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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입원을 마치고, 경태는 깁스 차림으로 학원에 돌아왔다. 단순 골절이어도 골절은 골절이라 몇 주 간은 왼팔에 묵직한 깁스를 차야만 한단다. 깁스 끝 부분에 빼꼼히 튀어나온 다섯손가락에는 아직 네일아트가 남아있다. 손가락을 쓸 수 있는 건 불행 중 다행이겠다. 적어도 키보드는 칠 수 있다는 거니까.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하니 동료 강사들이 약간의 미소를 입가에 걸고 맞아주었다. 이젠 괜찮냐는 물음에 세 번 정도 답한 후 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옆 자리의 은도는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
가방을 책상 옆에 내려놓으려 몸을 돌린다. 문득 시선을 드니 유탐정이 제쪽을 흘끔이고 있다. 경태는 작은 눈웃음으로 답신하여 본다.
탐정이 아는 형과 함께 그를 병문안 왔던 건 이틀 전의 일이었다. 누가 보아도 객관적으로 잘생긴 외모였던 아는 형, 김기철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면 제 눈으로 확인하여 상황에 따른 결론을 내려야만 하는 성격인 듯했다. 경태는 그런 인물을 한 명 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외려 대하기 편했다. 무슨 말을 해야 상대가 흥미를 가질지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정된 조건 하에서 최적의 해답을 찾아내는 놀이. 이른바 수수께끼 풀이.
경태는 조건을 서술했다.
그리고 기철은 해답을 찾아냈다.
진지한 얼굴로 해답을 읊는 모습은 역시나 그 친구와 닮아 있다.
경태는 병상에 누워 그리 생각하고 말았다.
나도 따지자면 문제를 푸는 직업인데, 어째서 수수께끼에는 큰 관심이 가지 않는 걸까. 경태는 뒤이어 생각했다. 화장실 세면대 아래의 저주 인형도, 자신을 밀어버렸던 하얀 발등도, 뭐 분명 그것이 그곳에 있게 된 경위야 존재하겠지만, 그런 경위를 알아내려 골몰하는 게 재미가 있나?
하지만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끙끙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건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노력가는 보기만 해도 뿌듯한 기분이 드니까.
그제의 그 남자는 너무 빠르게 풀어버려서, 별로 재미가 없었지만......
아무튼 난간을 타고 내려갔다니, 황당한 묘사에서 당장 떠오르는 범인상은 당연하게도 학원의 학생. 그러나 그 녀석이 어째서 자신을 밀어버렸는가, 에 대해서는, 여전히 가닥이 잡히지 않는 경태였다. 최근에는 언성을 높이고 싸운 학생도 전무하니까.
대충 수업 준비를 하고 있으니 은도가 나타났다. 경태를 보자마자 빙글빙글 웃으며 다가온다. 경태 바로 옆 자리가 그의 자리니 다가오는 건 당연하지만.
"깁스, 언제 풀어야 된대요?"
양 손의 주황색 네일아트는 건재하다.
"일단 이 주 해 보고, 경과가 좋으면 그 때 풀어도 된다네."
"경과가 안 좋으면?"
"더 하는 거지."
당연한 대화를 했다. 나란히 앉아 교재 파일을 수정하다가, 두 사람을 부르는 유탐정의 목소리에 나란히 고개를 뒤로 돌린다.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뭇 진중한 얼굴. 두 사람 역시 자연스럽게 진지한 표정이 된다. 잠시 나가서 얘기하자는 제스처의 탐정을 보곤 나란히 일어나는 경태와 은도.
학생들이 없는 학원은 무척이나 조용하다. 에어컨이 뱉는 건조한 통기음만이 가득한 정문 홀을 지나 건물 밖으로 나선다. 앞선 탐정의 발이 멈춘 곳은 학원 건물 뒷편의 좁은 공터. 흡연자들이 애용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탐정은 두 사람의 얼굴을 잠시 번갈아보다가, 그닥 즐겁지 못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사실, 이런 진상일 거라고는 어렴풋하게 예상하고 있었다.
