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Me, when Rain Falls on our Stage
카이멜 시레노바 x 리비에르 시라 AU (1주년 로그)
카이멜 시레노바, 너는 나에게 있어 불꽃처럼 시작된 첫사랑이었다.
꽃잎처럼 낙하하는 비 사이로 보았던 너는, 나에게 찾아온 마법 같은 사랑이었다.
“…Seven Lions의 Keep it Close였습니다.”
거의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등교라고 하기도 민망한 시간이었지만 리비에르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아침이면 아침이고, 점심이면 점심이겠지, 학교 선생이 듣기라도 하면 기함할 생각을 하며 느긋하게 사물함에 불필요한 책을 밀어 넣던 중이었다. 백색 소음으로 흘려듣던 노래가 끝나갈 무렵 들려온 목소리가 그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누구지?’
알 리가 없었다. 두루두루 원만하게 지내는 편이었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없었고, 굳이 모르는 동급생들의 이름을 알아낼 만큼 관심을 가지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 듣는 목소리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지만 뭐, 변덕인가 보지 싶었다. 혹시 그 목소리가 더 들려올까 싶어 잠시 기다렸지만, 음악 방송이 끝난 참이었는지 복도에는 주변 학생들의 목소리로만 가득했다. 조금 아쉽네, 리비에르는 그땐 그저 그렇게 넘겼다.
“리비에르 시라, 맞나?”
그 목소리의 주인을 만나게 된 건 그 후 며칠이 지나서였다. 어쩌면 학교 수업보다 성실하게 임하는 원예부 활동을 마치고 학교를 떠나려는 참이었다. 누구지? 호기심에 돌아본 리비에르의 눈동자에 붉은색이 피어났다. 단정하게 머리카락을 땋아 내렸지만, 한순간 시선을 빼앗길 정도로 화려하고, 강렬한 인상이었다.
어떤 정신으로 답을 했는지도, 무슨 답을 했는지도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 이름도 물어보지 못했네. 뒤늦게 조금 후회했을까.
혹시 방송부에 아는 사람 있어? 붉은색 머리카락에, 아마도 나하고 같은 학년? 그답지 않게 흥미가 생겨 주위에 물어보기 시작했다.
“카이멜 시레노바 아냐? 모르는 게 더 이상한데. 넌 어떻게 된 게 학생회장도 모르냐…. 학교 정말 대충 다니는 티 낸다.”
꼬치꼬치 물어보고 다니던 그에게 한 동급생이 약간 어이없어하며 일침을 날렸다. 실제로 졸업이 간당간당할 만큼 학교를 제대로 다닌 적이 없는 그였기에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리비에르는 대부분을 흘려듣고 이름만 선명히 기억에 새겼다. 카이멜, 카이멜 시레노바. 이름도 목소리나 인상만큼 강렬한 사람이네, 흘러가듯 생각했다. 그게 싫지는 않았다.
변덕에 이은 변덕이었을까. 리비에르는 학교에 제시간에 등교하기 시작했다.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쟤가 정신을 차릴 리는 없고 드디어 정신줄을 놓은 걸까. 동급생들도 경악하고 선생들도 눈을 의심했지만, 리비에르는 그들에게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오직 아침에 나오는 방송을, 카이멜의 목소리를 들으러 온다는 걸 알았으면 어떤 반응을 끌어냈을까. 사실 리비에르 자신도 제 감정에 명확하게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그저 더 듣고 싶었기에, 제 마음 가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었다.
그날 역시 그랬다. 비가 내리는 오후에, 리비에르는 잠시 고민했다. 그렇게 많이 오지도 않는데 그냥 맞으면서 갈까, 아니면 그치길 기다렸다가 갈까. 비 맞는 느낌을 그리 싫어하지 않았기에 그냥 발걸음을 옮기려는 그의 눈에 교내 우산이 들어왔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잊은 학생들에게 빌려주는 용도로 두는, 무늬 없는 평범한 투명 우산이었다. 충동적으로 우산 하나를 집어 들고 펼쳐 하늘을 가렸다. 빗방울이 우산을 두드리는 소리를 배경음 삼아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리비에르는 거리를 걸어 나갔다.
