镇魂

쓰다 만 것들

란웨이 수현임풍 한천부생... 퇴고 안했음

화분 by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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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1

<언젠가의 챌린지... 란웨이 몸 바뀌는 얘기>

1.

이름 모를 새가 바쁘게 울고 한결같은 햇살이 침대 위로 내려앉았다. 언제나와 같이 평범한 아침에 자오윈란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끙, 하는 소리가 목구멍을 긁으며 올라왔다. 션웨이와 사랑이 넘치는 첫날밤을 보내고 맞는 첫 아침이었다. 자오윈란이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앓는 소리를 냈다. 분명 상쾌해야 할 몸뚱이 여기저기가 쑤셨다. 에고고, 조만간 운동 좀 해야겠어. 션웨이와 함께 건강하고 행복한 성생활을 즐길 상상을 하며, 자오윈란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섰다. 첫 모닝 키스를 냄새나는 입으로 할 순 없지.

일어선 채 못 다 켠 기지개를 마저 켜며, 자오윈란은 이불 속에 파묻혀 곤히 잠들었을 제 애인을 살폈다. 어디 보자, 우리 교수님 자는 얼굴 좀 보, 어, 어라? 어라? 이불을 목 끝까지 덮고 눈을 감고 있는 얼굴은 분명 자신의 얼굴이 분명했다. 매일 아침 세수를 하며 봤던 그 얼굴이 바로 제 눈앞에 있었다. 뭐야, 왜 이래? 아직 꿈인가? 자오윈란은 비명을 질러대는 허리를 굽혀 이불을 걷어 내고 ‘자오윈란’에게로 얼굴을 가까이 했다. 아니, 이게 뭐야? 진짜 나야? 이게 뭐야? 내가 둘이란 말이야? 자오윈란이 눈을 멀뚱멀뚱 뜨며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을 때, 침대 위에 바른 자세로 누워 있던 ‘자오윈란’이 부스스 잠에서 깼다.

“저기요… 안녕… 하세요…?”

어색하게 건넨 인사가 무색하게 또 다른 ‘자오윈란’은 다시 눈을 감더니, 자신의 손으로 눈 위를 덮었다. ‘자오윈란’은 티가 나지 않게 한숨을 쉬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네? 이렇게요? 이렇게가 뭔데요? 저기요?”

자오윈란이 당황하며 입을 놀리자, ‘자오윈란’이 양 손으로 제 얼굴을 문지르며 말했다.

“윈란, 거울 좀 봐….”

2.

지금으로부터 만 년 전, 션웨이가 ‘지성의 영웅’의 새싹 정도 되었을 때, 어떤 한 이능이 온 사회를 어지럽혔다. 그 이능을 가진 지성인은 어떤 행위를 하고 나면 다른 사람과 영혼을 바꿀 수 있었다. 대개 하루가 지나면 영혼이 제 그릇을 찾아 돌아갔지만, 하루는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 이능으로 인해 세상의 진리에 금이 가고, 사람들 간의 신뢰가 흔들렸다. 션웨이를 비롯한 평화주의자들의 세력은 큰 타격을 입고 약화되었지만, 영혼의 교환을 촉발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알려진 바가 없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션웨이는 그 행위를 알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고, 얻은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해성인의 수장인 마귀 대인의 임시 처소에 방문했다. 션웨이가 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안에서 간드러지는 신음 소리가 들려 왔다. 아직 어렸던 션웨이는 심장이 빠르게 뛰고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황급히 돌아섰다. 몇 발짝이나 멀어졌을까, 야수족의 대표인 부유 대인이 션웨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제서야 션웨이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로지 부유 대인만을 열렬히 사랑하는 마귀 대인이 어찌 다른 이와 성관계를 맺을 수 있겠는가!

션웨이는 망설임 없이 마귀의 처소로 돌아가 문을 벌컥 열었고, 그 안에는 처음 보는 표정의 마귀 대인이 처음 보는 사내의 몸을 묶고 있었다. 사내는 재갈이 물린 채로 소리를 지르려 애쓰고 있었고, 마귀 대인의 얼굴을 한 자는 태연하게 “어머, 들켰네?” 라고 말했다. 션웨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감으로 인해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지만, 다행히 정신을 차린 션웨이가 마귀 대인의 얼굴을 한 자를 포박했고, 그렇게 영혼 교환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하도 오래 전 일이기에 션웨이조차 잊고 있던 사건이었다. 션웨이가 이 사건을 다시 떠올린 것은 자오윈란과 조금 더 가까운 관계가 되고 얼마가 지난 후였다. 자오윈란은 션웨이와 단 둘이 있을 때면 슬금슬금 손가락을 엮어 왔고, 몸을 붙여 댔다. 션웨이는 바보가 아니기에 이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자오윈란과 자신이 ‘그 행위’를 할 것을 상상하니, 자연스럽게 만 년여 전의 사건이 떠올랐다. 션웨이는 그 이능을 목격한 것이 워낙 순식간이어서 자신이 학습을 완료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자오윈란에게 굳이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션웨이의 학습 능력은 이제 보니 아주 뛰어난 것이 분명했다.

화장실 거울을 바라보며 비명을 한참 지르다 나온 자오윈란을 앞에 두고 션웨이는 해묵은 사건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설명 끝에는 미안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션웨이의 모습을 한 자오윈란이 자오윈란의 모습을 한 션웨이를 한참 바라보다, 한 마디를 남겼다.

“나는 괜찮아! 이거 재밌네.”

“진심이야…?”

“어차피 하루 지나면 돌아온다며, 그러면 뭐. 괜찮지. 그런데 이거 앞으로도… 할 때마다 계속 이러는 거야?”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내가 이 이능에 아직 익숙하지 못해서 조절이 조금 힘들거든. 어제까지는 내가 학습했는지조차 몰랐고. 하지만 앞으로 계속 하다 보면 능숙하게 조절할 수 있을 테니까, 매번 이렇게 되지는 않을 거야.”

“계속 ‘한다’고?”

션웨이는 자오윈란이 자신의 얼굴을 하고 능글맞은 표정을 짓는 것을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가 없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도망을 쳤다.

