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후회, 미련···. 어떠한 감정을 가진다해도 밀려오는 건 파도의 포말뿐이라.
그러니 너는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괜히 나처럼 되진 말고.
우리는 여전히 책상 하나만큼의 거리에 서 있는데, (클릭시, 유튜브로 이동합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정답이 없다고,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다정히 말해준 말. 그 눈빛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너에게 꿈이 있어도, 없어도 그것이 틀린 삶은 아닐 테지. 계속 살아가다 보면 무언가 발견할 수도 있으니, 네가 그저 계속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주제 넘는 바람일까. 모든 삶은 어떠한 형태로든 흐를 테다. 그렇기에 구해늘은 삶이 감히 바다와 같다는 착각을 하고 마는 것이다. 한갓 인간의 삶은 유한한 것임을 알면서도 바다가 그러하듯 무한하여 그 깊이를 가늠할 수도 없듯이, 삶이라는 것도… 어떠한 형태로든 계속 이어지는 것이라고. 그러한 삶이 너희들에게 따뜻하길 바랐다.
마치 구해늘이란 사람을 굳건하고, 무슨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나아가는 사람으로 보고 있지만, 딱히.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다. 단순 휘발성의 감정을 가지고 선청에 들어왔고, 자신을 갈아 넣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진 않았지. 사실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타인을 수단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이냐? 하고 묻는다면, 돌아오는 건 침묵이었다. 자신이 그어놓은 선에 들어오려 하면 바로 밀치고 떠나는 사람 한 번 붙잡지 않는 사람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미련, 그 한 단어가 구해늘을 설명했다. 더없이 관계를 그리워했음과 동시에, 또 그 관계에 일말의 상처는 받고 싶지 않았기에. 누구든 간에 선을 그었다.-그것이 14기, 너희들이라 해도.- 그런 사람이다. 앞만 보고 달렸기에 서툴고, 뭐 하나 솔직하지 못 한 사람.
…미안, 어째 너에게는 사과할 일만 생기는 것 같네, 그렇게 살기로 했는데. 악착같이 살기로 했는데 말이야. 나도 너무 살고 싶었어. 동시에 살아야만 했으니까, 사리까지 물면서 버티고 싶었어. 근데, 그게 맘대로 되진 않더라고. 그냥, 3년 전 일도 생각나서 머리가 제대로 안 돌아가더라. 하하, 핑계인 건 알아, 나도. 마지막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내가 모은 증거만이라도 네게 전해달라고는 했는데, 답을 듣진 못했거든. 알고는 있다, 이 말이 너에게 닿을 리 없다는 건. 그야, 당연한 걸 우리가, 네가 살고 있는 현실은 동화처럼 낭만적이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꾹꾹 눌러가며 말을 이어본다. 네게 너무 미안한데. 이거만큼은 거짓 하나 없는 진심인데. 너의 믿음이 이렇게나 무거운데.
뭐, 이쪽도 상대를 이해하지 못 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통제, 통제, 통제! ‘아…. 피곤해, 절대 엮이기 싫다.’가 첫인상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완벽을 추구했고, 구해늘과 달리 네 목소리엔 힘이 있었고, 야망 있던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배신자를 택한 것이려나. 그 선택에 원망은 없다. 다만 ‘그렇게까지 해서 이루고 싶은 야망이 무엇인가’가 첫째 의문, ‘성질 거침없이 쭉쭉 그어 사람 짜증 나게 만드는 선청의 말을 꼬박꼬박 듣고 싶나’가 둘째 의문. 적어도 네가 그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지. 지금이라고 너를 이해하는 건 아니다. 갑자기 맹—하게 돌아와서는 하는 짓이라곤, 눈사람 만들다 부수기, 사람 죽이는 걸 도와주질 않나, 목숨 걸어 창문 타고 옥상까지 올라갔더니, 선배가 하는 말은 나 죽이러 여기저기 싸돌아다니고 있다고…. 허나, 수평선이 존재한다면 지평선이 존재하듯이, 누군가의 뒤를 밀어주려면, 다른 누군가는 앞에 나서 다른 이들을 끌고 가야 했기에, 어쩌면 우린 자주 엮일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주황빛 머리칼,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보면 네 머리카락은 볕을 닮았다는 감상이 스쳤다.-정확한 시간대는 저녁이려나.- ‘해처럼 늘 빛나주렴.’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어 앞장서는 모습이, 가끔은 꽉 막혔다고 생각이 들때도 있지만, 네가 모든 것을 끌고가기 위해 통제하는 모습-너는 자신 없다고는 했다만, 그렇게 보이더라-이 볕을 닮았다고. 자신은 그러지 못하는데. 그러니, 구해늘은 너희들의 뒤에서 끊임없이 -방관자 혹은-관찰자처럼 지켜본다. 해를 굳이 닮을 필요는 없지, 이미 빛나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조금만 버티면 됐던 건데, 그거 하나를 못 했구나. 너에게 받은 그 모든 것들이 과분한데. 너무 무거워서 목 놓아 울고 싶은데, 나는 너희들이 너무 좋은데, 앞으로도 너희들과 함께이고 싶었는데…. 하지만 그 어떠한 감정을 가져봤자, 밀려오는 건 파도의 포말뿐이라서. 아—, 나는 3년 전처럼 여전히, 여전히, 그대로인데. 여전히 무능하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고개를 돌려버리는데. 앞을 보고 달렸지만 이룬 건 한도 없고, 여전히 나약하기만 한데. 그러한 나를 너는 내게 주변의 이성이라 부르고, 굳건한 심지라고 불러줬는데. 너의 믿음이 너무나도 벅차기만한데……. 어쩌면 좋을까.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시 뒤로 돌아간다면 무엇이라도 바뀌었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늘어놓는다 하여 달라지는 건 없겠지. 여긴 현실이니까.
동창회, 몇 번을 말하는 거야? 나는 앞에 나서서 무언갈 하는… 이런 거 적성에 안 맞는다니깐.
수평선과 지평선, 절대 서로가 닿을 리 없는 두 공간이자, 동시에 서로 상생하는 공간. 근데, 있잖아, 나는 줄곧 뭍을 동경했어. 아가미가 없어도 모두가 있을 수 있는 곳이자, 한없이 따뜻한 뭍을, ...뭍을 동경했어.
그러니, 나는 ‘너희들의 내일은 해처럼 따스하길’ 전해지지 않을 진심을 병에 접어 넣어 파도에 흘려보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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