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지천

마침표의 앞에서

浪漫白鬼_태지천X명

#자신이_내일_죽을_것을_안다면_자캐는_앤캐에게

*

 명줄의 끝에 도착했는지, 반복되는 암살 위협에 몸이 상해 한계가 되었는지.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직감한 태지천의 하루는 평소랑 다를 게 없다.

 교도들과의 회의에선 평소와 같이 일들을 처리하고 자신의 상태를 전한 뒤에, 일을 시끄럽게 만들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덤덤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온다.

 태지천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면, 정말 아무런 생각도 느낌도 없다. 아주 오래 전부터 바래왔던 순간이었으니.

 지친 마음을 내려두고 눈을 감을 수 있는 순간이 마침내 찾아온 것이다.

 다만, 그토록 기다린 순간이 찾아왔음에도 이 삶에 미련이 남았다 하는 점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자신의 정인인 명이었다.

 그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을 뿐더러, 그에겐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갑작스럽게 혼자 남을 그의 삶은 어찌해야 좋을지. 

 태지천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태지천은 성의 내부를 목적 없이 돌아다녔다.

 그는 본래 애정과 가까운 사람이 아니다.

 사람을 따스히 품어주는 것도, 안고 달래주는 것도.

 명이를 만나고 나서야 잊었던 무언가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사람다운 삶을, 자신을 찾아가고 있었다.

 참 아쉽다.

 죽음의 앞에서 처음 든 태지천은 생각은 그러했다.

 이제서야 숨을 쉬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되었는데, 이가 끝난다 생각하니 아쉽기 그지없었다.

 허나, 이내 금방 받아들였다. 자신의 삶에 대한 운명은 단 한 번도 그가 바라던 대로 이어진 적이 없었으니.

 태지천은 쓸데없는 생각은 집어치우고 명이를 만나러 갔다. 사랑스러운 그이를 만날 생각을 하니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그러나 태지천은 막상 명이의 얼굴을 보고는 그를 만나러 온 것을 후회했다.

 기분이 참 나빴다.

 나빴다고 해야 할까.

 가슴 속에서 복잡하게도 뒤엉켜 무언가 안에서 걸린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매일 명이를 웃음으로 맞아주던 태지천이었지만, 오늘은 그 어떤 표정도 지어주지 않았다.

 무슨 일 있냐는 명이의 질문에 태지천은 덤덤히 아무 일도 없다는 답과 함께 그의 이마에 입맞춤 해주었다.

 평소처럼 그의 입에 마음을 나누어 줄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지금 이 표정을 유지 하지 못할 것 같았다.

 태지천은 명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참 흐릿했다.

 멀어져 가는 그의 시야는 명이의 얼굴을 흐렸고 빛을 번지게 하는 그의 눈은 그 흐린 얼굴마저 가려버렸다. 어릴 적부터 빛을 제대로 보고 자라지 못해 퇴화한 그의 눈은 사랑스러운 정인의 모습조차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참으로 분하구나.

 태지천이 죽음 앞에서 두 번째로 느낀 감정이었다.

 태지천은 어떤 말도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보이지 않는 눈으로 사랑스러운 자신의 정인의 모습을 담기 위해 애쓸 뿐.

 자신의 곁을 떠나간 많은 사람들 또한 마지막까지 자신을 바라봐주었다. 그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태지천은 문득 그런 생각을 하였다.

 죽음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죽음이라는 곳으로 떠나면 다시는 바라보지 못할 소중한 이를 조금이라도 눈 안에 담고 싶다는 그 마음이 드는 것은.

 당신들도 그러했는가?

 나의 부모여, 스승이여, 친우여.

 태지천은 속으로 듣지 못할 누군가들에게 질문했다.

 지금 자신의 눈빛은 어떠할까.

 그 날들의 그들의 눈은 참 슬펐는데, 태지천은 자신의 눈빛은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자신이 그리 슬픈 눈으로 지금 명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면. 자신의 눈을 바라보는 명이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태지천은 수도 없이 겪어 알고 있기에. 그저 자신은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명아." 

"명아..." 

"명이야."

 나의 사랑스러운 그대여.

 불쌍한 그대여.

 나는 그대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끝내 나온 말은,

"명아, 꽃놀이를 가자꾸나."

 태지천은 차마 해주어야 할 말을 그에게 해줄 수 없었다.

 수천, 수억. 너무나 많은 죽음에 상처 받았던 그는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그에게 그런 가혹한 말을 전할 용기가 없었다.

 꽃 동산에 올라와 바라보는 신교의 모습은 참 이질적이었다.

 척박한 신강의 땅에 꽃동산이라니 웬 말인가 싶겠지만, 이곳은 태지천이 그의 정인 명이를 위해 특별히 공을 들여 만든 장소였다.

 들인 공에 맞게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참 행복했다.

 따뜻하게 내려오는 햇살, 살랑이는 바람. 그리고 그 바람에 맞추어 날아오는 꽃향기. 눈앞에서 웃어주는 정인.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자신. 행복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가는 것도 느끼지 못할 만큼 말이다.

 명이와 긴 시간을 웃으며 보낸 태지천은, 꽃들 사이에 명이와 함께 앉아 조금씩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저 해가 떨어지고 달이 떠오르면. 그리고 그 달이 다시 내려가기 시작하면 태지천 그의 눈은 영원히 감길 것이다.

 그는 그저 멍하니 찬란한 노을을 바라보았다.

 명이의 손을 꼬옥 잡은 채로.

 그러다 무언가에 홀린 듯 잡은 손을 끌어 명이를 자신의 품에 안았다.

 힘을 주어 안았다. 명이가 계속해서 그를 불렀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품에 그를 담았다.

 자신의 가슴에 그의 몸을 붙이고, 자신의 큰 품에 작은 그가 꽉 들어차게. 자신에게서 새어나가지 못하게.

 명이를 안았다.

그렇게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태지천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명이를 안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조금씩 숨이 흔들렸다.

 살고 싶다.

 태지천이 죽음 앞에서 마지막으로 느낀 감정이었다.

 이상함을 느낀 명이가 태지천을 불러와도 태지천은 명이를 품에서 놓지 않았다. 그제서야 태지천은 입을 열었다.

"명아, 미안하다."

 그게 첫마디였다.

 명이에게 사과의 말 한마디를 붙이고 나서야 태지천은 자신에 대한 상황을 명이에게 설명할 수 있었다.

 명이가 어떤 얼굴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애석하게도 찬란한 노을빛은 태지천의 시야에서 명이를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태지천은 미소를 지었다.

 죽어가는 이가 남게 되는 이에게 슬픈 얼굴을 보여주는 것은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일임을 그는 뼈저리게 알고 있기에 다정하게 웃었다.

 참 다정한 얼굴이었다. 이런 얼굴을 보고 누가 감히 그가 죽음을 앞두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방금 고한 사실이 거짓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아무렇지 않은, 사랑하는 이를 위한 다정한 미소였다.

 그리고 태지천은 입을 열어 대화를 마무리했다.

"명아, 마지막은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겠느냐."

 명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를 사랑함은,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음은 이미 충분히도 아는 사실이기에.

 그렇기에 태지천은 다른 부탁을 했다.

 사랑하는 정인이 자신을 모두가 아는 신교의 교주가 아닌, 그를 사랑하는 그만의 한 사람으로 기억해주길 바라며.

 태지천은 눈을 살짝 감고 명이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 입맞춤은 참 달고, 사랑으로 가득 찬 입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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