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꿈에서 깨고 나면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클리셰

20240111

링클의 안 by 링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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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고 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미 달리고 있고, 그걸 알아차릴 뿐이다.

빠르다. 아마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것도 같다. 폐가 아프다. 사지의 근육이 한껏 긴장해서는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눈앞으로는 본 적 없는 풍경들이 지나간다. 아니, 본 적 없다기에는 익숙하다. 하지만 본 적은 없다… 본 적 있었던 모든 풍경을 조각조각 잘라서 기워 놓은 듯한 광경. 이음매 따위는 없는데도 그런 느낌이 든다.

나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하늘은 새파랗다. 정말로, 이상할 만큼 새파란 하늘에는 구름 한 점조차 없다. 햇빛이 쏟아진다.

관성과 동작이 어긋나 휘청거린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다. 달린다. 네가 뒤돌아본다.

아, 그러고 보니 네가 있었다. 오른손에 느껴지는 감촉. 네가 나의 손을 잡고, 함께 어딘가를 향해 달린다. 한 걸음 앞에서 나를 이끈다. 그런가? 내가 달리기를 멈출 수 없는 건 네가 나를 잡아끌고 있기 때문인가? 네가 희미하게 웃더니, 다시 앞을 바라본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물어보면 네가 대답해 줄 것만 같은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폐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 한계까지 끌어올린 심폐기능.

“멈추면 안 돼.”

너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멈추면 안 돼, ■■■.”

내 이름이다.

네 목소리가 이질적으로 뭉개져서 분명히 들리질 않는다. 하지만 저것은 분명히 내 이름이다. 기침이 터져 나온다. 정말로 한계야. 이 이상 달리면 폐가 터져 버릴 거야. 그러나 나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너 또한 여전히, 나의 손을 잡고, 어디인지도 모를 곳을, 달리고 있다.

“이건 달리는 꿈이니까.”

꿈이구나.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달리지 않으면 꿈이 끝날 거야.”

목적지를 알 수 없는 달리기도, 익숙하고 낯선 풍경도, 어째선지 계속해서 달릴 수 있는 나도, 내 손을 잡고 있는 너도, 꿈이라면 이상하지 않다. 존재할 수 있다.

“그럼 내가 사라져 버릴 테니까.”

나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너 또한 여전히, 나의 손을 잡고,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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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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