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GE

루이오셀

idv by 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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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리오셀이 보고싶었습니다.


감은 눈을 두드리는 햇살과 조잘거리는 새들의 이야기 소리가 스며드는 아침이었다.

따스한 햇살에 둘러싸인 밀색의 남자가 느지막이 눈을 떴다. 남자는 잠에 취해 흐릿한 눈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그 옆에 누운 새하얀 남자를 보고서 작게 미소지었다.

밀색의 남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새하얀 남자에게 기대어 누웠다. 그러고는 그의 얼굴을 깃털보다 가벼운 손길로 쓰다듬었다.

눈썹, 눈, 코, 턱선…. 아폴론의 화신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없이 완벽하게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눈썹을 찌푸리고 뒤척이는 모습마저도 한 폭의 그림같았다.

새하얀 속눈썹 아래 숨어있던 푸른 하늘을 담은 눈동자는 세상의 어떤 보석보다도 더 귀하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이윽고 굳게 닫혀있던 탐스러운 입술이 벌어졌다.

“…좋은 아침입니다, 리오셀. 잘 잤어요?”

새하얀 남자는 하늘을 애정으로 가득 채워 리오셀에게 건네주었다.

귀를 간지럽히는 부드러운 저음과 애정 가득한 눈동자를 마주한 리오셀의 얼굴에 열이 올랐다. 심장께가 간질거리는 행복에 속살거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나는 잘 잤어요. 루이스는요?”

“언제나처럼, 당신이 옆에 있어서 좋았습니다.”

루이스가 맑은 얼굴로 리오셀의 손등에 가벼운 키스를 보냈다.

과거의 리오셀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 얼마나 바라왔던 순간인가. 루이스와 같이 잠들고 일어나는 일상이, 그와 나누는 가벼운 키스 한 번이 이토록 달콤할 수 없었다.

루이스는 멈추지 않고 리오셀에게 말을 걸었다.

“어제 사람들이 말하는걸 들어보니 시나언덕에 꽃이 예쁘게 피었대요. 볕이 좋은 때 같이 꽃보러 가요.”

“…기꺼이요.”

리오셀은 많은 생각이 하기 싫었다. 그저 지금은 루이스와 함께인 순간만 생각하고 싶었다.

“오늘은 거리를 나가보아요. 당신이 사용할 원단을 찾아도 보고, 당신에게 어울리는 장신구도 찾아볼까요? 손을 잡고서 거리를 걷다가 언덕으로 가보는거에요. 무척이나 아름답겠죠.”

“좋네요, 정말. 정말로, 예쁠 것 같아요.”

리오셀은 방 안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루이스에게 기대어 눈을 감고있었다. 그러다 문득 오늘이라면 루이스에게 건내주지 못했던 옷들을 꺼낼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루이스에게 주고 싶은게 있어요. 기쁘게 받아주었으면 해요.”

망설이지 않고 말을 꺼냈지만 그럼에도 불쑥 찾아오는 불안감에 초초해졌다. 루이스의 답을 기다리길 몇초.

“리오셀의 선물이라면 전 그 무엇이라도 기쁘게 받을 수 있어요.”

루이스의 대답에서는 거절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진중한 다짐이 섞여있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래, 오늘이야말로 리오셀은 루이스를 사랑하는 마음과 그에 대한 생각이 담긴 옷을 건내줄 것이다. 그 후에는 선물한 옷을 입은 루이스와 한가한 데이트가 기다리고 있다. 리오셀은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나왔다.


“꽃 사세요! 세 송이에 1파운드!”

소년과 그보다 조금 더 어린 소녀가 아기자기한 꽃을 한가득 모아놓고 파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오셀은 잠시 고민하더니 루이스에게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원단과 장신구는 다음으로 미룰까요?”

루이스가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

“원단 필요한 거 아니었습니까?”

“필요하죠. 그렇지만 난 리오셀 네페르티에요. 내 손길 한번이면 내가 원하는 재료는 모두 구할 수 있어요. 굳이 지금이 아니어도 된다는 소리에요.”

자신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찬 답에 루이스가 예상했다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그렇군요. 역시 저 꽃이 사고 싶은거죠?”

“아니, 그런것보다는 저 아이들의 오늘 하루가 편안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리오셀이 눈을 굴리면서 돌려 답했다. 역시나 루이스는 그를 막지 않았다.

“막지 않습니다. 하고싶은대로 해요.”

흔쾌한 허락에 리오셀은 그대로 아이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냈다. 아이들은 피곤이 물든 얼굴로 밝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모두 예쁜 꽃이에요. 오늘 아침에 잘라왔어요!

몇 송이의 꽃이 필요하다는 질문에 리오셀이 답했다.

“전부. 여기있는 꽃 전부를 사겠어.”