“교수님, 화장실에서 뭐 하시게요!”

3.

아무래도 영혼이 바뀐 상태로 서로의 일상생활을 수행하기에는 문제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두 사람은 원상태로 돌아갈 때까지는 하루 종일 집안에만 있기로 합의했다. 또, 앞으로 당분간은, 그러니까 션웨이가 이 이능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휴일 전날에만 ‘하기’로 약속했다. 어제는 분위기가 순식간에 불타올라 다음 날의 생업도 잊은 채 거사를 치러 버렸기에, 자오윈란은 특조처에 전화를 걸어 하루 종일 외근을 할 것이니 알아서들 하라고 통보했고, 션웨이는 조교에게 전화를 걸어 휴강 공지를 부탁했다.

물론, 이 일들은 모두 목소리를 통해 이루어졌으므로, 자오윈란과 션웨이는 서로의 연인이 직접 써 준 대본을 바탕으로 혼신의 연기를 했더랬다. ‘자오윈란’의 전화를 받은 왕정은 뻔뻔한 명령을 뻔뻔하지 않은 태도로 하는 처장의 태도에 그래도 이 인간이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구나 생각했고, ‘션웨이’의 전화를 받은 조교는 교수님이 정말로 많이 편찮으신지 집중력이 조금 흐트러지신 것 같다고 짐작했다.

둘만의 비밀 홈 데이트는 그 후에도 몇 번 더 이어졌다. 나들이 가기 딱 좋은 날씨에도 집 안에 박혀 있어야 한다는 점이 불편할 법도 했지만, 둘에게는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과 둘만이 간직한 비밀이 소중했다. 영혼이 바뀌었을 때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기는 조금 민망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기에 둘은 나란히 앉아 서로를 흘끔댔다. 엇갈리던 시선이 이따금 마주치면 어색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평소 자신이라면 절대 짓지 않을 표정들을 보며 서로의 감정을 새삼스럽게 재확인했다.

자오윈란은 입 밖으로 굳이 꺼내지는 않았지만, 션웨이가 이 이능에 능숙해질 때가 오지 않기를 은근히 바라기도 했다. ‘하기’로 정한 날이면 퇴근길에 함께 이틀치 장을 보고, 잠들기 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내일 모레 봐.” 라며 장난을 쳤다. 보고 싶은 영화나 읽고 싶은 책이 생길 때면 ‘그 때’ 보자, 라며 자연스럽게 약속을 하게 되었고, 일상에 치이느라 미처 나누지 못한 대화를 하루에 몰아 나누었다. 치열한 삶에서 벗어나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할’ 때면 다음 날의 행복할 시간들이 떠올라 한층 더 달아오르기도 했다.

4.

범죄자는 휴일을 고려해 가며 일을 치지 않는다. 자오윈란과 션웨이의 행복한 토요일이었어야만 했던 날에, 웬 미친놈이 광장에서 장풍 같은 걸 쏘고 돌아다닌다는 신고가 특조처로 들어왔다. 추수즈와 궈창청이 출동했지만 워낙 피해 범위가 큰 사건이라 빠르게 제압할 수 없었고, 왕정은 ‘부르면 특조처에 발끝도 못 들일 줄 알아라!’ 라는 자오 처장의 으름장에도 불구하고 자오윈란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 어차피 왕정은 발이 특조처 바닥에 물리적으로 닿아 있지 않기 때문에 상관 없었다.

왕정이 평소보다 조금 공손한 처장과 통화를 마치고 얼마 뒤, 자오윈란과 션웨이가 미친놈이 날뛰는 현장에 나타났다. 평소라면 션웨이가 자오윈란을 붙잡고 공간을 이동하여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었겠지만, 자오윈란이 이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교통수단을 이용해야만 했다. 평소 션웨이는 운전을 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션웨이의 외양을 한 자오윈란이 빨간 지프차의 운전대를 잡고 사건 장소까지 달려갔다. 아마 반듯한 션웨이 교수가 난폭 운전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을 것이다.

현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자오윈란과 션웨이는 자신들이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오윈란은 션웨이의 몸 안에 들어가 있었지만 이능이라는 놈을 가지고 놀 수가 없었고, 션웨이는 굳이 이능이 없더라도 신체적 싸움이 가능했지만 자오윈란의 허약한 몸 안에 들어가 있어 힘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자오윈란에게는 흑능량을 제압하는 총이 있었지만, 자오윈란의 모습을 한 션웨이는 총이라는 무기를 다룬 적이 드물어 어쩔 수 없이 션웨이의 모습을 한 자오윈란이 총을 들어야 했다. 두 사람은 모두 이 이상한 꼴을 이 현장 어딘가에 있을 추수즈와 궈창청에게 들키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서로가 허겁지겁 골라준 옷을 걸친 자오윈란과 션웨이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다, 시민을 만나면 최대한 먼 곳으로 대피하라 일렀다.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들려 와, 둘은 재빠르게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향했다. 중년의 남자가 아이를 인질로 잡고 있었고, 그 앞에 아이의 언니로 추정되는 청년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자오윈란과 션웨이가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중년의 남자는 “네 이놈, 흑포사!” 라고 외치더니, 특조처장과 흑포사가 다가오지 못하도록 정체불명의 안개를 쏘았다. 그 순간, 션웨이는 습관적으로 자오윈란의 앞을 막아섰다. 자신이 현재 평소처럼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는 사실조차 잊고, 본능적으로 사랑하는 이를 온 몸으로 지켰다. 자오윈란은 제 눈앞에서 자신의 신체가 힘없이 스러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션웨이가 안개와 자오윈란 사이로 뛰어들고 쓰러진 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자오윈란에게는 그 일련의 과정이 슬로우모션처럼 느리게 보였다.

5.

