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Dear
1966.09
편지의 시작치곤 다소 뜬금없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의 감정을 글로 정리하고 표출하는 것은 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Dear”. 당신의 이름을 편지에서 알 수 있었다면 이런 진부한 호칭으로 부르지 않았을 텐데요. 일단 중요한 것은 당신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려는 의도에서든, 아니면 당신의 감정을 예의 말하던 “쓰레기통”에 집어넣으려 했던 당신이 쓴 편지가 저에게 닿았다는 것이겠죠. 그리고 저는 이런 글들을 읽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정식으로 소개할게요. 안녕하세요, 뉴욕타임즈 기자로 일하고 있는 오닐 오드리입니다. 여자는 대학에 보낼 필요 없다는 아버지 아래서 커서 제가 누구라도 들으면 알 수 있는 신문사에 들어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는, 이곳에서 이야기하지 않을게요. 그걸 모두 이야기하려면 책 한권은 나올 것 같거든요. 그래도 그중에서 무언가 말하자면, 기자가 된 이유 정도일까요. 요즘 다들 자유니, 인권이니 떠들어 대지만 결국 대부분 권력을 잡고 있는 이들은 여전히 고리타분한 생각에 갇혀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가 가진 생각과 힘을 알려줘야 한다는 게 제일 첫 번째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무언가를 알리는 데에는 기자라는 직업만큼 알맞은 것이 없죠. 사실 저명한 평론가가 되거나, 당신과 같이 우아하게 —물론 장르는 다르겠지만—글 쓰는 직업을 생각해 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희 부모님은 금주법 시대에 포도주를 팔아본 적도, 세계 2차대전에 군용품을 납품한 것도 아니거든요. 제 말은, 우리 집이 미국의 아주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라는 뜻이에요. 결혼도 하지 않으면서 돈도 벌지 않을 거라면 아마 이미 저를 멍청하고 부유한 백인 남성에게 팔아치웠겠죠. 다행히 대학을 졸업하고 이렇게 이름있는 곳에 취직해 드디어 제 집을 구했답니다. 그래요, 이 새로운 집이 문제가 됐죠.
본래라면 이런 허황되고 장난 같은 글은 읽어보지 않았을 거예요. 제국이니 마물이니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말들을 나열한 건 기삿거리도 아니니까요. 당신의 편지말고도 나에겐 아주 많은 편지가 오거든요. 제가 기자가 아니라 출판사 직원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최근 가장 황당했던 편지는 자신이 맨해튼의 공사를 담당한 직원인데, 거기에 귀신이 나오는 것 같은 건물이 있어서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 미신 때문에 공사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게 자본주의사회에서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이런 허무맹랑한 편지들에 대해서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진 않아요. 일단 제 말은 처음 당신의 편지가 저에게 그 헛소리를 써놓은 편지들과 다르지 않았다는 거예요. 당신이 말하는 쓰레기통이 제가 새로 이사 온 방 창고의 낡은 서랍장으로 이어져 있던 게 아니었다면, 정말로요. 그곳에 흰색 양말도 한 짝도 들어있던데 혹시 그쪽 것이 맞을까요? 분명 처음 이사 왔을 때 잡다한 물건들이 많이 들어있어서 싹 다 정리해서 버린 것이 2일 전 일이었는데, 물건을 넣으려고 열어보니 또 물건이 들어있는 게 아니겠어요? 또다시 그것을 치운 것이 어제예요. 그리고 오늘 아침에 마주한 것이 당신의 편지죠. 평소라면 다른 이들처럼 당신을 무시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쯤 되면 이 서랍장이 어디론가 이어져 있다는 당신의 편지를 어느 정도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이해한 게 맞다면 당신은 제국에서 살고 있는데 어느 날 마물이라는 위험 종이 민가까지 내려와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 중앙부에서 이전의 영웅들과 함께할 조사단을 모집하고 있다는 말이죠? 가장 의문이 드는 점은 힘을 가지고 있는 국가에서 어째서 민간인을 조사대에 함께 파견하느냐인데요. 이 물음에 대한 건 당신이 언급한 거꾸로 흐르는 시계와, 소용돌이치는 빛의 보석과, 이형을 비추는 거울이 답이 될 것 같네요. 그 물건들이 대단한 것들이니, 당신과 같은 민간인을 포함시키는 것이 아니겠어요? 저는 이것들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게 없긴해요. 물론 이것 말고도 당신의 세계관, 아니 소설이 아니니 진지하게 답해줘야겠죠. 당신이 말하는 것들 대부분을 나는 잘 모르겠어요. 제국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북부 대공이나, 서부 마탑주 같은 인물도 그렇고요. 마물도 당신은 당연히 제가 안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모르겠어요.
이렇게 편지에 답장을 쓰고 있는 지금도, 사실 제가 정신을 놓아버린 게 아닌지 헷갈려요. 어딘가로 이어진 서랍장이라니, 사실이라면 당장 이 서랍장을 들고 특종이라며 제 직장 상사에게 보여줘야 할 텐데요. 그러지 않은 것은 미친 사람이라며 직장에서 잘리고 정신병원에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신이 나에게 보낸 편지 때문이기도 해요. 수년 동안 답 없었던, “쓰레기통”이라고 부르는 곳에 답장을 부탁한다는 말이 어쩐지 당신에게 이 답장이 꼭 필요할 것 같이 들렸거든요. 당신의 이야기가 거짓인지 진실인지 아직 확신을 가질 수는 없지만 조사단에 합격하길 바라요. 동경한다는 영웅이 될 기회니까요.
답장이 온다면 다시 편지 보낼게요.
Form. O'Neill Aud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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