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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ISA

K=Potassium by K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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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살아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사가 잦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에는 내 의지랄 것이 완전히 부재했으므로, 순전히 바쁜 부모를 만난 탓이라고 치부할 수 있으나, 성인이 된 이후로도 정착하지 못한 것은 오롯한 나의 책임이다.

환경이 바뀌면 생활의 배경이 달라진다. 자연스레 마주치는 면면들도 변화하게 된다. 하지만 사회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 그리 다채롭지 못한 것이었다. 그 표면은 다소 달라보일지 몰라도 구조는 대부분 동일한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소문이 돌고 돈이 흐르는 곳에는 꿍꿍이속이 잠재한다. 그런 이야기를 언젠가의 도시에서 만난 누군가에게 하니 그는 특징이 없는 얼굴에 무난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사람 개개인은 독특할지언정 무리는 결코 독특할 수 없으니 말이죠."

하지만 그는 꽤 독특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말을 하는 것치곤 무리에 섞이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었으니 말이다.

"DNA 감정을 하신다고 하셨나요?"

그가 물었다. 나는 딱히 숨길 것도 없어서 순순히 대답했다.

"우리 회사는 그게 주 수입원이긴 하죠. 그 외에, 이런저런 사설 검사랑 감정도 하고."

"DNA라. 저도 언젠가 신세를 지게 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네요."

"허어, 실례지만, 혹시 결혼을?"

그는 어떤 장신구도 없는 양 손을 펼쳐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한다면 말이죠."

조금 좋지 못한 농담이었지만 우리 둘은 가볍게 웃어보였다.

먼저 도시를 떠난 건 그였다.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명함을 교환했던 것 같다. 했던 것 같다, 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의 명함을 어디에 보관해두었는지 영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삿짐을 싸던 도중에 버렸을 수도 있다. 실은 그 확률이 좀 높다. 그의 직업과 나의 직업에는 전혀 연관성이 없어서, 차후에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일이 없을 것이라 판단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도 머지 않아 그 도시를 떴다. 좀 더 좋은 조건의 직장으로 이직을 했다. 하는 일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쪽 일이 다 그렇다. 샘플에서 DNA를 건져서, 적당히 증폭시킨 다음 마커를 찾는다. 들어오는 샘플이 샘플이니만큼 DNA를 건지는 과정도 불리는 과정도 결코 어렵지 않다. 차라리, 단조롭다.

"단조로운 일이 싫으면 차라리 공무원이 되지 그래."

이죽대며 점심을 먹던 나에게 동료가 건넨 말이다. 공무원, 그러니까,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내지 과학수사대로 들어가라는 소리다.

"아, 싫어. 돈도 얼마 안 주고. 애당초 바늘구멍인데 어떻게 가냐."

"그럼 평생 STR이나 돌리면서 살아야지."

나는 콧방귀를 뀌면서 입 안으로 음식물을 욱여넣었다.

그러니까 나는 인생이 단조롭다고 느꼈다. 분명 여러 도시를 전전하고 있는데도 그곳이 그곳 같다는 생각만이 들어서. 이런 끔찍한 권태에서 어떻게 빠져나가면 좋은가 고민했다.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울까? 아니야. 동물이랄 건 인간보다 더 단순해서, 발치에 놓고 기르다 보면 쉽게 질리고 말 거다. 그렇다면 사람을 만날까? 차라리 이게 나은 선택지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나의 취향과 심기에 맞는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 연애가 언제였더라? 석사를 하고 있을 때였나? 걔랑은 왜 헤어졌더라? 그거야 기억하고 있지, 물론.

고민에 빠진 채 퇴근길을 걷고 있으니 언제나의 장소에 언제나 서 있던 이들이 새삼스레 눈에 띄었다. 무료 성경 공부라는 문구가 쓰인 팜플렛을 배부하고 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무심코 흥미가 일었다. 뭐가 그렇게 즐거워서 당신네들은 항상 웃고 있느냐고.

