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입 외

피그말리온의 초상

[커미션] 외관&성격&서사 요약

Portrait of Pygmalion

◇*.

주인공은 이쪽이 아니다.

⭑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을 가진 평범한 동양인 남성이다. 동양 국가의 길거리를 걷다가 한두 번쯤 마주쳤을 법한 흔한 인상. 그것이 본인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조금 이른 나이부터 귀에 피어싱을 박았다. 덕분에 날렵한 눈매와 더불어 날티나는 분위기가 묻어나는데, 이후에 구멍을 몇 개 더 뚫은 것으로 보아 제법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한때는 온갖 피어싱이 양 귀에 가득했지만, 이제는 많이 줄이고 셋만 남겼다. 왼쪽 귓바퀴에 하나, 귓불에 두 개. 나름대로 꼼꼼히 관리하고 있다. 일단은, 생각날 때마다.

⭑ 목 왼쪽에 점이 하나 있다. 꽤 진해서, 빼는 시술을 받을까도 오래 고민했지만 결국에는 내버려 두기로 했다. 어린 시절 깊이 아끼던 어느 인연이 먼저 알아봐 준 특징이었다. 지우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면, 이제는 여자가 된 그 소녀가 이것을 징표로 다시 저를 찾아내 줄까 싶어서.


◇*.

ISTP - T / 만능 재주꾼

⭑내향(I)–감각(S)–사고(T)–인식(P)형. 호기심이 많고 특히 사건의 인과관계에 흥미를 보인다.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만 속을 드러내는 탓에 흔히 냉소적이고 차가운 이미지로 비치기도.

⭑ 예민형(-T). 자기확신형(-A)에 비해 주위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부류. 대체로 완벽주의자의 성향이 있다.

방어적인

⭑ 예민하고 날카롭다. 약간의 피해 망상이 있다. 별 의도가 담기지 않은 말도 자기를 향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기 일쑤라. 냉혹한 세계와 잔인한 인간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매사에 스스로 변호하는 사람이 되었다.

자기파괴적인

⭑ 방어적인 동시에 자기파괴적인 성향, 외부로부터 그토록 지키고자 한 자신을 제 손으로 무너뜨리려는 기질. 다치고 싶지 않다는 본능적인 생존 의지와, 스스로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는 낮은 자존감이 공존했다. 모순적이라 불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다미는 계속 그렇게 살았다.


◇*. 好意

네가 내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 사람은 종종 자기 감정을 인식하지 못한다. 나이가 어릴수록 더욱 그렇다. 구설하와 처음 어울릴 무렵의 우다미가 딱 그런 경우였다. 우다미, 호감의 정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자잘한 장난으로 구설하를 힘들게 했다.  같은 반에 배정되고, 수업시간에 교외에서 마주친 것을 계기로 금세 그만두었지만. 학년이 올라가며 반이 바뀌어 자연스레 사이가 멀어지기 전까지. 우다미, 가정폭력이 있을 때마다 구설하에게 의존했다. 집을 나와서 구설하네에서 묵는 일도 잦았다.

◇*. 悔改

네가 믿는 신이 나도 용서해 줄까?

⭑ 우다미, 어머니의 자살 현장을 목격했다. 고작 열둘의 나이였다. 우다미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친구인 구설하뿐이었다. 엉망진창의 얼굴, 망가진 마음으로 위로를 갈망하는 우다미에게 구설하, 담담하게 고백했다. 사실 나도 신 같은 거 안 믿어. 

◇*. 穩情

이게 웃겨서가 아니라, 참.

⭑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의 가정폭력은 우다미를 향했다. 쌓인 불행과 분노는 다시 바깥을 향했다. 백부에게 거둬질 무렵 우다미는 이미 학교에서도 손 놓은 문제아였다. 조카를 잘 길러 보려던 남자는 결국 방법을 찾지 못하고 손을 올렸다. 부어오른 뺨을 움켜쥐고 우다미, 얼굴을 찡그리며 웃었다.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타고 오르는 기분의 정체를 알았다. 분명한 안도감이었다. 

◇*. 戀心

네가 실망할 거라고 생각했어서.