그다음 날, 성실하게 아침에 학교로 온 리비에르는 일부러 까먹은 척, 우산을 돌려놓지 않았다. 무얼 기다리고 있었을까.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교내 스피커가 켜지는 치직거리는 작은 소음이 들렸다. 리비에르는 귀를 기울였다.
“공지합니다. 어제 교내 우산을 빌려 간 학생들은 우산을 꼭 돌려놓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제는 익숙한 목소리를 귀에 담았다. 저런, 잊어버렸네, 뻔뻔하게 웃어 보이기도 하면서. 쉬는 시간, 리비에르는 가볍게 발걸음을 옮겨 학생회 부실로 향했다. 똑똑, 마찬가지로 가볍게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렸다. 단정하게 묶은 붉은색 머리칼 아래, 의외의 사람이 찾아왔다는 듯, 금색의 눈동자가 깜빡였다.
“우산 말인데, 오늘 까먹고 그냥 와서. 내일 꼭 돌려놓을게?”
싱긋 웃으며 말을 건넸다. 카이멜은 잠시 침묵하다가, 그래, 꼭 기억하도록.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몸을 돌려 문으로 걸어가던 리비에르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반쯤 몸을 돌려 다시 말을 건넸다.
“그러고 보니 내 이름 알고 있던 것 같은데. 넌 카이멜 시레노바 맞지?”
모르는 척 물었다. 그것이 둘의 정식적인 통성명이었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날씨가 화창할 거라 예측했던 일기예보가 무색하게도 공기에 비 내음이 물씬 풍기는 날이 찾아왔다. 지나가는 소나기일까, 저번보다 더 세게 내리네. 리비에르는 우연히 들고 온 우산을 손에 빙글빙글 돌리며 중얼거렸다. 꽃들을 옮겨놓길 잘했지, 이건 물을 주는 걸 지나쳐서 애들 익사하겠어. 옮기는 작업이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는지 이미 학교 내에는 남아있는 학생이 몇 없었다. 더 늦기 전에 집에 가야겠다 싶어 리비에르는 교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 그가 있었다. 카이멜? 소리 내서 말했을까, 그가 리비에르를 돌아보았다. 아직도 안 가고 있었나? 물어오는 그에게 리비에르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쩌다가 보니. 넌 왜 아직 안 가고 있어? 카이멜은 살짝 인상을 썼다. 일기예보에 비 소식이 없길래 우산을 안 챙겨와서…. 리비에르는 카이멜이 손짓하는 우산 통에 눈길을 줬다. 거짓 예보에 속은 학생들이 많았는지 텅 비어있었다.
충동. 또는 이끌림. 리비에르는 카이멜에게 제 우산을 건넸다. 그의 그런 행동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잠시 말을 잃은 카이멜에게 빙긋 웃으며 손에 우산을 쥐여줬다. 잠깐, 너는? 당황한 듯 묻는 카이멜을 뒤로하고 리비에르는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봄이 끝나가는 계절에 내리는 비는 차갑지 않았다. 몽글몽글 가슴에 피어오르는 느낌에 리비에르는 돌아서서 웃었다. 난 비 좋아하니까, 별로 상관없어!
그래,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었다. 봄에 내리는 비도. 그리고 우산 아래,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너도.
* * *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날씨 한번 좋네,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여름에 가까운 하늘이었다. 비슷한 하늘색이라고 하기엔 시린 눈동자를 깜빡이며 리비에르는 절로 몰려오는 졸음의 수마에 몸을 맡겼다. 아무리 고등학생이 되었더라고 해도 사람이 극적으로 바뀌는 일은 없었다. 공부해야지, 내신 챙겨야지, 담임선생도 잔소리하다가 리비에르만큼은 이내 포기한 듯했다.
“리비에르 시라! 야! 잠깐만 일어나봐!”