사건 현장에서 자오 처장이 쓰러지고 하루가 지나자, 이번에는 션 교수님이 쓰러졌다. 추수즈가 뒤늦게 도착하여 중년 남성의 손을 묶자, 그제서야 흑포사가 정신을 차리고 총을 쏘았다. 눈치가 없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궈창청의 눈에도 이 상황은 이상해 보였다. 어째서 자오 처장님이 쓰러질 때까지 션 교수님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는지, 션 교수님은 왜 평소처럼 이능을 사용하지 않고 총을 쏘셨는지. 션 교수님이 평소보다 많이 멍해 보이기는 했지만 자오 처장님을 지키지 못했으니 당연한 반응처럼 보였다.

이상한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평소라면 당연히 범죄자를 생포했을 교수님이 총을 심장에 정확하게 명중시킨 점, 쓰러진 처장님을 앞에 두고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한참을 그 앞에 꿇어 앉아만 있었던 점, 그리고 시체를 수송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온 린징에게 어서 이능의 정체를 밝혀내라고 역정을 낸 점 등. 그리고 평생 깨어나지 못할 것처럼 보였던 자오 처장님이 하루만에 기운을 차리고 일어난 점과, 깨어난 자오 처장님이 추홍에게서 쓰러진 후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듣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바로 전날의 션 교수님과 자오 처장님이 같은 사람처럼 비슷한 표정과 분위기를 보였다는 점도 이상했다. 아무래도 사랑하는 사이여서 감정 표현마저 닮게 되어 버린 거라고 궈창청은 짐작했다.

하루만에 털고 일어난 자오 처장님과는 다르게, 영문 모를 이유로 쓰러진 션 교수님은 한참을 집 안에만 누워 계셨다. 처장님은 매일같이 무섭게 린징 형을 다그쳤고, 린징 형은 우물쭈물하며 이미 죽은 시체만으로는 알아낼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변명했다. 일주일쯤 지나고 나서야 린징 형은 그 이능의 정체를 밝혀냈다. 한 인간의 정신에 파고들어, 가장 두려워하는 경험을 꿈 속에서 경험하도록 하는 이능이라고 했다. 두려움을 떨쳐내고 나면 금방 꿈에서 깰 수 있지만, 그 두려움이 아주 깊거나 크다면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어도 이겨내기 힘들 거라고 했다. 생명에는 큰 위험이 없지만, 이 상태로 수명이 다할 때까지 누워만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말은 아주 조그마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린징 형은 처장님에게 션 교수님이 그 이능의 영향으로 쓰러진 거라면 어떻게든 도와줄 방법을 찾아 볼 테니 어서 데리고 오라고 했지만, 처장님은 굳은 표정으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6.

션웨이는 꿈 안에서 ‘깨어났’다. 꿈속의 세계는 낯설지만 익숙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숲처럼 보이기도 했고, 자세히 살피면 하늘같기도 했으며, 눈을 돌리면 자갈밭같기도 했다. 걸어도 걸어도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고, 제 자리에 앉으면 환경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 같기도 했다. 션웨이는 이 장소를 알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션웨이는 이 장소로 돌아오게 되었고, 이 곳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았다. 해와 달이 뜨지 않고 파도가 치지 않아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멈춰 버린 장소일지도 모르겠지만 션웨이는 이 곳에서 쿤룬을, 자오윈란을 기다리기로 했다.

오랜 기다림이 무색하게도, 쿤룬은 오지 않았다. 션웨이는 이곳의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간은 션웨이가 홀로 있을 때면 달팽이처럼 느리게 흘렀고, 쿤룬과 함께할 때면 화살처럼 빠르게 흘렀다. 션웨이는 자신의 감각이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느끼는 것 뿐,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만 년간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쿤룬을 기다린 적도 있었는데, 몇 달간 그 얼굴을 매일 봤다고 해서 그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된 것도 아니었다. 션웨이는 주제넘은 자신을 탓했다.

하지만 그리움은, 억제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억제되지 않는 종류의 감정이었다. 션웨이는 자신의 미련함에 실망했다.

저의 글인 <너의 의미>와 연결되는 글이었는데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너의 의미>에서 션웨이는 만 년간의 잠을 자는 동안 꿈을 꾸는데, 그 꿈 안에서 쿤룬을 만납니다. 만 년의 세월동안 환생하는 수만의 쿤룬들이요. (자오윈란의 전생들이겠죠.) 그러다 꿈에서 깨어나서 자오윈란을 만나게 되는데... 이 글에서는 두려움 이능에 맞은 션웨이가 만 년의 그 꿈을 다시 꾸게 됩니다. 그 안에서 다시 한참을 기다리다가... 쿤룬이 영영 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므로 자신이 직접 쿤룬을 만나러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션웨이의 두려움은 '쿤룬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이었던 것이지요. 션웨이는 자오윈란을 만나기 위해 꿈에서 깨어나고, 둘은 영영 헤어지지 말자고 사랑의 약속을 합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둘은 각각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션웨이는 '쿤룬이 없는 세상'이 도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한 몸 희생하겠다 마음 먹고, 자오윈란은 다시는 션웨이를 잃지 않겠노라 마음 깊이 맹세합니다.

<란웨이 교류전 벌칙(?) 연성 - 수현임풍>

지옥 같은 입시가 끝나가던 어느 여름, 임풍의 반에는 한 명의 전학생이 왔다. 이름 양수현, 나이 스물 넷. 담임 선생님은 그를 전학생이라고 소개했지만, 사실 그는 복학생이었다. 젊은 교사가 ‘전학생이 왔습니다, 자기소개 해 볼래?’ 라고 하자마자 그는 반항하듯 ‘복학생이다. 수업 일수가 아깝게 모자라서 졸업을 못 했거든.’ 이라고 말했다. 담임 선생님은 어색하게 웃으며 빈자리를 가리켰다. 양수현은 느리적대며 교실을 가로질렀다. 학급 전체의 시선이 양수현에게 쏠렸다. 위험한 놈이다. 모두가 생각했다. 학교가 오랜만이어서 낯설 테니까 반장이 많이 도와줘. 알겠지? 임풍은 선생님의 간절한 눈빛에 고개를 끄덕였다. 짐덩이를 떠맡았다.