⭑ 고등학교에서 구설하를 다시 만났다. 도내에 소문난 문제아와 조용하고 나긋한 모범생. 우다미, 구설하에게 자기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구설하, 우다미를 발견한 후 스스럼없이 접근했다. 세상에는 아무리 벗어나려 들어도 떨쳐낼 수 없는 인연이란 게 존재한다. 우다미, 짝사랑을 자각했다. 

◇*. 국화 水菊花

변하지 않아야 할 마음이지.

⭑ 초등학생 시절 이후 처음으로, 우다미, 구설하의 집을 방문했다. 편찮으신 조모님의 침실을 지나, 식물과 다친 길가 동물로 가득한 방을 목격했다. 작고 가여운 것들을 돌보는 행위. 착한 심성으로 포장하기에는 그 뒤에 숨겨진 마음이 찜찜해 우다미, 얼굴을 찡그렸다. 구설하, 자연스럽게 꽃병을 들어 물을 갈았다. 붉은 수국을 꽂으며, 꽃말은 진실된 사랑이야. 건네진 꽃병을 우다미,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구설하는 이어서 하얀 수국을 집어들며. 이건, 변심.

◇*. 穩道

그렇게 말하면 나는 정말 기대하는데.

⭑ 연락이 끊겼던 아버지의 지원으로 우다미, 미대 입시를 시작했다. 그림이 좋다는 구설하의 말이 발단이었다. 수험생 때에는 하도 붙어 다닌 까닭에 둘이 사귀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다. 당당하게 나선 쪽은 오히려 구설하였다. 그렇다면 어쩔 건데? 우다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붙잡힌 손의 체온만 따뜻했다.

◇*. 約束

나도 네가 기르던 다친 동물이었니?

⭑ 우다미는 입시에 실패하고 구설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한국 사회에서 스물이란 많은 것이 헤어지는 갈림길인 탓에. 우다미가 몇 번을 대입에 도전하는 동안, 구설하의 조모 장례식이 둘이 만난 유일한 순간이었다. 우다미, 삼수에 실패하고 세 해만에 만난 구설하에게 분풀이했다. 구설하, 우다미가 던진 붓에 얼굴을 긁히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사랑한다면 차라리 같이 죽어 주라. 대답은 없었다.

◇*. 沈默

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 우다미, 입시를 포기하고 공장에나 취직했다. 연락이 되지 않던 동안 마음을 추스르고, 많이 안정된 상태로 구설하를 방문했다. 구설하,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정하게 우다미를 맞았다. 모두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지만 아무에게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신을 속이고, 서로를 속이고, 세상을 속였다. 연애를 시작했다.

◇*. 履行

네가 같이 죽어 달라고 했잖아.

⭑ 여행 이튿날의 새벽, 부서지는 달빛을 온몸으로 맞으며 구설하, 우다미를 기다렸다. 시린 바닷물에 다리를 담그고, 양 팔을 활짝 벌려 저를 부르는 연인. 어느 누가 무시할 수 있을까. 우다미, 옷을 적시는 차가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그 품에 가득 안겼다.

◇*. 낙원 不定

네가 죽지 않았다고 말해.

⭑ 둘이 바다에 몸을 던졌다. 하나는 죽고 하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려 헤엄쳐 나왔다. 구설하의 유언장에는 부러진 붓 한 자루가 함께 있었다. 도저히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병실에 찾아온 구설하에게 우다미가 던진 것. 구설하의 얼굴을 스치고 벽에 부딪쳐 두 동강 난 물건. 그제야 현실이 실감이 났다. 그러나 믿고 싶지 않았다. 우다미, 구설하의 죽음을 부정하며 정신병 증세를 보였다. 마스킹테이프를 몇 번이고 감아 이어붙인 붓으로 구설하의 실낙원을 그렸다. 

*. 終点

오로지 단 한 사람을 담아서.

