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홈리스와 펜트하우스의 상관 관계

본 팬픽의 원작, 두당의 <오컬트 로맨틱 코미디!>, 리디북스에서!

LETHE by 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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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 오웰리는 침대에 뻗은 채 생각했다. 그래서 이 집은 어떻게 산 거야? 산 거긴 해? 역시 임대일까? 펜트하우스를 임대하기도 하나?

 

방음을 얼마나 야무지게 해 뒀는지, 저녁부터 새벽까지 그 난리를 쳐도 아래층은 묵묵부답이었다. 물론 당장 옆집에 사는 사람 얼굴도 모르고 사는 이 개인주의의 본고장에서, 윗집 사람이 애인 신음을 다 들어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체위를 시도하고 있는지 궁금해서라도 얼굴을 보러 갈 사람이 몇이나 될까.

 

티모시는 여러 가정을 시도해보다 그만두고 모로 누워 베개를 끌어당겼다. 구매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솜이 하나도 죽지 않은 베개는 몇 번 머리를 꾹꾹 눌러야만 편해졌다. 언젠가 조나단의 등줄기를 긁으며 밭은 숨을 내뱉다 되는대로 물어보긴 했다. 소리가 너무 큰데,

 

‘방음 걱정은 안 해도 돼요.’

 

티모시는 잠자코 손바닥으로 자신의 주둥이를 때렸다. 참 기특하게도 “배우 애인의 뜨거운 사생활” 걱정을 했다고 일주일은 놀림당했다. 어쩌겠는가? 티모시 오웰리의 29살 남짓한 삶을 통틀어 이토록 교성에 절은 성생활은 처음이었으니까. 그리고 아마 이 다음은 없을 거라고 짐작했다. 티모시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래, 내가 기특한 애인이라 치고. 본디 조나단 맥스타즈는 유령이 잘 들러붙는 체질 때문에 어떤 집을 가든 기현상에 시달렸다. 멀쩡하던 집이 유령 소굴이 되기까지는 글쎄다, 3개월 남짓 정도 걸렸다고 했던가. 이사 가는 집마다 수도관이 폭탄처럼 터져댔으니 집은 언제나 수더분하고 옮기기 편한 가구밖에 없어 휑했을 거라고 상상해 봤다. 그 작은 머리통이 더 작아서 빛을 받으면 가느다란 금발이 연하게 반짝거리던 시절에.

 

‘가족은 할아버지가 유일하댔지.’

 

조나단은 과거사를 털어놓고 편해지고 싶어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티모시 오웰리의 기자정신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가리지 않고 발휘되는 편이지만, 그래도 사회생활이라는 걸 하고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다 보면 어느 정도 감이라는 게 생긴다. 어느 정도 발을 들여도 괜찮은 영역과, 괜찮지 않은 영역.

 

조나단은 티모시에게 언제까지나 미스터리일 것이었으므로 그런 사소한 과거사를 안다고 해서 그의 신비감이 홀딱 벗겨지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애인과 싸울 거리를 만들고 싶진 않았다. 백 번 넘게 싸우고 백 한 번째 만난다고 해서 싸웠던 게 사라지진 않으니까.

 

용서는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게 아니라 더 이상 그 사건에 대해 공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티모시는 용서와 화해의 정의를, 조나단과 만나면서 몇 번이나 되짚어야 했다. 내가 기존에 알던 개념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빌미로 새롭게 정의되는 경험은 언제 해도 낯설었다. 그래서 조나단 맥스타즈는 아주, 아주 특별한 인물이었는데, 이게 아니라.

 

‘그래서 이 집은 어떻게 구한 거야? 유령이 잘 꼬이는 체질은 M.C.E.E에서 뭔가 처치를 해 줬다고 쳐도. 조나단 맥스타즈 필모그래피에 실린 영화 성적으로 이런 집이 가당키나 하나? 아니면 화보집?’

 

수백, 수천억 자본이 굴러다니는 헐리우드라고 모든 배우들이 부유한 것은 아니다. 물론 헐리우드에 발을 들이고 있단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흥행성은 가지고 있단 셈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외진 곳도 아니고, 오래된 저택도 아닌 고층 건물 펜트하우스라니. 티모시는 새삼스럽게 자신의 금전 감각이 어느 정도 수준인가를 되새겼다.

