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ㄴㅌ 이 어린 놈의 샛키가 (벌써)
글터디 3주차
어울리지 않게 탁자에 올려놓은 담배가 정갈했다. 사나기는 하야테가 어떻게 이 담배 한 갑을 사왔는지 눈 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담배의 품종이나 번호 같은 것도 전혀 모르면서, 아르바이트 생에게 “담배 한 갑 주세요.” 라고 무작정 이야기했을 것이다. 웬 진상이지, 하고 생각하는 아르바이트 생의 얼굴을 특유의 무표정으로 빤히 쳐다보면서.
“…그래서 지금 제가 뭘 가르쳐야 한다고요?”
“담배 피는 법. 정확히 말하면 담배에 불 붙이는 법부터, 맛있게 피는 법까지 전부.”
“뜬금없이 왜요. 여자친구가 담배피는 남자가 취향이래?”
“아니, 담배 피는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가 어딨어. 배역 때문이야. 대본 받았는데, 내가 맡은 역이 골초더라고.”
또 자각 없이 사람 속을 긁는 하야테의 말에, 사나기가 작게 하, 하고 웃으면서 탁자 위를 검지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아, 그래서 비흡연자인 선배가 급하게 주변의 흡연자인 사람을 찾았고, 그게 나다, 이 말이네요.”
“응, 정확해.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네가 가장 담배를 많이 피우기도 하고.”
“살다살다 담배 피우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부르는 사람은 처음 보네, 이거.”
사나기가 피식 웃으면서 탁자에 놓여있는 담배의 비닐을 깠다. 종류는… 가장 대중적인 거고. 아무래도 막무가내로 담배 한 갑을 달라는 선배의 말에 곤란한 아르바이트생이 가장 잘 나가는 담배 하나를 내어준 모양이었다.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피우기는 하는 담배지만, 글쎄, 초심자가 피우기에 적당할지는 잘 모르겠다.
“선배, 라이터는?”
“…….”
“그거까지는 생각 못했다는 표정인데, 이거.”
아까와 별 달라진 것도 없는 하야테의 표정이지만, 이만하면 사나기에겐 제법 읽히는 얼굴이었다. 좋든 싫든 꽤 오랫동안 봐왔으니까. 그다지 이름 붙일 것도 없어보이던 관계가 이렇게 길게 이어질 줄은 아마 두 사람 모두 몰랐을 것이다. 두 사람은 내심 부정하고 있지만 두 사람은 추구하는 인간관계의 방향이 꽤나 일치했다. 너무나 가까운 것도, 그렇다고 먼 것도 견디질 못하는 인간들이었으니. 딱히 그 사실을 소리내어 설명할 인물들도 아니었으나, 그래 비슷한 퍼스널 스페이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곁에 두기에 편했다. 단지 그 일로 두 사람은 이 아무것도 아닌 이 관계를 렇게나 길게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뭐, 됐어요. 내가 쓰던 것도 있으니까.”
깐 담배갑을 툭툭 쳐서 담배 한 보루가 올라오도록 만든 사나기가 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쓰던 것이라는 게 거짓말은 아닌지 오일이 여유있게 남아있지는 않았다. 흐르듯 자연스럽게 입에 담배를 문 사나기가 숨을 들이마시며 담배 끝에 불을 당겼다. 숨을 들이마시며 커진 사나기의 흉곽이 줄어들면서 하얀 담배 연기가 코와 입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하아, 하는 숨소리가 나른했다. 적당한 때에 공급된 니코틴에 사나기의 미간이 서서히 풀렸다. 조금 올라간 입꼬리에 장난스러운 웃음이 번졌다. 다시금 담배 끝에서 불티가 살아올랐다가, 그새 그 색이 탁해졌다. 오른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끼고 다시금 하얀 연기를 하야테 쪽으로 후, 뱉었다.
“잘 봤죠? …뭐 가르칠 게 있나. 그냥 따라해봐요.”