졸업 후의 향방이 대부분 정해졌기에, 학급은 무질서했다. 임풍은 반장이었지만 혼란스러운 교실을 정리할 마음이 없었다. 애초에 원해서 된 반장도 아니었다. 소란 속에서 임풍은 이어폰을 끼고 북채를 꺼냈다. 혼자만의 세계에 심취해 허공에 북채를 휘두르며 상상 연주를 했다. 이상한 광경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임풍의 동급생들에게 이러한 모습은 익숙했다.

“뭐 하냐?”

아, 오늘 막 동급생이 된 양수현은 빼고.

“무슨 상관인데?”

가방을 들고 자신의 옆자리로 다가온 양수현을, 임풍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복학생이니만큼 자신보다 연장자라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었으나, 임풍은 존댓말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저쪽에서 먼저 일면식도 없는 자신에게 반말을 하지 않았는가. 드르륵,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들리고, 양수현이 의자 위에 늘어지듯 앉았다. 의자가 다시 들어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임풍의 짝은 애저녁에 다른 반에 있는 애인을 만나러 가 있었다. 양수현은 가방을 대충 내려놓고, 안에서 노트와 연필을 꺼냈다. 가방 안에는 노트 한 권과 연필 한 자루만이 들어 있었다.

“네 자리는 어쩌고 여기 앉아?”

“반장님께 도움 좀 청해 보려고 왔지.”

그래, 선생님 말씀대로 학교가 많이 낯설겠지.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와서 학교를 다시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테고. 임풍이 드디어 이어폰을 빼고 북채를 모아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그제서야 옆자리에서 연필이 슥삭대며 종이 위를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한숨을 쉬듯 숨을 크게 쉬고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을 최대한 숨기며 옆자리의 불청객을 돌아보았지만, 열심히 연필을 조종하는 손은 멈출 기색이 없었다. 임풍이 인내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냈다.

“그래, 무슨 도움.”

“뭐, 그냥, 물어볼 게 하나 있어서.”

“그러니까 뭐냐고.”

양수현이 연필을 힘주어 내려놓았다. 연필과 책상이 부딪치며 탁 하고 제법 큰 소리가 났다. 하지만 소란스러운 교실 안에서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양수현과 임풍밖에 없었다. 양수현의 시선이 느릿하게 임풍을 훑었다. 불쾌한 정적에 임풍이 다시 한 번 입을 열려던 차, 양수현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북채로 자위해본 적 있냐?”

“...너는 북채로 맞아본 적 있냐?”

조금씩 씰룩대던 입술이 결국 벌어져 큰 웃음소리를 냈다. 이번에는 반의 다른 아이들도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였다. 임풍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귓구멍에 이어폰을 욱여넣었다. 경쾌한 드럼 사운드가 머릿속을 채웠다. 양수현의 시선이 여전히 느껴졌지만 임풍은 무시하려 애썼다. 미친놈과는 엮이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본인이 미친놈이기에 잘 알았다. 눈을 감고 이어폰을 통해 전해 오는 리듬에 집중하려 애썼지만, 이상하게 연필과 종이가 마찰되어 나는 슥삭, 슥슥, 쓱쓱, 소리가 임풍을 놓아 주지 않았다.

* * *

“어제는 미안했다.”

“뭐?”

“미안했다고, 그런 말 한 거.”

구리다 못해 더럽게 느껴지기까지 한 첫만남에도 불구하고, 임풍은 양수현과 꽤 잘 지냈다. 양수현은 입만 열면 파렴치한 말들을 내뱉기는 하지만, 사실 말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거나 듣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만 입을 열었는데, 분위기를 기똥차게 읽어 입을 다물어야 할 타이밍을 잘 알았다. 임풍이 말을 듣고 싶거나 하고 싶을 때를 기가 막히게 골랐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선을 넘기도 했지만, 임풍은 양수현의 그런 점이 좋았다. 옆에 달고 데리고 다니기에 불편하지 않았다. 또래 친구들은 말이 너무 많거나, 지나치게 참견하려 들었다. 임풍은 어른이 되면 다들 양수현처럼 눈치가 빨라지는 건지 궁금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졸업까지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임풍은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지 못해 안달이었다. 직접적으로 ‘나 어른이 되고 싶어!’ 라고 말 한 적은 없지만, 양수현이 ‘어른’들만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면 임풍의 그 무심한 얼굴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양수현은 임풍이 왜 그렇게까지 ‘어른’에 집착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유를 묻지 않았다. 임풍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웃기는 꼬맹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양수현은 그 웃기는 꼬맹이의 비행을 도왔다. 임풍은 양수현을 따라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다. 면허도 없으면서 오토바이를 운전했고, 심야에 영화관에서 야한 영화를 봤다. 양수현에게는 그저 어린애 소꿉장난같은 나날이었지만, 꽤 즐거웠다.

언젠가부터 학교에서 의미없는 시간을 보낼 때면, 양수현은 임풍을 그렸다. 뭉뚝한 연필로 너덜너덜한 노트에 임풍의 모습을 담아냈다. 엎드려 자는 임풍, 칠판을 바라보는 임풍, 북채를 들고 연습에 열중하는 임풍, 물을 마시는 임풍,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양수현은 아직도 담배에 직접 불을 붙이지 못해 제가 직접 불을 붙여 주기를 기다리는 임풍을 보며 몸 어딘가가 간지러워졌다. 임풍은 양수현이 물고 있는 흰 담배 끝에 빨갛게 불이 타오르기를 기다리다가, 양수현이 입술을 떼면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북채의 모양대로 굳은살이 박혀 거칠어 보이는 손을 바라보며, 양수현은 제 손에 들린 담배를 그대로 다시 제 입에 물었다.

“이제 너 안 준다.”

“뭐야, 왜?”

“... 너, 건강 안 좋다며?”

“몰랐던 것도 아니면서. 갑자기 왜?”

“어휴, 몰라. 어른 되면 니가 사서 피우던가.”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양수현은 제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흰 연기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임풍이 처음 담배를 피웠던 날이 떠올랐다. 고작 한 모금을 빨고 콜록대며 눈물을 찔끔 흘리던 그 모습이.