⭑ 구설하의 얼굴을 한 성녀. 이름은 엑스, 막 태어났을 때 얼굴에 가위표가 그어졌으므로. 그가 우다미의 갈라테이아, 가장 완벽한 여자를 빚은 대리석 조각상이었다. 종이 안에 세워 놓고 죽도록 사랑했다. 그가 구설하인 것처럼, 구설하가 살아서 거기 있는 것처럼. 이 꿈 같은 세계는 영원할 것이다. 우다미가 마침내 구설하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그리하여 구설하가 진정으로 죽기 전까지는.◇*. 好意

네가 내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 사람은 종종 자기 감정을 인식하지 못한다. 나이가 어릴수록 더욱 그렇다. 구설하와 처음 어울릴 무렵의 우다미가 딱 그런 경우였다. 우다미, 호감의 정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자잘한 장난으로 구설하를 힘들게 했다.  같은 반에 배정되고, 수업시간에 교외에서 마주친 것을 계기로 금세 그만두었지만. 학년이 올라가며 반이 바뀌어 자연스레 사이가 멀어지기 전까지. 우다미, 가정폭력이 있을 때마다 구설하에게 의존했다. 집을 나와서 구설하네에서 묵는 일도 잦았다.

◇*. 悔改

네가 믿는 신이 나도 용서해 줄까?

⭑ 우다미, 어머니의 자살 현장을 목격했다. 고작 열둘의 나이였다. 우다미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친구인 구설하뿐이었다. 엉망진창의 얼굴, 망가진 마음으로 위로를 갈망하는 우다미에게 구설하, 담담하게 고백했다. 사실 나도 신 같은 거 안 믿어. 

◇*. 穩情

이게 웃겨서가 아니라, 참.

⭑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의 가정폭력은 우다미를 향했다. 쌓인 불행과 분노는 다시 바깥을 향했다. 백부에게 거둬질 무렵 우다미는 이미 학교에서도 손 놓은 문제아였다. 조카를 잘 길러 보려던 남자는 결국 방법을 찾지 못하고 손을 올렸다. 부어오른 뺨을 움켜쥐고 우다미, 얼굴을 찡그리며 웃었다.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타고 오르는 기분의 정체를 알았다. 분명한 안도감이었다. 

◇*. 戀心

네가 실망할 거라고 생각했어서.

⭑ 고등학교에서 구설하를 다시 만났다. 도내에 소문난 문제아와 조용하고 나긋한 모범생. 우다미, 구설하에게 자기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구설하, 우다미를 발견한 후 스스럼없이 접근했다. 세상에는 아무리 벗어나려 들어도 떨쳐낼 수 없는 인연이란 게 존재한다. 우다미, 짝사랑을 자각했다. 

◇*. 국화 水菊花

변하지 않아야 할 마음이지.

⭑ 초등학생 시절 이후 처음으로, 우다미, 구설하의 집을 방문했다. 편찮으신 조모님의 침실을 지나, 식물과 다친 길가 동물로 가득한 방을 목격했다. 작고 가여운 것들을 돌보는 행위. 착한 심성으로 포장하기에는 그 뒤에 숨겨진 마음이 찜찜해 우다미, 얼굴을 찡그렸다. 구설하, 자연스럽게 꽃병을 들어 물을 갈았다. 붉은 수국을 꽂으며, 꽃말은 진실된 사랑이야. 건네진 꽃병을 우다미,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구설하는 이어서 하얀 수국을 집어들며. 이건, 변심.

◇*. 穩道

그렇게 말하면 나는 정말 기대하는데.

⭑ 연락이 끊겼던 아버지의 지원으로 우다미, 미대 입시를 시작했다. 그림이 좋다는 구설하의 말이 발단이었다. 수험생 때에는 하도 붙어 다닌 까닭에 둘이 사귀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다. 당당하게 나선 쪽은 오히려 구설하였다. 그렇다면 어쩔 건데? 우다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붙잡힌 손의 체온만 따뜻했다.

◇*. 約束

나도 네가 기르던 다친 동물이었니?

⭑ 우다미는 입시에 실패하고 구설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한국 사회에서 스물이란 많은 것이 헤어지는 갈림길인 탓에. 우다미가 몇 번을 대입에 도전하는 동안, 구설하의 조모 장례식이 둘이 만난 유일한 순간이었다. 우다미, 삼수에 실패하고 세 해만에 만난 구설하에게 분풀이했다. 구설하, 우다미가 던진 붓에 얼굴을 긁히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사랑한다면 차라리 같이 죽어 주라. 대답은 없었다.