일부러 얼굴 쪽으로 담배 연기를 뱉었는데도 아무 표정 없이 연기를 다 받아낸 하야테가 그제서야 굳어있던 몸을 움직여 사나기가 아무렇게나 던져놨던 담배갑을 집었다. 그렇게나 영화를 미친 듯이 보더니 관찰력 하나는 괜찮았던지, 사나기가 했던 움직임을 비슷하게는 따라하는 모양이었다. 담배갑을 툭툭 쳐서 담배를 한 보루만 올라오게 하거나, 그 담배를 입에 물고 그 끝을 손으로 동그랗게 감싼 후 사나기의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꼴이 꽤 자연스러워 보였다는 뜻이다. 그 꼴초 배역에 선배를 캐스팅한 감독의 기대가 어떤 건지 짐작은 갔다. 좀 잘 어울리긴 했다.
물론, 자연스러운 꼴은 거기서 끝이었지만.
“아니, 선배. 하, 캡슐 씹어야지.”
“불을 붙일 때 숨을 들이마셔야지. 안그럼 불이 안붙는다니까?”
“…적어도 들이마시고 몇 초 있다가 뱉어야지. 입에 머금고만 있다가 뱉으면 그게 뭐야.”
“잠시만, 지금 숨 참고 있는 건 아니지?”
“내 말 듣기는 했어? 씨발, 붙일 때 빨아야 한다니까.”
마지막 사나기의 타박에 물고 있던 담배를 입술 사이로 우물거리던 하야테가 작게 중얼거렸다.
“말을 해도 넌 꼭 그렇게…….”
“뭔…….”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던 하야테의 말에 어처구니를 잃은 사나기가 하야테를 봐주면서 계속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이런 시발, 이렇게나 재능 없을 줄은 몰랐다. 애초에 담배를 피우는 게 뭐가 재능인가 싶긴 하지만…. 갑자기 한꺼번에 여러 대를 연달아 피려니 과다한 니코틴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여기가 너구리 굴도 아니고, 이게 뭐람? 사나기는 한숨을 쉬면서 열어뒀던 창문을 더 활짝 열었다.
“…애초에 선배가 지금까지 담배 하나 안피워봤다는 게 더 놀랍다.”
“담배 냄새를 별로 안 좋아해서.”
“아, 네네. 학창 시절에 여자 눈치만 봐주느라 아무것도 못했다는 거지, 알아.”
사나기의 타박에 하야테는 어느새 다시 마지막 하나 남은 담배를 물었다.
“돛대네.”
사나기의 말에 하야테가 잠시 고개를 들었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에 담배 20보루 중 절반은 갖다버리고, 태우다 말았다니, 새삼스레 아쉬워서 사나기가 작게 혀를 찼다.
“일단 한 번 불 댕겨 봐. 붙일 때 빨고, 캡슐 씹고, 연기 목 너머로 넘긴다고 생각하고.”
사나기의 말에 하야테가 손에서 만지작거리던 라이터로 다시금 담배 끝에 불을 붙였다. 이젠 불을 붙이는 모습 하나만큼은 웬만한 꼴초 모양이 맞았다. 불씨가 새빨갛게 살아나다가, 금새 꺼졌다. 그래, 불은 잘 붙였네, 안 태워먹고. 사나기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하야테가 순간 담배를 떨어트리고 손으로 입가를 막았다.
머금고 있었던 하얀 연기가 볼품없이 흩어지고, 하야테가 내장을 쏟아낼 듯 기침을 시작했다. 아, 연기가 잘못 들어간 모양이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나기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야테가 쏟은 담배를 주워 장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면서, 사나기가 선배, 선배, 하고 불렀다.
여전히 기침을 멈추지 못하고 콜록거리면서, 겨우 눈을 가늘게 뜬 하야테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그래, 맵겠지. 그렇게 순한 것도 아니었는데…. 짙은 눈썹이 팔자를 그리면서, 죄도 없는 사나기를 탓하듯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하야테의 눈길에, 사나기는 작게 고개를 저으며 웃음 섞어 말했다.
“선배, 그냥 지금이라도 배역 설정 바꿔달라고 감독님한테 이야기하자.”
얼씨구, 꼴에 배우라고, 아련한 표정 같은 거 나한테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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