* * *

졸업식 전날, 등교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음에도 양수현과 임풍은 학교에서 만났다. 평소처럼 교실에서, 그들의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임풍이 자신의 팔을 베고 책상에 기댔다. 창문 너머로 석양이 지고 있었다. 다홍색 그림자가 임풍의 얼굴 위에 내려앉았다. 양수현은 어느 순간부터 임풍을 그리는 것을 멈추었다. 그 순간은 돌연 양수현이 임풍의 비행을 금지했을 때와 꼭 맞물렸다. 그 후에도, 둘은 이전처럼 그럭저럭 잘 지냈다. 임풍은 불만을 표하다가도, 양수현이 자신에게 꼭 그것들을 제공해 주어야 할 의무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곧 조용해졌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걸까?”

“내가 그런 걸 알 것 같아?”

“그건 또 그렇다.”

“열받게 하지 마.”

볼 한 쪽이 눌린 채로 임풍은 소리내어 웃었다. 양수현은 임풍의 속눈썹 아래로 길게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처음 봤을 때는 온 얼굴로 불만을 내뿜고 있었는데 말이야. 양수현은 의자를 임풍에게로 당기고, 얼굴을 가까이 했다. 임풍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그라들고, 눈이 빠르게 깜빡였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양수현이 입술이라도 부딪칠 듯 다가가자, 임풍은 눈을 꼭 감았다. 속눈썹이 바들대며 떨렸다. 두 입술이 금방이라도 닿을 듯한 거리에서, 양수현이 속삭이듯 말했다.

“이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된다는 거야.”

그리고는, 빠르게 떨어져 다시 의자에 눕듯 길게 늘어졌다. 임풍이 눈을 번쩍 떴다. 얼굴이 울긋불긋 달아오른 채로, 임풍은 입을 뻐끔거리다 고개를 확 돌렸다. 석양 때문인지 귀끝과 목덜미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양수현은 오래토록 임풍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턱을 괴고 한참동안 창문 밖을 바라보던 임풍은 조용히 말했다.

“고작 그런 게 어른이라면, 어른이 되지 못한다고 해서 아쉽지 않을 것 같아.”

양수현은 임풍과 만나고 난 후 처음으로, 임풍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수정하려고 했는데 결국 못 해서 미완으로 업로드...

<란웨이 싸워서 션웨이 연구실로 편지 배달하러 가는 다칭>

평화롭디 평화로운 룡성대학교 캠퍼스에 뚱뚱하고 윤기나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룡성대학교 길냥이 동아리 ‘마오마오(猫毛)’는 캠퍼스 내 모든 냥냥이의 수와 특성 등을 포함하여 정보망을 완벽하게 구축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 마리 한 마리에게 인식표를 달아 주었고, 매일같이 캠퍼스 곳곳에 있는 물그릇과 사료통을 확인하였으며, 방학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고양이들을 돌봐주었다. 이러한 애묘정신은 동아리 회원 뿐 아니라, 일반 룡성대 학생들에게도 만연한 것이었다. 학교 내 커뮤니티 고양이 카테고리에는 룡냥이들 목격담이 한 시간에 평균 삼십 번은 올라왔다. 그런데 낯선 고양이가 등장하자, ‘마오마오’의 단체 채팅방과 고양이 카테고리는 난리가 났다.

이 까만 냥이 누군가요? 못 보던 냥인데.. 귀엽다. 처음 보는 인식표네요, 룡냥이 아닌 것 같아요. 집 나온 거 아닐까요? 길에 살면서 저렇게까지 포동할 리가 없는데.. 전혀 아픈 기색도 없고요. 일단 귀엽네요. 응. 귀엽다. 츄르 줘 볼까요? 아까 줬는데 안 먹어요. 츄르를 안 먹어요? 고양이가 아닌 건가? 사실 인간이라거나.. 귀엽네...

검은 고양이님의 정체가 너무나 궁금했던 대학원생 A는 실험 보고서도 뒤로 한 채 고양이의 뒤를 밟기로 했다. 토실한 빵댕이가 마치 갈 길이 있다는 듯 바쁘게 움직인 탓이었다. 고양이는 열심히 걸었다. 생명공학관을 지나, 법학관을 끼고 우회전한 뒤, 교직원 기숙사 앞에 앉아 털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A는 고양이가 자신의 발을 정성껏 핥는 사이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지도교수님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A학생, 실험실에 없네요? 망했다... 고개를 들어 보니 고양이가 사라져 있었다. 진짜 망했다...

어렴풋이 작은 그림자가 교수 연구동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교수 연구동..? 이걸 쫓아 가 말어... 죽음으로 향하는 길인 것 같았으나 고양이가 실험실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으므로 황급히 쫓아갔다. 저 멀리 검은 고양이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고? 엘리베이터 앞에 ‘앉아 있다’고 표현할 수도 있었겠지만, 고양이는 정말로 그 앞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A가 헉헉거리며 고양이에게 황급히 다가가는 도중, 고양이는 엘리베이터 안에 타 올라가 버렸다. A는 황망하게 엘리베이터 안내판을 바라보다 션웨이 교수님을 만났다. 션 교수는 A에게 인사하며 자비로운 미소를 보였다. A는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션 교수의 웃는 얼굴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유전자학 심화 과정을 밟았어야 하는데,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미생물학을 선택했을까, 아이고, 아이고, 우리 교수님이 션 교수님 발끝만 가도 좋겠다, 아이고,... A가 짧은 인사를 건네고 발만 동동거리자 션 교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A학생, 여기까지 웬 일인가요? D교수님께 볼일이라도 있나요?

진심으로 염려하는 션 교수의 말투에 A는 차마 ‘고양이를 따라가느라 실험을 쨌어요.’ 라고 말할 수 없었다. 션 교수님께 자기와 함께 있었다고 거짓말 쳐 달라 부탁할까 했지만, 곧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자 바로 단념했다.

아, D 교수님께서 찾으셔서요. 사실 교수님이 실험실까지 찾아 오셨는데 제가 마침 자리를 비웠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직접 찾아 가고 있답니다.

