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꿈

로즈데이

200514 연성

드림 by 서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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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에게 장미꽃을 선물하세요! 전 장미 10% 할인!!

백작은 가판대 앞에 아기자기하게 써진 문구를 보았다. 헤드라인 아래에는 손글씨로 ‘로즈데이 기념 특별 패키지 한정 수량!’ 이라고 적혀있었다. 가판대 위에는 다른 꽃다발보다 유독 화려하게 탐스럽게 꾸민 꽃다발들이 가득이었다.

날씨가 좋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향기가 풍겨졌다. 풍성한 꽃다발 앞에 서 있자니 시간은 멈춘 듯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장미꽃을 선물하세요! 괜히 간질거리는 날이었다.

꽃이 좋으냐마느냐의 문제는 이제 백작에겐 없었다. 지독히 긴 시간은 그의 기호와 감성을 마모되게 했고 무감흥에 가까운 권태와 우울이 저를 휘감아 삼켰다. 그러나 구태여 날짜 하나를 장사를 위해 꽃에 의미부여 했다며 냉소적으로 굴 일도 없었다.

꽃을, 싫어하진 않았던 것 같아. 그건 자신의 기호에 대한 생각은 아니었다. 뒷마당에서 약초들을 심고 돌보던 제 동거인에 대한 생각이었다. 꽃이 좋다, 고 한 적은 없었지만 자연스레 그렇게 느꼈다. 그 근거를 찾겠다는 듯 여러 과거의 장면들을 떠올렸다. 오래가진 않았다. 많은 장면들이 필요할 만큼의 시간을 보낸 건 아니었다.

백작은 고개를 들고 아까부터 저를 멍하니 보고 있던 직원을 불렀다.


또 허브 하나가 사라졌다. 이번에는 잎 하나도 아니고 야무지게 꽃봉오리 하나를 뜯어간 듯싶었다.

‘분명 침대 아래에 사는 놈 짓일 거야. 주의를 줘도 항상 이러네.’

이오나는 드물게 인상을 쓰며 줄기만 덩그러니 남은 꽃을 바라봤다. 한참을 바라봤지만 나오는 건 한숨뿐이었다. 어차피 꽃을 가져갔으니 한동안은 집에 들어오지 않고 밖을 돌아다닐 터였다. 나중에 한 번 혼내고 말아야지, 하고 몸을 일으켰다.

뒤편에서 인기척이 느껴진 건 그때였다. 목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누구의 것인지 알았다.

“달링.”

“아, 백작님 왔…….”

이오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멈췄다. 눈앞에 보이는 건 무척이나 탐스럽게 피어난 붉은 장미들이었고 어여쁘게 포장되어 있었다. 저런 걸 선물 받는다면 누구라도 기쁠거다. 이어 그 장미꽃이 옆으로 비껴나가고 보이는 건 백작이었다. 그는 오늘따라 옅게 웃고 있었다. 무어라 천천히 말하고 있었다. 꽤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런 그를 보게 된 게 얼마만일까.

쓸모나 취향을 따져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어여쁜 것들을 모아다가 작은 상자에 가득 담아 넣고 가장 좋아하는 색 리본으로 묶는 것과 뭐가 다른가. 보기만 해도 예쁘고, 그 예쁜 것을 굳이 가져와 품에 안겨준다는 게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생존에 필요한 모든 쓸모를 다 제하고 그저 그런 이유 하나로 챙긴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간질거리는 구석이 있었다.

이오나는 멍하니 제 품에 안긴 꽃다발을 받았다. 떨어지지 않게 안은 것은 거의 본능적인 몸짓이었다. 손 안엔 포장지 특유의 까슬까슬 거리는 감각이 있었지만 현재 이오나는 그것을 인지할 수 없었다. 어떤 큰 자극과 충격에 넋이 나가버린 듯 했다. 뭐라도 말해야해. 근데 지금 백작님이 뭐라고 하고 있는 거야? 들려?

“-이 나서 하나 정도 사왔… 는, 데…….”

백작의 말이 점점 흐려지고 끝을 맺지 못했다. 그와 동시에 천천히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눈앞에 보고 있던 것이 아래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무너져 바닥에 주저앉은 이오나는 이제 거의 터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평소의 창백했던 얼굴은 어디로 가고 온통 새빨개져서는 울 것 같은 시선이었다. 퍽 억울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억울할 거였다. 억울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제 생각이 나 꽃다발을 사왔다는 이가 백작인데, 그리 말하며 얼핏 미소 짓는 얼굴을 무방비 상태서 마주 했는데. 떨리는 손끝에 힘이 들어가자 포장지가 살짝 우그러들며 소리를 낸다. 물기가 가득한 음성이 간신히 나왔다.

“난… 아무것도, 준비… 안, 했는데, 요…….”

백작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천천히 몸을 굽혀 시선을 마주했다. 이젠 백작이 억울했다. 주고 싶어서 준 것이니 바라지도 않은 거였다. 헌데 그런 표정으로 그런 말을. 어이가 없어 웃음이라도 내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옅은 웃음에 이오나는 더욱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본다.

“괜찮아. 달링이 붉어서 장미 같아.”

“……?”

그는 그제야 눈을 데굴 굴려 제 품의 장미꽃을 보았다. 그리고 보이지 않은 제 얼굴 대신 백작을 봤다.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제일 혼란스러운 건, 어떻게 그런 말을?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귀를 멍멍 울릴 정도로 뛰는 제 심장소리였다.


쓰다보니 하루가 넘어갔지만 언제 써보겠냐 백만년 만의 연성이고 위의 짤은 풀던 썰.

생각해보니 백작님은 자기가 꽃 같은 줄은 알지만 너무 당연하고 익숙해서 남 배려를 못 하는 게 아닐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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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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