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number #316 (1)(미완)
조나단 영화 보러 갔다가 유턴하는 이야기
애인의 키스신을 스크린 너머로 본다는 건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구나. 이 경우엔 전후 사정을 다 알고 있어서일까? 티모시는 버터솔트 팝콘이 든 통을 뒤적거렸다. 이 정도 깊이면 얼추 반쯤은 남았지만 그 이상 먹기에는 또 뭣했으므로 티모시는 얌전히 손을 빼내 팔걸이에 올렸다. 기다렸다는 듯 손등을 간지럽히는 손가락을 바라보는 대신 티모시는 옆에 앉은 사람 어깨에 닿을 만큼 머리를 기울이곤 속삭였다.
‘네가 다 빨아먹을 거 아니면 그만둬.’
‘룸으로 올라갈 때까지 그대로 둔다면 얼마든지 그럴 용의가 있는데요.’
옷을 잘 빼입고 꼿꼿이 좌석에 앉아 첫 개시를 했었을 때에 비하면 훨씬 편안한 심경이긴 했다. 티모시가 뒷자리에 앉아 관람하고 있을 때 조나단은 맨 앞줄에 여주인공과 나란히 앉아 있었기 때문에. 이번 영화도 망작이라면서 영화를 보는 내내 심드렁했건만 정작 그 망한 영화의 클라이막스 키스신이 나올 때는 왜 저렇게 쓸데없이 클로즈업을 했는지, 조나단은 왜 그 씬에서 유독 첫사랑처럼 잘생기게 나왔는지, 그 눈부신 금발이 여자 주인공의 갈색 머리카락과 왜 그리 또 잘 어울리는지, 그런 걸 생각하느라 아랫입술을 씹는 줄도 몰랐다.
물론 그게 오늘은 아니다.
- 괜찮았어요?
- 나쁘진 않았어요.
두 번째 키스신을 무사히 넘기고 티모시는 시트에 허리를 묻었다. 영화 내용은 초중반부를 겨우 지나고 있었다. 주인공인 마이클-조나단 역-과 여주인공인 케이트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에 걸맞게 시작한 지 30분 만에 두 번이나 입을 맞춰야 했다. 첫 번째는 실수로, 두 번째는 마이클의 고의로. 위기 탈출용 키스치곤 지나치게 부드럽고 로맨틱하다는 점이 현실과는 달랐다.
‘잘했어요.’
멀쩡한 아랫입술을 검지 끝이 장난스럽게 누르고 간다. 투정을 받아줄 사람이 곁에 있어서, 그리고 그게 조나단이라서 그렇게 안도가 됐다. 티모시는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숙여 검지에 한 번 더 입술을 부비고 떨어졌다. 아차 싶었을 땐 늦었다.
사실 오늘이 진짜 첫키스에요, 같은 낯부끄러운 대사를 읊는 스크린 너머 조나단을 배경으로 실제의 조나단이 선명해진다. 도드라진 콧날과 턱선을 따라 그림자가 떨어지고, 회색 홍채 안의 동공은 마주한 티모시를 삼킬 듯 선명했다. 이 즈음이면 밤하늘이 배경이었던가? 조명이 가라앉으면 검지에 힘을 주며 얼굴을 가까이 대는 조나단이 점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냐, 아냐. 여기서 하자는 제스처가 아니었다고. 하고 싶긴 한데, 그게 지금은 아니야. 한껏 클로즈업한 두 주연과 서로에게 붙박인 눈동자에 어울리는 배경음이 흘러나오자 티모시는 어깨를 최대한 뒤로 물렸다. 그렇게 흥행한 작품이 아니었고, 심야 영화였기에 중앙 자리를 차지하고도 옆자리는 물론 옆옆옆 자리까지 비어 있었다.
물론 그게 공공장소에서 섹스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티모시 오웰리는 문화시민이었고 공공장소에서 음란행위를 하다가 발각되어 잡혀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것도 상대가 직접 출연한 작품 앞에서! 만약 그 사실이 기사로 떴을 땐 아무리 영세한 곳이라지만 기자로서의 삶도 끝이고, 맥스는 물론이고 가족들도 영영 보러 가지 못할 것이며, 또, 그리고…… 아무튼 티모시는 미래를 위해 필사적으로 조나단의 얼굴을 밀어냈다. 팝콘 기름이 묻은 검지와 엄지 대신 손바닥으로. 그 너머로 조나단이 눈을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그리고 손바닥에 진득이 번지는 습기에 티모시의 손목부터 어깨까지가 단단히 굳었다.