포기하지 않는 이가 있었으니 연극부 동아리에서 같이 활동하는 동급생 친구였다. 이름이… 뭐였더라. 친구라고 했지만 사실 그리 친하지는 않았다. 리비에르의 무관심이 한몫 하기도 했지만. 아직, 리비에르가 제대로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카이멜. 카이멜 시레노바. 넌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고등학교 진학이 갈린 이후 리비에르는 더 이상 카이멜을 볼 기회가 없었다. 어느 학교로 갔는지조차 몰랐다. 아마 학생회장이자 성적이 우수한 모범생이었던 만큼 더 경쟁이 치열한 학교로 가지 않았을까 짐작만 했을 뿐, 물어볼 기회는 없었다. 아쉽지 않다고 했으면 거짓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부라도 해둘 걸 그랬나, 실없는 생각도 했었다. 지나가는 길가에 피어난 진홍색 덩굴장미를 볼 때마다 기억나는 걸 보면, 생각하는 것보다 크게 미련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야, 듣고 있어?”
아차, 대화 중이었지. 리비에르는 멍하니 떠돌던 의식을 붙들고 다시 집중했다. 미안, 뭐라고? 익숙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천천히 하던 말을 되풀이했다.
“전국 고교 연극 대회 말이야. 참가 자격을 따냈다고 동아리 회장이 그렇게 난리법석을 떨었잖아…. 너 좀 꼭 제발 데려오래. 솔직히 너만큼 연기 잘하는 부원도 없잖냐. 애원하든 뇌물을 쓰든 협박하든 상관없으니까 빠지지만 않게 해달라고 하더라.”
그런 게 있었나. 들은 것 같기도 한데…. 귀찮은 기색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고등학교 입학 이후 연극부를 들어간 것도 한순간의 충동이었다. 다만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재능이 있었다는 것뿐. 여러 표정, 여러 감정을 꾸며내고 연기하는 건 리비에르에게 쉬운 일이었다. 그것이 즐거웠냐 물으면, 글쎄. 싫지는 않았지만 좋아하느냐 물으면 긍정하기 애매했다. 심심풀이, 리비에르에게 부 활동은 딱 그 정도였다.
그런데 동아리 회장에게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거의 울다시피 하며 그에게 매달리는 친구를 리비에르는 곤란한 표정으로 내려다봤다. 너 못 데려가면 나 죽을 수도 있다고! 사람 하나 구제해주는 셈 치고 와줘! 나가서 유명한 에이전시의 눈에 띄면 너도 좋잖아! 혹시 몰라!
혹시 몰라. 리비에르는 고개를 기울였다. 딱히 진로를 이쪽으로 확실하게 잡은 것도 아닌데, 그에겐 나가도 그만, 안 나가도 그만이었다. 혹시 몰라. 그래도 충동적으로 행동해서 꼭 나쁜 결과가 있던 것도 아니니, 한 번 해볼까. 잠시 고민하다가 리비에르는 친구를 떼어냈다.
“알았어, 알았어~ 나가주기만 하면 되는 거지?”
넌 구세주야! 땡큐! 바로 회장한테 말하고 올 거니까 맘 바꾸면 안 된다! 친구는 눈 깜짝할 사이에 튀어 나가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좋은가, 피식 웃었다. 사실 조금은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학교라는 작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더 넓은 곳으로 나가면 너를 아는 사람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널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드라마 같은 전개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지만 뭐, 나름 연극부인데 이 정도는 기대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리비에르는 눈을 감았다.
역시 조금 귀찮았을지도, 대회 날에도, 개최 장소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도 결정에 후회는 하지 않았지만 타고난 성격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리비에르는 창문에 기대 멍하니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너 대본은 다 외웠어? 옆에 앉은 부원이 물어보자 리비에르는 성의 없이 고개를 까닥였다. 머리가 나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몇 번 보고 대본을 통째로 외울 만큼 좋은 편이었다. 그저 자신의 흥미를 끌지 않는 것에는 관심이 없을 뿐이었다.
