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조각

리뉴얼 로그.

태어난 곳이 아니어도,

고르지 못했다 해도

나를 실수했다 해도

이 별이 마음에 들어.

/윤하, 별의 조각

차라리 너도 음악을 해 보면 어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눈 앞이 새하얘지는 것 같았다.

그것은 야에다 가 내에서, 명백한 적의의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쥐고 있던 시험지가 콰작, 하고 구겨졌다. 회색의 시험지에는 붉은 동그라미 외에도, 눈에 띄게 사선이 그어져 있었다.

믿을 수가 없다.

이 내가?

특별 수업으로부터 일 년, 계절이 다시 한 번 돌아, 무더위에 피부가 끈적해지고, 대리석으로 만든 수돗가가 바싹 말라버리는 계절.

매미가 미친듯이 울어대는 계절.

야에다 카오루코, 19세의 여름.

시험을 거하게 망쳤다.

부엌에는 고용인 두엇이 있었다. 머리를 질끈 올려묶은 중년의 여성들이었는데, 그들 전부가 늘 야에다 가를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니고, 그 중 절반은 일종의 임시였다. 새해나 명절, 집안 모임. 아무튼간에 집안 단위로 노동력이 필요하면, 집안의 어른들은 아들이나 딸들을 일하게 하는 것 대신 사람을 고용했다. 카오루코는 그게 썩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들 -그러니까 고용인들 말이다.- 역시 대를 이어 고용된다는 점은 조금 불편했다.

고용인 중 한 명은 세토(世登)라는 성씨를 가졌다. 세토, 세토 미야코. 미야코 씨는 카오루코의 할머니가 고용한 입주 관리인이였다. 카오루코의 본가 근처에 사는 미야코 씨는, 일 년에 열 번쯤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으로, 가족 모임이 열릴 때마다 야에다 일가의 식사를 만들기 위해 얼굴을 내비쳤다. 그것은 대를 잇는 것으로, 카오루코가 기억하는 한 가족 모임에는 항상 세토(世登)라는 여성이 있었다. 그건 바뀌지 않는 일이다. 그녀들은 대대로 이런 일을 했다. 그녀의 어머니도, 어머니의 어머니도, 아마도 자식도.

아무래도 이상한 일 아닌가?

······하고 생각한대도 별 의미는 없다. 부모도, 조모도, 조부도, 그 누구도 세토 씨의 존재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세토 씨의 할머니를 향한 감정. 그러니까 충성심에 가까운 그것은, 그들 집안의 무게에서 오는 것이므로. 대대로 법조인, 규율이라는 게 바로잡힌 때 우리가 거기에 섰다는 식의······. 집안의 어른들은 본인들이 대대로 법조계에 종사했다는 것에 꽤나 자부심을 가졌다. 그들에게 금색 뱃지는 혈통의 증명서나 다름 없었다. 그러므로, 그러한 신화를, 세토 씨도 믿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카오루코?”

“네?”

“심심하면 심부름 할래?”

“심심하지 않은······. 아, 아뇨. 네에····· 다녀올게요.”

카오루코는 과일이 든 접시를 들고 거실로 발길을 옮겼다. 실은 그들이 불편한 것은, ‘이상하다’ 거나 ‘어색하다’ 같은 이유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다. 진짜 이유는······ 그들이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세토 씨는 근 십여 년, 세토 씨의 어머니는 그보다 많은 시간을 이 집에서 보냈다. 보통 어머니와 딸은 친한 법으로, 그들은 야에다 가 내부 사정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래, 그러니까······ 카오루코에 대해서도.

시험을 거하게 망친 날, 카오루코는 다른 길로 새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서 샤워를 하고, 과제를 마치고, 식사를 하며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족들도 다를 바 없었다. 평범한 날이었는데······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는데. 다른 이야기를 할 때는 제대로 말할 수 있었다. 다만, 회색 종이 위에 적힌 숫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목이 턱 막힌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가 시험에 대해 언급했을 때, 카오루코는 떨리는 목소리로 오늘 점심에 있었던 일을 고해야 했다.