그런가, 무언가를 믿고 신앙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인생이 그저 아름다워 보이는 건가.

그게 종교의 순기능인가.

설사 그것이 이단이며 사이비라 할지라도......

신님이 구원하러 온다...... 인가.

어쩌면 이렇게 병든 사람들일수가!

이동식 매대에 놓인 팜플렛을 하나 집어들었다. 매대 양 옆에 서 있던 두 사람은 나의 돌발행동을 보고 조금 놀란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숨기고, 전환한다. 자신들의 신앙에 대해 설파한다. 종교 공부 모임이라는 탈을 씌우고......

사이비 종교에 닥치는 대로 가입하는 취미가 생긴 건 그 이후의 일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종교는 교인들의 신앙으로 이루어진다. 불교 혹은 기독교 같은, 멀쩡한 종교의 경우는 차치해 두고, 내가 계속 몸을 담고 있었던 사이비의 경우. 교인들의 신앙의 기저는 거진 동일하다. 사회 안에서 자신이 적을 둘 곳을 찾고 싶다. 그것으로 마음의 안도를 찾고 싶다. 그뿐이다.

적을 둘 곳을 찾는 것뿐이라면 멀쩡한 종교를 찾아가도 될 일이지만, 문제는 사이비의 전도력이 그것보다 한 층 높다는 것에 있다. 그들은 어쨌든 공허한 인간의 냄새를 누구보다 잘 맡는다. 그들이 괜히 역 앞에서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말을 붙이는 게 아니다.

열 중 하나에게만 전도해도 남는 장사다. 고작 그 정도의 대화로 전도될 사람이라면 결국 자신의 장소를 뼈저리게 찾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의미니까. 그런 이들은 보통 차도가 좋지 않다. 사이비 종교인들의 감언이설에는 보통의 인간도 한순간 일렁이게 만드는 힘이 있기에. 연약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모든 걸 내놓아서라도 그곳에 제 자리를 만들고 싶어한다. 그러니, 남는 장사인 것이다. 열 명의 희미한 신자를 만드는 것보단 한 명의 열성적인 신자를 만드는 게 비용 면에서 나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사이비 녀석들을 좋아했다. 나 대신 그런 사람들을 모아 한 곳에 비치해두니 그만큼 재미있는 볼 거리가 없다. 이따금 연설에 동조하는 척만 해 주면 그들의 눈 밖에 나는 일도 없었다. 입장료라 생각하고 헌금도 가끔 냈다. 합리적인 소비였다고 판단한다.

휴일이 되면 이단의 교회에 출석했다. 그들이 기도하고 숭배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나는 가끔 생각했다. 어쩌면 이건 하나의 거대한 연극이 아닐까. 이들은 모두 일류 극단의 연기자고, 이건 심심한 나를 위해 준비된 하나의 거대한 몰래카메라가 아닐까. 사실이어도 좋고 거짓이어도 좋은 그 시시해 빠진 공상을 다듬으면서 나는 그저 즐거워했다.

혹자는 이렇게 묻고 싶을지도 모른다. 네가 아무리 정상적인 사고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런 장소에서 주기적으로 신앙을 설파당하면 너도 모르는 새 그들의 신앙에 동조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나는 지금 당장 지구가 종말을 맞아도 받아들일 것이기에 기댈 구석이 조금도 필요하지 않다고......

나는 다시 이직했다. 그리고 이사를 했다. 또한 전화번호를 바꿨다. 이전 도시에서 몸담고 있었던 사이비들에게서 연락이 오는 일은 없었다. 이직을 해도 하는 일은 변함이 없고. 도시의 경관은 달라졌을지언정 내부는 비슷하고. 차라리 다음에는 외국으로 좀 나가볼까, 하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런 고민을 하면서도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사이비의 팜플렛을 건네받아 순순히 가입했다. 이전과는 다른 종교였다. 처음 들어보는 사이비다. 가슴이 좀 뛰었다.