최대한 밝은 미소를 지으며 A는 말했다. A는 자신의 말이 부정적이거나 비꼬는 것처럼 들리지 않기를 바랐다. 션 교수는 살짝 웃으며 성실한 학생이네요, 라고 대답했다. 어떻게 이런 분께 그런 불순한 생각을 할 수가 있어! 나쁜 나 자신! 나쁜 A! A는 자신을 벌주는 의미에서 직접 지도 교수님께 찾아가 사죄하기로 했다. 마침 션 교수님의 연구실이 지도교수님의 연구실 바로 옆이어서 둘은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다.

(놀랍게도) 란웨이 잡고 처음으로 쓴 글인데 영영 완성하지 않았다...

<고전 란웨이 - 원래 교류회 글,, 트위터에 올렸던 것입니다>

1

오랑캐와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고 돌아온 자오윈란은 대장군의 작위를 하사받음과 동시에 진혼령주의 직위를 잇게 되었다. 진혼령주는 핏줄에서 핏줄로 이어지는 유일무이한 자리였다. 만 년 전 진혼령이 체결되던 그 순간부터 수많은 생명을 거쳐 내려온 이름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딸에게 물려 주었고, 그 딸이 자라 어머니가 되면 자신의 딸에게 물려 주었고, 그 딸이 자라 어머니가 되어 자신의 아들에게 물려 주었고, 그 아들이 자라 아버지가 된 후 아들에게 물려 주었다. 진혼령주는 비밀스럽게 하나의 핏줄을 타고 전해져 왔다. 직위를 맡을 수 있는 신성한 피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해성은 진혼령의 존재를 최대한 알리지 않는 정책을 펼쳤기에 어쩔 수 없이 진혼령주는 은밀하게 전승될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 부모자식만큼 가깝고 사적인 관계는 또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진혼령주의 자리는 귀천과 관계없이 혈연을 매개로 세습되었다. 인간에서 인간으로 건너 온, 무겁고도 불가피한 자리였다.

자오윈란의 어머니는 진혼령주였다. 어머니는 자오윈란이 전장에서 적군의 목을 베고 심장을 찌르는 동안 자객에 의해 사살당했다.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 전쟁은 수년간 지속되어 왔고, 자오윈란의 아버지와 친족들을 삼켰다. 더 이상 가족의 피를 헛되이 흘릴 수 없었다. 그렇기에 자오윈란은 이 끔찍한 참상을 자신의 대에서 끝내고자 했다. 황제는 자오 장군의 타오르는 사기를 높이 샀다. 나라 전체를 뒤져도 자오윈란만한 장수를 또 찾을 수는 없을 터였다. 국고가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다. 황제의 명 하에 자오 가의 식솔들은 감히 자오윈란에게 모친의 죽음을 알릴 수 없었다.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대장군은 어머니의 죽음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어떤 적진의 용맹한 장수도 꿇리지 못한 무릎이었다. 자오윈란은 진혼령주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어머니의 마지막 흔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현재에는 그 의미가 대부분 퇴색되었지만, 진혼령주는 본래 진혼령을 수호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이름이었다. 세상 모든 일에 완벽이란 없다. 어떤 일이든 반드시 소수의 반대 의견이 존재하는 법이다. 모든 이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일 단 하나의 반기도 없이 만장일치로 성사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당연하디 당연한 진리이거나, 아니면 권력의 강제에 의한 것이다. 진혼령이 합의되었을 당시에도 해성 땅에는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기나긴 전쟁에 지치고 지쳤던 과거의 우두머리들은 모든 간언을 묵살했다. 지성인이 지성으로 돌아가고, 아수족인이 자연 속에 터를 잡을 때까지도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진혼령주는 진혼령을 지키는 자로서 그들을 남김없이 제거했다. 세 종족의 보여주기식 평화를 위해 물 밑에서 반대 세력을 와해시켰다. 어둠 속의 진혼령주는 온 몸에 피를 뒤집어썼고, 태양 아래의 권력층은 세 종족의 합일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선전했다. 무지한 백성들은 위대하신 폐하께서 모두가 만족하는 완전한 화평을 이룩해 냈다고 믿었다.

세 종족의 수장은 진혼령주의 행적을 부인하지 않았으나, 칭찬하지도 않았다. 제한하지도 않았고, 그저 묵인할 뿐이었다. 지상에는 지하로 내려가지 않은 채 진혼령에 저항하는 지성인이 잔존했다. 진혼령에 의거하면 해성인은 지성인을 해칠 수 없기에, 진혼령주는 그들을 지성에 직접 인계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해성과 지성의 연락책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해성인과 아수족인의 수장은 조용히 진혼령주의 일을 관조했다. 시간이 지나며 진혼령의 존재가 잊히고, 반대 세력 역시 극히 줄어 잠잠해졌다. 이에 따라 진혼령주의 역할은 지상과 지성을 연결하는 연락책으로 축소되었다. 진혼령 반대파에 대한 억압과 박해는 역사서에 기록되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도 않았다. 오직 해성과 지성, 아수족의 우두머리와 진혼령주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되었다.

해성에서 진혼령의 존재는 극비에 부쳐졌기에 진혼령주라는 이름 자체만으로 작위를 얻거나 관직에 오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뿌리가 적을 제거하는 것에 있어서인지, 무인 가문에는 진혼령주의 피가 섞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자오윈란의 어머니는 무인 집안의 외동딸이었고, 자오윈란은 장군이었다. 자오윈란의 아버지, 자오윈란의 할아버지, 자오윈란의 증조할아버지도 모두 나라에 충성을 바친 대장군이었다.

