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It's a lonely road
리베카 쾰레만스는 자랑스러운 자식은 되지 못했다.
언제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결점투성이 자식.
창문으로 바라본 풍경에는 언제나 집을 떠나는 뒷모습이 보일 뿐이다. 집, 가장 안락하며 소중한 이들을 기다릴 수 있는 장소. 그곳에서 가족을 기다리는 것이 리베카 쾰레만스의 일. 그것이 리베카 쾰레만스의, 삶.
그런 식으로 정의를 해왔던 게 지금까지 과정이었다.
이제 와서 어린 시절을 되짚어보자면 그리 특별한 것 없는 삶이었다. 예의범절을 배웠지만 가족을 모욕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참고 싶지 않았으니까. 벼락 출세꾼, 무기상, 죽음의 상인들…. 그 말을 내뱉은 사람들은 모두 그에 걸맞은 흉 하나씩 가지고 돌아갔다. 다시는 쾰레만스라는 이름을 입에 올릴 수 없도록. 모든 체면을 버리고 나면 꽤 개운해졌다.
학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린아이들이 싸우지 않도록 사회성을 길러주는 것이 학교의 역할이라면, 리베카 쾰레만스는 학교에서도 배워먹은 게 없는 사람일 것이다. 마땅한 친구 한 명 없이 오직 가족의 품 안에서 나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내뱉으면서…. 그러니 가족은 특별하다. 리베카 쾰레만스라는 사람을 버릴 수도, 집안 사람이 아닌 것처럼 취급할 수도 있었는데도 가족으로 여기며 곁에 둬주었다는 점이. 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되어도 상관없다, 사무치도록 외로워도 내 곁에는 언제나 가족들이 있으니까. 당신들에게 버려진다면 그 뒤는 나중에 생각해야지, 나중에.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내가 버려지고 나면….
“어머니, 그래도 저는 우리 가족이죠?“
생각을 뒤로 미룬 주제에 두려워지는 날이면 클레어 쾰레만스의 곁에서 물음을 던졌다. 그런 순간이면 클레어 쾰레만스는 웃었고, 다정한 목소리를 건네주었다.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단정한 답이 들려오면 그 목소리에 안도하는 나날이었다.
켄드릭 쾰레만스에게도 그런 물음을 건네고 싶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언제나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문장. 답을 듣는 것이 두려워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한 것. 그렇게 내뱉지 못한 문장과 정리하지 못한 관계만이 이곳에 자리 잡고 남았다. 그런 과거였다.
자랑스러운 자식이라는 호칭은 리베카 쾰레만스가 아니어도 헤르하르트 쾰레만스가 그 자리를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으니 노력하지 않았다. 동생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러니 켄드릭 쾰레만스가 보기에 리베카 쾰레만스는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알고 있다. 책무에서 도망친 사람은 무능하다. 이 세상은 감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가득하니까. 때로는 감정을 죽이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하지만, 이 역시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길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가족을 잃고 나니 방황하게 된 것은
자신이 없어진 것도 전부….
쓸데없는 옛날 생각이었다. 과거는 돌아오지 않는데 후회와 미련은 오직 살아있는 자들의 것이다. 누군가 이야기했다. 이곳에서는 죽은 사람도 만날 수 있으니 제대로 털어내라고, 이별을 준비하라고. 할 수 없다고 답했었다.
"…그러니까 전부, …아버지가 물려주신 것도, 쾰레만스의 것도. …전부, …제가."
이별을 준비할 자신이 없었다.
"…이번에는 손가락, 걸고 약속해 주세요."
사실은 영영 가족들의 뒤에서 살아가고 싶어요.
"…회계사도 되어보고, …만약 그 길이 아닌 것 같으면 다른 것들도 시도해 볼게요. 아버지께서 하던 일을, 배우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럼에도 문장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길이 보이니 걸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
켄드릭 쾰레만스의 딸, 리베카 쾰레만스. 당신이 남겨준 모든 것들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삶이란 선택과 길을 걸어가는 것의 연속이다. 누군가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 자유롭게 나아가는 것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정해진 길을 걸어가며 살아간다. 같은 길을 걸으며 그 삶을 완전히 흉내 내지는 못하더라도, 리베카 쾰레만스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것이다. 포기하고 싶은 날이 온다면 다른 길을 고르며 '쾰레만스'의 이름을 지키며 살아갈 테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께,
저는 후회에만 머물러있지 않기로 했어요. 당신께서 걸어가던 길을 따라 걸으며 새로운 삶을 살아갈 거예요.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이 온다면 많이 울겠지만, 영영 울지만은 않을게요.
그러니 얼굴에 웃음이 조금씩 피어난다. 눈물이 흐른 자국은 언젠가 흐려질 것이다. 표정을 지을 수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걸어갈 수 있다면.
"자랑스러운 딸이 될게요."
리베카 쾰레만스는 자랑스러운 자식은 되지 못했다.
리베카 쾰레만스는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고자 한다.
언제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결점투성이 자식.
더 이상 뒤가 아닌, 앞을 향해 걸어가는 당신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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