◇*. 沈默

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 우다미, 입시를 포기하고 공장에나 취직했다. 연락이 되지 않던 동안 마음을 추스르고, 많이 안정된 상태로 구설하를 방문했다. 구설하,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정하게 우다미를 맞았다. 모두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지만 아무에게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신을 속이고, 서로를 속이고, 세상을 속였다. 연애를 시작했다.

◇*. 履行

네가 같이 죽어 달라고 했잖아.

⭑ 여행 이튿날의 새벽, 부서지는 달빛을 온몸으로 맞으며 구설하, 우다미를 기다렸다. 시린 바닷물에 다리를 담그고, 양 팔을 활짝 벌려 저를 부르는 연인. 어느 누가 무시할 수 있을까. 우다미, 옷을 적시는 차가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그 품에 가득 안겼다.

◇*. 낙원 不定

네가 죽지 않았다고 말해.

⭑ 둘이 바다에 몸을 던졌다. 하나는 죽고 하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려 헤엄쳐 나왔다. 구설하의 유언장에는 부러진 붓 한 자루가 함께 있었다. 도저히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병실에 찾아온 구설하에게 우다미가 던진 것. 구설하의 얼굴을 스치고 벽에 부딪쳐 두 동강 난 물건. 그제야 현실이 실감이 났다. 그러나 믿고 싶지 않았다. 우다미, 구설하의 죽음을 부정하며 정신병 증세를 보였다. 마스킹테이프를 몇 번이고 감아 이어붙인 붓으로 구설하의 실낙원을 그렸다. 

*. 終点

오로지 단 한 사람을 담아서.

⭑ 구설하의 얼굴을 한 성녀. 이름은 엑스, 막 태어났을 때 얼굴에 가위표가 그어졌으므로. 그가 우다미의 갈라테이아, 가장 완벽한 여자를 빚은 대리석 조각상이었다. 종이 안에 세워 놓고 죽도록 사랑했다. 그가 구설하인 것처럼, 구설하가 살아서 거기 있는 것처럼. 이 꿈 같은 세계는 영원할 것이다. 우다미가 마침내 구설하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그리하여 구설하가 진정으로 죽기 전까지는.◇*. 好意

네가 내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 사람은 종종 자기 감정을 인식하지 못한다. 나이가 어릴수록 더욱 그렇다. 구설하와 처음 어울릴 무렵의 우다미가 딱 그런 경우였다. 우다미, 호감의 정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자잘한 장난으로 구설하를 힘들게 했다.  같은 반에 배정되고, 수업시간에 교외에서 마주친 것을 계기로 금세 그만두었지만. 학년이 올라가며 반이 바뀌어 자연스레 사이가 멀어지기 전까지. 우다미, 가정폭력이 있을 때마다 구설하에게 의존했다. 집을 나와서 구설하네에서 묵는 일도 잦았다.

◇*. 悔改

네가 믿는 신이 나도 용서해 줄까?

⭑ 우다미, 어머니의 자살 현장을 목격했다. 고작 열둘의 나이였다. 우다미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친구인 구설하뿐이었다. 엉망진창의 얼굴, 망가진 마음으로 위로를 갈망하는 우다미에게 구설하, 담담하게 고백했다. 사실 나도 신 같은 거 안 믿어. 

◇*. 穩情

이게 웃겨서가 아니라, 참.

⭑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의 가정폭력은 우다미를 향했다. 쌓인 불행과 분노는 다시 바깥을 향했다. 백부에게 거둬질 무렵 우다미는 이미 학교에서도 손 놓은 문제아였다. 조카를 잘 길러 보려던 남자는 결국 방법을 찾지 못하고 손을 올렸다. 부어오른 뺨을 움켜쥐고 우다미, 얼굴을 찡그리며 웃었다.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타고 오르는 기분의 정체를 알았다. 분명한 안도감이었다. 

◇*. 戀心

네가 실망할 거라고 생각했어서.

