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이미 어머니는 딸의 흉터였고 딸은 어머니의 흉터였다. 이 아픔이 그리웠다.

클로 by CLO
11
0
0

깊은 밤에는 새도 울지 않았다. 하릴없이 원래 조류가 서식하지 않는 행성인지, 지금만 그런 건지 따위를 생각해 본다. 기온은 내내 엄동설한이었고 눈이 소복이 쌓인 땅은 모순적이게도 고향과 흡사했다. 건물 뒤편에 서니 숲이 보였다. 사란은 나무와 나무의 틈새, 어둠으로 메워진 검은 공백들을 주시하며 서 있었다. 조명이 없어 사물의 구분조차 힘들었지만, 근처에서 누군가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엄마.”

 

도진은 설원에서 발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의 들뜬 목소리와는 대조적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목전까지 다가갔다.

 

“도진.”

 

그리곤 누가 먼저랄 새도 없이 껴안았다. 두 사람의 몸은 아직 차고 열기가 부족했다. 한동안 오래 붙들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6년의 한기가 물러나기라도 할 듯이. 밝은 웃음과 흐르는 눈물은 없었으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누구의 앞에서도 보일 수 없었던 낯을 지었다. 떠오르는 표정은 환희보다 고통에 가까웠다. 이미 어머니는 딸의 흉터였고 딸은 어머니의 흉터였다. 이 아픔이 그리웠다.

 

“아픈 데는?”

“봤잖아, 나 엄청 건강해. 엄마 동료들이 훨씬 아파 보이던데.”

“얼굴에 이게 뭐야.”

“아, 이거.”

 

도진이 오른쪽 눈가를 손으로 쓸곤 정면으로 사란을 마주 보았다. 이를 드러내며 호쾌하게 웃어 보이는 건 도진의 오랜 특기였다.

 

“멋있지? 백전노장 스타일.”

“말은 못 하면.”

 

그러면 사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져버리고 만다. 예전부터 같았다. 모녀의 영혼은 불변했다. 여전히 혹한의 동토에 기어코 뿌리를 내리고 마는 괴짜이자 이단아였다.

 

“나 봐봐. 키 1cm 더 컸어. 이제 엄마랑 똑같아.”

“그렇네.”

“이 시계 아직도 차고 다니네! 엄청 오래된 건데.”

“비싼 거라 고장이 안 나. 에이지가 얼마나 고생해서 샀니, 이걸.”

“지금은 아빠 유명해졌어?”

“아니.”

“그럴 줄 알았어! 예술가는 힘들다니까.”

“그래도 그만두지 않았어.”

“다행이다.”

 

그들은 손을 이은 채 짧은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마냥 스스럼없이 대화했다. 사란은 에이지의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도진은 수많은 고난에 관해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다. 이제 전부를 공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은 충분했다. 시선을 피해 어둠 속에서 갖는 짧은 만남만으로도 어제와 내일을 직면할 수 있었다. 지난한 삶의 궤적을 마음 깊이 아로새길 수 있었다.

 

“그렇잖아도 추운 거 싫어하는 애가, 이런 곳에서….”

“으응, 안 싫어해.”

 

사란이 어린 시절 겨울만 되면 칭얼대던 아이를 떠올리다, 들려오는 말에 금방 심상을 흩어버렸다. 도진은 중대한 비밀을 발표하듯 근엄한 얼굴을 하려다 금방 키득댔다.

 

“그래?”

“할머니 집에 그렇게 자주 놀러 갔는데 싫겠어?”

“예전에는….”

“그땐 춥다고 하면 엄마가 단추 잠가주고, 목도리 둘러주는 게 좋았으니까.”

 

그냥, 그게 좋아서. 도진이 괜시리 입술을 쭉 내밀자 말이 없던 사란이 과거의 어느 날처럼 그의 겉옷을 동여매고 머리를 매만졌다.

 

“이렇게?”

“응, 그렇게.”

“오랜만이네.”

“오랜만이야.”

 

누군가가 말했다.

 

“보고 싶었어.”

 

오래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급격히 늘어난 인원 때문에 도진은 비품과 식량의 재정비가 필요했고, 사란은 앓고 있는 대원들을 돌보기 위해서였다. 각자 책임져야 할 것들이 있었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카테고리
#오리지널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