‘미친놈아……!’
스크린에서는 한창 케이트가 마이클에게 사랑의 비의에 대해 묻고 있었다. 사랑의 비의고 자시고 검지에 입술 좀 문지른 게 조나단의 버튼을 누르는 데에는 확실히 작용한다는 것은 알겠다. 티모시는 급한 대로 손바닥에 힘을 더 주어 보았다. 손금 사이로 스미는 침에 손가락이 절로 곱아드는데, 마침 그 사이로 조나단이 뾰족하게 혀를 세워 밀어넣자 티모시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솨르르.
반쯤 남은 팝콘이 쏟아졌다. 이런 영화지만 그래도 집중하는 사람이 꽤 있었던 건지, 짧은 헛기침이 대사와 대사 사이를 가르고 티모시의 귀에 꽂혔다. 장면이 전환되면서 화면이 밝아지면 눈을 가늘게 뜬 조나단이 보였다. 여름, 한낮의 햇살을 받아 청명하게 빛나는 이파리들이 뿜어낸 녹색이 잘생긴 뺨과 턱을 타고 흘렀다. 입모양을 읽기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농담이죠?’
‘농담 아니야.’
조나단의 눈매가 더욱 가늘어졌다가,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원래대로 돌아가는 수준을 넘어, 아주 의자에 허리를 푹 묻고는 후드 앞섶에 굴러다니는 팝콘들을 하나씩 주워먹어댔다. 티모시는 그제야 어깨를 늘어뜨렸다. 타액에 젖은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러 닦고는 잠깐 엉망이 된 바닥을 훑어보았다가 포기하고 다시 자리에 바르게 앉았다. 두 주인공은 태양빛 아래에서만 드러나는 라의 주술 문자를 읽기 위해 나무 그늘도 없는 땡볕 아래서 정수리를 태우고 있었다.
- 햇빛은 다 똑같지 않나요?
- 햇빛은 전 세계 어디든 공평하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시간이 중요해요. 계절과 시간을 놓치면 다음 해에 시도해야 할지도 모른다고요.
‘정말 그래요?’
귓가로 나직한 목소리가 들리자 티모시는 팔걸이를 꽉 붙들었다. 콜라를 다 마셨던가? 그랬던 것 같다. 여기서 콜라까지 엎으면 정말 꼼짝없이 나가야 하니까. 어둠 속 어딘가 출구에서 버티고 있을지 모를 직원을 제외하면 저와 조나단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약간의 스킨십 정도야 영화 데이트에서는 흔한 일이니까, 그렇게 되뇌며 티모시는 부지런히 답할 거리를 찾았다.
‘오래된 파피루스를 태양빛에 노출시킨다는 것부터가 별로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야. 하지만 라는 정오의 태양신이니까, 정오 즈음에 가장 영향력이 강하겠지.’
‘정확히는 모른단 거네요.’
‘오컬트라는 건 섬기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힘이 강해지는데, 현대에 이르러 이집트 신화는 말 그대로 신화이지 숭배의 대상에선 많이 빗겨갔잖아. 메이저가 아니라고.’
로맨스 씬을 제외하면 전개는 빠른 편이어서, 주인공들은 가져온 종이를 햇빛에 비춘 지 몇 초 만에 하얗게 달아오르는 글자를 읽고 있었다. 인스턴트도 그만한 인스턴트가 없었다. cg팀이 고심해서 넣었을 이집트 문자가 조잡하게 빛났다.
‘팀은 이 영화가 재밌나 봐요. 두 번째인데.’
‘영화관이잖아. 집중해.’
‘더 재밌는 게 곁에 있어서 못하겠어요. 다른 거 봐도 돼요?’
정말 환상적이군요! 스크린 너머로 그 회색 홍채에 빛이 가득 고이는 걸 보니 타박하려던 말이 쏙 들어갔다. 공공장소니, 상식을 지켜야 하니, 그런 말을 하기엔 영화가 너무나 재미없었다. 직접 연기하면 덜 지루하게 느껴질까? 모를 일이었다. 티모시는 대답 대신 허공에 손을 저어 보였다. 마음대로 하라는 제스처.
