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꿈

2006년 3월 7일

200419 연성

드림 by 서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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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오늘따라 짐이 무거웠다. 책 세 권, 아이패드, 다이어리, 필사 노트, 보조배터리, 충전기 등등. 간식 몇 개와 물병도 잊지 않았다. 평소라면 가져오지 않을 것들로 가방은 가득 찼다. 여자는 긴 시간 오늘을 기다려왔고 그건 분명 다른 누군가도 마찬가지였다. 밖을 나서자 옆집 아이가 오늘도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마녀, 하피, 마녀, 하피! 그녀는 익숙하다는 듯 한 번 봐주곤 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곳은 도서관이었다. 여자가 반납할 책을 내밀자 데스크에선 익숙한 사람이 활짝 웃으며 친근하게 말을 건다.

“어? 오늘따라 뭔가 많네요?”

그 말에 여자는 잠시 제 가방을 바라보았다. 평소와는 달리 크고 묵직해 보였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괜히 저가 더 낯설고 어색해 보였다. 잠시 말이 없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고된 일에 지쳤다는 듯 한숨처럼 말했다.

“……네. 할 게 좀 있어서요. 오늘은 문 닫을 때까지 있으려고요. 그때까지 계시는 거죠?”

“물론이죠! 마감 시간 때 알려드릴게요!”

“네. 고맙습니다.”

여자는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한참을 바라보지만 화면은 변하지 않았다.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만 덩그러니 응시한 지 30분, 여자는 손길 닿는 대로 책을 두어 개 뽑아왔다. 느리게 시간이 가기 시작했다.

여자는 미안한 표정으로 연신 사과했다. 사서는 도서관 문을 잠그며 시계를 확인했다. 평소보다 약 30분은 늦은 시간이었다. 하늘엔 벌써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미안해요. 저 때문에 많이 늦었죠?”

“아픈 건 어쩌겠어요. 이제 배는 괜찮으신 거죠?”

“네, 네. 늦어서 어떡하죠. 오늘 일정이라도 있으셨음 저 때문에 곤란해진 거잖아요.”

“아뇨. 오늘 약속도 없었던 걸요, 뭐. 바로 들어갈 거예요.”

사서의 말에 여자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네, 네! 꼭 바로 들어가세요.”

“네?”

종용하는 듯한 느낌에 사서는 반문하고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는 이 도서관의 단골이니만큼 저와 자주 알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친한 건 아니었다. 나쁜 사람은 아닌 걸 알지만, 항상 조용하고 얌전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가끔 독특한 언행과 특유의 창백한 느낌에 마녀라는 오해도 사는 이였다. 여자는 조금 시선을 굴리다가 멋쩍게 말했다.

“많이 늦었잖아요…….”

“네, 이오나 씨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 말에 여자, 이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저 멀리 노을 속에서 사라지는 여인의 뒷모습을 내내 바라보았다. 문득 가던 도중 사서가 뒤를 돌아봤다. 이오나는 아직도 도서관 입구에 서있었다.

이오나는 땅을 보고 있었지만, 고개를 돌리기 전까진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의문이 하나 생기니 모든 게 기분 나쁘게 다가왔다. 오늘따라 가득 챙겨온 짐부터 마감 직전에 화장실을 찾는 모습까지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방금 대화는 저녁 일정을 알고자 한 거였을까? 아닐거야. 좀 독특하긴 해도 이상한 사람은 아니니까……. 사서는 걸음을 재촉했다.


정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정원의 글라디올러스가 붉게 피어올라 은은한 향을 냈다. 바람에 풍겨 오는 그 향취에 취해 사서는 문을 열었다. 어쩌면 달빛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사서는 문득 그 이유를 찾으려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 발걸음에 어떠한 변명이든 필요할 것 같았다.

문을 열어보니 정원 밖 울타리 너머로 누군가가 보였다. 종소리가 울리고 향긋한 꽃향기 가득한 정원에 달빛을 받으며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마치 누군가 그려낸 듯 낭만적인 장면이었다.

2006년 3월 7일이었다.


8일 새벽, 저 멀리서 내리치는 섬광을 보며 마녀, 이오나 헬름스는 생각했다.

‘실패했구나, 백작님.’

500여 년이 넘는 기다림이 보상받지 못했다. 당신은 또 뭘 선택하게 될지. 어렴풋이 피어오르는 궁금증을 죽인다. 이오나는 알 수 없었고 평생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내일 또 ‘메텔’을 볼 수 있겠구나. 다행이야.’

그저 그 사실만을 감사히 여길 뿐이었다.


나 이렇게 행복해도...→달의 사생아→이렇게 아름다운(rep)→달콤한 꿈→나 이렇게 행복해도...(r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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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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