⭑ 고등학교에서 구설하를 다시 만났다. 도내에 소문난 문제아와 조용하고 나긋한 모범생. 우다미, 구설하에게 자기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구설하, 우다미를 발견한 후 스스럼없이 접근했다. 세상에는 아무리 벗어나려 들어도 떨쳐낼 수 없는 인연이란 게 존재한다. 우다미, 짝사랑을 자각했다. 

◇*. 국화 水菊花

변하지 않아야 할 마음이지.

⭑ 초등학생 시절 이후 처음으로, 우다미, 구설하의 집을 방문했다. 편찮으신 조모님의 침실을 지나, 식물과 다친 길가 동물로 가득한 방을 목격했다. 작고 가여운 것들을 돌보는 행위. 착한 심성으로 포장하기에는 그 뒤에 숨겨진 마음이 찜찜해 우다미, 얼굴을 찡그렸다. 구설하, 자연스럽게 꽃병을 들어 물을 갈았다. 붉은 수국을 꽂으며, 꽃말은 진실된 사랑이야. 건네진 꽃병을 우다미,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구설하는 이어서 하얀 수국을 집어들며. 이건, 변심.

◇*. 穩道

그렇게 말하면 나는 정말 기대하는데.

⭑ 연락이 끊겼던 아버지의 지원으로 우다미, 미대 입시를 시작했다. 그림이 좋다는 구설하의 말이 발단이었다. 수험생 때에는 하도 붙어 다닌 까닭에 둘이 사귀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다. 당당하게 나선 쪽은 오히려 구설하였다. 그렇다면 어쩔 건데? 우다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붙잡힌 손의 체온만 따뜻했다.

◇*. 約束

나도 네가 기르던 다친 동물이었니?

⭑ 우다미는 입시에 실패하고 구설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한국 사회에서 스물이란 많은 것이 헤어지는 갈림길인 탓에. 우다미가 몇 번을 대입에 도전하는 동안, 구설하의 조모 장례식이 둘이 만난 유일한 순간이었다. 우다미, 삼수에 실패하고 세 해만에 만난 구설하에게 분풀이했다. 구설하, 우다미가 던진 붓에 얼굴을 긁히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사랑한다면 차라리 같이 죽어 주라. 대답은 없었다.

◇*. 沈默

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 우다미, 입시를 포기하고 공장에나 취직했다. 연락이 되지 않던 동안 마음을 추스르고, 많이 안정된 상태로 구설하를 방문했다. 구설하,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정하게 우다미를 맞았다. 모두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지만 아무에게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신을 속이고, 서로를 속이고, 세상을 속였다. 연애를 시작했다.

◇*. 履行

네가 같이 죽어 달라고 했잖아.

⭑ 여행 이튿날의 새벽, 부서지는 달빛을 온몸으로 맞으며 구설하, 우다미를 기다렸다. 시린 바닷물에 다리를 담그고, 양 팔을 활짝 벌려 저를 부르는 연인. 어느 누가 무시할 수 있을까. 우다미, 옷을 적시는 차가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그 품에 가득 안겼다.

◇*. 낙원 不定

네가 죽지 않았다고 말해.

⭑ 둘이 바다에 몸을 던졌다. 하나는 죽고 하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려 헤엄쳐 나왔다. 구설하의 유언장에는 부러진 붓 한 자루가 함께 있었다. 도저히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병실에 찾아온 구설하에게 우다미가 던진 것. 구설하의 얼굴을 스치고 벽에 부딪쳐 두 동강 난 물건. 그제야 현실이 실감이 났다. 그러나 믿고 싶지 않았다. 우다미, 구설하의 죽음을 부정하며 정신병 증세를 보였다. 마스킹테이프를 몇 번이고 감아 이어붙인 붓으로 구설하의 실낙원을 그렸다. 

*. 終点

오로지 단 한 사람을 담아서.