재미없는 일주일을 마치고 사이비 교회로 향했다. 처음 왔다고 이야기하니 모두가 따뜻한 미소로 받아주었다. 이런 곳에선 약간 멍청한 척을 해야 의심받지 않는다.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대충 얼굴에 가져다 붙이고 화답했다.

평범한 상가 건물의 최상층에 위치한 교회였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교회로 보인다. 옥상에 붉은색 십자가도 밝게 빛난다. 실상은 성경이라는 교재만 공유하는 이단에 사이비 교단이지만. 진짜 기독교 신자들은 이곳을 어떻게 생각할까. 사이비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호기심이 일었지만 딱히 그것을 해소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

예배당은 긴 의자를 양 옆에 두고 가운데에 복도가 났다. 앞쪽에 있는 거대한 십자가를 등지고 서 있는 목재 단상은 퍽 정갈한 느낌을 준다. 나는 생전 초면인 나에게 친한 척을 하는 사이비 교인들을 적당히 상대하면서 앉을 장소를 모색했다.

앞에서 다섯 번째 열의 의자 제일 안쪽에 누군가 혼자 앉아있다. 범상치가 않다. 말을 붙이던 교인이 내 시선을 눈치채고 소곤소곤 이야기했다.

"매일 혼자 오시는 분이에요."

"그래요? 저 분하고는 대화를 많이 안하시나요?"

교인은 어딘가 뻘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말수가 많이 적으셔서요. 대화를 즐기시는 분이 아니시달까."

그런데 잘도 종교 생활을 하고 있군.

"아, 그래도,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나는 잠시 내 나이를 헤아릴 시간이 필요했다.

"올해로, 서른 일곱인가?"

"아아, 그럼 저 분이랑 나이가 얼추 비슷하시네요."

눈앞의 교인은 확실히 나보다는 젊어보였다. 나이 차이에서 오는 대화의 간극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럼 제가 한 번 말을 붙여보겠습니다."

"십 분 후에 설교 시작이니까요, 잘 부탁드려요."

뭘 잘 부탁드린다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앉아있는 자리 근처로 다가가 앉았다.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이쪽으로 살짝 시선을 돌린다. 새카만 머리카락에 가려진 눈이 내 쪽에서는 일부만 보였다.

먼저 말을 붙이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별 수 없이 내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신입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구겨진 감이 있는 와이셔츠의 주름이 시야에 들어온다. 검은 바지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그는 더 말을 꺼내지 않아서, 또 다시 내가 말을 몇 마디 더 뱉었다.

"여기 다니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시선을 들어 예배당을 이리저리 살핀다. 뭘 찾고 있는 건가 잠시 생각한다. 달력을 찾고 있는 거라고 결론을 내린 나는, 오늘의 날짜를 이야기 해 주었다.

"그럼, 얼추 세 달인가."

"아, 얼마 안 되셨네요."

"그런 편인가요?"

"보통 반 년은 넘어야 종교 믿는다고 할 만 하죠."

근거 없는 말이었다. 그는 살짝 부끄러운 듯이 시선을 내렸다가, 내 얼굴을 향해 눈동자를 데굴 굴렸다.

"오늘... 처음 오신 건가요?"

"그야 그렇죠. 신입이니까요."

그의 눈가에 흐릿한 웃음이 어렸다.

"여기선 보통 무슨 말을 하나요?"

"설교, 말씀이세요?"

"설교 말하는 거죠, 물론."

거기서 그는 고개를 들어 단상 쪽을 바라보았다. 마침 목사인지 뭔지 모를 누군가가 단상 옆에서 걸어나오고 있었다. 설교 준비라도 하는지 마이크를 몇 번 건드린다. 음질이 썩 좋지 않은 스피커에서 퍽, 하고 음색이 튀는 소리가 난다.

"그냥, 별 거 없어요.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나는 그러한 교리가 일반적인 기독교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른다.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그래서 나는 묻기로 했다. 목소리를 조금 낮춰서.

