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 필리버스터

커뮤 세계관에도 캐해가 있다.

ID by 아이리디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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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도에 알티가 돌았던 글을 오늘 다시 보았다.

‘인도풍 캐릭터 내도 되나요? / 동양풍 커뮤라서 안됩니다.‘

사실 이 트윗은 맥락을 벗어난 트윗이다. 인용한 트윗이 ‘한국인들은 아시아에 한국 중국 일본만 있는 줄 안다’는 식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아시아와 동양은 다르다. 유럽에서 자기들 동쪽에 있는 걸 대충 아시아로 퉁쳤듯, 한국도 중국 서쪽에 있는 걸 서역으로 대충 퉁쳤다. 동양풍 커뮤에서 말하는 동양은 중국 왼쪽에 있는 나라들이다. 좀 넓게 보면 중국 위랑 중국 아래도 포함이지만, 서역은 포함되지 않는다.

아마 질문자가 ‘서역 출신 캐릭터도 가능한가요?’라고 물었다면 ‘개연성이 충분하다면 가능합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을 테지만, 가상의 예비 러너는 가상의 동양풍 커뮤에 인도풍 캐릭터를 내고 싶어한다. 총괄 입장에선 '뭐지? 이 세계관 비숙지자는.‘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말이다. 세계관 해석이 다른 사람이 쓴 신청서는 총괄로선 뽑을 수 없다. 왜? 아니 그럼 님은 캐해가 다른 사람이랑 썰을 풀 수 있단 말인가요?

보통 캐해석이라는 단어는 캐릭터를 해석할 때 쓴다. 세계관 캐해 같은 건 세계관 캐릭터 해석이라는 말이 된다. 비문도 이런 비문이 없다. 하지만 ‘캐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내가 하려는 말에 잘 어울려서 세계관 캐해라는 제목을 적었다.

커뮤 세계관에도 캐해가 있다. 우리는 세계관을 읽으며 내도 되는 캐릭터, 내면 안 되는 캐릭터, 잘 어울릴 캐릭터, 잘 어울리진 않겠지만 독특한 캐릭터 등을 구상할 수 있다. 흔히 아는 오타쿠 명언, ‘맞는 캐해는 없지만 틀린 캐해는 있다’처럼 세계관 캐해도 똑같다. 어떤 해석을 하든 괜찮지만 틀린 해석을 하면 안 된다. 로판커에 현대 영국인은 내면 안 되고, 무협커에 로판 귀족을 내도 안 된다. 전자는 타임 트립이어서 안되고 후자는 배경 설정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안된다. 그러니까 거기서 여기까지 옷을 그대로 입고 왔고 그럼 아마 시종도 있을 거고, 여행 기간도 엄청났을텐데 그걸 다 책임질 수 있는 집안의 자녀분께서 무협에 왜 오셨나요? 옷을 바꿔입었다면 될 확률이 좀 높아진다. 개연성이 여러 방면에서 해결되니까. 하지만 그런 설명이 없다면 그건 틀린 해석이다.

커뮤 세계관에도 캐해가 있다. 커뮤는 뼈만 보는 게 아니라 뼈에 붙은 살도 보아야 한다. 어느 창작물이건 똑같고, 커뮤도 일종의 창작물이다. 살을 무시하고 뼈만 지적하면 안된다. 물론 뼈대가 잘못됐을 수도 있지만 동양풍 커뮤에 인도풍 캐릭터가 불가능한 건 유럽이 잘못해서지 한국인이 편협해서가 아니다.

동양풍 커뮤에 인도풍 캐릭터를 내면 안 되는 이유는 맨 위의 두? 네? 문단으로 해결이 됐을 것이고, 커뮤 세계관 캐해에 대한 말도 다 됐지 않나 싶다. 원래 이 계정은 오타쿠 필리버스터를 하고 싶은 만큼 하기 위해 만든 거라, 내 욕구가 만족됐으니 여기까지만 적겠다.

이 아래로는 ‘총괄님 세계관 캐해 틀리셨어요’에 대해 적겠다.

요즘은 커뮤 신청서 현황에 ‘다수 접수된 설정 목록’이 거의 필수적으로 있다. 일단 내가 본 커뮤는 그랬다. 어딘가엔 없을지도 모르지. 만약 없다면 거기도 하루빨리 다수 접수된 설정 목록을 도입해주면 좋겠다. 설겹으로 탈락하더라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싶으니까. (설정은 안 바꿀 거다. 총괄님 저 이 김치찌개 아니면 판매 못해요!)

다수 접수 설정은 바꿔 말해 이 커뮤에 이 캐릭터가 어울릴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이다. 즉 세계관에 관한 심상이 일치하며 거기서 도출해내는 캐릭터의 유형이 같은 사람의 숫자가 많다는 소리다. 이 사람들이 전부 합격해서 전부 연공하면 대유잼 타임라인을 형성할 수 있을 테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일은 없다. 그것이 설정 겹침의 숙명이니까. (머리색은 좀 설겹 목록에서 빼줬으면 좋겠다. 오타쿠 세계관에서 백발은 우성 유전이라는 걸 총괄님들이 이제 슬슬 인정해주셨으면 좋겠다.)