⭑ 구설하의 얼굴을 한 성녀. 이름은 엑스, 막 태어났을 때 얼굴에 가위표가 그어졌으므로. 그가 우다미의 갈라테이아, 가장 완벽한 여자를 빚은 대리석 조각상이었다. 종이 안에 세워 놓고 죽도록 사랑했다. 그가 구설하인 것처럼, 구설하가 살아서 거기 있는 것처럼. 이 꿈 같은 세계는 영원할 것이다. 우다미가 마침내 구설하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그리하여 구설하가 진정으로 죽기 전까지는.◇*. 好意

네가 내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 사람은 종종 자기 감정을 인식하지 못한다. 나이가 어릴수록 더욱 그렇다. 구설하와 처음 어울릴 무렵의 우다미가 딱 그런 경우였다. 우다미, 호감의 정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자잘한 장난으로 구설하를 힘들게 했다.  같은 반에 배정되고, 수업시간에 교외에서 마주친 것을 계기로 금세 그만두었지만. 학년이 올라가며 반이 바뀌어 자연스레 사이가 멀어지기 전까지. 우다미, 가정폭력이 있을 때마다 구설하에게 의존했다. 집을 나와서 구설하네에서 묵는 일도 잦았다.

◇*. 悔改

네가 믿는 신이 나도 용서해 줄까?

⭑ 우다미, 어머니의 자살 현장을 목격했다. 고작 열둘의 나이였다. 우다미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친구인 구설하뿐이었다. 엉망진창의 얼굴, 망가진 마음으로 위로를 갈망하는 우다미에게 구설하, 담담하게 고백했다. 사실 나도 신 같은 거 안 믿어. 

◇*. 穩情

이게 웃겨서가 아니라, 참.

⭑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의 가정폭력은 우다미를 향했다. 쌓인 불행과 분노는 다시 바깥을 향했다. 백부에게 거둬질 무렵 우다미는 이미 학교에서도 손 놓은 문제아였다. 조카를 잘 길러 보려던 남자는 결국 방법을 찾지 못하고 손을 올렸다. 부어오른 뺨을 움켜쥐고 우다미, 얼굴을 찡그리며 웃었다.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타고 오르는 기분의 정체를 알았다. 분명한 안도감이었다. 

◇*. 戀心

네가 실망할 거라고 생각했어서.

⭑ 고등학교에서 구설하를 다시 만났다. 도내에 소문난 문제아와 조용하고 나긋한 모범생. 우다미, 구설하에게 자기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구설하, 우다미를 발견한 후 스스럼없이 접근했다. 세상에는 아무리 벗어나려 들어도 떨쳐낼 수 없는 인연이란 게 존재한다. 우다미, 짝사랑을 자각했다. 

◇*. 국화 水菊花

변하지 않아야 할 마음이지.

⭑ 초등학생 시절 이후 처음으로, 우다미, 구설하의 집을 방문했다. 편찮으신 조모님의 침실을 지나, 식물과 다친 길가 동물로 가득한 방을 목격했다. 작고 가여운 것들을 돌보는 행위. 착한 심성으로 포장하기에는 그 뒤에 숨겨진 마음이 찜찜해 우다미, 얼굴을 찡그렸다. 구설하, 자연스럽게 꽃병을 들어 물을 갈았다. 붉은 수국을 꽂으며, 꽃말은 진실된 사랑이야. 건네진 꽃병을 우다미,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구설하는 이어서 하얀 수국을 집어들며. 이건, 변심.

◇*. 穩道

그렇게 말하면 나는 정말 기대하는데.

⭑ 연락이 끊겼던 아버지의 지원으로 우다미, 미대 입시를 시작했다. 그림이 좋다는 구설하의 말이 발단이었다. 수험생 때에는 하도 붙어 다닌 까닭에 둘이 사귀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다. 당당하게 나선 쪽은 오히려 구설하였다. 그렇다면 어쩔 건데? 우다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붙잡힌 손의 체온만 따뜻했다.

◇*. 約束

나도 네가 기르던 다친 동물이었니?

⭑ 우다미는 입시에 실패하고 구설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한국 사회에서 스물이란 많은 것이 헤어지는 갈림길인 탓에. 우다미가 몇 번을 대입에 도전하는 동안, 구설하의 조모 장례식이 둘이 만난 유일한 순간이었다. 우다미, 삼수에 실패하고 세 해만에 만난 구설하에게 분풀이했다. 구설하, 우다미가 던진 붓에 얼굴을 긁히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사랑한다면 차라리 같이 죽어 주라. 대답은 없었다.