 

스폰서? 그럴 리가 없다. 스폰서 비위를 맞춰 줄 거였다면 차라리 흥행할만한 시나리오로 넘어가는 편이 나았을 거다. 자기가 잘생겼다는 걸 모르는 위인도 아니니까. 물론 영화계의 복잡한 인맥이라든가, 돈이 굴러가는 양상 같은 거에 대해서는 연예부 기자도 아니니만큼 이렇다 아는 게 없지만 그래도 티모시는 조나단을 남들보다는 많이 알았다. 자신이 아는 조나단은 대체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남자였고, 특히 자신의 감정에 관련된 영역에서는 잘 참지 못했다. 변덕스럽고 섬세한 감정이 급커브를 틀 때마다 미묘하게 바뀌는 표정들. 그래, 그걸 사랑해. 아무튼 스폰서는 아니다.

 

‘그러면 역시 할아버지가 부자인 건가? 아니면 증조부가 엄청난 부자라서, 숨겨진 유산이 있었는데 조부가 돌아가실 때 다 물려줬다든가…….’

 

“이불 뒤집어쓰고 무슨 생각 해요?”

 

어둠에 젖은 눈동자들이 마주 끔뻑였다. 전등 하나 켜지 않은 침실을 밝히는 거라곤 리넨 커튼처럼 드리운 달빛과 욕실에서 새어 나온 흰 불빛이 길게 그리는 선밖에 없었다. 푹 젖은 금발로부터 물방울이 방울져 시트를 적셨다.

티모시는 가만히 손을 뻗어 조나단의 뺨을 감싸 쥐었다. 조나단은 잠깐 손바닥이 닿은 쪽으로 눈을 굴렸다가 곧 얌전히 뺨을 손바닥에 기댔다. 이 평온하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너 사실 빚쟁이인 건 아니지?”

티모시는 기어코 저질렀다.

 

“대관절 무슨 소리에요? 아.”

 

살짝 찌푸려졌던 눈썹이 다시 반듯하게 펴졌다. 조나단의 표정이 산뜻해졌다. 티모시는 저 표정을 아주, 아주 잘 알았다. 저런 표정일 때의 조나단은,

 

“또 집 걱정했어요? 나 쫓겨날까 봐.”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대체로 그의 말 중 70퍼센트가 농담이 섞여 있긴 했지만. 그래도 많이 나아진 거다. 처음에는 85퍼센트 쯤 됐었던 것 같으니.

 

“아니……, 아니, 맞아. 알아야겠어. 이 침대에 등을 비빈지도 몇 주쯤 됐는데,”

“쌩쌩하네요. 이만하면 지칠 만도 한데. 물론 궁금한 걸 끝없이 물고 늘어지는 이런 면을 좋아하지만요.”

 

어깨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살이 닿았다. 간단한 손동작을 따라 바로 누우면 천장이 보였다. 어둠에 젖어도 깔끔한 흰색. 곧 시야를 덮는 얼굴에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뜨면 지척에서 사랑하는 얼굴이 보였다. 사랑하는? 좋아하는. 어쨌든.

 

“좀 말해줘도 괜찮잖아. 어느 쪽이야? 할아버지가 수상하고 돈 많은 사람이었어? 아니면 여기가 사실 유령이 나오기로 유명해서 집값이 터무니없이 쌌다든가.”

“자기 이야기잖아요.”

“그러니까. 경험해봤으니까 대입하기도 쉽지.”

 

조나단이 웃음을 터뜨렸다. 들었든 봤든 타인의 긴장을 물렁하게 풀어버리는 웃음. 사실 그러저러한 스폰서 말고 정말로 저 얼굴에 홀려서 기부 아닌 기부를 하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 가능성 있어.

 

“저 사실 부동산 투기 전문가예요.”

“부동산?”

“주로 유령 들린 집을 취급하고요, 다세대 건물 전문이에요. 제가 가서 서너 달 살면 집값이 뚝 떨어지잖아요? 그전에는 세를 살다가 집값이 싸졌을 때 해당 층을 통째로 사요.”

“허어…….”

“그리고 제가 떠나면? 심령 현상이 잦아들잖아요. 그럼 M.C.E.E. 백업 팀에서 이쪽 건물에 대해 도는 흉흉한 소문을 다른 리플로 밀어버리는 거죠…….”

“…….”

“표정 진짜 볼만하네요.”

 

티모시는 대번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말해주기 싫어?”

“하나만 더요. 실은 우리 할아버지가 엄청난 부자셨거든요? 제가 영국 왕실 핏줄이라고 말했었나요?”

“안 했어…….”

“물려받은 주식과 부동산이 상당한데 브렉시트 때 땅을 더 사셨거든요. 그걸 전부 저한테 보내주셨는데, 요즘 영국 부동산 가격이 멋지잖아요. 싹 처분했어요.”

“그럴듯하게 들려서 화가 나.”