"그럼, 그냥 평범한 교회에 다녀도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러자 그는 나와 시선을 맞췄다. 머리카락처럼 새카만 눈동자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하지만, 뭘까.

그가 입술을 실룩이고 있을 때, 때맞춰 목사가 마이크 앞에서 목소리를 냈다. 유쾌하지 않은 음질의 목소리가 예배당 안에서 진동했다. 그는 실룩대던 입술을 굳게 다물고 말았다. 이 다음에 이야기하자는 무언의 눈길을 남긴 채.

나는 그와 같은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목사의 설파에 귀기울여 보았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 종교의 근원이 되는 교리는 종말론이었다. 머지 않은 미래에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멸망의 길을 걷는데, 우리의 신을 믿으면 그가 구원을 해 준다는 것이다. 멸망하는 세계에서 벗어나 천국에 갈 수 있도록.

"근데, 원래 죽으면 천국에 가는 거 아닌가요?"

교회 근처의 카페에서 나는 물었다. 오늘의 사이비 일과는 다 끝났기에, 그를 데리고 나와 커피라도 한 잔 사겠다고 했다. 그는 의외로 순순히 따라와주었다.

"그분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대요."

카페라떼를 마시며 그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나는 시럽을 두 번 넣은 아메리카노를 덩달아 홀짝였다.

"그럼 어디로 가는데요? 지옥?"

"어디도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돈다고..."

"세상이 멸망했는데 구천도 있고 천국도 있다니. 재밌는 세계관이네요."

"그야, 우리가 사는 세상이랑, 저 세상은 다르니까."

그런 식의 논리를 펼친다면 할 말은 없다. 나는 달콤한 맛이 은은하게 감도는 아메리카노를 입 안에 머금었다가, 이 초의 간극을 두고 삼킨다.

"어쩌다가 여기에 들어왔어요?"

내가 물었다. 그는 살짝 고민하는 낯으로 어물대다가, 이내 간단한 경과를 이야기 해 주었다. 날이 좋아서 공원에 앉아있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다가왔다고. 고민이 있어 보이시는데, 저희가 준비한 간단한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시는 건 어떻겠냐면서.

"오, 그래서 상담을 했어요?"

"아뇨. 바로 하지는 않았어요."

아무래도,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거리껴져서. 괜찮다고 하고 자리를 떴단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같은 공원을 다시 찾았다. 그곳의 벤치에 앉아 잠시 감상에 젖는 게 그의 취미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런데, 다시 그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그들은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포교를 시도했다. 상담이라고 하면 요즘은 좀 이상하게 보는데, 그렇게 생각할 거 하나 없다고. 우리는 일대일도 아니고 단체 상담이라 그냥 비슷한 사람들끼리 편하게 얘기하고 온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갈수록 하는 말이 의심스러운데요."

나는 부러 웃어보았다. 그는 다시금 희미한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저도 사이비 종교라고는 생각했는데."

"그런데, 속는 셈 치고 따라간 거죠?"

"네, 그렇죠. 어쩌면, 그냥 공원에 앉아있는 것보다, 즐거울지도 모르고."

단체 상담이라는 게 실재할 리 없다. 상담의 구색은 갖추었겠지만, 그곳에 앉아있는 상담사도, 다른 상담객들도, 모두 사이비에서 나온 사람들일 것이다. 상담이라는 이름의 포교를 하는 동안 최대한 그의 기분을 맞춰주었겠지. 실제로 즐거웠을 거다.

그는 그 날 부로 사이비에 들어갔다. 시간이 되면 교회에 나갔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설교를 들었다.

"즐거웠어요?"

나의 물음에 그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즐거우니까, 오늘도 온 거예요."

나는 생각했다. 사이비에서 제공하는 사회교류 기능와 정서적 안정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를. 그런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 과연 어느 정도로 불안정하고 연약한지를.

그것은 또한 까마득한 일전에 이미 결론을 내린 사항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사이비에서 꺼내오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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