그리고 대회에서 그의 관심을 끌만큼 흥미로운 사람이 있는 건 아니었다. 공연 순서가 일찍 잡혔던 리비에르네 동아리는 끝났다는 안심, 그리고 다른 이들의 공연에 대한 기대로 들떠 떠들썩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리비에르는 그 사이에서 그저 지루할 뿐이었다. 언제 끝나려나,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 끝에 어느덧 마지막 순서가 다가왔다. 거의 끝이구나, 멍하니 생각하고 피곤한 듯 눈을 감아버렸다.
“…너무 급박하게 너희들을 그런 상황에 처하게 만든 점, 미리 사과하지.”
강렬하고도 차갑지는 않은, 들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잊은 적 없는 목소리.
눈을 떴다는 자각도 없었다. 어느새 시선은 무대 위를 쫓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대 위의 한 사람만을 보고 있었다.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풀어내려 마치 망토처럼 흘러내리는 붉은색의 폭포를 연상케 하는 사람. 자신의 역할에 빠져들어 금색의 눈을 빛내는 사람. 자신이 그토록 그리던 사람.
왜 이곳에 있는 걸까? 연기를 진로로 정해서? 그저 연극이 좋아서? 그것도 아니면 잠깐 대타로 연극부를 도와주는 걸까? 리비에르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질문이 스쳐 지나갔다. 사실 그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시 보게 되었는데, 소소한 ‘왜’가 뭐가 중요할까.
전보다 더 길고 긴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마지막 연극, 카이멜의 연극이 끝난 후 리비에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 응? 어디? 잠깐만! 항의하는 동아리 부원들의 외침을 뒤로하고 리비에르는 빠르게 사람들을 헤치고 나갔다. 이대로 놓치는 건 싫었다.
붉은색. 익숙한 목소리. 셀 수도 없는 색깔과 소음이 뒤섞인 이곳이 그렇게 짜증 날 수가 없었다. 진정으로 사막에서 바늘 찾기가 더 쉬운 건 아닐지, 투덜댔다. 한참을 둘러보고, 귀를 기울였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치 신기루였던 것처럼, 꿈이었던 것처럼. 그렇지만 리비에르는 확신했다. 자신이 본 건, 그가 맞노라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돌아온 리비에르를 동아리 부원들이 혹시나 버스 시간을 놓칠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 갔다 이제 와? 아니, 제시간에 온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얼른 타자, 얼른 타. 버스에 자리를 잡은 후, 친구가 궁금한 기색 가득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왜 사라진 거야? 너답지 않게 꽤 다급해 보였는데. 음, 리비에르는 뜸을 들였다. 뭐, 그렇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고.
“아는 사람을 본 것 같아서.”
그리고 새로운 목표가 생긴 것 같아서.
연기를 계속하면, 이 길로 계속 나아가다 보면, 오늘처럼 언젠가 다시 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목표이자 희망이었고, 자그마한 소망이었다.
* * *
“리비에르 시라 배우님! 준비되셨나요! 거의 촬영 들어갈 시간이에요!”
알았어~ 자신을 재촉하는 말에 여전히 느긋한 톤으로 대꾸해주는 리비에르였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대선배 격 배우라도 되나 싶은 여유로움이었지만 실제로 처음 주연 역을 맡게 된 신인 배우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역시 리비에르답다고 해야 할까, 조금의 긴장감도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답지 않게 조금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 맡게 된 역이 그의 마음에 쏙 들은 탓이었다. 인어, 인어라. 바닷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이미지가 와 닿았던 걸까. 늦은 봄 내리는 비만큼, 끝없는 푸른색으로 펼쳐진 바다도 좋아했다. 비록 대부분은 영상편집자가 효과와 CG를 넣는 것으로 끝나겠지만. 나중에 직접 영화관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좋지 않을까. 조금 부스스하지만 나름 신경 써서 정돈된 제 푸른색 머리카락을 손가락 끝으로 감으며 멍하니 생각하는 중이었다.
“배우님!! 이제 진짜 가셔야 하는데!”
