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 필리버스터

여캐를 좋아하지 않아도 된다.

ID by 아이리디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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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엔가 여캐 캐혐에 대한 이야기가 돈 적이 있다. 그보다 더 전에는 자캐커뮤 오너 성향 표기란에 BL > NL=GL을 적는 사람이 많았다. 요즘은 오너란에 오너 성향 표기를 적지 않지만, 지금 같은 걸 하라고 하면 선호/비선호/관심없음으로 단계를 나누지 않을까 싶다. 커뮤 얘기는 아니지만 아이돌판도 예전에는 올덕 아니면 욕을 처먹었지만 요즘은 그룹 중 한 명만 좋아하는 경우도 흔한 모양이다. (원래 오타쿠는 하나만 하지 않는다. 커뮤도 하고 돌도 파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좋아하지 않음’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싫어한다는 뜻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건 아니다. 다른 판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커뮤판은 여성 혐오 이야기가 돌면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여성 혐오 얘기를 하다 보니 여캐 혐오 얘기도 했던 듯… 정확한 건 아니다. 여캐 캐혐 얘기가 돌면서 여캐 오너들이 캐혐 예시로 들고 온 것들이 알티를 탔던 건 확실히 기억난다. 이런 트윗이 있었다. 남캐보다 여캐가 갓캐가 되기 쉽다고. 여캐는 커뮤만 뛰면 갓캐 소리를 듣는다고…

여캐에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 욕먹을까봐, BL도 GL도 동성애인데 GL은 관심 없다고 하는 건 모순적이라고 생각해서, 기타등등. 하나를 좋아하면 다른 걸 전부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호의를 가장했고, 받는 사람들은 굉장히 개같아했다. 갓캐 소리 하지 말고 교류를 해달라니까? 교류 안 할 거면 갓캐 소리도 하지 말고 그냥 꺼지라니까?

당시 나는 남캐 위주 커뮤러였고 여캐러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고서야… 정확히는 그러고도 1년쯤 지나서야 깨달았다. 아! 나는 여캐를 좋아하지 않는구나! BL>GL=NL이라고 적을 게 아니라 선호: BL이라고 적었어야 하는구나! 좋아하지 않는 걸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건 무례가 될 수 있구나! 특히 오너간 교류가 긴밀한 커뮤판에서는…! 이후로 BL을 주로 먹고 NL을 가끔, GL은 맛있으면 먹는다고 트윗하는 걸 그만뒀다.

내가 GL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 내 평판에 어떤 누를 끼치는 건 아니다. 좋아하지 않는 걸 좋아한다고 믿을 필요는 없다. ‘모든 걸 차이 없이 좋아한다’는 지향점이지 사실이 아닌 것이다.

시간이 흘러 2024년이 되었다. 나는 이런 이슈에 느린 편이고 내가 알 정도면 다른 사람들도 대충 다 알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만이었던 것 같다. ‘나는 특출나게 뛰어나다’와 ‘나는 특출나게 느리다’는 같은 종류의 오만인 게 분명하다. 나보다 이슈에 느린 사람이 있었다. 여캐를 반드시 좋아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신기하게도…

이 사람들은 나와 비교해 오타쿠 경력이 짧은 걸까? 아니면 저 이슈를 본 적이 없는 걸까? 모른다. 그냥 그 사람들도 덕질을 편하게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좋아하지 않는 건 캐혐의 동의어가 아니며, 좋아하지 않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느라 심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 왜, 요즘 도는 트윗처럼… (못생긴 걸 좋아할 수는 있지만, 못생긴 걸 잘생겼다고 말하는 건 인지부조화에 의한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트윗 말이다.)

좋아하지 않아도 된다. 정우 규리하의 말을 좀 빌리자면, ’믿고 싶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우 규리하는 인간을 믿고 싶어했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은 적극적인 부정은 아니다. 좋아하고 싶다는 마음이 보이니까 가상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자신의 이상을 위해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말았으면 한다. 백합러는 만민평등의 타이틀이 아니다. 캐혐하지 말고 교류나 잘 하자.


별개의 이야기 1.

2024년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CP의 종류가 무엇인지 더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남캐 위주 커뮤러에서 여캐 위주 커뮤러가 되긴 했지만 남캐나 여캐나 슬렌더 체형을 좋아하며 남성성이나 여성성이 강한 캐릭터는 디자인하지 않는다.

나는 내캐가 여캐인 HL을 좋아하고, 상대캐가 남캐인데 내캐도 우연찮게 남캐인 BL을 좋아하고, GL에는 관심이 없다.

남캐-남캐의 로맨스, 여캐-남캐의 로맨스는 잘 읽지만 여캐-여캐의 로맨스는 놀라울 만큼 읽지 못한다.

백합 까막눈인 내 눈에도 연애 기류가 보인다면 그 CP는 10년 후엔 결혼했을 거라고 믿는다. (파르실이 여기에 해당한다. 라이마르는 애니메이션 보고서야 연애 기류를 읽었다. 보통 이쯤 하면 다같살을 하자고 하는 편인데 파린이랑 라이오스가 남매라 고민이 좀 된다.)

별개의 이야기2. 트친이 말하길 나는 논씨피 성향이 강하다고… 맞는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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