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내리는 눈
심호섭 바이올린 독주회
창문밖에는 눈발이 흩날렸다.
한동안 따뜻하더니 꽃샘추위가 덜 지나갔는지 내리는 눈이라고 했다. 손짚은 창가에는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새하얀 입김이 제 시야를 가렸다. 순간 유리창에 비춘 자신의 모습이 오늘따라 낯설었다. 검은머리, 군대에가서 조금 더 큰 키, 성숙한 얼굴이 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당신이 보였다.
수능도 졸업여행도 모두 끝나 학창생활을 마무리하던 시기의 모습이다. 하늘에선 함박눈이 내리고, 몇몇 아이들은 밖에서 눈천사나 눈사람 같은 것을 만들기도 했다. 너는 추위에 언 얼굴로 비눗방울을 불고 있었고. 지금 생각해봐도 바보같은 얼굴이라고 생각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는 그 모습을 교실 안쪽에서 바라봤었나. 손에는 누가보아도 축하한다고 이야기 건낼만한 대학교의 합격증을 쥐고서 말이다.
대학교에 합격했음에도 너에게 부러 알리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응원과 조언을 건냈지만 그것을 받아들인것은 당신뿐이다. 수많은 고민 속에서도 결국 손 뻗어 당신이 잡은 것은 사진기였고, 당신은 조용히 미소지었다. 그래, 당신은 스스로 웃을 수 있는 선택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에 반해 저는 결국 꿈을 쫓는 것을 포기하고 제 평온한 일상을 선택했다. 그런 제가 무슨 면목으로 당신에게 기쁜 소식이라며 말을 꺼낼 수 있을까. 그저 용기있게 제 꿈을 쫓았던 당신을 동경하듯 바라볼 뿐이다.
“째섭, 멍하니 뭘 봐?”
상념이 깨진다. 눈앞에는 이제는 성숙해진 당신의 모습이 있었다.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른. 창문 밖 눈이 날리는 모습에 어릴적을 떠올렸다는 헛소리를 하기엔 오늘의 자리가 마냥 가벼운 것이 아니었기에 고개를 젓고 말했다.
“아무 생각도 안했어. 떨려서 무슨 생각이나 들겠냐.”
“첫 독주회라고 바이올린 천재 째섭이 긴장도 하냐?”
“… 여기 내 대학동기들도 많으니까 제발 헛소리 그만해주라.”
장난쳐놓고서 뻔뻔하게 웃는 얼굴에 네 어깨를 가볍게 쳤다. 첫번째 독주회에 와주길 가장 바랐던 사람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너를 말할 수 있었다. 내가 일상을 선택하게 만들고, 또 다시 바이올린을 잡게한 나의 오래된 친구. 눈발 날리던 겨울날엔 당신을 질투하고, 따라잡지 못할 이로 치부하고 동경했을 때도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닮아 있는 것 같으면서도 분명한 곳에서 달랐다. 제가 제 주변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면, 당신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고 있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 용기내지 못할 때, 당신은 원하는 것을 향해 손 뻗을 줄 알았다. 그렇게 쉼도 없이 앞으로 달려나가면서도 다정한 너는 뒤를 돌아보며 저를 살피는 것이다. 이제는 꽤 성공한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당신이 여전히 질투날 때도, 동경의 시선으로 보게 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실패든, 성공이든 그런 세상의 잣대에는 상관없이 우리는 오랜시간 함께해왔다. 푸른 봄의 첫만남, 내리쬐는 태양의 학창생활, 낙엽 밟히는 캠퍼스 라이프를 지나 다시 눈 내리는 지금으로. 당신과 함께 울고 웃으며 함께한 시간들이, 제가 선택한 일상이 다시 이 자리로 자신을 이끌었다.
“나 시간 다 됐다.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
“… 잘해라.”
바이올린을 들고서 무대로 나서는 발걸음이 긴장했던 이전과 다르게 가볍다. 언듯 시선이 머문 창문밖엔, 더이상 눈 내리지 않았다.
눈이라도 3월에 오는 눈은 오면서 물이 되는 눈이다. (3월에 내리는 눈_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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