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지천

먼지털이(4)

浪漫白鬼_태지천x명


*

 태지천은 기분이 매우 불쾌했다.

 자신이 예상하지 못 한 독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자신에게 하독 된 독 같은 것들은 어찌 되든 상관 없다. 교성에 발을 들인 이후로부터 아주 익숙해져 있을 뿐더러, 이런 잔술책들은 그의 명줄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허면, 눈앞에 자신이 모르는 은둔고수가 설치고 있는 것에 기분이 나빴는가. 그 또한 아니었다. 자신을 죽이겠다 주변에서 알짱거리는 놈들은 아주 많다. 덤벼들면 그저 쳐낼 뿐. 벌레들에게 일일이 감정을 써줄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기분이 이리도 망가졌는가.

 그건 자신이 이곳에서가 아닌 성 내에서 중독되었다는 사실이다.

 태지천은 자신의 무공이 막강함이 널리 알려지고 나서 외적으로 습격을 받게 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즉 암기를 통해 독에 감염 되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섭취를 통했다는 뜻인데, 그는 성에서 식사 외의 음식을 잘 들이지 않는다. 

 때문에 자신이 먹은 독은 성의 주방에서 시작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주방에서 만들어진 음식은 많은 성 내의 일원들에게 들어간다. 그리고 그 인원엔 당연히 자신의 정인 명이 또한 포함되어 있다.

 

 태지천은 이미 전날 밤, 명이의 처소에 침입한 은위단을 통해 그에게도 위협이 향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눈앞의 사내는 은위단에 의뢰를 사주한 은동현과 가까운 관계임 또한 알 수 있다. 자신이 중독된 독이 명이에게도 들어가지 않았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태지천은 속에서부터 무언가 들끓어 오는 것 같았다.

 사내의 말대로였다. 천마인 자신을 그 누구도 해치지 못할 것이라는 오만함이 지금의 결과를 만들었다. 

 명이의 안전을 위해 그에게 전달하는 정보를 제한 했다. 그 어느 것에도 관련되거나 아는 것이 없다면, 그 외의 위협은 자신의 힘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의 오만이 명이를 위협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이 그를 미치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속에서부터 솟구치는 분노와 자책감은 눈앞의 사내놈을 두동강 내버린 데도 전혀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았다.

 전세가 자신에게로 기울었다 확신하는 사내는 태지천을 공격하기 위해 기를 끌어올렸다.

 여전히 싸늘한 두 눈으로 사내를 노려보고 있던 태지천은 드디어 소리를 내었다.

"내 친히 네 놈에게 두 가지를 알려주겠노라."

 태지천이 검을 뽑아 들었다.

"하나. 지금까지 널 상대해준 것은 짐이 독에 당했기 때문이 아니니라."

 태지천이 천천히 검을 들고 자세를 잡는다.

"그건 신으로서 네게 내리는 자비다."

 태지천이 자세를 잡자, 사내가 긴장하며 맞받을 준비를 한다.

"둘."

그리고 태지천의 검날이 빛났다.

"짐은 천마(天磨)이니라."

 어느샌가 태지천은 사내의 옆에 서서 검을 앞으로 뻗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태지천 그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부드러웠으며, 대지와 하늘의 존재처럼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흘러내렸다.

 환상과도 같은 그 움직임이 보는 이를 홀려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그가 움직였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적막이 흘렀다. 사내는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마교주 태지천은 드높은 무공을 갖고 있었으나 교주자리에 앉은 뒤로는 무공을 갈고 닦지도 외부에서 자신에게 들어오는 위협을 막으려들지도 않았다. 외내부에서 일어나는 위협에 대처하지 않는 천마의 자세덕에 세간은 마교가 금방 무너질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태지천 그의 압도적인 무위를 기반으로 그를 중심으로 마교 세력은 더욱이 단단하게 자리 잡았고, 수년간 수많은 첩자들이 목숨을 희생하고 나서야 천마의 약점이 독이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천마는 높은 경지에 있음에도 독에 내성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매일 같이 약을 달고 산다. 몇 십년의 세월 동안 꾸준히 독에 당해온 것을 생각해보았을 때, 태지천 그는 독에 대한 내성을 기를 수 없는 체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들이 난무했고,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다.

 때문에 사내 또한 마교에 첩자를 보내 독을 하독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시야가 뒤집혀가게 돼서야 사내는 깨달을 수 있었다.

 마교주 태지천.

 그는 독에 대해 내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굳이 번거롭게 걸러낼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중원은 그가 힘을 기르지 않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가 무공 연마에 깊은 관심이 있어 꾸준히 단련해왔다면 세상 그 누구도 그의 존재를 범접할 수 없었을 테니.

 툭.

 둔탁한 소리가 적막을 깨었다. 사내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머리가 떨어지고 붉은 비가 사방에 흩뿌려졌다.

 태지천는 피로 흠뻑 젖은 제 얼굴을 소매로 대충 닦아내었다.

 뒤를 돌아서자 박희연이 기다렸다는 듯 피를 닦을 수건과 새 의복을 내밀었다.

"교주님 말이 준비 되었습니다."

 태지천은 말 없이 피를 닦아내고 더러워진 의복을 버리고 새 의복으로 갈아입었다. 길게 날리는 머리칼을 하나로 묶고는 박희연이 준비한 말에 올라탔다.

"최대한 빠르게 도착해야 한다."

"예."

 박희연이 태지천의 뒤를 따라 말에 올라타 달리기 시작했다.

****

“교주님 성 내 인원 전원 중앙궁에 소집하였습니다. 호명하신 인원들 또한 따로 나누어 두었습니다.”

“고생했다.”

 성 내의 의약당실. 태지천은 의원에게 해독제를 받아 내상을 다스리고 있었다. 오는 와중에도 독에 당한 내상 때문에 몇 번을 검은 울혈을 뱉어내었는지 모른다. 덕분에 새로 갈아입은 옷이 더러워져 버리게 되었다.

 박희연의 보고가 끝나자 태지천이 자리에서 일어나 새로 준비한 검은 장포를 걸쳐 걸음을 나섰다. 평소 입던 것과는 달리 금박 장식도 붉은 자수도 들어있지 않은, 검은색만의 수수한 비단 장포였다.

“명이는.”

“명하신 대로 거처에서 벗어나지 못하시게 대원 전원이 호위 중입니다.”

"그래."

 명의 소식을 물은 태지천의 얼굴은 그리 밝지 못했다.

 태지천의 불안대로 명 또한 중독되어있었다. 만약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그 고수가 은동현과 관계가 없었다면, 정말 위험했을 상황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라 할 점은 그 독은 둘이 만나야지만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명에겐 아무런 해도 없었다는 점이다. 

 중앙궁의 문이 열리고 무표정의 태지천이 안으로 들어섰다.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성 내의 인원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 되었다.

 머리를 하나로 묶고, 화려한 의복 대신 검은 포 하나만 소소하게 입고 들어온 평소와 다른 태지천의 모습에 중앙궁의 모두는 그들에게 소집령이 내려진 것이 절대 편안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태지천이 인파의 중심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그의 발소리 외엔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태지천이 중심에 서고 모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본교의 모든 첩자들과 변절자들의 처형을 시작하겠다."

 태지천이 '천마'라는 자리에 오른 지 56년.

 그가 처음으로 반역도들의 처벌을 선고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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