낙오자?

그래, 아마도 그런 단어였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포함한 친지들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친가의 막내 삼촌을 부르던 단어가.

카오루코는 어렸다. 카오루코는 막내 삼촌을, 야에다 신야를 좋아했다. 어른들은 너무도 가혹하게 굴었고, 카오루코는 그것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서는 학습되는 것으로, 어른들이 신야를 박대하고, 차별하며 괴롭게 할 때마다, 카오루코는 기괴한 감정을 느꼈다.

집안의 어른들은 옳고 멋지고, 바른 사람. 그렇지만 삼촌에게 저런 식으로 말해. 찡그리게 만들고, 괴롭게 만든다. 가족끼리는 도와야 하는 건데. 그렇게 말했으면서. 왜? 삼촌이 음악을 하겠다고 해서? 법을 다루는 사람이 되지 않아서? 그런 이유로 괴롭게 만드는 건가? 그러면, 정해진 길을 따라 가지 않으면.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러면, 가족이 아닌가?

어린아이에게 부모나 가족은 세계나 다름없었으므로, 그들 없이 살아갈 순 없었다. 정서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카오루코는 어머니가 좋았다. 아버지도 좋았다. 할머니도 좋고, 할아버지도, 막내 삼촌도 좋았다. 다 좋은데, 전부 좋은데······. 전부 사랑해 마지않는데······. 그런 모두와 가족이 아니게 되기는 싫었다. 다 좋은데, 하나만 고를 순 없는데······.

결국, 가진 것은 학습된 애증, 기만, 경멸······.

카오루코는 막내 삼촌을 좋아하면서도 무시했다. 사랑하면서도 집안의 혹처럼 대했다. 그것은 대놓고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카오루코 자신만큼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기만자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죽어버릴 수는 없잖아.

죄책감이 들어서, 카오루코는 막내 삼촌에게 깎듯이, 애정을 담아 대했다. 집안 가족들이 한 소리라도 할라 치면 끼어들어 막았다. 그 뒤로 몇 년, 막내 삼촌은 집안 모임에 참여하지 않다가, 슬그머니 돌아와 얼굴을 내비쳤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막내 삼촌을 ‘용서’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차라리 너도 음악을 해 보면 어때.

열 아홉 살의 여름, 야에다 카오루코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종이 위의 글자들이,

목을 조르는 것 같다고······.

정신을 차렸을 때, 방 안은 온통 얼어붙어 있었다.

음반과 레코드는 전부 깨져있었고, 얼어붙은 다다미는 온통 결이 일어나 있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무슨 말을 들었더라?

- 난 네가 늘 너무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어.

아하······.

맞다. 그거였어.

한 번 실패한 것 뿐이잖아.

그 동안 열심히 했었는데.

딱 한 번 뿐인건데······.

왜, 내가 실패할 걸 알았다는 것처럼······.

특별 수업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모두와 수족관에 갔다. 온통 푸른 빛이었고, 이름조차 모르는 물고기들이 물 속을 유영했다. 사람들의 낯 위로 파란 빛이 어려서, 카오루코는 기시감을 느꼈다. 어디에서 봤더라. 그래. 그랬었지. 마지막으로 본 불꽃도 이런 식으로······.

아, 이건.

꿈이구나······.

물 그림자가 울렁울렁 얼굴 위로 드리워진다. 고래가 몸을 비틀며 지나면, 사람들은 감탄 어린 목소리로 즐거워한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발을 옮겨 출입구로 향한다. 꿈은 기억 이상을 담을 수 없다. 바깥의 풍경은 기억나지 않는다. 돌아가는 길은 지워진 지 오래다. 오직 푸른 심상만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그러니, 아마도 이 문을 지나면 꿈에서 깬다. 아쉽다.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꿈은 아무것도 담보해주지 못하므로,

카오루코는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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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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