은도는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학생 무리를 대강 파악 중이었다. '좋아하지 않음'을 넘어 '싫음'의 경지에 다다른 학생들마저도. 학원 안을 돌아다니다 보면 참으로 많은 시선을 받는데, 은도 자신이 느끼기로 호불호의 비율은 오 대 오에 가까웠다. 거의 모든 남자아이들이 멸시의 시선을 보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다수에게 조용한 린치를 받는 건 역시나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은도는 범인을 특정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반감을 가진 아이들은 너무 많았으니까. 그 때 2층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던 학생들만을 용의선상에 올린다 해도, 여섯 반 백 여 명이라는 거대한 집단 속에서 범인을 특정하기란 불가능했다. 남녀 반반이라고 쳐도 남자아이들이 오십 명. 게다가 여자아이가 그러지 않았을 거라는 보장은 또 없고.
타겟을 헷갈렸다고 한들, 사람을 이렇게까지 다치게 만든 건 엄연한 징계 사유다. 정전이라는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남을 해하여야겠다고 마음 먹은 그 심성 또한 질이 나쁘다.
그래서, 은도는 탐정에게 CCTV로 범인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탐정은 자신이 범인을 알고 있다고 했으니까.
CCTV로 2층 계단 근처에 있던 학생을 하나하나 살피면 범인을 찾아낼 수 있다고 했으니까.
정말이지 탐정 같은 발언이었다. 은도는 생각했다.
"퇴원시킬 생각이야?"
하루 일과가 끝난 후, 학원 건물 옥상에서 경태가 물었다. 이곳 역시 흡연자들이 애용하는 스팟이다. 지금은 두 사람 외에 아무도 없다. 컴컴한 하늘에 별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고, 근처 건물들의 조명만이 그들의 뺨을 어스름하니 밝힐 뿐이다.
은도는 가느다란 연초를 입에서 떼어내곤 고개를 툭 떨어뜨린다.
"너무 나쁜 짓이었잖아요. 주쌤, 자칫 잘못 부딪혔음 아직도 병원 침대에 있었을걸."
"머리라면 이미 부딪혔어. 지금은 멀쩡하고."
"주쌤은, 그럼 그 애를 봐 주려고 하시는 거예요?"
담배를 맛있게 피우던 경태는 멀쩡한 오른손으로 장초를 슬슬 움직여 본다. 붉은 담뱃불이 애매한 어둠 속에서 직선을 그린다.
"......뭐, 부모님한테 연락한다 한들 그 애가 정신을 똑바로 차릴 것 같진 않네."
정전 속에서도 예비 전력으로 가동되던, 야간 촬영 기능이 있는 CCTV. 2층 계단 근처의 촬영 장면을 들여다 보던 탐정이 가리킨 건, 강사들 사이에서 이미 질이 좋지 않다고 소문이 나 있던 남학생이었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거 아녜요?"
조금 목소리가 격양된 은도.
"계단에서 사람을 밀면, 그, 상해죄 같은 걸로 처벌되잖아요. 저 다 찾아봤거든요?"
경태는 그런 은도의 얼굴을 슬쩍 바라보다가, 살래살래 흔들던 담배를 다시 입가에 가져다 댄다. 기세 좋게 빨아들이곤 풍성한 연기를 후우, 내뱉는다. 벌써 샤프심마냥 다닥다닥 자란 수염은 턱 이곳저곳에 제멋대로 뻗어있다.
"......다친 건 난데 왜 임쌤이 그렇게 화내고 그래. 그렇게 화내서 좋을 거 없다."
은도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아랫입술을 꾹꾹 깨물기 시작했다. 경태는 고개를 조금 돌려 각별한 한 모금을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주쌤은 화나지도 않아?"
"화야 나지. 나지만, 학원 이미지라는 게 있어서. 나도 고민 중이야."
"이미지?"
"그 애를 정말 퇴원시키면, 그런 사람들이 다니는 학원이라는 소문이 쫙 퍼질 것도 같아서."
"저, 동성애자가 아닌데도?"
"원래 소문이란 진위를 가리지 않는 법이야."