아이들의 눈이 커지더니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인사를 전했다. 돈을 건내려 했지만 옆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이 더 빨랐다. 루이스의 손이었다.

“당신을 위한 작은 선물이에요.”

“…낭만이네요. 꽃선물이라니.”

진지한 표정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루이스에 리오셀이 웃음을 터트렸다.

에이바! 오늘은 좋은 밥을 먹을 수 있어! 멀리서 소년이 소녀에게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꽃을 전부 판 아이들의 오늘은 조금 더 편해질 것이다. 루이스와 리오셀은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미소지었다. 리오셀이 눈을 돌려 수 많은 꽃송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꽃들을 장식할 곳이 필요해요. 그러면… 잠시 의상실에 들려야겠어요.”


사치, 과시, 사회적 지위, 예술적 미를 빙자한 부. 사람들의 부를 향한 욕망은 나날이 커져만 가고 그 중심에는 ‘옷’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방금 그 옷의 유행을 선도하는 네페르티 의상실에 문이 열렸다.

소리없이 부드럽게 열리는 문 사이로 리오셀과 루이스가 들어왔다.

“네페르티에 온 걸 환영해요.”

“…하하, 정말 영광이네요.”

리오셀의 장난어린 애교에 루이스의 웃음이 터졌다. 리오셀이 부끄러움에 말을 돌렸다.

“잠시만 기다려요. 화병을 찾아올게요.”

리오셀은 의상실의 안쪽 창고에 들어가 보기에도 아름다운 화병을 들고 나왔다. 무게가 있어 조금 휘청거렸더니 루이스가 금방 달려와 화병을 건내받았다.

“이런 화병이었으면 저를 시키지 왜 힘들게 직접 들고와요.”

루이스의 과도한 걱정에 리오셀이 작게 타박했다.

“루이스, 난 그렇게 연약하지 않아요. 어서 꽃이나 꽂기 시작해요.”

옆에 서서 맞닿은 어깨가, 조금씩 스치는 손끝이 신경쓰였다. 시끄러운 심장소리가 서로에게 들킬까 노심초사했다.

공기중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하고 둘은 이유없이 침만 삼킬 뿐이었다. 시간이 느리게 느껴졌어도 이 순간이 끝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다, 했다.”

결국 꽃을 다 꽂아넣고도 둘은 잠시동안 자리를 정리하지 않았다.

리오셀은 화병 안의 노란 프리지아 한 송이를 꺼내 루이스의 입술 가까이에 가져다 대었다.

“감사의 의미로 작은 선물이에요.”

리오셀이 떨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면서 작게 속삭였다.

루이스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리오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내렸다. 반대쪽 손으로는 리오셀의 얼굴을 감싸쥐고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이건 그냥… 제가 하고싶은 거에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루이스가 고개를 숙여 리오셀의 입술을 삼켰다. 루이스는 자신의 목에 팔을 두르는 리오셀을 보고는 위에서만 지분거리던 입술을 열었다. 리오셀의 얼굴을 잡고 있던 손은 어느새 그의 뒤통수를 받치고 반대손으로는 허리를 감아당기고 있었다.

리오셀의 손에 있던 프리지아 한 송이는 바닥으로 떨어진지 오래였다.

루이스는 벌어진 잇새 사이로 리오셀을 거칠게 탐했다. 리오셀은 뜨거운 것이 입안으로 들이차는 것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얽혀오는 살덩이가 입안을 질척하게 휘저었다. 달뜬 숨을 토해내며 서로를 집어삼킬 뿐이었다.

거칠어진 호흡이, 열 오른 얼굴이, 타액으로 젖은 입술이 너무도 야하게 느껴졌다.

눅진해진 공기가 주변에 내려앉고 둘은 붉어진 얼굴로 호흡을 골랐다. 심장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리오셀이 떨리는 눈을 겨우 루이스에게 고정시켰다.

“…우리, 언덕에 꽃보러 간다고….”

새빨간 얼굴로 부끄러워하면서 꺼내는 말이 아침에 그들이 했던 약속이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루이스는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가야죠, 당신과 한 약속인데.”

루이스는 말을 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리오셀의 오물거리는 입술에 짧은 버드 키스를 놓았다.

“그럼…, 아ㄴ, 루이, 루이스!”

멈추지 않는 키스에 계속해서 말이 막히자 리오셀이 소리쳤다. 루이스는 그런 외침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입술을 맞댈 뿐이었다.

“잠시만, 우리 조금만 더 있다가 가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루이스의 혀가 리오셀의 입술을 비집고 들어갔다. 리오셀은 자신을 가득 채운 루이스를 느끼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이 둘을 말리기엔 이미 늦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인적이 줄어든 거리를 지나 시나 언덕에 도착했다.

장난스러운 바람이 흐드러지게 핀 제라늄을 흔들자 향기로운 꽃향기가 날아왔다. 보릿빛 꽃과 싱그러운 풀이 한데 섞여 노을 태양에 빛나고 있었다.