‘잠깐.’
마음대로?
티모시가 질겁하여 고개를 트는 것과 동시에 조나단이 티모시의 검지를 입술로 물어 빨아당겼다. 쪽, 하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효과음에 묻혔다. 달아올랐을 티모시의 귀도 마구 뒤섞이는 빛과 색조에 묻혔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옅은 녹색 필터를 덧쓰고 있었으므로 어줍잖은 홍조는 금세 보이지 않았을 거라는 쓸모없는 지식이 티모시의 머릿속을 스쳤다.
조나단은 티모시의 검지를 살짝 물고는 도망가지 못하게 할 셈인지 깍지를 단단히 껴 당겼다. 가지런한 치아가 입술 아래 도사린 어둠에 묻혔다. 앞니가 닿았던 자리는 아주 옅은 잇자국이 남았을 것이다. 두 번째로 빨아들이는 소리는 하필 조용한 장면이었던지라 좀 더 선명하게 들렸다. 당사자인 티모시가 아니면 듣기 어려울 크기이긴 했지만. 조나단은 뿌리까지 삼킬 듯 입술을 모았다가 천천히 풀어주며 마디 사이로 진 주름을 거슬러 손가락을 길게 핥았다. 반응을 가늠하는 듯 살풋 뜨인 눈이 곧 감겼다. 웃어?
‘웃어?!’
손가락 끝에 잘게 느껴지는 진동으로 미루어보아 그랬다. 조나단은 티모시의 손등에 도드라진 힘줄을 달래듯 어루만지더니, 간단히 손목을 틀어서 이번엔 엄지를 쪽, 소리가 나게 빨아들였다. 장면을 따라 빛이 시시각각 바뀔 적마다 다른 인상을 주는 저 얼굴이 손가락을 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세미 포르노였다. 거기에 촉각적 자극과 약한 청각적 자극이 어우러지면,
‘조나단, 존.’
티모시는 손톱을 세워 조나단의 손등을 긁어올렸다. 판판한 살갗이 손톱을 따라 올라왔다가 손가락 뼈 사이에 뭉치듯 자리를 잡았다. 조나단은 여전히 손가락을 애무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손톱 아래 둥글게 굳은살이 밴 자리를 혀끝으로 건드리거나, 마디가 도드라진 자리를 길게 핥거나.
여기서 펠라치오를 떠올리지 않으면 성인이었고 티모시는 성인이지만 성인이 아니었으므로 속절없이 이 애무가 주는 이미지에 휩쓸려야 했다. 허벅지 사이를 꽉 눌러 잡아 벌리곤, 그 반듯한 입술 사이로 제 것을 물어 삼키던 얼굴이나,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선득하게 음모를 스치던 감각이 되살아나 바지 앞섶이 갑갑해졌다.
‘제발, 여기선 안 돼.’
티모시는 고개를 푹 숙여 조나단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하곤 다급하게 속삭였다. 영화는 아직 중반부를 지나고 있었다. 여기서 히피 복장을 한 태양신을 만나고 온 캘리포니아를 덮은 좀비떼를 정화시키기 위한 태양의 거울을 받으려면 아직 20분은 더 지나야 했다. 여기서 더 일이 복잡해지기 전에 영화관을 뜨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물론 앞섶을 가려야겠지만? 그런데 조나단이 가린다고 가려지는 크기였던가? 안타깝게도 오늘은 드로즈가 아니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은 일어서기만 해도 조나단이 오른쪽 수납인 걸 다 알아볼 것이다.
조나단의 접힌 눈꼬리 안으로 그림자가 오붓하게 스며들었다. 여전히 엄지를 물고 있어 발음은 어눌했지만 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지금 시작해서 한 번씩 빨아주면 나가기 전에 끝나요.’
잊고 있었지만 다시 떠올랐다. 자기 애인은 또라이였다.
“음, 흐으…….”
신음이 새어나가려는 걸 필사적으로 삼켰다. 조나단이 바지 지퍼를 내리려 들기 전까지만 했어도 말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손끝이 닿기 무섭게 반응해 팽팽해진 앞섶과, 그 앞섶을 건드리는 손짓에 티모시는 결국 포기하고 손목을 놓아주었다. 그 결과가 지금이다. 조명을 받아 반짝거리는 어두운 금발이 제 앞섶으로 한바탕 쏟아진 광경.