경태는 부러 대답에 내포된 질문을 무시했다. 그 자신 역시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못 박을 이유는 없었으니까.
"......원장님한테 상담이라도 해 볼까 싶네. 어렵다."
경태는 옥상 난간에 두 팔꿈치를 댄다. 왼팔의 깁스가 다소 방해가 된다. 그럼에도 무게중심을 난간 쪽으로 옮겨 본다. 학생들을 픽업하러 온 학부모들의 차량으로 인산인해가 된 도로. 그 수많은 차들에서 퍼져나오는 헤드라이트 빛만 쬐어도 시야 확보에는 문제가 없어 뵌다.
은도는 난간에 허리춤을 기댄다. 턱을 당겨선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서울의 하늘을 올려다 본다. 그대로 가느다란 장초를 입새에 끼워넣어선, 담뱃재가 떨어지기 전에 고개를 원위치로 돌려놓는다.
"제가 그렇게 징그러워요?"
경태는 잠시간 대답을 고민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인상을 고민했다. 은도는 보편적이지 않은 취향이 겉으로 잘 드러났고, 자신은 그것을 꾸준히 숨겨왔다. 겨우 그 정도의 차이. 자신 역시 커밍아웃한다면 은도보다 더한 혐오의 시선을 받으리라.
"전혀."
그런 입에 발린 반응을 해 주는 게 고작이었다.
제 쪽으로 향한 은도의 시선이 조금 따가웠다. 굴하지 않고 느긋하게 두 대 째를 꺼내고 있으니 곧 그 시선은 떨어져나갔다.
"저, 남들 시선에 민감해요."
그런데 그런 차림을 하고 다닌단 말인가.
"몇 십 년 동안 이러고 다녔으니까, 민감할 수 밖에 없죠."
경태는 조용히 납득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말이죠, 초면에는 절 피해요."
그건 경태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성격을 바꿨어. 최대한 털털하게, 누구와도 친하게 지낼 수 있도록."
경태는 군말없이 끄덕였다. 새 담배가 천천히 타들어간다.
"그러면, 일단 절반 정도는 절 받아들여 줬어요."
그 절반에는 자신이 들어가리라. 어쩌면, 처음에는 그를 명백하게 꺼려했던 유탐정도.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절 꺼림칙해 했어."
경태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는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여자가 되고 싶은 건 아니지?"
지극히 원론적인 질문이었다. 상대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으나.
"응. 이 나이 먹을 때까지, 내가 남자라는 자각은 계속 갖고 있어요. 불편하지도 않고."
지극히 원론적으로 받아들이기에, 경태는 긴장했던 뺨의 근육을 살짝 누그러뜨린다.
"언제부터 몸을 꾸미기 시작했어?"
은도는 난간에 걸터앉는다. 그 모습이 다소 위험해 보여, 경태는 다시금 긴장하고 만다. 고작 삼 층이라도 잘못 떨어지면 목숨을 잃는 것이 인간인지라.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였나. 거의 삼십 년 전이네요. 여자애들이 머리에 꼽은 핀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어서, 두 살 어린 여동생 거를 훔쳐서 머리에 꼽고 학교에 나갔었어."
"그래서?"
"애들이 엄청 놀렸죠."
"그 나이 애들은 보통 그렇지."
"그런데 전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꼽아도 충분히 예쁜 핀이었으니까."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면야, 성별의 구분이 확실치 않은 시기이기도 하다. 경태는 거의 다 타들어간 두 번째 담배를 아까워 해 본다. 마지막 숨을 깊게 빨아들이기도 하고.
"왜 남자애는 예쁘면 안 되는 걸까?"
"조숙한 아이였구나, 임쌤."
"예쁘게 입고 유치원에 가는 여동생이 부러웠을 뿐이에요......"
나도 남자애들과 사귀는 여자애들이 부럽긴 했다. 아무 것도 몰랐던 먼 옛날의 이야기지만.
"그래서, 자꾸자꾸 여동생 핀을 훔쳐 꽂고 학교에 나가다가."