주홍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 언덕을 가득채운 제라늄. 그 속에서 리오셀은 그가 사랑하는 루이스와 함께 있었다.

태양이란 스포트라이트는 이 무대 위, 그 둘만을 비추고 있었다.

리오셀은 세상의 전부를 가진 것 같은 기분에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밝은 웃음을 지었다.

“루이스, 행복한가요?“

루이스는 눈 앞에 남자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인 양 리오셀을 따라 미소지었다.

“감히 말로 형용할 수 없을만큼 행복합니다.“

루이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고 둘의 거리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들은 서로의 숨결 하나, 눈빛 한 번, 심장 박동마저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리오셀은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일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눈을 감았다. 서로의 입술이 맞닿고 리오셀이 환희에 차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앞에는 작업실 책상 위 희미한 조명만이 그를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굳은 목과 허리는 고통으로 신음했고, 눈은 뻑뻑해서 앞이 흐리다 못해 안보일 지경이었다.

주홍빛 하늘과 칠흑색 하늘, 눈부신 햇빛과 희미한 조명, 흐드러진 꽃들과 널부러진 옷감들, 함께 웃던 그들과 혼자인 리오셀까지. 현실감 없는 장면에 리오셀은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리오셀의 눈에 흐릿한 안개가 걷히고 그 속에 절망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다 허망이었다.

리오셀의 입에서 조소가 튀어나왔다. 가장 행복한 순간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우스울만큼 터무니 없는 망상이었다.

사흘 전, 루이스는 전해줄 말이 있다며 리오셀과 저녁 약속을 잡았다. 리오셀이 거칠게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나간 자리에는 루이스와 아리따운 여성이 함께하고 있었다. 다정히 말을 나누며 웃는 모습에 리오셀의 머리가 차갑게 식고, 불안한 느낌에 긴장감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 오셨어요?”

루이스가 리오셀을 발견했다. 리오셀은 진심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소개해 드리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알고 싶지 않았다. 머리는 제멋대로 루이스의 입에서 나올 말을 추측했다. 그것도 모자라 반쯤은 확신하고 있는 자신의 머리를 한대 치고 싶었다.

“이쪽은 칼리아에요. 제 약혼자가 된 사람이죠.”

아, 제발. 리오셀은 눈을 질끔 감았다. 아니길 바랬는데 현실이 되어버렸다. 루이스와 칼리아는 서로를 보면서 수줍게 미소지었다. 사랑스러운 한 쌍이었다.

온 몸이 물에 잠긴 것처럼 모든 소리가 먹먹했다. 얼굴 위에 매끄러운 미소가, 막힘 없이 나오는 목소리가 어색했다. 숨이 막혀올 때쯤 일이 있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했다. 리오셀에게는 그 후의 기억이 없다.

숨이 막혀왔다. 기도가 막힌 것처럼 호흡 하나 마시는데도 힘이 부쳤다. 머릿속에서 심장소리가 울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로지 심장박동만이 나를 애워쌌다. 손에서 시작한 떨림이 온 몸으로 전해졌다.

작업실에 더 있다가는 사흘 전 그날이, 꿈 속의 장면이 계속 떠오를 것 같았다. 서둘러 이 공간을 벗어나려고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애써 움직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끌리면서 나는 날카로운 소리가 리오의 현실을 다시금 인식하게 만들었다.

비틀거리며 문을 향해 몸을 돌리자 바로 보이는 마네킹. 루이스를 닮은 마네킹이었다. 그것에는 제 주인을 찾아가지 못한 옷가지가 가지런히 걸려있었다. 꿈 속의 루이스가 입고있던 바로 그 옷이었다.

더이상은 버틸 수 없었다.

-툭

간신히 잡고 있던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리오셀은 무너졌다. 바닥에 주저앉은채 마네킹을 붙잡은 리오셀의 입에서 사랑의 말을 쏟아냈다.

“루이스, 루이스….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사랑해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리오셀은 아무리 뱉어도 가벼워지지 않는 마음이 미칠 것만 같았다. 리오셀은 더 깊이 가라앉았다. 언제나 바닥이라고 생각했지만 더 떨어질 곳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저 마네킹일 뿐인데 그 앞에서 리오셀은 너무나도 작아졌다.

“날… 한번만 바라봐줘요….”

미친것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꺼낸것 치고는 소박한 바람이었다. 리오셀은 영리하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있고 그렇기에 더욱 작아질 뿐이었다.

오늘 밤이 지나면 리오셀은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태연한 목소리를 위장할 것이다. 바닥이 무너져 끝을 모르는 곳으로 떨어질 것만 같아도 루이스의 앞에서는 웃을 것이다.

차마 루이스에게 이 마음을 틀킬 수는 없어서, 그를 지켜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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