프리컴이 새어나오는 귀두 끝을 달게 핥는 혓바닥에 오한이라도 느끼는 듯 온몸이 떨렸다. 조나단이 펠라치오를 잘하는 편인지 아닌지 구분할 여력은 없었다. 애초에 공공장소에서 받아본 것도 처음인 데다가, 그 조나단 맥스타즈가 자신 외에 다른 사람에게 펠라치오를 해주는 모습도, 음. 티모시는 괜시리 미간을 찡그리며 조나단의 뒷목에 도드라진 경추를 둥글게 엄지로 덧그렸다. 행위에 집중한 모양인지 이렇다 할 반응은 없었다. 여유 부릴 틈도 없었다.
남은 침이란 침은 모조리 빨아당겨 삼킨 탓인지 입 안이 텁텁했다. 그와 반대로 들척하게 젖었을 아래를 상상하다 조나단의 입술 틈으로 빗겨 흐른 타액이 길게 회음 쪽으로 흘러내리자 티모시는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스크린에 뜬 조나단은 그 반드르르한 낯으로 고대 석판을 들고 주문을 외고 있었다.
“흣, …….”
야금야금 아래로 향하더니 그 이하로는 내려가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목구멍을 열어 삼키기엔 각도가 좋지 않았으니까. 대신 조나단은 귀두 틈새와 그 아래로 진 주름을 샅샅이 훑어 하나하나 혓바닥으로 헤집을 것처럼 굴었다. 귀두 쪽만 입술로 물고 사이로 난 틈을 길게 핥을 즈음엔 팔걸이를 잔뜩 움켜쥐고 숨을 참아야만 했다. 분명 이것보다 더 준비한 애무가 많겠지만 안타깝게도 티모시는 공공장소에서 하는 섹스에 흥분하는 타입이 아니었고, 하필 스크린에서는 허리에 만국기를 매단 좀비들이 태양의 거울에서 반사된 빛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팀.’
어느새 고개를 든 조나단이 작게 속삭였다. 입술이 잔뜩 젖어있어 번쩍거리는 조명을 따라 약하게 빛났다.
‘역시 무리에요?’
“…….”
그걸 이제 알았어? 내가 여기선 안 된다고 했잖아, 같은 억울함에 북받친 대꾸 대신 티모시는 잔뜩 선 자신의 성기를 갈무려 억지로 바지 아래로 쑤셔넣었다. 지퍼에 눌린 탓에 눈물이 찔끔 났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티모시는 조나단의 손목을 단단히 잡고 영화관 밖으로 나섰다. 입구 근처에 대기 중이던 직원이 충분히 심경을 짐작했다는 듯 담담히 내는 인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뒤따라오던 조나단은 야구모자를 고쳐 쓰고 티모시의 곁으로 바짝 따라붙었다.
“팀.”
“…….”
“팀, 화났어요?”
“…….”
“미안해요. 분위기가 분위기라서 잘 될 줄 알았어요.”
“잘 돼? 잘 될 리가 없잖아! 내가 안 된다고 소리 내서 말하지 않았다고 그래? 알아봤잖아!”
처음엔 이렇게 말할 셈이 아니었지만 등허리에 진득히 고인 긴장감과 여전히 지퍼 아래 단단히 눌린 제 성기 탓인지 티모시의 머릿속엔 피가 평소보다 빨리 돌았다. 크게 한 소리를 내고 나선 그대로 방향을 틀어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상영 시간이라서인지 영화관도 엘리베이터도 한산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조나단은 잘못했다는 자각이 있어서인지 얌전하게 티모시의 뒤를 따라왔다.
‘제일 열받는 건,’
당장 뒤돌아 키스하고 어떻게든 이 차오른 열기를 해소하고 싶은데 그러기 싫다는 점이었다. 조나단을 욕구 해소용으로 쓰고 싶지 않았다. 길바닥에서, 공공장소에서! 누가 볼지도 모르는데! 조나단의 찡그린 표정이나 사정 직전 짓는 그 달뜬 표정, 섹스 후 밀담을 나눌 때 평소보다 더 부드러운 입꼬리 같은 걸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스크린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들어가자마자 할 거야.”
티모시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보기로 했다.
호텔까지는 차로 밟아 1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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