◇*. 沈默

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 우다미, 입시를 포기하고 공장에나 취직했다. 연락이 되지 않던 동안 마음을 추스르고, 많이 안정된 상태로 구설하를 방문했다. 구설하,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정하게 우다미를 맞았다. 모두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지만 아무에게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신을 속이고, 서로를 속이고, 세상을 속였다. 연애를 시작했다.

◇*. 履行

네가 같이 죽어 달라고 했잖아.

⭑ 여행 이튿날의 새벽, 부서지는 달빛을 온몸으로 맞으며 구설하, 우다미를 기다렸다. 시린 바닷물에 다리를 담그고, 양 팔을 활짝 벌려 저를 부르는 연인. 어느 누가 무시할 수 있을까. 우다미, 옷을 적시는 차가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그 품에 가득 안겼다.

◇*. 낙원 不定

네가 죽지 않았다고 말해.

⭑ 둘이 바다에 몸을 던졌다. 하나는 죽고 하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려 헤엄쳐 나왔다. 구설하의 유언장에는 부러진 붓 한 자루가 함께 있었다. 도저히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병실에 찾아온 구설하에게 우다미가 던진 것. 구설하의 얼굴을 스치고 벽에 부딪쳐 두 동강 난 물건. 그제야 현실이 실감이 났다. 그러나 믿고 싶지 않았다. 우다미, 구설하의 죽음을 부정하며 정신병 증세를 보였다. 마스킹테이프를 몇 번이고 감아 이어붙인 붓으로 구설하의 실낙원을 그렸다. 

*. 終点

오로지 단 한 사람을 담아서.

⭑ 구설하의 얼굴을 한 성녀. 이름은 엑스, 막 태어났을 때 얼굴에 가위표가 그어졌으므로. 그가 우다미의 갈라테이아, 가장 완벽한 여자를 빚은 대리석 조각상이었다. 종이 안에 세워 놓고 죽도록 사랑했다. 그가 구설하인 것처럼, 구설하가 살아서 거기 있는 것처럼. 이 꿈 같은 세계는 영원할 것이다. 우다미가 마침내 구설하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그리하여 구설하가 진정으로 죽기 전까지는.◇*. 好意

네가 내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 사람은 종종 자기 감정을 인식하지 못한다. 나이가 어릴수록 더욱 그렇다. 구설하와 처음 어울릴 무렵의 우다미가 딱 그런 경우였다. 우다미, 호감의 정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자잘한 장난으로 구설하를 힘들게 했다.  같은 반에 배정되고, 수업시간에 교외에서 마주친 것을 계기로 금세 그만두었지만. 학년이 올라가며 반이 바뀌어 자연스레 사이가 멀어지기 전까지. 우다미, 가정폭력이 있을 때마다 구설하에게 의존했다. 집을 나와서 구설하네에서 묵는 일도 잦았다.

◇*. 悔改

네가 믿는 신이 나도 용서해 줄까?

⭑ 우다미, 어머니의 자살 현장을 목격했다. 고작 열둘의 나이였다. 우다미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친구인 구설하뿐이었다. 엉망진창의 얼굴, 망가진 마음으로 위로를 갈망하는 우다미에게 구설하, 담담하게 고백했다. 사실 나도 신 같은 거 안 믿어. 

◇*. 穩情

이게 웃겨서가 아니라, 참.

⭑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의 가정폭력은 우다미를 향했다. 쌓인 불행과 분노는 다시 바깥을 향했다. 백부에게 거둬질 무렵 우다미는 이미 학교에서도 손 놓은 문제아였다. 조카를 잘 길러 보려던 남자는 결국 방법을 찾지 못하고 손을 올렸다. 부어오른 뺨을 움켜쥐고 우다미, 얼굴을 찡그리며 웃었다.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타고 오르는 기분의 정체를 알았다. 분명한 안도감이었다. 

◇*. 戀心

네가 실망할 거라고 생각했어서.

⭑ 고등학교에서 구설하를 다시 만났다. 도내에 소문난 문제아와 조용하고 나긋한 모범생. 우다미, 구설하에게 자기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구설하, 우다미를 발견한 후 스스럼없이 접근했다. 세상에는 아무리 벗어나려 들어도 떨쳐낼 수 없는 인연이란 게 존재한다. 우다미, 짝사랑을 자각했다. 