커뮤 해시가 돌 때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볼 수 있다. 러너 뒷담 까는 총괄이나, 최악의 커뮤 운영 경험 해시태그라던가… 그 중엔 ‘왜 커뮤에 ○○만 많이 들어오냐’는 식의 불만도 있다. ‘세계관에 관한 심상이 일치하며 거기서 도출해내는 캐릭터의 유형'이 그것으로 수렴된다는 이야기다. 만약 도화살흑표범흐드범치명미인이 많이 들어온다면, 그 세계관에 도화살흑표범흐드범치명미인을 유도하는 요소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 총괄은 도화살흑표범흐드범치명미인을 유혹하는 오메가인 것이다… 그걸 총괄 본인만 몰라서 그런 러너 뒷담이 나오는 것이다. (뒷담하지 맙시다)

혹은, 커뮤에서 제시하는 캐릭터 유형이 매우 적을 때도 있다. 교육, 복지, 지원, 치안을 높은 수준으로 이룩한 배경의 가상의 히어로빌런 대립 커뮤를 상상해보자. 적당한 자유가 보장되지만 치안이 매우 엄격하고, 행정력과 기술력이 뛰어나 이능력 유무를 검사하여 명부에 올리고, 아동 학대는 발각 즉시 해결하고 지원 기관과 방법이 다양하다. 월급도 잘 준다. 성차별도 혁파했다. 신분 차별은 학교를 다닐 때부터 엄격하게 처벌한다. 그렇게 통제를 이어나간지 100년 째고, 그런 환경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난 대규모 빌런 조직이 있다. 빌런들은 이능력자 해방을 외치며 테러를 저지른다. 그들을 압박하기 위한 히어로들도 모였다. 그 둘이 어느 섬에서 격돌한다.

이 가상의 커뮤는 히어로의 비율이 높으며 다수접수 설정으로 이기적인 빌런, 서사 없는 빌런 등이 적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빌런 내기 힘든 세계관이다. 여기에선 본성이 악하거나 이 상황이 이능력자에 대한 압제라는 걸 인식하는 캐릭터만이 빌런이 된다. 좀 넓게 쳐주면 월급도 잘 주고 노동법이 철저한 세계관에서 특출난 상사를 만나 횡령죄 누명을 쓰고 범죄자로 낙인찍힌 회사원이 빌런으로 각성하다, 같은 설정도 가능하겠지만 그걸 과설정이라고 판단하고 다른 커뮤에 갈 사람이 더 많다.

저 예시는 내가 ‘성격 형성엔 본성보다 환경이 더 많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타임라인을 보면 ‘숙지할 게 너무 많아서’ ‘일정 내기가 힘들어서’ ‘캐를 못짜겠어서’ 커뮤를 드랍하는 사람도 많다. 커뮤를 준비하는 데엔 기력이 든다. 캐 짜는 데에 아주 많이 든다. 세계관에 흠이 없을수록 캐 짜는게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가상의 총괄이 ‘왜 이렇게 똑같은 빌런캐만 오냐’고 불평한다면, 나는 ‘님이 그런 세계관을 짜서 그렇습니다’라는 말밖에는 해줄 수 없다. 총괄이 세계관 캐해를 잘못하면 발생하는 일이다.

커뮤는 총괄진과 세계관 캐해가 맞을 때만 뛸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총괄진과 예비 러너들의 세계관 캐해가 크게 엇나가면 열리지 않는다. 당신 커뮤에 모종의 캐릭터가 많이 들어온다면, 그 모종의 캐릭터를 좋아하는 트친에게 한 번 물어보라. 당신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자꾸 들어오는데 도대체 내 세계관, 시스템의 어떤 부분이 당신 취향을 자극하는 거냐고.

그게 중요한 파트가 아니라면 빼라. 중요한 파트라면 인정해라. 당신은, 어쩌면, 그 모종의 캐릭터성의 대모일 수도 있다.

쓰려다가 이상해서 뺀 문단인데 그냥 아래 적는다.

커뮤 캐릭터는 커뮤 세계관의 드림캐다. 그런데 그 세계관이 최애 본진은 아니다. 예비 러너는 자기 자신에게 글커미션을 넣어서 모르는 장르의 드림주 설정을 짜는 사람이다. 모르는 장르의 글연성을 하는데 그 장르에 명백하게 명시되지 않은 설정을 알고 쓸 리가 없다. 그러니까 세계관에 뭔가를 암시하지 마라. 커뮤는 창작물이지만, 그 커뮤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겐 숙지해야 하는 안내문이다. 그렇게까지 디비 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냥 전부 나열해라. 그래야 원하는 캐릭터, 세계관 오류가 아닌 캐릭터가 들어올 확률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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