가요, 가~ 이어지는 재촉에 리비에르는 대기실에서 나와 촬영장으로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상대 주연 역할이 해군이라고 했던가. 해군과 인어, 나름 재밌는 조합이네. 감상은 딱 거기까지였다. 상대 배우가 누군지는 들은 적 없었으니 당연하기도 했다. 감독이 나름 회심작이라고 출연진을 거의 비밀에 부치기까지 했으니, 매니저도 모르고 있지 않을까. 그쪽도 신인 배우라고 했던가, 뭐 곧 알게 되겠지. 들어갑니다~ 리비에르는 그린 듯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도착을 알렸다.
환한 불빛.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 사이로…. 리비에르는 눈을 깜빡였다. 잘못 본 건가 싶었다. 그만큼 자신의 눈앞에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얀색의 제복도 무리 없이 소화해내고, 붉은색의 머리칼을 틀어 올려 엄격한 인상을 주는 인상. 그 이름 석 자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소리 내서 중얼거렸던 걸까, 누군가가 아는 사이였어? 물어본 것 같기도 했지만, 리비에르는 거기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자네가 인어 역을 맡은 배우, 맞나? 잘 부탁하네.”
기억에 남아있는 음성, 변한 것 하나 없는 목소리였다.
어떤 정신으로 촬영을 마쳤는지, 전혀 모를 일이었다. 날 기억하려나? 침착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역할에 임하는 카이멜의 모습에서는 어떤 동요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리비에르 역시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불꽃같이 한결같은, 얼음처럼 견고한 두 사람은 다른듯하면서도 닮은 점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웃고, 눈물 흘리고, 무대 위에 그들만의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작지만 찬란한 우주였다. 영원히 남아있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세계였다.
촬영은 수월하게 끝마쳤다. 그렇게 그리던 사람을 드디어 만났는데, 그 순간, 그 앞에서나마 실수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었을까. 그들이 살아 숨 쉬던 작은 세계는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그들 주위로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다시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수고하셨습니다! 여러 차례 들어오는 인사에 리비에르 역시 미소 지으며 화답했지만, 신경은 다른 곳으로 가 있었다.
아직 남아있으려나. 저번처럼 제대로 말 걸어보기도 전에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 늘 여유롭던 리비에르였지만 항상 카이멜만 연관되면 조급해지는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다행히, 아직 남아있었다. 긴 시간의 촬영 끝에도 흐트러짐 하나 없이, 곧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쳤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까, 머리를 굴리던 참이었다.
“자네, 리비에르 시라 맞지? 중학교 시절 나에게 우산을 빌려준 적이 있지 않은가. 날 기억하려는가 모르겠지만.”
처음 들었던 순간부터 머리에 맴돌던 목소리로, 카이멜이 그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기억하고 있었나. 기억하고 있어 줬나. 잊지 않고 있었나. 리비에르는 벅차오르는 감정에 잠시 말을 잃었다. 그때 자신의 표정은 어땠을까, 거울이 없어서 보지 못 했지만 분명 표정이 밝아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맞잡아오는 손의 온기가 따듯했다.
“카이멜 시레노바, 맞지? 기억해줬다니 영광인데?”
내가 널 잊을 리가 없잖아. 리비에르는 그 어떤 연기를 할 때보다 더 활짝 웃었다.
너무 꿈 같아서 아직도 믿어지지 않지만,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눈을 감았다 다시 떠도, 여전히 내 앞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 * *
우연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운명이었을까. 그때 촬영한 영화가 크게 히트를 친 이후 리비에르와 카이멜은 같은 작품의 주역을 맡게 될 때가 많아졌다. 재회 후 어색했던 시간은 한순간이었고, 자주 보는 얼굴에 친해지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번에도 시레노바 배우님하고 같이 촬영하시네요~ 배우님, 이제 시라 배우님 보는 거 슬슬 지겹지 않으세요?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였다.
“에이, 설마~ 우리가 얼마나 친한데? 오늘도 촬영 끝나고 같이 커피도 한 잔 할 예정인 걸~”
바쁜 스케줄 상 사적인 만남은 잦지 않았지만, 연락은 꽤 주고받는 편이었다. 두 번째 같은 촬영 끝에 리비에르가 대담하게 카이멜에게 연락처를 물어왔었다. 이것도 나름 인연인데, 연락처 정도는 괜찮지 않아? 카이멜은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올리긴 했지만, 불만 없이 순순히 연락처를 교환했다.
