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착헌,NCP] 강창호 집 마당에서 캠핑을 해요
강창호 수난기...
모다깃(@voldagit)님의 생일 기념 리퀘입니다.
퇴고를 안 한 글이라 지속적으로 수정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분량 약 5000자.
"김기려. 지금 내 마당에서 뭐 하시는지?"
"캠핑 준비요. "
"그러니까 그걸 왜... 하아. "
강창호가 피곤하다는 얼굴로 콧대를 꾹꾹 주무른다.
병실에서 일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 오늘내일하는 폐병 각성자는 자신의 병에 드디어 눈에 뵈는 게 없어졌던지 실로 기가 막힌 행보를 이어갔다. 정보를 알아 와라 명령을 하질 않나, 무릎은 꿇을 줄 아냐고 도발을 하질 않나. 얼마 전에는 저와 했던 약속을 깨고 [백의 미로]에서 있었던 일을 정하성에게 소상히도 일러바쳤는지 그 바쁘신 1위 헌터께서 저에게 전화를 다 하고...
- [백의 미로]에서 있었던 일, 다 전해 들었습니다. 제 의식을 잃게 만든 것도 모자라 김기려 헌터님께 위증을 요구하셨다고요.
"아, 그거. "
강창호는 커피를 내리며 말을 이어갔다.
"유감스럽게 됐어. 딱히 널 죽이려던 건 아니었으니까 마음은 풀었으면 좋겠네? 어쨌든 살아 돌아왔잖아. "
수화기 너머로 화난 듯 이를 까드득 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 ...언젠가 이 모든 걸 갚아야 할 날이 올 겁니다. 알아두세요.
"그래, 뭐. 언젠가는. "
강창호는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를 내려다보며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덧붙인다.
"아, 적당한 보상을 하나 할까 하는데 생각나는 거 있으면 이 번호로 연락하고. 이래 봬도 내가 양심이란 게 있는 사람이라. "
정하성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말한다.
- 끊습니다.
그 이후에 정하성이 집으로 찾아갈 테니 시간 되는 날을 알려달라기에 오늘 날짜를 알려줬더니 이 모양이다.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오고, 문을 열자 밖에는 정하성 홀로 있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정하성과 김기려, 그리고 한가득 쌓여있는 웬 짐들이 강창호를 맞이했더랬다.
드물게도 당황한 강창호가 눈썹을 찌푸리며 상황 설명이나 해보라는 듯 정하성을 쳐다보자 그때 정하성이 뭐랬더라.
"이게 제가 원하는 보상입니다. "
그 말이 있는 후에 김기려는 짐을 강창호의 손에 손수 들려주며 마당으로 옮기라 지시를 내렸다.
이게 원하는 보상이라시니... 하는 수 없이 순순히 짐을 옮기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강창호는 베란다의 문틀에 기댄 채 잘 가꾼 제 마당에 우왕좌왕하며 텐트를 치고 있는 대한민국의 내로라 하는 S급 헌터 둘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김기려는 텐트 조립 설명서를 빤히 들여다보더니 텐트로 저벅저벅 걸어가 거침없이 텐트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정하성은 '역시 헌터님...!'하는 광신도적인 눈빛을 열렬히 보내고 있고, 강창호는 그 꼴을 보며 역시 최근의 정하성은 어딘가 맛이 나간 것 같다는 가차 없는 평가를 내렸다.
그렇게 텐트를 거의 다 조립해갈 즈음에 김기려가 잠시 멈칫한다. 그러고는 무엇인가를 한참 동안 붙들고 씨름하는데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성아 이거 폴대 부러졌는데? "
"네? "
보아하니 원래부터 불량으로 나온 제품인 듯 보였다. 하는 수 없이 그 폴대를 억지로 끼워 넣어 둘은 지붕 한 쪽이 처참하게 무너진 텐트를 얻게 되었다.
"그... 모양은 이래도 들어가 쉴 수는 있으니까요! "
정하성의 눈물겨운 쉴드였다.
그 모양을 가만히 바라보던 강창호가 다시 입을 연다.
"그래서 왜 내 집 마당이 당신네들 캠핑장이 됐는지, 난 그게 참 궁금한데 말이야. "
잘 손질된 잔디 마당에 텐트 고정 바를 콱콱 박아넣던 김기려가 고개를 든다. 삼백안의 험악한 인상에 손에 든 고무망치가 피 묻은 쇠망치로 바뀌어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다.
"그거야... S급이 일반 캠핑장에 가기에는 민간인들도 이용하는 시설이라 안 되고. 인적 드문 산이나 갈까 했는데 거긴 곰이 있던데요. "
"곰? "
"예, 곰. "
김기려가 산에서 토끼라도 만났다는 듯 표정 하나 안 바뀌고 평이한 어조로 말을 잇는다.
"S급으로 각성도 했겠다, 솔직히 곰은 별로 안 무서운데 걔네 천연기념물이라면서요. 제가 벌금은 무서워서... 금전의 위협을 받아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좋네요, 여기. "
김기려가 마당을 한 번 쓱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좋은 캠핑장이라도 찾은 캠핑객의 모습이었다.
문 앞에 놓인 짐들 중 그릴을 끌고 마당으로 옮긴 정하성이 김기려를 부른다. 김기려는 아이스박스에 넣어온 각종 고기와 소시지, 집게를 들고 한껏 진지한 얼굴로 그릴로 향했다.