어머니는 하나 남은 아들에게 편지를 남겼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음에도 이런 날을 예상했다는 듯 자오윈란을 위한 서신을 남겼다. 본인이 진혼령주이며, 이 지위를 아들에게 넘긴다는 내용이었다. 세간에 만 년 전의 약속과 진혼령, 지성과 아수족의 존재는 알려진 바가 없으므로, 서신에는 이러한 사실들과 진혼령의 역사, 그리고 진혼령주의 역할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진혼령주의 일은 복잡하지 않았다. 지성에서 연락이 올 경우 어떤 방식으로든 바로 황제에게 알려야 하고, 황제가 지성에 연락을 취하려 할 경우 반드시 명을 따라야 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자오윈란은 어머니의 비밀이 놀라우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남편과 아들을 전장에 보내고 오랜 시간을 홀로 보낸 어머니가 미쳐 버린 것이 아닌가도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뒤, 황제의 부름을 받은 뒤 어머니의 편지가 모두 사실이었음을 깨달았다. 그제서야 자오윈란은 어머니가 평생 짊어지고 있던 비밀의 무게를 실감했다.

2

오랜 전쟁이 끝난 뒤 오랑캐와 화친을 맺었기에, 자오윈란은 수도에 머물렀다. 힘들여 얻은 평화였으나 그것을 만끽하지는 못했다. 경성에서는 변경과는 다른 종류의 전쟁이 언제나 사람들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친척들도 없는 집은 넓고 황량했다. 자오윈란은 군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렸고, 술을 자주 마셨으나 기루에는 발끝도 들이지 않았다. 그저 못다 한 집안일을 정리하고 무예를 닦으며 군영을 정비했다. 조정에는 매일같이 출석했으나 황제가 전쟁을 지겨워했을 뿐더러, 대장군의 군사력을 경계했기에 자오윈란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남편과 아들, 아들의 아내까지 잃은 할머님은 무인 가문의 자손답게 굳건하게 버텼다. 슬픔에 잠겨 있기는커녕 오히려 의연하게 집안을 돌보고, 자오윈란에게 다른 일은 신경 쓰지 말고 어서 장가나 들라며 타박했다. 대장군의 작위를 받고 난 후 매파 여럿이 장군부를 들락거렸으나 얻는 것은 없었다. 그토록 끝내고자 했던 전쟁이 끝나자 자오윈란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저 정처 없이 시간의 흐름 속에 몸을 맡길 뿐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중 자오윈란이 가장 즐거워하는 소일거리는 외곽 순찰이었다. 북적거리는 시내에서 벗어나 숲을 가로지르고 나무 사이를 걷노라면 때묻지 않은 바람이 몸 속 깊은 곳까지 들어와 살랑거렸다. 그제서야 숨통이 트였다. 전장 생활을 오래 지속하다 보니 황량한 벌판에 서 있을 때에야 마음이 편했다. 웃기는 일이었다. 본래 순찰은 2인 1조가 원칙이지만, 눈치 빠른 자오윈란의 수하들은 저희들의 장군이 혼자 숲길을 걷도록 내버려 두었다. 매일 반복해서 거니는 숲길이기에 자오윈란은 눈을 감고도 길을 잃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눈을 감자 익숙한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발 밑에서 나뭇잎이 기분 좋게 바스라졌고, 산뜻한 흙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한 발짝, 두 발짝, 자연을 거닐며 눈을 감자 평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자오윈란을 위로했다. 크게 숨을 들이쉬려는 순간 오른발이 허공을 딛었고,

“으악!”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자오윈란은 정체 모를 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3

“…이보시오, 정신 좀 차려 보시오!”

“…으음, 여기가 어디야.”

“눈을 떴군요, 다행입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희미한 빛이 자오윈란의 눈동자를 다독였다. 주변이 이상하리만큼 어두웠다. 달조차 구름에 가려진 밤, 횃불 하나에 의지해 낯선 산을 넘었을 때에도 이 정도로 어둡지는 않았다. 눈을 몇 번이고 깜빡이고 나서야 흐리던 시야가 또렷해졌다. 그제서야 자오윈란은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의 주인이 난생 처음 보는 미인임을 자각했다. 꿈에서 늘 그렸기에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이런 얼굴을 이전에 본 적이 있다면 잊을 리가 없지 않은가. 자오윈란은 일부러 곡소리를 내며 아픈 척을 했다.

“아이고야, 아이고. 아주 허리고 엉덩이고 안 쑤신 구석이 없소.”

미인의 고운 미간이 좁아졌다. 그럴 리가 없는데… 미인이 중얼거렸다. 자오윈란은 음흉한 웃음을 삼키며 미인의 미간을 문질렀다. 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심각하게 무언가 생각하다, 자오윈란의 몸을 홱 뒤집었다.

뒷내용은 나중에 따로 올리겠습니다,,, 썰도 정리해서 올릴 예정이라

그러나 영원히 올리지 않았다…

<'내남자친구는염라왕.txt'라는 제목으로 올라갈 예정이었던 한천부생>

혹자는 나부생이 머리보다 몸이 먼저 튀어나가는 본능의존형 인물이라 평하겠지만, 나부생 본인은 자신이 아주 생각이 많고 사려깊고 세심한 편이라고 자부했다. 내가 별 생각 없이 그러고 다니는 것 같겠지만, 어? 나름 다 적절하게 안배해서, 하나하나 계산해서, 어? 그, 뭐시기, 그러는 거라고! 쾅! 나부생이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말했다. 덜컹! 탁자가 흔들리며 탁자 위의 찻물이 쏟아졌다. 동강의 그 누구보다도 머릿속이 복잡하신 염라왕께서는 최근 말 못할 사정으로 골머리를 앓고 계셨다.

설마 내가?

“나부생씨, 좋은 아침입니다.”

정말로, 내가?

“으응, 좋은 아침.”

진짜 저 새끼 좋아하나...?

너무 짧지만... 뒷내용이 정해져 있어서(?) 걍 여기에 올립니다,,,

아래는 제가 뒷내용을 쓰려고 메모해 둔 것입니다...

대충 2000년대 인소같은 한천부생 보고싶었음,,,

동강생활도 어느새 일년이 다 되어가는 한천 형사.. 그리고 그의 옆에 누워 하루일과를 함께 시작하고 끝내는 사랑스런 연인은 바로 동가의 염라왕?!?!

그들은 이런 관계가 될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나부생과 한천이 처음 만난 건 어느 봄날, 동강 시내에서였다. (나부생이 또 뭔가 범죄 비슷한 걸 저지름) 나부생이 한천에게 한 첫 마디는 이것이었다.