일부러 연락을 자주 하긴 했다. 시시콜콜한 일생 얘기부터,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촬영할 것 같다는 잡담까지도. 리비에르가 폰을 붙잡고 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바쁠 땐 조금 늦긴 했지만, 꾸준히 오는 답 문자와 전화에 알림이 울릴 때마다 그의 기분이 좋아진다는 건 주변 사람들도 눈치 챌 수 있었다.
“아니, 그렇게 내 연락도 씹는 사람이 어떻게 카이멜 시레노바한테서만 연락이 오면 그렇게 재깍재깍 받는대?”
리비에르가 평소엔 폰 확인도 잘 안 하고, 가끔은 배터리가 완전히 죽어버릴 때까지 방치한다는 걸 아는 매니저, 아노렐이 투덜대기도 했다. 사실이었기에 뭐라 변명할 말도 없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변명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솔직하게 불어봐. 배우님 사실 그 사람 좋아하지??”
글쎄? 명확하게 답해주는 대신 리비에르는 그저 빙그레 웃었다. 아, 미치겠네! 아노렐이 답답해하든 말든, 리비에르는 그새 온 문자에 답을 해주고 있었다. 그치, 다음 영화 줄거리가 꽤 기대되지 않아? 그럼 그때 보자~ 소소한 일상이었지만 큰 즐거움이었다.
그들의 관계를 눈치 챈 사람은 아노렐 이외에도 여럿 있었다. 카이멜의 매니저인 리리 이데아도 직접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를 볼 때마다 수상하단 눈빛을 보냈고, 같이 일하는 스태프도 은근슬쩍 알 것 같다는 시선 교환을 하기 마련이었다. 리비에르는 그런 시선들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넘어가기 일쑤였지만.
리비에르와 카이멜의 고정 팬 중에서도 눈치 빠른 이들이 있었다. 가끔, 촬영이 끝나고 어디 카페라도 가서 SNS에 사진이라도 올리면 ‘우와 데이트하시는 건가요!’ ‘아 진짜로 사귀는 거면 좋을텐데ㅠㅠ’ 같은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댓글에 일일이 반응해줄 정도로 관심을 쏟지도, 한가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 역시 가볍게 넘기는 리비에르였다.
여기까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리비에르도, 소속사도, 심지어 카이멜조차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도였다. 리비에르는 조금 궁금하긴 했다. 너는 진짜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내가 조금은 신경 쓰이긴 하는 걸까. 입 밖으로는 절대로 내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관계에 나름 만족하고 있던 리비에르는 변화가 찾아오는 것이 두려웠을 수도 있다.
그 변화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유명배우 카이멜 시레노바와 리비에르 시라. 사실 연인 사이였다?!」
파파라치가 좋은 가십거리를 물어가는 건, 어찌 보면 예상된 일이었다. 사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게 더 이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늦게 탄 소문이 더 빠르게 달아오른다고, 연예계도, 리비에르와 카이멜의 소속사도 단 한 순간에 뒤집혔다.
이럴 줄 알았다는 해탈한 매니저부터, 이걸 어떻게 수습할 생각이냐고 머리를 싸매는 소속사 직원들에게 바쁘게 불려 다녔지만, 사실 리비에르는 그리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쁘다기보단 오히려 좋은 편이었고, 그보다는 아쉬운 마음이 더 컸다.
이 열애설이 그저 파파라치의 착각에 지나지 않고, 진짜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소속사 입장에서는 그렇게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 그러니까. 이거 어떻게 해결하실 거냐고요! 하루, 반나절이 멀다 하고 리비에르에게 독촉이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아마 카이멜 측도 별반 다르지 않겠지. 열애설이 터진 후 직접 카이멜하고 얼굴을 맞대고 얘기할 기회가 없었다. 만나기라도 했다간 파파라치가 좋다 하고 바로 물어뜯을 테니 소속사에서도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 터였다. 그렇기에 리비에르는 기다렸다.
