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사의 무대

붉은색의 당신에게 카네이션을

리리 이데아 x 카이멜 시레노바

네모난 종이가 삼각형이 되도록 반으로. 종이가 갈라지는 뾰족한 부분을 아래로 내려 접고. 다시 옆으로 반으로. 네모난 귀퉁이를 직각으로 올려 접고 비스듬히 일부를 다시 내려 접는다. 열심히 접은 모형이 자연스레 열리는 곳을 피고, 작은 삼각형을 내려 접는다. 마지막으로 비스듬히 계단 접기를 하면 꽃잎 한 장이 완성된다.

꽃잎 다섯 장을 더 접어 서로 이어지게 붙이고, 마지막으로 초록색 한 장을 더 접어 꽃봉오리를 완성시킨다.

당신에게 바칠 카네이션이 작은 손에서 피어난다.

* * *

리리가 처음 종이접기를 시작한 것은 오월이 갓 시작한 봄날이었다. 사실 정확한 날짜도, 계절도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는 UP에서는 상관이 없었지만 리리는 꾸준히 날짜를 하루하루 마음속으로 표기했다.

오늘은 토요일. 내일은 일요일.

학교에 다녔을 때가 어렴풋이 기억났었다. 아마 리리가 UP에서 살아온 시간이 그리 오래되지 않아 의식 속에 남아있었는지도 모른다. 맞아, 이맘때쯤 학교에서 카네이션을 하나씩 접어 집에 가져갔었지. 조막만한 손으로 붉은색 카네이션을 접어 어머니의 가슴팍에 달아드렸고, 어머니는 리리를 향해 웃으며 꼬옥 안아주었다. 열심히 접은 카네이션이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내일은 오월의 두 번째 일요일. 어머니날 (Mother’s Day) 이었다.

* * *

약간은 조급해진 마음이었다.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세세한 단계가 기억나지 않았다. 색종이를 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종이가 있어도 접는 방법을 모르면 말짱 헛수고였다. UP에 생화가 있을 리 없으니 살아있는 카네이션을 구하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그렇지만 리리는 포기를 모르는 긍지 높은 조수가 아니었던가. 자료조사만큼은 자신 있다 자부할 수 있었다. 조수의 의무를 빠르게 처리하며 틈틈이 찾아보았다. 가끔 저스티스 카이멜이 수상하단 듯한 눈길을 보냈었지만 리리는 시치미를 뚝 뗐다. 아직까지는 비밀이었다, 아직까지는.

돌파구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게 되었다. 어느 에리어의 작은 도서관을 뒤지고 있던 리리는 “어라, 리리 조수님?”,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작은 조수를 웃으며 바라보고 있는 마술사는 자신도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푸른색 머리칼, 빛나는 눈동자, 가벼운 미소. 저스티스 시라, 당신이 무슨 이유로 이런 곳에, 라는 얼핏 무례할 수도 있는 말을 삼키고 그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다지 가까운 사람은 아니었으니 달리 할 말도 없었다. 그의 모자에 달린 푸른색 종이 장미를 보기 전까지는.

그리고 어느덧 정신 차려보니 리리는 저스티스 시라의 손을 붙들고 있었다.

“저스티스 시라, 혹시 카네이션을 접는 방법을 아시나요?”

갑작스러운 접촉에도 놀라지 않고 저스티스 시라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긴 아는데. 그걸 리리 조수님이 왜 물을까?”

약간은 낯선 사람, 껄끄러운 사람이었지만 리리는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되지 않았다. 리리 이데아는 당당하게 부탁했다.

“카네이션 접는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 * *

저스티스 시라가 리리에게 종이접기를 전수하는 과정에서 그리 많은 말이 오가지 않았다. 리리는 빠르게 배우는 학생이었고 처음 몇 번을 제외하고는 크게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집중하는 리리를 방해하지 않고 그저 빤히 응시하던 저스티스 시라가 입을 연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그거 아니, 리리 조수님? 보통 어머니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할 때는 붉은색의 카네이션을 선물하지?”

마치 리리가 왜 자신에게 가르쳐달라 했는지 아는 듯한 말투였다.

“붉은색 카네이션은 사랑, 또는 애정을 뜻하는 꽃이란다. 하지만 꼭 붉은색의 카네이션만 선물하는 건 아니지.”

말없이 리리는 저스티스 시라의 말을 경청했다. 그래, 자신이 어머니에게 선물했던 카네이션은 전부 붉은색이었지, 떠올리면서.

“분홍색의 카네이션은 존경을 의미하고, 흰색의 카네이션은 주로 추모에 사용되는 꽃이라, 돌아가신 어머니의 기억을 기리는 뜻으로 쓰이지.”

