, 좀이 쑤신 매뉴얼이 홀을 한 바퀴 돌고 오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나 남은 손님마저 문을 열고 나가 버리자, 그 넓은 공간에는 그들 둘뿐이었다. 상대가 패치가 아니라 어머니였다면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나누었겠으나.

"......."

매뉴얼은 눈동자만 굴려 패치를 훔쳐봤다. 사람이 없다면 의자에 앉아도 될 텐데도, 패치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서서 정면을 응시했다. 언제나 상대를 또랑또랑하게 바라보는 눈은 어딘가에 붙박여 있고, 지루하지도 않은지 손끝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 채로. 늘 앙다물려 있는 입꼬리는, 어, 살짝 쳐졌나. 얼굴을 마주하고서는 자세히 뜯어보지 못할 패치의 모습을 열심히 곁눈질하던 매뉴얼은 그의 고개가 돌아가자 황급히 시선을 거뒀다.

"......."

"......."

그를 바라본 건지, 잠시 스트레칭을 한 건지 모르게 패치의 시선은 빠르게 사라졌다. 잠시 자리를 지키던 그가 냉장고의 문을 열자 딸랑, 하며 가게의 문이 열렸다. 패치가 그라인더의 전원을 올리는 소리와 함께 가게로 들어온 손님은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매뉴얼이 동그래진 눈으로 패치를 돌아봤지만, 패치는 말없이 커피를 내릴 뿐이었다.

"......."

"......."

손님이 가게를 나가고, 설거지를 하던 물소리도 그치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불안하게 손가락을 타각대던 매뉴얼은 한시도 몸을 가만히 놓아두지 못하고 상체를 돌리고, 스트레칭을 하고, 홀을 한 번 더 정리하고, 자리에 앉았다 다시 일어났다.

"......."

"......."

"...매뉴얼."

"예!"

조금씩, 조금씩 말려 들어가던 패치의 입술이 열리자 매뉴얼은 그만 너무 크게 대답하고 말았다.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었으나 이미 퍼져 나간 소리는 주워 담을 수 없는지라. 입을 꾹 다물고 눈을 질끈 감던 매뉴얼은 바람 빠지듯이 웃는 패치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해, 정신없이 굴지 말고."

"신경 쓰였어요?"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나?"

"그건... 아니오."

제가 생각해도 불안한 강아지마냥 자리에서 빙글뱅글 돌았던 게 사실이라. 매뉴얼의 목소리는 절로 침울해졌다. 오늘도 망했구나. 스턴의 조언 따위 무시할 걸.

"이야기하는 거 안 좋아하잖아요."

"음, 싫어하지도 않네."

"...그다지 기분 좋아 보이진 않았는데요."

"내 이야기를 하는 건 좋아하지 않지. 그건 맞아."

그래도, 눈치 보느라 낑낑대지는 말란 소리야. 내가 다 불편하니까. 패치는 그리 말하며 무엇인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에 매뉴얼의 얼굴도 덩달아 의문스레 일그러졌다.

"제 이야기는 그다지 재미 없을 텐데."

"하기 싫으면 하지 말든지. 할 말이 있는데도 안절부절못하고만 있지 말라는 소리야."

"어제 준 선물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

"겨우 그것 때문에 그러고 있었던 건가? 과자는 안 먹는다고 했잖아."

패치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며 돌아섰다. 매뉴얼은 패치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그대로 서 있었다. 겨우 그것 때문에, 라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그렇다기에는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는데.

"그럼 초콜릿은 어때요?"

"그것도 아니."

"꽃은 좋아해요?"

"너."

패치가 다시 매뉴얼을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분명히 기분이 상한 표정이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로 그를 노려보는 그 표정은, 처음 만났던 때의 얼굴과 닮아 있었다.

"장난칠 거면 차라리 입 다물어."

"장난 아니에요."

"그럼 뭐야? 내 말이 우스워?"

"솔직히 말해줘요, 패치."

"솔직하게? 방금 기분이 더러워졌어."

"내 호의가 싫었던 거예요?"

당장이라도 얼굴을 사정없이 할퀴어 놓을 것처럼 으르렁대던 패치의 눈에 한 줄기 이채가 스쳐갔다. 매뉴얼은 그 빛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이 무슨 마음이었는지는 알지 못하더라도.

"난 아무 의미도 무게도 없는 호의 따위 질색이야."

사나운 목소리는 도어벨 소리에 묻혔다. 눈을 질끈 감고 손으로 얼굴을 덮었던 패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깔끔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그 무서울 정도의 변화에 매뉴얼은 입을 꾹 다물고 그에게서 시선을 떼어냈다.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어디부터가 진실인지, 그로서는 아직 분간해낼 수 없었다. 다만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주문을 받는 것뿐이었다. 의미도 무게도 없는 호의라는 말하며, 오늘 보았던 패치의 태도 따위를 곱씹으며 매뉴얼은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오늘, 관계가 진전되기는커녕 한참은 뒷걸음질 치고 만 것 같다는 옅은 후회를 떨쳐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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