리비에르가 다시 카이멜을 마주한 건 촬영장에서였다. 열애설이 터졌건 말건, 촬영은 계속되어야 했다. 안녕, 오랜만. 그래, 오랜만이네. 바뀐 것 없는 평소의 인사를 하고 바삐 촬영에 들어갔다. 제대로 말을 붙일 기회는 촬영이 끝나고서야 찾아왔다. 마치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늦게 남은 두 사람의 사이에는 잠깐 침묵만 감돌았다. 그 소문 있잖나. 결국 먼저 얘기를 꺼낸 건 카이멜이었다. 응, 그래서 말인데. 리비에르가 말을 받았다.
“우리 이렇게 된 거, 소문이 잦아들 때까지 한 번 사귀어 보지 않을래?”
충동이었다. 그날 우산을 건넸던 것처럼. 이성보다는 본능적으로, 사심이라고 해도 좋을 말이었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당연히 거절은 각오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잠시간의 고민 끝에 카이멜이 긍정의 답을 돌려줬을 때 잘못 들은 줄만 알았다.
“응? 뭐라고?”
“그러지.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나?”
아니,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네. 소속사 측에는 자네가 알릴 건가? 어, 그러지 뭐. 그럼 다음에 보도록 하지. 나중에 연락하겠네. 카이멜이 떠난 후에도 실감이 나지 않아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이내, 주체 못하고 떠오르는 이 감정에, 리비에르는 기쁨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카이멜 시레노바, 리비에르 시라. 사실 사귀는 사이 아니었어, 열애설 터져 본격적으로 만나기로.」
그렇게 시작된, 끝이 예정된 연애였다. 그것만이라도, 리비에르는 좋았다.
설령 거짓이라 할지라도, 네 곁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이기심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지만, 이 순간마저도 기쁘다고 하면, 행복하다고 하면 이것은 과연 죄일까. 그렇다면 기꺼이, 난 사랑을 위해 죄인의 옷을 입겠노라.
* * *
대외적으로 리비에르와 카이멜이 연인 사이가 된 후에도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사적인 연락과 만남이 더 늘어난 정도였다. 카페에서의 휴식은 물론이고, 소소하게 길거리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사실, 어찌 보면 보여주기 식의 연애에서, 어느 선까지 행동해도 괜찮았는지를 몰랐을지도. 손잡는 거? 괜찮겠지. 그렇다면 포옹은? 가벼운 키스는? 옆에서 걷고 있는 카이멜을 빤히 응시했다. 너는 어디까지 나를 허용할까? 시선을 느꼈는지 카이멜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리비에르를 바라봤다.
“왜 그러나?”
아무것도~ 리비에르는 빙긋 미소 지으며 카이멜의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겨울에 들어든 날씨였던지라 그의 손은 약간 서늘했다. 조금 더 꼬옥, 손을 잡았다.
계절이 식어가듯, 팬들과 파파라치의 관심도 어느덧 식어갔다. 그들의 열애설이 화제에 오른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났으니, 항상 새로운 얘깃거리를 찾아다니는 이들에게는 더 이상 관심을 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소속사는 한숨 돌렸다며 안심했지만, 그만큼 리비에르는 불안해졌다. 더 이상 카이멜을 옆에 잡아둘 명분이 사라지고 있었기에.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비록 시작이 거짓이었다고 해도, 꾸며진 것이었다고 해도, 자신의 감정만큼은 진심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뭐 해?”
엉뚱한 질문을 꺼냈다. 발 빠른 가게들은 벌써 색색의 장식을 달아놓고 있었지만, 크리스마스 날까지 아직 2주 이상 남아있었다. 카이멜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글쎄, 아직 그렇다 할 스케줄은 없는 것 같다만. 기대하던 대답이 돌아오자 리비에르는 화사하게 웃었다.
“그럼 나랑 같이 보내자. 크리스마스 데이트, 낭만 있고 좋잖아?”
일 분이라도 더, 일 초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다. 그렇기에 놓지 않으려고 했다.
크리스마스까지 긴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너와 있는 시간은, 항상 너무나도 짧았다.