“어느 쪽이 마음에 들어요?”

 

귓가를 보채듯 누르는 입술에 낮은 신음이 흘렀다. 티모시는 젖어서 색이 짙어진 금발을 가만 쓰다듬다가 곧 마구 헤집었다. 수더분해진 머리모양이 조나단 특유의 옆집 청년같은 무구한 미소에 잘 어울렸다.

 

“다시 빗어줄 거죠. 빗어 줘요.”

 

애살스럽게 들이미는 머리통을 거절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며 티모시는 한숨과 함께 머리카락을 빗어넘겼다.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티모시의 귓가를 맴돌다 곧 침대 시트 위로 푹 묻혔다. 습기가 남은 피부가 빈틈없이 땀이 식은 자리로 들러붙었다. 티모시가 여길 들를 때마다 묻히고 갔던 샴푸 냄새와 꼭 같은 향이 났다.

 

“주식 했어요.”

“어?”

“정상적이죠? 처음엔 펀드를 했었는데,”

“잠깐, 잠깐. 주식으로 수익을 냈다고?”

“네.”

 

티모시가 다급히 고개를 틀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맞은편에서 기다리고 있던 회색 홍채는 순진무구했다. 가벼운 입맞춤은 덤이고. 하지만 지금은 귀여운 연하 애인의 애교에 감탄할 때가 아니었다.

 

“돈은 어디서 나서?”

“화보집 수익이 제법 잘 나거든요.”

“뭘 믿고 주식해?”

“저라고 처음부터 잘했겠어요? 아파트 한 채는 날렸어요. 그렇게 비싼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굴릴만한 부동산이 좀 있어서, 아차.”

“어디까지가 진실이야.”

“적당히 넘어가면 안 돼요? 몸 팔아서 번 돈 아니에요. 화보집도 몸 판 거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

 

입술이 깨물리자 낮은 웃음소리를 이어 틈을 비집고 혀가 들어왔다. 어깨를 밀면 못 이긴다는 듯 떨어지긴 했지만 쉽사리 그만둘 생각은 없는지 조나단은 티모시의 눈가를 코끝으로 문지르고 속눈썹에 속눈썹을 얽어왔다. 명백히 말하기 싫어, 라는 투였다.

 

“전부 거짓말은 아니에요.”

“부동산 투기? 영국 왕실 혈통? 주식?”

“화보집도 있고.”

“그걸 믿으라고?”

“팀도 상상력 발휘했잖아요. 내가 어떻게 돈 벌었는지. 거기에 상상력의 소재를 조금 더 얹어준 것뿐이죠. 어쨌든 불법은 아니에요. M.C.E.E.는 무급으로 굴러가니까 먹고 살고 싶다면 요령껏 굴러야 하거든요.”

 

속절없이 가슴팍 위를 차지하고 누운 이 남자에게 휘말려주며, 티모시는 새삼스럽게 자신의 무른 성정을 탓했다. 그렇지만 펜트하우스라고. 가구도 전부 새 거야. 인생의 맥거핀으로 남기기엔 너무 거대하지 않은가.

 

“내 통장 궁금해요?”

“조금…….”

“결혼하면 보여줄 거예요.”

 

결혼 문제로 말꼬리를 잡기엔 앞서 지나간 가정들이 너무 대단했다. 물론 주식 좀 할 줄 아는 건 그나마 수위가 낮았지만. 사실 헐리우드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오가는 곳 아닐까? 그 별세계에선 도대체 어떤 금전감각들이 구르는 거야? 알 수 없었다.

 

“통장 합치면 경악하게 될까?”

“아마도요.”

 

어쨌든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조나단 맥스타즈가 또 한동안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으니, 한 몇 달은 이 문제를 일하는 틈틈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마음껏 상상하고 궁금해하라고 허락한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간단하고 명쾌하게 말해줘도 좋을 텐데, 이 남자는 늘 등 뒤에 숨긴 꽃다발 속에 또 뭔가를 숨긴 사람처럼 굴었다. 뒷짐을 지고 있어서 뭔가 숨기고 있다는 사실은 숨기지 않지만, 등 뒤를 엿보려고 하면 장난치듯 뒷걸음질 치거나 몸을 돌려버린다.

 

“있잖아.”

“네.”

“나중에 퇴직금 따로 통장에 담아 주면 굴려볼래?”

 

좋아요, 하는 웃음 섞인 대답을 들었으니 됐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렇게 생각하며 티모시는 눈을 감았다. 기분 좋은 피로감과 무게에 의식을 묻었다. 두 사람 분의 무게로 더 깊게 파묻힌 몸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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