◇*. 국화 水菊花

변하지 않아야 할 마음이지.

⭑ 초등학생 시절 이후 처음으로, 우다미, 구설하의 집을 방문했다. 편찮으신 조모님의 침실을 지나, 식물과 다친 길가 동물로 가득한 방을 목격했다. 작고 가여운 것들을 돌보는 행위. 착한 심성으로 포장하기에는 그 뒤에 숨겨진 마음이 찜찜해 우다미, 얼굴을 찡그렸다. 구설하, 자연스럽게 꽃병을 들어 물을 갈았다. 붉은 수국을 꽂으며, 꽃말은 진실된 사랑이야. 건네진 꽃병을 우다미,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구설하는 이어서 하얀 수국을 집어들며. 이건, 변심.

◇*. 穩道

그렇게 말하면 나는 정말 기대하는데.

⭑ 연락이 끊겼던 아버지의 지원으로 우다미, 미대 입시를 시작했다. 그림이 좋다는 구설하의 말이 발단이었다. 수험생 때에는 하도 붙어 다닌 까닭에 둘이 사귀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다. 당당하게 나선 쪽은 오히려 구설하였다. 그렇다면 어쩔 건데? 우다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붙잡힌 손의 체온만 따뜻했다.

◇*. 約束

나도 네가 기르던 다친 동물이었니?

⭑ 우다미는 입시에 실패하고 구설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한국 사회에서 스물이란 많은 것이 헤어지는 갈림길인 탓에. 우다미가 몇 번을 대입에 도전하는 동안, 구설하의 조모 장례식이 둘이 만난 유일한 순간이었다. 우다미, 삼수에 실패하고 세 해만에 만난 구설하에게 분풀이했다. 구설하, 우다미가 던진 붓에 얼굴을 긁히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사랑한다면 차라리 같이 죽어 주라. 대답은 없었다.

◇*. 沈默

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 우다미, 입시를 포기하고 공장에나 취직했다. 연락이 되지 않던 동안 마음을 추스르고, 많이 안정된 상태로 구설하를 방문했다. 구설하,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정하게 우다미를 맞았다. 모두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지만 아무에게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신을 속이고, 서로를 속이고, 세상을 속였다. 연애를 시작했다.

◇*. 履行

네가 같이 죽어 달라고 했잖아.

⭑ 여행 이튿날의 새벽, 부서지는 달빛을 온몸으로 맞으며 구설하, 우다미를 기다렸다. 시린 바닷물에 다리를 담그고, 양 팔을 활짝 벌려 저를 부르는 연인. 어느 누가 무시할 수 있을까. 우다미, 옷을 적시는 차가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그 품에 가득 안겼다.

◇*. 낙원 不定

네가 죽지 않았다고 말해.

⭑ 둘이 바다에 몸을 던졌다. 하나는 죽고 하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려 헤엄쳐 나왔다. 구설하의 유언장에는 부러진 붓 한 자루가 함께 있었다. 도저히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병실에 찾아온 구설하에게 우다미가 던진 것. 구설하의 얼굴을 스치고 벽에 부딪쳐 두 동강 난 물건. 그제야 현실이 실감이 났다. 그러나 믿고 싶지 않았다. 우다미, 구설하의 죽음을 부정하며 정신병 증세를 보였다. 마스킹테이프를 몇 번이고 감아 이어붙인 붓으로 구설하의 실낙원을 그렸다. 

*. 終点

오로지 단 한 사람을 담아서.

⭑ 구설하의 얼굴을 한 성녀. 이름은 엑스, 막 태어났을 때 얼굴에 가위표가 그어졌으므로. 그가 우다미의 갈라테이아, 가장 완벽한 여자를 빚은 대리석 조각상이었다. 종이 안에 세워 놓고 죽도록 사랑했다. 그가 구설하인 것처럼, 구설하가 살아서 거기 있는 것처럼. 이 꿈 같은 세계는 영원할 것이다. 우다미가 마침내 구설하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그리하여 구설하가 진정으로 죽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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