모자와 안경으로 적당히 눈에 띄지 않게 분장을 한 리비에르는 광장에서 카이멜을 기다렸다. 늘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는 것은 카이멜이었지만, 오늘은 설레는 마음으로 한참 전에 나온 리비에르였다. 이른 저녁이었지만 겨울이라 그런지 벌써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얼굴에 닿는 공기는 차가웠지만, 그마저도 반가웠다. 눈은 아직 내리지 않는 건가, 잠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일찍 왔네?”
조금 놀란 듯한 목소리에 리비에르는 뒤돌아보았다. 웬일인가, 자네가 먼저 와있기도 하고. 리비에르는 키득 웃었다. 글쎄, 설레서 그러려나? 카이멜은 살짝 시선을 옆으로 피했다. 낯간지러운 소리는 여전히 잘도 하는군. 그럼 이만 가볼까? 둘은 그렇게 서로를 옆에 두고, 해지는 광장을 나섰다.
저녁을 먹고, 카페에서 조금 시간을 때우다 다시 거리로 나섰을 때는 이미 하늘이 짙은 남색으로 깔려있었다. 그러나 어둑한 하늘과는 달리 거리는 여전히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붉은색, 푸른색, 녹색과 노란색의 빛이 반짝이며 길을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서도 조금씩, 하얀빛이 내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올겨울 첫눈인가.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우산을 하나 펼쳐 들었다. 이러면 괜찮겠지? 아쉬우니까 조금 걷다가 들어가지 않을래?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자 리비에르는 거리를 좁혀, 어깨가 스칠 듯 다가왔다. 우산 하나니까 젖으면 안 되잖아?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그들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한적한 공원이었다. 분명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북적였겠지만, 점점 한기가 몰려오는 날씨에 다들 따듯한 곳이라도 찾아 피신했나 싶었다. 순식간에 녹아 사라지는 눈 사이로 천천히 걷다가 멈춰선 곳은 어느 크리스마스트리 앞이었다. 공들여 장식한, 커다란 소나무에 반딧불이가 내려앉은 것 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리비에르는 시선을 돌려 카이멜을 바라봤다.
“예쁘지 않아?”
그 누구보다, 무엇보다 아름답고 시선을 끄는 사람이었다. 트리를 칭한다고 생각했는지 카이멜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화려하니까, 따듯한 느낌도 들고.
그래. 네가 있기에 내 세상이 화려해지고, 네가 내 옆에 있기에 내 세상에 봄이 찾아오니. 나는 네 손을 붙잡으려 한다. 나는 네게 진심을 전하려 한다.
“너를 좋아해.”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무엇보다 많은 감정이 담겨있는 한 마디였다.
“우리의 시작이 어떠했든, 내가 계속 네 옆에 있는 걸 허락해주지 않을래?”
끝이 예정되어 있던 만남이라면, 그 끝에서 너를 붙잡아 사랑이라는 새로운 시작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기다렸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좋아했던, 그 목소리를.
“그래, 나도… 자네를 좋아하네.”
그 무엇보다 듣고 싶었던 목소리, 그 무엇보다 원했던 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 당당하게 눈을 마주쳐온다. 손을 붙잡아준다. 나에게 온기를, 기적을 전해준다.
“그러니 계속 내 옆에 있어도 괜찮지 않은가.”
푸른색 장미와 붉은색 장미는 서로 미소 지었다.
늦게 내리기 시작한 첫눈이었다. 사뿐히, 하얗게 내리면서 살짝 기울어진 우산 위로 소복이 쌓이고, 가려지지 않은 그들의 입술 위로 내려앉아 빗방울처럼 녹았다. 봄비로 찾아와, 겨울에 피어난, 마법 같은 사랑이었다.
사랑해, 마법 같은 이 순간을. 사랑해, 기적처럼 내 앞에 서 있는 너를. 사랑해, 카이멜. 이 비 내리는 하늘 아래, 항상 내 곁에 있어 줘.
* * *
Love me, when rain falls on our stage.
Love me, when snow melts on our lips.
Love me, even after our act is over.
Kiss me, darling, in the rain.
Written 18-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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