무슨 장식이 달려있었을까. 경태는 별안간 이상한 궁금증이 들었다. 그의 손톱과 비슷한 큐빅 투성이의 핀이었을까?
"엄마가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갔어요."
"어?"
"저는 사탄의 자식이라면서, 아빠한테 남겨두고 도망쳐 버렸어."
"사탄? 그게, 뭔...... 종교 믿으셨던 거야?"
은도는 근처 재떨이에 담배를 꾹 눌러 끈다. 자신과 비슷하게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으니, 아마 그도 두 대 째의 담배였으리라. 경태도 동료를 따라 짧아진 연초를 비벼 꺼 본다.
"종교...... 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사이비였던 것 같긴 하지만."
은도는 난간에서 엉덩이를 떼어낸다. 옥상 바닥을 짚고 똑바로 서선, 한참 연상인 경태를 바라본다.
"항상 교회 나가서 헌금해야 한다느니 이상한 소리나 하는 거 치곤, 집에 십자가며 성경 하나 없었거든요."
그런 쪽이라면 경태는 전혀 아는 게 없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알라신도 믿지 않는 그였다. 별 수 없이 한쪽 입가를 비틀어 보이기나 한다.
"그래서, 그에 대한 반동이랄까. 그 뒤론 계속 제 몸을 꾸몄어요."
그런 삶의 궤적에서 어느 정도의 데미지를 입었을까. 자신의 취향을 꼭꼭 숨겨온 경태로서는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 범위였다. 구태여 상상하려 든다면 자신 역시 타격을 받을 것만 같아서, 경태는 시선을 돌려 발 아래의 도로를 쳐다보기나 한다. 시간이 흘러 교통 체증이 약간이나마 줄어들었다.
"내가 나답게 살겠다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인 거야......"
"요즘 애들은 조금만 자기 마음에 안 들면 화를 내잖아. 그런 거야."
"모든 사람이 자기들 마음에 들 수는 없다는 걸 알아야 해요."
은도는 올곧은 두 눈을 경태에게 향하고 있다.
그렇게 안 봤는데, 생각보다 프라이드가 높은 선생이시군, 임쌤.
그 점이, 경태는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다.
느릿하게 몸을 돌려 시선을 맞춰주었다. 순하게 처진 눈이 네온사인을 받아 번쩍인다.
"임쌤이 원하는 대로 해 줄게."
인공적인 간극. 살짝 놀란 기색의 임은도.
"실제로 계단에서 구른 피해자가 가해자를 퇴원시키자고 주장하면, 아무리 원장님이라도 무시하실 수는 없을걸."
경태는 그러곤 흐릿하게 미소지었다.
"나도 그 편이 마음에 들고."
며칠 지나지 않아 범인은 학원에서 내쫓겼다. 경태가 왼팔의 깁스를 꾸준히 강조하며 원장에게 퇴원을 피력한 덕분이었다. 은도는 크게 티내진 않았지만 기뻐했고, 탐정은 미묘한 얼굴로 언제나의 프린트 수정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또 며칠 후 은도는 새로운 차림으로 등장하셨다. 양 손의 네일을 푸른색으로 갈아치우곤, 머리카락마저 밝은 갈색으로 물들이고 납신 것이다. 기장이 살짝 짧아진 거 같기도 하다.
"여름이니까 덥단 말예요~"
"유쌤이랑 캐릭터 겹치지 않아?"
"어디가요?!"
"머리 색이."
"에이, 그럼 주쌤은 수십 명이랑 캐릭터 겹치게."
한쪽 눈썹을 쓱 들어올리는 경태.
"그 깁스, 언제까지 해요? 일주일은 지났잖아."
"저번에 말했잖아. 최소 이 주는 해야 된다고."
"그랬던가?"
"그랬지."
"저, 주쌤 네일도 새로 하고 싶은데."
"다음 주에 해. 물론 상황 보고."
"허락한 거예요~?"
"아, 음료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프라푸치노는 너무 달더라."
은도는 활짝 웃으며 제 자리에 앉았다.
경태는 잠시 그 화려한 미소를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웃곤 시선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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