“나한테 수갑 채운 남자는 니가 처음이야.”

그러니까.. 그기 바로 조심해야 한다던 ‘염라왕’이었던 것이다. 이후 나부생은 한천이 눈에 보일 때마다 손목을 들어 보이며 “한 경관! 나 손목 아직도 시리다!”라고 외쳐댔다. 동강은 좁으면서도 넓었다. 하루는 경찰 오토바이가 고장난 탓에 한천이 나부생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동강을 가로질렀는데, 이 사건 이후로 온 동강에 한천과 나부생이 사귄다는 소문이 퍼졌다. 한천은 지나갈 때마다 이당주 남편 되시는 분이라며 인사를 받았고, 도망가던 범죄자마저 쫓는 형사가 한천임을 확인하면 도망을 멈추고 제 발로 경찰차에 올라탔다. 한천은 아무리 부인해도 다들 ‘내숭떨지말라’는 반응을 보여 속이 터졌다. 하루온종일 나부생 남편 취급에 빡쳐있던 한천은 퇴근길에 드디어 나부생을 발견했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따졌다. 나부생 역시 표정이 좋지 않았다.

동강의 모든 소문은 뒷골목의 왕인 홍정보의 귀에 들어갔고, 나부생은 아침댓바람부터 호출을 받아 홍가로 가보니 홍정보가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무슨 일 때문인지 헤아려 보며 나부생은 그의 옆에 앉았고, 굳게 닫혀 있던 홍정보의 입이 열린다.

“네가 교제를 시작했단 말을 들었다. 아무리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다지만 경찰..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 말단은 너무하지 않니?”

“네? 교제요?”

답지않게 멍청한 대답을 해버린 나부생..

“제가요? 젊은 경찰 누구요? 허성정이요?”

“오리발 내밀지 말거라. 내가 동강에 심어둔 눈을 의심하는 게야? 한천이라는 놈팽이가 어제 너와 밀회를 가지는 걸 온 동강 사람들이 다 봤다.”

“네? 밀회요?”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너와 내 위치를 생각해라. 홍가가 스캔들에 휘말리는 건 싫다. 우습게 보일 것 아니냐.”

“네.. 의부. 조심하겠습니다.”

그렇게 겨우 물러난 나부생은 홍란에게 붙잡혔고, 홍란은 나부생을 묶어서 가둔 채 심문했다.

“도대체 그 불여시를 어디서 만난 거야? 걔가 꼬셨지? 순진한 우리 부생 오빠.. 자. 어서 그 놈이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얘기해.”

나부생은 할 말이 없었고.. 버티고 버티다 임 형님이 란란에게 영화 보러 가자 한 후에야 몰래 탈출했다. 그러던 와중에 한천을 만났고, 나부생은 한동안 연인처럼 지내야 할 것 같다 미안하다 부탁한다. 와중에 한천의 눈에 묶여 있느라 빨개진 나부생의 손목이 들어온다.

그렇게.. 그날부터.. 동강 공식 커플 생활이 시작되고.. 점점 정들어서... 찐으로 사귀게 된다. (각종 인소같은 상황 나열 후 얼렁뚱땅 사귀는 장면 쓰기... “나부생씨, 나랑 정말 사귈래요?” / “나랑 이러는 거 싫은 거 아니었어요?” / “묻는 말에 대답 먼저 해요.” / “난... 좋아요.” 나부생은 한천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다.. 수갑 채웠을 때부터.. 근데 곧 떠날 사람이라고 자기 만나서 좋은 거 없다 생각해서 플러팅 안 함.) 요즘에는 어른들이 자꾸 결혼하라고 성화여서 고민.

인소적 모먼트 1) 나부생 옷 걸치고 다니니까 한천 얼굴 모르던 놈들도 어..? 하기 2) 나부생 남친이라는 이유로 불량배들이 으슥한 골목에서 한천 몰아세우니까 갑자기 나부생 나타나서 딴데 가 있으라 하기. 백 초 세라고 하기. 3) 홍란의 한천 괴롭히기 프로젝트.. (타격감 제로) 4) 신지아가 나부생 살해위협하는 거 5) 나부생이랑 어쩌다 어두운데에 갇혀서.. 과거털이하는 부생이 6) 잠 잘 못 자니까 내가 옆에 있어 줄게요.. 이런 거.. 아 좀 더 엄청나게 인소스러운 무언가가 필요한데.. 첫키스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랑 하려고 남겨둔 나부생...

어느날 평소처럼 지나가던 한천에게 “한 경관, 좋은 아침!” 하며 웃어주는 나부생 보며 저절로 미소 지어지는 거 깨닫고 어라, 언제부터 이랬지? 하면서 사랑 깨닫는 한천.. 나부생은 평소랑 똑같은데 한천 자꾸 나부생 얼굴 볼 때마다 설레서 좀 피하다가 결국 못 참고 고백하는 거... “좋아합니다. 나부생씨의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연기이고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랑하고 있습니다.” / “나는 언제나 진심이었어요, 한천.”

혼자 짝사랑한다고 생각해서 고뇌하는 나부생.. 자꾸 한천의 행동들 보면 자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혼란스러운 나부생.. 심장 뛰어서 곤란한 나부생.. ~ 지난 일 회상 ~ 부끄러워서 피하고 다님 ~ 홍정보가 나부생한테 슬슬 결혼하라고 함 ~ 한천한테 말함 ~ 그래 합시다! / 너는 결혼이 쉽니?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랑 해야 하는 거야, 결혼은. 사람 속도 모르고 진짜.. / 진짜 사랑해서 하자고 한 건데요. / 뭐..? ~ 그러니까.. 착각이 아니라 한천이 진짜로 나부생 좋아하는 거였다 –끝-

제가 글 쓰려고 대충 적어둔 거라 많이 혼란스럽네요...

근데 저도 과거의 제가 무슨 의도로 이렇게 써 둔 건지 몰라서 수정을 못하겠네요...

폴더 정리하다가 영영 완성 안할 것 같은 글들이 보여서 업로드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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