리리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저스티스 시라는 모른 척 다시 시선을 저 너머로 돌렸지만 리리는 그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항상 자신에게 묻고 묻던 질문이 다시 아픈 곳을 찔러서였을까.

자신의 어머니, 시아나 이데아는 살아있는가. 살아있다면 어째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처럼 자신을 버리고 떠난 것인가. 리리가 아는 자신의 어머니는 강한 사람이었다. 험한 세상에서 자신뿐만 아닌 리리 또한 지키며 살아왔을 정도로 굳건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모르는 것이었다. 한 번의 실수로, 순간의 방심으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비일비재했다. 리리는 적어도 그렇게 자신을 설득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어머니가 자의로 자신을 두고 떠나지 않았으리라고.

그렇다면, 리리는 자신에게 묻는다. 어머니, 이번에는 당신에게 어떤 색의 카네이션을 달아드려야 할까요? 접고 있던 붉은색의 카네이션을 바라본다. 붉은색, 그래, 마치 불꽃처럼.

* * *

불꽃처럼 화려하고 강렬한 저스티스 카이멜. 이곳에서 눈을 뜨고 우왕좌왕하던 참가자들을 쉽게 휘어잡고 통솔하던 마술사. 자신에게 마지막에서 손을 내밀어 준, 고마운 사람. 풍랑 속에서 등대 같았던 사람.

거친 시련이었다고, 리리는 기억한다. 지금이야 조수의 일도 익숙해졌고, 아티팩트 사용에 능숙해졌다지만 처음에는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자신의 아티팩트 능력은 공격용이 아니었다. 작은 체구도 전투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유일하게 페이스리스를 제거할 수 있는 무기형은 도통 쓸 수가 없었다. 사실 지금도 무기형은 조금 힘들긴 하다고, 리리는 쓰게 웃었다. 리리가 할 수 있는 건 노력하고, 또 죽도록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그 노력 덕분에 끝까지 살아남았지만, 시련을 통과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점수였다. 그 당시 리리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카이멜 님은 나에게서 무엇을 본 걸까, 어떤 가능성을 본 걸까? 늘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저 인정받고 싶었다. 유능하고 도움이 되는 조수로서. 혹시라도 버려지는 일이 없도록. 그럴 사람이 아닌 걸 알았지만,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았던 날 이후로 리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런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몰랐다.

리리는 인정한다. 저스티스 카이멜, 당신은 어쩌면 자신의 어머니를 닮았을지도 모른다고.

“강해지렴, 리리. 그것이 네가 행복해지는 길이야.”

그래서 리리는 더욱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제가 강해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 감정은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인정을 바랄지언정 애정도 사랑도 기대하지 않는다. 적어도 리리는 그렇게 자신을 설득했다.

* * *

리리 이데아, 그렇다면 너는 저스티스 카이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머릿속 작은 목소리가 묻는다.

그를 존경해요. 그에게 감사해요. 그를 닮고 싶어요.

…조금은 솔직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그를 아끼고, 애정하고, 소중하게 생각해요. 사랑에도 여러 형태가 있다면, 그래, 이것을 사랑이라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멈췄던 손은 다시 색색의 종이를 든다.

* * *

그리고 다가온, 일요일. 리리 이데아는 두 송이의 종이 카네이션을 품에 안는다.

어머니, 당신을 사랑한다는 의미로, 비록 저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당신이 아직까지 살아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에 당신에게 붉은색의 카네이션을 바칩니다.

카이멜 님, 당신에게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제 삶에서 당신은 따듯하게 빛을 비춰주는 불꽃입니다. 아마 당신의 곁을 떠나야 할 때가 오더라도 그것만큼은 변함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신을 애정합니다. 저에게 당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늘 들고 다니는 분홍색 토끼 인형을 잠시 내려놓는다. 어머니께 열세 번째 생일 선물로 받은 인형과 닮아 UP에서 발견했을 때 망설임 없이 챙긴 인형이었다. 목의 리본에, 붉은색의 카네이션을 한 송이 꽂는다.

손에 조심스레 다른 카네이션을 쥔다. 마치 너무 세게 쥐면 바스러질까 걱정하듯이. 저스티스 카이멜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곳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너무 늦지 않았을까, 덜컥 겁이 나 거의 뛰다시피 목적지까지. 그곳에 당신은 있었다. 붉은색의 머리카락과 반투명한 검은색 망토를 휘날리며, 금빛의 눈동자가 저를 향한다.

“카이멜 님, 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당신에게 붉은색과 분홍색이 어우러진 카네이션을 바친다.


Written 18-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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