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Dear. Arthur
1967.02
일단 축하한다는 말을 먼저 해야겠네요. 조사단 합격 축하해요 아서.
잘 지냈나요? 조사단 결과가 나온 뒤 답장을 받을 수 있을 테니, 답장이 오래 걸릴 것은 예상했지만 해가 바뀔 때까지 못 받을 줄은 몰랐어요. 당신의 편지를 정말 누군가 친 장난 정도로 생각할 뻔했다니까요. 물론 이렇게 답장이 왔으니 이제 와서 당신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요. 그리고 이리 증거물까지 첨부해 보냈으니 어떻게 믿지 않을 수 있겠어요. 말단 기자를 놀리는 데에 금을 이렇게 정교하게 가공해서 보내는 괴짜가 있을 리가 없죠. 동봉된 금화가 진짜인가 싶어서 깨물어보기까지 했다니까요. 당신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이런 금화를 제가 사는 이 세상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겠나요!
나에겐 당신의 편지와 이 금화가 꽤 특별한 것이에요. 설명해 준 마물이란 것도 그렇고, 잘생긴 대공을 포함한 영웅들도 우리 세계엔 없는 것들이니까요. 마물은 일단 흉포한 야생동물, 서부 대륙 통일의 영웅들은 통일전쟁의 공로자들이라고 이해했어요. 제가 이해한 게 맞을까요? 설명을 잘 못한다고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자신이 사는 평범한 곳을 묘사해 보라고 하면 대부분 아서와 같이 대답하는 게 최선일 걸요. 잘하고 있으니 자신감을 좀 가져봐요. 아서, 당신의 이름은 우리 세계—이하 통칭 지구라고 할게요. 내가 사는 별의 이름이에요.— 에서는 아주 유명한 영웅의 이름이니까요. 아서왕이라고 원탁의 기사들과 함께 국가를 건설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중세 시대엔 아서왕의 이야기가 너무 인기를 끌어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라고 하죠. 당신의 이름을 보자마자 당신이 영웅이 될 사람인 것 같이 느껴졌을 정도에요.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세계를 넘어 이야기하는 것 만으로도 특별한 일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당신이 말한 것처럼 영웅까진 아니더라도 기적처럼요.
정돈된 편지가 아니더라도 좋으니 당신이 사는 곳의 이야기를 많이 해줘요. 조사단에 합류하게 만든 그 3가지 물건이 대체 어떤 것들인지,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 동경하던 영웅들을 보게 된 소감은 어떤지, 또 조사단을 대상으로 열리는 연회는 어땠는지 같은 것들 말이에요. 당신의 쓰레기통은 저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고 어디에든 있으니 새로운 소식이 생기면 언제든지요. 당신을 못 믿겠다던가, 제 편지가 필요할 것 같다던가 편지를 기다리는 여러 이유를 적긴 했지만 제일 처음에서 말했잖아요. 나는 이런 글들을 읽는 걸 아주 좋아한다고요. 당신이 당신의 세계 이야기를 해주면, 저도 내 이야기를 몇 가지 할게요. 비밀을 공유한 친구끼리 사회성 떨어져 보인다는 그런 말은 뒤로 제쳐두자고요.
황실이니, 평민이라고 하면 아직 그쪽에는 계급제도가 존재하는 거겠죠? 지구도 아직 계급제도가 존재하는 나라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사라져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사상이 주를 이루려 하고 있어요. 물론 이전에 말했던 저희 부모님 세대엔 아직 흑인은 미개하다던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그건 저희 세대가 바꾸어 나가야 할 인식이겠죠. 그런 것들을 위해서 기자가 된 것이기도 하고요. 최근 대학가에서는 저 같은 이들이 많이 늘어나는 추세인가 봐요. 베이비붐세대라고들 하죠. 전쟁을 겪어본 적 없는 세대 말이에요. 2차 세계 전쟁 이 끝나고, 승전국인 미국의 풍요로운 환경에서만 자라나면서 전쟁에 회의적이고, 자유나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청년들 말이죠. 저를 포함해서요. 미국이 베트남전 에 파병을 결정한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 구체적인 성과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저는 아무래도 전쟁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없고요. 이런… 통계적인 이유를 제쳐두더라도 누구라도 파병을 다녀온 이들이 겪는 고통을 알아가다 보면 그 트라우마에 대해서 동정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이런, 편지가 너무 일 이야기로 변했네요. 이번 주에 실을 기사가 이런 대학생 운동가들을 취재하는 것이었거든요.
다른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저번에 맨해튼에서 대대적으로 공사를 시작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죠. 그곳에 있는 수상한 건물에 대한 조사가 본격적으로 잡혔어요. 다만 경찰들이 하는 건 아니고, 제가 직접요.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이야기 아닌가요? 저는 기자인데, 그런 위험한 사건을 맡으라니! 당연히 상사에게 항의했지만 3달 동안 쓴 게 쓸데없는 칼럼 같은 것과 같은 글들 뿐이라는 상사의 지적에 차마 반박을 할 수 없더군요. 그래서 다음 주부터는 맨해튼으로 매일 출근을 하게 됐어요. 솔직히 특종은 그런 낡고 귀신 소문만 도는 건물이 아니라 당신과 연결되는 이 서랍인 것 같은데, 잠시 고민한 것도 사실이랍니다. 오, 이 문장을 읽고 너무 화내지 말아요. 당신과의 비밀을 돈 몇푼에 팔아넘기는 게 아니라 그저 푸념일 뿐이니까. 크리스마스도 새해도 바쁘다며 고향 땅도 못 밟아보게 한 회사가 이젠 헛소문을 조사하라고 하기까지 하니, 분명 저번 편지에서는 애사심이 넘쳤던 것 같은데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한동안 일에 파묻혀서 살았더니 당신에게 괜히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게 되네요. 당신은 착한 것 같으니 이 정도는 ‘지구’의 이야기를 말한 것이라고 생각해 줘요. 나도 당신이 사는 곳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줄 수 있으니까 힘든 점이 있다면 언제든 편지해요. 나도 다시 편지할게요.
Form. O'Neill Audrey
1. 나치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일본 제국 3국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과, 이에 미국과 영국, 소련, 중화민국, 프랑스가 이끄는 연합국이 맞서면서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지구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
2.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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