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 연성

12시

2019.02.24

그는 열두시면 내 방에 온다. 나는 새파랗게 눈을 뜨고 암흑 속에서 그를 기다린다. 간혹 잠옷을 입거나 슬리퍼를 신더라도, 머리를 풀어헤치더라도 긴장이 풀어지는 일은 없다. 졸음에 노곤해져서 꾸벅꾸벅 조느라 그 일을 소홀하게 넘기는 일도 없다. 걸음마다 죽음이 묵직하게 따라붙었으므로. 나는 그것의 무게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으므로.

 

지금은 십분전. 곧 그가 올 것 이다. 어제도 그랬고 그제도 그랬다. 그는 물론, 몇 십 분이고 몇 시간이고 먼저 와서 나와 함께하기를 바란다. 나의 얼굴을 지켜보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때론 사랑스러운 연인의 밀회 비슷한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가끔은 그 나름의 일정이 있으니 그러지 못 한다. 다만, 그가 아무리 바쁘다 한들 나와의 계약을 잊지는 않는다.

 

내가 다리가 불편하므로 주로 그가 내 방에 온다. 가주님이 매일 밤마다 그 여자의 방에 들른다더라...... 하인들은 불유쾌하게 떠들어대고 있다. 나는 구태여 부인하지 않았다. 수고스러운 일이다. 흥미롭고 자극적인 이야기 앞에서는 모든 해명이 그 이야기를 짜 맞추기 위한 조각이 된다. 어차피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앞에서는 수긍하더라도 속으로는 제 생각대로 걸러들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발소리가 들린다. 저렇게 발소리가 퍼진다면 하인들이 그의 행방을 모를 수가 없다. 우리의 만남이 좀 더 비밀리에 이뤄져야 한다. 그에게 말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똑똑똑. 단정하고 예의 바른 노크소리가 들린다.

“들어와.”

그가 문을 밀고 들어온다. 여느 때와 같이 선량한 웃음이 걸려있다. 반면 나는 미소를 지운다. 이 시간은 예외를 얻을 수 있다. 사랑을 표현하지 않아도 좋을 시간. 나는 그에게 총을 들이민다. 그는 스스럼없이 다가온다. 내가 앉아서도 총을 겨누기 가장 편한 위치로, 결코 빗나갈 수 없는 거리로 다가온다. 그리 행동한다 한들 총구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그의 미소도 변하지 않는다. 손을 휘젓는 대로 꺾어지는 풀처럼 마냥 순할 뿐이다. 나는 그를 냉담히 내려다본다. 그는 겸허하게 눈을 감는다.

 

내가 그의 목숨을 잡고 있다. 총구에 얹은 내 손가락에 그의 목숨이 달려 있다. 장난이 아니다. 리볼버에는 실탄이 가득 차 있고, 나는 그가 성가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인은 안 된다고 믿을 정도로 내가 물렀으면 리볼버를 진작에 버렸을 것이다. 겨우 방아쇠를 손가락 한마디만큼 당기는 것으로도 그는 죽는다. 벌레를 눌러 죽이는 것만큼 아주 간단한 일. 총선의 서늘한 감촉이 손을 짜르르 울린다. 그의 생명이 내 통제 하에 있다. 내가 권력을 쥐게 되는 순간.

 

하나

 



 

셋.......

나는 혀를 차고 총을 거둔다. 말하지 않았는가. 하인들이 우리의 만남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다고. 죽음은 간단해도 죽음 이후가 간단하지 않은 것을 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리볼버를 내 품 속에 집어놓는다. 그는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본다. 여전히 더없이 사랑스러운 것을 보는 그 미소를 그린다.

 

여태껏 고요하던 시계가 제 존재감을 알리듯 째각 울렸다. 나는 시계를 흘겨보았다. 12시 가리키며 향해 포개어져 있던 바늘이 틀어졌고 점점 벌어진다.

 

다시 그의 연인 루타샤가 될 시간이다. 서로를 향한 사랑에 따진 푹 빠진 배역. 나는 윈터에게 화사한 미소를 짓고 한걸음 다가간다.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장난스럽게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는다. 그리고 팔을 당겨 다가서고 키스를 남긴다. 총구가 닿을 만큼 가까웠던 거리가 더 좁아진다. 밀착한 몸 사이에 품에 넣어둔 리볼버가 눌린다. 서늘하고 묵직하고 딱딱한 감촉이 아마 그에게도 전해질 것이다. 나는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도 말하지 않는다. 그냥 수많은 연인처럼 사랑을 말을 속삭이고, 애정의 몸짓을 취한다.

 

그저 그리 행동할 뿐이다

출처: https://leavinggarden.tistory.com/30 [방치될 정원: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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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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