정하성이 그릴에 불을 피우고 김기려가 집게로 신중하게 고기를 집어 그릴에 놓는다. 정하성이 스킬을 사용해 고기가 잘 익도록 세심히 불을 조정했다. 아마 정하성이 스킬을 사용한 상황 중 제일 어이없는 이유일 거라고 강창호는 생각했다. 저 비장한 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지만.
고기 익는 냄새가 마당을 가득 채우고, 또다시 초인종 소리가 들려온다.
강창호가 의아한 얼굴로 현관으로 몸을 돌리자 김기려가 그보다 빨리 문 앞으로 가 저가 집주인이라도 되는 양 문을 열어준다. 문을 연 그곳엔 서에스더, 선우연, 안윤승이 있었다.
"형님! "
"어머, 기려씨. 이게 다 뭐예요? "
"안녕하세요, 김기려 헌터. "
마당이 넓은 고급 주택인 탓에 시끄러울 일이라곤 전무했던 강창호의 집이 명절날 큰 집이라도 되는 듯 순식간에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쩐지 고기를 10인분을 굽더라...
강창호는 김기려에게 더 이상 이 상황에 관해 물을 여유도 없이 체념해버려 그저 은은히 미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안윤승이 "고기에는 된장찌개가 있어야죠, 형님. 제가 된장찌개 사 왔습니다!" 하고 의기양양하게 손에 든 비닐봉지를 치켜올리고, 서에스더가 문 앞에 놓은 캠핑용 의자 수어개를 작은 몸으로 가뿐하게 들어 옮긴다. 그나마 남의 집에 온다는 자각은 있었던 선우연은 사 온 두루마리 휴지 한 묶음을 강창호에게 건네며 '저 외계인의 기행이란 나도 잘 아는 바다'하는 안타까운 눈으로 강창호에게 공감의 눈빛을 건넸다.
마당에 캠핑용 테이블과 의자를 깔고 - 김기려는 선심 쓴다는 듯 강창호의 자리도 마련해주었다. 강창호는 한 편으로는 어이없었지만 '그래, 어디까지 하나 보자'는 마음으로 본인 몸에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캠핑용 의자에 쪼그려 앉았다고. - 정하성이 모두에게 고기를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정하성이 선우연의 접시를 받아든 순간 선우연이 말한다.
"저... 청탁 금지법 때문에... "
정하성의 옆에서 고기를 굽던 김기려가 정하성에게 말한다.
"하성아, 여긴 고기 5만원어치만. "
"아, 네! "
실로 고깃집이라도 온 듯한 풍경이었다.
고기에, 된장찌개에, 계란찜, 냉면까지 후루룩 말아먹은 사람들은 배가 불러 나른해진 몸으로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노을이 진다.
집주인의 섬세한 성격을 대변이라도 하듯 모난 곳 없이 깔끔하게 정리된 정원수 위로 주황빛 노을이 물든다. 끝 무렵의 여름 바람이 선선히 불어오고, 바람에 잎사귀를 흐트러뜨리는 나무들은 쏴아- 하는 파도 소리를 흉내 낸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높기만 하고, 이 땅의 모든 것들이 어느덧 가을이 올 시간임을 시사하듯 풍족하기만 하다.
여유롭다.
사람들 속에서 그러한 감정을 느껴본 게 얼마 만이던지.
강창호는 고개를 젖혀 하늘을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했다.
그리고 맞은 편에 있는 김기려와 시선이 허공에서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서로가 서로의 시선을 끈질기게 붙들고 있었을까, 옆에서 누군가가 정적을 깨고 말한다.
"어, 비 온다. "
그 말을 시작으로 순식간에 주변이 어수선해진다. 그 말대로 청명한 하늘에 비가 한두 방울씩 내리고 있었다. 여우비였다. 사람들은 텐트를 접고, 온갖 짐들을 지붕 아래로 옮기기 시작했다.
화창한 하늘과 달리 비는 점점 거세지고, 짐을 옮기느라 비를 맞은 이들은 집주인의 허락을 받아 화장실로 가거나 집 안으로 비를 피했다.
비가 내리는 그곳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이는 김기려였다.
"안 들어가? "
비를 피해 지붕 밑에서 그렇게 물은 강창호는 노을지는 태양을 마주하고 비를 맞고 있는 김기려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맑은 하늘에 노을은 지고, 노을에 물든 투명한 빗물은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그 가운데 김기려는 그곳에 제 자리인 양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다. 수속성 각성자인 그라면 우산 없이도 비를 피할 수 있을 테지만 김기려는 그러지 않았다. 다만 쏟아지는 비를 만끽이라도 하듯 잠잠히 서 있을 뿐. 그는 너른 호수의 고요한 큰물과도 같았다.
강창호는 그 모습에 감히 그를 더 부를 수는 없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창백한 피부에 빗물이 맺혀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팔랑이는 속눈썹에 자잘한 방울들이 살포시 맺힌다. 흰색 와이셔츠가 젖어 들고, 검은색 슬랙스는 비에 젖어 축 늘어진다.
김기려는 피부에 닿아오는 빗방울의 감각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구에서의 생애 또한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물속에서는 비를 맞을 수 없었으므로.
김기려는 드디어 눈을 뜨고 저 오만한 지구인의 얼굴을 돌아본다.
그리고 눈에 띄지 않을 만큼 고요한 미소를 띠며 묻는 것이다.
"들어갈까요. "
실로 아름다운 노을빛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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